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30)
#재능만렙 플레이어 130화
나는 이미 ‘예지몽(豫知夢)’을 경험했었다. 그때 느꼈던 묘한 기시감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남아 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지금의 내 감각을 유추할 수 있었다.
‘방금 그건 예지안.’
예지안(豫知眼).
미래를 보는 눈.
구체적으로 어떠한 미래를 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직감했다.
‘내 지인들 중 누군가가 위험하다.’
혹은, 앞으로 위험해질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점성술사 ‘이타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은 종종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고는 합니다. 미래를 보는 것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통증을 이기지 못해 광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확신했다. 누군가가 위험하다고.
’이 시점에서 위험할 수 있는 일.’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오늘의 날짜는 2018년 10월 10일.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 중, 선화를 비롯한 내 파티원들을 위험하게 할 만한 사건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엄마나 누나가 위험해질 일은…….’
교통사고나 그런 건 아닐 것 같다. 내가 느꼈던 방금의 그 감각. 미래를 느끼고 위험을 감지한 내 ‘감각안’이 말해주는 것은 그런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나 누나는 아니야.’
플레이와 관련이 되어 있다. 이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선화를 비롯한 애들인데.’
그 애들이 위험해질 일이 뭐가 있지? 현 시점에서도 최상위를 달리는 애들이다. 우리가 곧 들어가야 할 ‘광화문 던전’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딱히 위험할 만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도 아니면…….’
혹시 내가 가지고 있는 퀘스트 ‘적안을 찾아라’라는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 건가. 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람. ‘안서희’에게 어떤 위험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가.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데.’
확인을 해봐야 했다. 그래도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선화다. 일단 선화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네, 오빠.
일단 선화에게는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집인데 이제 나갈 거예요.
-어디?
-연서언니랑 데이트하기로 했어요.
-연서랑? 어디서?
-홍대! 맛있는 케이크 먹기로 했어요. 아참. 서희 언니도 같이 만나기로 했는데…….
말투를 들어보니 ‘오빠도 올래요?’ 혹은 ‘오빠도 오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을 내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내가 바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홍대로 간다고?
-네. 홍대에 당근 케이크 존맛탱인 곳이 있대요. 어어어어어어엄청 맛있대요. 오빠도 좋아할 걸요? 오빠도 엄청 좋아할 걸요?
-그럼 하나 사와.
그 말에 선화는 조금 시무룩해져서 ‘네……!’ 하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조금 생각했다.
‘홍대.’
2018년 10월 중순. 홍대. 검후. 선화. 안서희. 이 키워드들을 조합하니 무엇인가가 보일 것 같기는 했다.
‘아.’
한 가지 사건이 있기는 했다. 홍대는 아니고 바로 옆의 합정에서 벌어졌던 사건. 일명 ‘광견 테이머의 인질극’이라고 불렸던 사건이 있었다. 내가 그렸던 미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 신경쓰지 않고 있었던 사건.
‘많은 몬스터들을 테이밍해서 잔혹한 인질극을 벌였었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미래의 기준에서 보자면 하도 많은 사건들 중에 하나일 뿐. 사실상 서울역 던전이나 유플렉스 던전, 혹은 곧 오픈 될 광화문 던전의 브레이크보다 훨씬 적은 피해를 일으켰던 헤프닝이다.
‘죄 없는 시민 여럿이 죽었고.’
결국 그 테이머도 플레이어들에 의해 사살당했다. 홍대와 합정은 바로 한 정거장 차이. 내가 느낀 ‘예지안’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애들에게도 어떤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애들에게 홍대나 합정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
이타치의 말을 떠올렸다.
-미래를 보는 능력은 저주받은 능력입니다. 그 능력으로 본 미래를 발설하지 마세요. 반드시 무서운 일이 생깁니다. 미래를 보는 능력으로 미래를 바꾸려들지 마십시오. 미래로 보았던 불행보다도 훨씬 더 심한 최악의 결과가 도래할 테니까.
미래를 보는 것과 관련한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 명. 28세의 나이로 요절했던 이타치가 남긴 말이다.
선화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왜요? 오빠도 당근 케이크 먹고 싶어서 그래요?
선화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오빠도 같이 가요!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를 유혹하듯 열심히 주문(?)을 걸었다.
-당근 케이쿠! 당근 케이쿠! 존! 맛! 탱! 천!
-선화야. 혹시라도 위험한 테이머를 만나게 되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테이머요?
-응. 그리고 안서희랑 만난다고 했지?
과거의 안서희. 그리고 현재의 안서희. 둘은 다르다.
’과거의 안서희는 홍대에 없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연서 혹은 선화와 친해지지 않았다면 그런 번화가로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어쩌면 서주환에게 받은 상처를 곱씹으며 ‘적색귀’가 되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핵심 키는 안서희야.’
‘포식수의 군락지’에서부터 계속해서 인연의 실타래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내가 난데없이 ‘미래의 위험을 감지’한 것도 어쩌면 ‘적안의 소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화야.
일단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을 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서희의 눈이 붉은색으로 물들면 나한테 꼭 연락해.
* * *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안서희는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연서와 만났다.
“언니랑 친해졌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해요.”
“그래?”
신연서가 밝게 웃었다. 그 눈웃음을 본 안서희는 실제로 조금 설렜다.
“언니앓이 할 거 같아요.”
이성으로 설레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지만, 하여튼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의 신연서는 안서희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어느덧 선화도 도착했다.
“헤헤. 늦어서 미안해요!”
셋이 한데 모여 이동했다. 신연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길이 왜 이렇게 어려워?”
물론 길은 어렵지 않았다. 일자로 쭉 가기만 하면 됐다. 그저 신연서가 기가 막힌 길치일 뿐. 안서희는 그 사실을 굳이 끄집어내지는 않았다.
“이 쪽으로 가면 돼요. 홍대랑 합정 중간쯤에 있어요.”
“와. 너 지도 되게 잘 본다?”
“아니에요. 요즘 어플이 엄청 좋아져서요.”
선화는 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근 케이크에 꽂혔다.
“당근 케이쿠! 당근 케이쿠!”
셋이 카페에 들어섰다. 셋은 무려 3시간 동안이나 한자리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도 아직도 모자랐다.
안서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혁진. 그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야?”
“우리 오빠요?”
묘하게 ‘우리’ 라는 단어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안서희도 그걸 눈치챘다.
“남매끼리 사이가 좋아 보이네. 그런 사이 별로 없다던데.”
“나는 오빠가 엄청 좋아요.”
당연히 세 사람의 화제는 ‘김혁진’이 되었다. 안서희가 말했다.
“엄청 신기한 사람 같아.”
“우리 오빠가 신기해요?”
“응. 신비롭다고 해야 하나.”
“우리 오빠 뭔가 막 어른 같죠?”
굳이 모든 대화에 ‘우리 오빠’라는 말을 썼다. 그래서 흐름이 조금 이상했지만 안서희는 그냥 넘어갔다.
“응. 너희 오빠.”
그 말에 김선화가 어깨를 쭉 폈다.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기뻐했다.
“우리 오빠가 좀 그래요.”
그사이, 김선화는 안서희의 눈을 살폈다.
‘빨간…… 색?’
완전히 붉은 색은 아니었다.
‘언제부터?’
아주 약한 색깔의 써클렌즈를 낀 것 정도. 완전히 붉은색은 아니지만 약간은 붉어진 상태다.
‘오빠 얘기를 할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핸드폰을 들어 김혁진에게 카톡을 보냈다. 서희 언니의 눈이 약간이나마 붉게 변했다고. 자세히 관찰해야 알 수 있을 정도지만, 분명히 변하기는 변했다.
그러던 찰나.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시민 여러분은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들려왔다. 커피숍 안에 있던 사람들도 벌떡 일어섰다.
“뭐, 뭐야?”
“대피 방송인데?”
“몬스터가 나타난 거 아냐?”
핸드폰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미친!”
인질극이 벌어졌단다. 위치는 합정. 합정에서 홍대 쪽으로 괴상한 몬스터들을 이끌고 오는 미친 플레이어가 있다고 했다.
실시간으로 기사와 SNS글이 쏟아졌다.
[합정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플레이어의 힘을 사용한 묻지마 살인 사건.]한 테이머가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출동한 경찰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상황. 안서희도 벌떡 일어섰다.
“가요. 바로 옆이에요. 뛰면 10분도 안 걸려요.”
신연서는 조금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경찰들이 포진해있어. 우리가 나서도 별반 다를 것은 없을 거야.’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실황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면 속의 남자가 크하하하! 웃고 있었다.
-이거야! 이걸 원했어! 이걸 원했다고!
방송 송출이 중지되었다. 누군가가 몬스터에게 물어뜯겨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합정에서 난데없이 벌어진 묻지마 살인과 인질극. 경찰들도 딱히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
이상하게도, 총 등의 무기가 플레이어에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단다.
합정역에서 홍대역 방향으로. 강영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조금씩 전진했다.
“멈춰. 움직이면 쏜다.”
경찰들이 경고했다.
“쏴보시든가.”
탕! 탕!
경찰들이 실제로 발포했다.
“히히히히! 총 따위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냐!”
한바탕 실컷 웃은 강영한이 크게 외쳤다.
“물어. 맘껏 물어라! 물어뜯어! 다 죽여 버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사람들을 죽이는 게 재미있었다.
“게임이다, 게임!”
그래 게임. 이건 게임이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잡아먹히는 걸 보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다.
[견인(犬人)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견인(犬人)의 레벨이 올랐습니다.]심지어 자신의 몬스터들의 레벨도 오르고 있다. 이 얼마나 좋단 말인가.
‘곧 있으면 견전사(犬戰士)로 진화하겠어.’
그러면 훨씬 더 강력해질 거다. 어쩌면 튜토리얼 종결자로 널리 알려진 마상현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물어!”
견인(犬人).
라이칸스로프가 늑대인간의 형태라면, ‘견인’은 개인간의 형태다. 본래 레벨은 20대였지만 테이밍과 버프. 그리고 인간 사냥을 통해 레벨을 30대까지 올렸다. 인간을 사냥하면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고, 여기까지 올리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대략 대여섯 마리의 견인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두 마리는 여의도 방면으로, 네 마리는 홍대로 향했다.
컹! 컹! 컹!
이족보행을 하는 개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경찰을 잡아먹고, 시민들을 물어 뜯었다.
합정과 홍대 부근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견인 한 마리가 제자리에 서서 코를 킁킁거렸다. 계속해서 벌름거렸다. 무엇인가를 찾는 듯 했다.
이내 견인이 아우우-하울링을 시작했다. 그 소리를 강영한도 들었다.
“오오라? 그 쪽에 맛 좋은 사냥감이 있다고?”
일반인보다 더 맛있는 사냥감. 신비로운 힘을 가진 ‘플레이어’가 더욱 그렇다. 그는 지금 자신감이 가득 찬 상태. 어떤 플레이어도 사냥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냥’에 특화된 이 ‘견인’ 20마리와 함께라면 말이다.
여의도쪽으로 뛰어가던 견인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경찰도 나를 못 막아!’
경찰도 자신을 못 막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고 있다.
’이 얼마나 황홀하단 말인가!’
그의 눈에 누군가가 잡혔다.
“어라?”
일대일 PVP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플레이어 한 명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정말 예뻤다. 그의 눈으로 본 신연서는 천사였다.
“신연서?”
저 천사의 팔 다리를 찢어놓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피를 뚝뚝 흘리는 인형 같겠지?
“일대일은 강하지만 글쎄.”
견인들이 자신 앞에 섰다. 든든한 병사들 같았다.
“자. 새로운 사냥감이다, 얘들아.”
견인들이 신연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신연서가 검을 뽑아들었다.
‘한 마리, 한 마리는 약해.’
그런데 숫자가 좀 많다.
‘숫자는 20마리.’
다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 없다.
“선화야.”
“알았어요.”
이쪽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탱커가 있다. 견인의 이빨 따위. 선화의 방어력을 뚫지 못한다.
[스킬. ‘광역 도발’을 사용합니다.]견인들의 머리 위에 일제히 [!] 표시가 떴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어그로 끄는 데에 성공했다. 선화를 향해 견인들이 몰려가기 시작했다.
“선화야. 조금 버텨줘.”
“알았어요!”
신연서는 이 몬스터 무리가 자연적인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저 남자. 테이머라 짐작되는 저 남자가 주범이다.
‘저놈을 잡아야 해.’
마침 공간이 비었다. 이 공간을 뚫고 들어가면 저 남자를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신연서는 달려들지 않았다.
‘뭔가 찝찝해.’
이건 본능에 가까웠다. 길이 열려 있지만 뚫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갈 수 있지만 가지 않았다. 저 남자가 위험해서? 그건 아니었다.
‘서희의 눈이…….’
안서희의 눈이 붉게 물든 상태. 모든 것이 가능해진 ‘신문물의 세상’이 도래했고, 눈이 붉어지는 것 따위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마법도 부리는 판에 눈이 붉어지는 것이 대수이겠는가.
‘그런데 불길하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어그로가 조금 풀린 ‘견인’ 한 마리가 안서희에게 달려들었다. 안서희의 목덜미를 물었다. 신연서가 재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서희. 괜찮아?”
이빨이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신연서의 움직임이 빨랐다. 큰 부상은 아니었다. 안서희의 목에서 피가 조금 흘러내렸다.
“피…….”
혼자서 중얼거렸다.
“피……!”
계속 중얼거렸다.
“피……!”
검지로 그 피를 살짝 닦아냈다. 손가락을 핥았다. 안서희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완벽한 적안(赤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관찰자’ 김혁진이 그 ‘적안’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