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32)
#재능만렙 플레이어 132화
김혁진의 심장을 간지럽히는 느낌.
그것이 ‘언어’의 형태로 토해졌다. 김혁진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김혁진의 무의식이 세상을 읽었고 안서희의 ‘어둠’을 직시했다.
그리고 그 무의식이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안서희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나도 너랑 같았어.’
이 세상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엄마는 병에 걸려 죽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했고, 누나는 백혈병에 걸렸었다.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반지하에서 내 ‘재능 없음’을 탓하면서 그냥 내일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 그러면 볕 들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그러면 좋겠다. 지금은 힘든데, 그러면 좋겠다.
그러면서 살았었다.
‘아니. 내가 그래도 너보다는 낫네.’
적어도 나는 가족이 있었다. 서희에게는 가족도 없다. 그저 아버지라 부르기에도 역겨운 수컷 한 마리가 있을 뿐.
지금 이 순간. 안서희의 어둠을 직시한 김혁진의 입에서 영창이 흘러나왔다.
관찰.
공감.
의지.
거기에 더한 믿음의 간증.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볼 수 없는 것들의 증거니.”
의식이 있되 의식이 없는 상태.
김혁진이 말하되, 김혁진이 말하는 것이 아닌 영창. 의지 영창이지만,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구현하는 것이 아닌 영창.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 영창이 김혁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 통성과 간구를 내가 들었음이며.”
“끝내 그 창날 같은 고난을 안식과 환희로 승화시키리라.”
김혁진의 잠시 숨을 골랐다.
“굳건한 믿음과 신뢰 위에 서서 내가 선포하리라.”
과거. 김혁진이 읊었던 의지영창은 ‘거짓된 권위’를 무너뜨리는 영창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돕는다.’
소녀의 마음 속 어둠을 보는 능력. 그것에 깊이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눈앞의 불쌍한 소녀를 돕고 싶은 진심. 그리고 도움을 간절하게 바라는 소녀의 믿음이 한데 어우러져 ‘구원의 영창’을 내뱉었다.
[믿음을 가진 자여.] [내가 명령한다. 눈을 바로 떠 세상과 마주하라.]김혁진은 본능적으로 타이밍을 읽었다. 배운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알았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의지영창(意志詠唱)에 성공하였습니다.] [의지영창(意志詠唱)의 완성도에 따라 ‘추출하는 손’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김혁진의 눈에 보였다. 영창을 통해 만들어진 무형의 기운 혹은 강렬한 열망과 염원이 자신의 손에 밀집되고 있는 것을.
‘보인다.’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김혁진의 눈에는 보였다. 본질을 탐구하는 눈. ‘관찰자의 눈’이 그 것을 읽어냈고, 한계를 모르는 그의 재능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바로 지금.’
힘을 끌어올렸다. 단순한 스킬 사용이 아니다. 스킬 사용을 통한 마나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정했다.
‘영창으로 구현한 염원의 힘과 함께.’
그와 동시에 김혁진의 오른손에서 황금빛이 번쩍! 터져 나왔다.
[임시 능력 ‘추출하는 손’이 임시능력 ‘구원하는 손’으로 변경됩니다.] [‘구원하는 손’을 사용합니다.]김혁진은 느낄 수 있었다.
“서희야. 좀 아플 거야.”
“…….”
안서희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무엇인가 강력한 외부의 기운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금의 김혁진이 할 수 있는 말은 별 거 없었다.
“나를 믿어.”
논리도 근거도 없다. 그저 믿어달라 요청했다.
“내가 도와줄게.”
진심이었다. 김혁진의 진심을 읽은 것인지, 안서희의 상태가 순간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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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의식적 믿음/미약한 두려움/상승하는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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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직감했다. 지금이다. 오른 손에 중첩하고 모아두었던 ‘구원하는 손’의 기운을 방출하기에 최적의 타이밍.
김혁진의 오른손바닥이 안서희의 두 눈을 가렸다. 김혁진의 손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안서희의 눈에서 요사한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악!”
안서희가 비명을 질렀다. 다시금 무아지경에 빠져든 김혁진도 그 비명을 들었다.
김혁진도 말을 하지는 못했다.
‘이겨내야 해.’
오른손으로 안서희의 눈을, 그리고 왼손으로 안서희의 손을 잡았다. 안서희의 손은 굉장히 차가웠다.
‘이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냐마는.’
손을 잡아준다는 것.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 차가운 손에 체온을 나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될 수 있을지. 그건 미지수다.
안서희가 지르는 비명이 날카로운 꼬챙이가 되어 김혁진의 귀에 꽂혔다.
‘많이…… 아플 거다.’
현재 안서희와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는 상태. 안서희가 지금 느끼는 극렬한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상태.
‘집중하자.’
지금 김혁진은 ‘적안’을 적출하고 있다. ‘추출하는 손’이 아니라 ‘구원하는 손’으로.
‘양치기 소년도 개자식이네.’
양치기 소년이 정말로 무리했다면? 정말 많이 무리했다면 ‘추출하는 손’이 아니라 ‘구원하는 손’을 애초에 선물해주었을 것이다.
‘추출하는 손을 멋 모르고 사용했다가는……. 안서희가 평생 장님으로 살 뻔했어.’
아마 양치기 소년은 알고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양치기 소년에게 그런 사실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그저 적안을 얻는 것에만 집중했겠지.’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구원하는 손’으로 적안을 적출하면, ‘적안의 기운‘만이 적출 된다. 안서희의 두 눈은 멀쩡할 거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김혁진의 등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 안서희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김혁진의 몸이 떨려왔다.
‘해냈다.’
순간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김혁진의 몸을 집어삼켰다.
“해냈…….”
털썩. 김혁진의 몸이 안서희의 몸 위로 쓰러졌다. 김혁진의 오른손에는 ‘붉은색 구슬’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또르르.
붉은색 구슬이 김혁진의 손에서 떨어져 굴러갔다.
다롱이가 그 것을 발견했다.
[!!!]쪼르르 달려가 그 것을 주워들었다. 다롱이의 몸집보다 더 큰 붉은 구슬.
다롱이는 한참동안 고민했다.
[;;;]입을 벌려서 그 것을 먹을까 말까. 한참을 주저했다.
[!!!]먹자! 입을 크게 벌렸다가,
[;;;]그래도 이 건 안 돼. 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다롱이는 붉은 구슬을 먹지 않고 인벤토리로 이동시켰다. 괜히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쿵쾅쿵쾅 걸어가 기절한 김혁진의 등 뒤로 올라갔다.
[!!!]김혁진을 밟기도 하고, 그 작은 손으로 김혁진의 볼을 때리기도 했다.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것을 드랍해서 시험에 빠지게 했느냐는 항의 같기도 했고, 기절한 김혁진을 깨우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김혁진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요?”
천천히 눈을 떴다. 희뿌연 시야가 밝아졌다.
“괜찮아요?”
익숙한 목소리.
‘아.’
김혁진과 함께 이 곳. ‘플레이어 센터’에 같이 왔던 아이. 지금은 김혁진의 동생인 김선화였다.
“괜찮아요?”
선화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괜찮아. 잠깐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기절한 것뿐이야.”
“힝.”
선화는 정말로 걱정했다는 듯 김혁진에게 와락 안겼다.
“한 시간 동안이나 기절했단 말이에요!”
“괜찮으십니까?”
선화의 뒤에는 송기열이 있었다.
“예. 괜찮습니다.”
“미리 말씀주신 대로…… 병원으로 후송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네. 잘하셨어요. 여기 있던 아이는 어디 갔죠?”
“눈이 안 보인다하여 일단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잠시 동안 앞이 안 보일 수 있다. ‘추출하는 손’이 아닌 ‘구원하는 손’을 사용했기에, 그래도 시력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다롱.”
김혁진은 기절했지만 그래도 상황을 읽는 눈 까지 기절한 건 아니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순진무구한 표정의 다람쥐.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표정이지만, 안타깝게도 다람쥐의 주인은 ‘관찰자‘다.
“네가 챙겼지?”
다롱이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 위에는 [;;;] 표시가 떴다.
“좋아. 넌 앞으로 치킨 없을 줄 알아.”
김혁진이 매정하게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다롱이가 김혁진의 어깨에서 굴러떨어졌다. 김혁진의 티셔츠 끝을 간신히 붙잡고 데롱데롱 매달렸다.
김혁진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다롱이’가 인벤토리 열람을 요청합니다.]다롱이는 치킨에 패배했다. 뒤돌아서 걷는 김혁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안서희는 금방 진정 되었고, 시력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일단 안서희는 시설로 돌아갔다. 내가 특별히 잘 봐달라 했으니 VVIP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을 거다.
‘노란 부적이 또 있네.’
책상 구석에는 언제나 그렇듯 누나의 염원이 담긴 ‘노란색 부적’이 있었다. 저걸 아직도 쓰고 있다니. 누구 누나인지는 몰라도 참 지극정성이다.
‘그러면 이제.’
내 인벤토리에 고이 자리 잡고 있는 ‘적안(赤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붉은색 구슬 형태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자세한 설명은 읽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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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안(赤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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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은 내가 이것을 획득했다는 걸 알거야.’
세니아가 모두 중계했을 테니까. 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었지만 제법 극적인 연출도 한 것 같다.
‘아마 양치기 소년은 이게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겠지.’
양치기 소년에게 매우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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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적안(赤眼)을 찾으십시오.]‘양치기 소년의 쪽지’와 연계된 연계 퀘스트. ‘적안’을 찾아 중간 관리자에게 전달하십시오.
보상 : -(현재 비공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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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보상을 공개한다. 다시 말해 이건 보통의 경우가 아니라는 뜻이다.
‘뭔가 뒤가 구린데.’
그렇다고 내가 대놓고 ‘양치기 소년’의 퀘스트를 무시할 수는 없다. ‘양치기 소년’은 내가 적으로 돌려버린 ‘들판의 지배자’ 따위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자금력과 힘을 가진 수호자다.
뒤가 구린 건 구린 거고 싫은 건 싫은 건데, 큰 손인 것도 맞다. 연계 퀘스트 하나로 무려 ‘천견주’라는 호칭까지 하사했다. 능력 자체는 엄청난 수호자.
공은 공이고 사는 사. 나는 ‘양치기 소년’과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걸 넘겨주는 건 찝찝해.’
그렇다고 아예 안 넘기는 것도 좀 그렇다. 나 혼자서는 ‘양치기 소년’을 감당하기 어렵다. 다른 수호자들을 움직여야 한다. 내가 이 상황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같은 상황으로 최대의 이득을 뽑아낼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해.’
수호자들을 건드리는 행위는 위험하다. 까딱 잘못하면 ‘공적’으로 찍히는 수가 있다. 그러면 플레이가 굉장히 피곤해진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저 피곤에 쩔은 것처럼 침대에 누웠다. 잠든 척했다.
째깍. 째깍.
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려왔다. 초침소리가 마치 무거운 발자국 소리 같았다.
꽤 많은 발자국소리가 지나간 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천천히 눈을 떴다. 늘 그래왔듯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렸다.
‘무조건 내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거라는 보장은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자신감은 있었다.
“세니아.”
세니아를 호출했다. 아니나 다를까. 세니아는 나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지금부터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