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45)
#재능만렙 플레이어 145화
송기열이 조심스레 말했다.
“정희가 어쩌면 김혁진 씨를 찾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발 늦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송정희가 한발 더 빨랐다.
“이미 만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재미있는 건, 송정희를 언급하는 송기열의 목소리에 송정희에 대한 애정이 조금 묻어난다는 것.
“정희가 플레이어와 신문물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것이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까.”
“예. 그래서 김혁진 씨를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빠르게 움직였네요.”
송정희가 빨랐던 것을 인정하기는 한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송정희는.’
아무리 내가 기억하는 ‘철혈마녀’ 송정희와는 10년의 터울이 있다지만, 그래도 너무 수준이 낮았다. 공식적인 이명은 ‘철혈여제’였었던 송정희다. 지금의 자질만 놓고 보면 절대로 ‘여제’의 이명을 얻을 수 없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송정희의 모습.
그리고 또 송정희에 대한 약간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오빠 송기열의 모습.
과거의 송정희와 지금의 송정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동생을 아끼시는 것 같군요.”
“그렇게 아끼는 건 아닙니다. 저희는 혈육이라기보다는 경쟁자에 가까우니까요.”
“…….”
나는 딱히 저 대답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경쟁자인 게 맞기는 맞으니까. 다만 송기열은 자기 스스로의 생각보다, 동생인 송정희를 더 아끼고 있다. 뭐랄까. 애증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송정희는 당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송기열이나 송정희나. 둘 다 애송이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둘 중 더 나은 사람은 송기열이다.
‘송정희에게서는 당신을 뛰어넘겠다고 하는 야망밖에 보이지 않았어.’
그저 욕심에 가득 찬 마녀의 모습. 관찰자인 내가 관찰한 송정희의 모습은 그랬다. 몇 번 더 만나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일단 첫 인상은 그랬다.
“혈육끼리 경쟁한다는 거. 행복하지만은 않겠네요.”
“어쩔 수 없죠. 저희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나는 송기열의 안내를 받아 한 검은색 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벤츠사에서 만든 최고급 세단입니다. VVIP의 의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차량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30여 대밖에 없는 차량입니다.”
갑자기 차자랑? 그런데 딱히 자랑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오늘 아침 식사 하셨습니까? 하는 정도의 사소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넓기는 넓었다. 버튼으로 뒷자리 조절이 가능했는데 거의 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차 자랑 하시려고 저를 안으로 부르신 건 아닐 텐데요.”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저는 태극방패를 통해 플레이어 협회의 대소사를 줄줄이 꿰뚫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점효과. 성큼성큼 다가오는 신문물 시대에, 태극방패는 선점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금 당장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길드를 꼽으라면 당연히 태극방패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선망하는 길드이기도 하고.
“따라서 플레이와 관련된 정보는 어느 정도 조작이 가능합니다.”
“송정희 씨에게, 저에 대한 정보를 왜곡해서 전해주셨겠지요.”
“……그렇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대화였다. 내가 말을 더했다.
“그리고 그 왜곡을 그렇게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제게 송정희를 조심하라 경고하러 오신 겁니까?”
그도 아니면,
“송정희와 제 사이를 견제하기 위해 오신 겁니까?”
나는 송기열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느 쪽의 대답이 됐든, 내게 썩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다. 좀 더 거시적이고 건설적인 대답을 원한다.
‘무슨 대답을 할 거냐?’
‘경회루 필드’를 갓 클리어하고 나온 나를 직접 찾아왔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했는데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으면 많이 실망할 거다.
“김혁진 씨의 말을 듣고 조금 생각해 봤습니다.”
“…….”
“저는 아무래도 정희를 아끼는 모양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일반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관찰’을 통해, 이미 송기열의 얼굴에 새겨진 일말의 애정을 본 상태다.
“그래서 조금 머뭇거렸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어떠한 정보를 넘겨줄 생각인 것 같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송기열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말을 보태주었다.
“정보와 정보의 싸움. 후계 구도를 위한 정당한 전투. 비겁하지 않은 방식의 싸움은 송 길드장님의 할아버지께서도 즐거워하실 겁니다.”
“……예.”
송기열로부터 전해들은 정보는 세 가지였다.
첫째. 송정희가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 나를 회유하려 들 것이다.
둘째. 회유가 불가능하다면 폭력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대응책을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세 번째가 의외였다.
“정희가…… 적안(赤眼)을 찾고 있습니다.”
“적안을요?”
송기열은 적안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안서희의 눈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송정희가 그 적안에 대해 몰랐다는 건, 송기열이 정보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서희에 대한 정보는 흘리지 않았군요.”
“예. 제 동생의 성격상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서.”
서희는 성신의 보호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이다. 그리고 철혈마녀 송정희는 성신의 재벌 3세고. 마음만 먹으면 제 입맛대로 요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터.
내가 말했다.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적안. 이미 저한테 있으니까요.”
의도적으로,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제게 적안이 있다는 정보. 송정희 씨에게 얼마든지 흘려도 좋습니다.”
“김혁진 씨. 제 동생은…….”
나는 송기열의 상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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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애정/약간의 두려움/복잡미묘
──────────
비록 동생이지만 그 동생이 무슨 짓을 할지 오빠인 송기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거겠지. 동생을 가족으로서 좋아하기에, 그래서 동생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괜찮습니다.”
“…….”
송기열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뭘까. 나를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신문물 비즈니스 파트너가 봉변을 당할까 두려운 걸까. 아니면 자신의 동생이 도를 넘는 짓을 할까 무서운 것일까.
‘어느 쪽이 됐든 상관없어.’
나는 자신이 있다. 송기영 회장이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송정희 정도는 얼마든지 내 선에서 상대할 수 있다.
“적안은 분명히 제게 있습니다.”
적안을 왜 노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양치기 소년’ 외 다른 어떤 수호자가 ‘적안’을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적안이 무엇인데 수호자들이 원하고 있는 거지.
‘좋은 콘텐츠들을 뽑아낼 수 있겠어.’
한 번 더 말했다.
“다만, 송정희 씨에게 경고도 분명히 해주셔야 합니다.”
“……경고 말입니까?”
“저를 회유하려면 확실하게 하도록 하고, 회유가 안 되면 포기하라고.”
“…….”
나는 송정희이 아닌 송기열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분명히 내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이 말은 곧, 송기열에게도 경고하고 있는 거다. 네 동생과도 손을 잡을 수 있으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일종의 경고.
“단, 비인도적이거나 폭력적인 방식. 혹은 제가 납득할 수 없는 어떤 수단을 사용한다면.”
선전포고 없는 기습은 비겁한 행위다. 하다못해 작은 가전제품 하나 사더라도 주의사항이 다 적혀 있다.
“그 때에는 송정희 씨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송기열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타이밍을 놓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이어지는 말들이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이 차가 제 거라고요?”
“예. 앞에 앉아 있는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완벽한 방음시스템을 자랑하고 있기에, 여기서 나누는 대화는 앞좌석까지 전해지지 않습니다. 만약 기사에게 하실 말이 있으면 이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팔걸이 쪽에 있는 많은 버튼들 중에 하나.
“이 버튼은 안마 기능입니다.”
“이 버튼은 통풍 시트 기능입니다.”
“이 버튼은…….”
마치 자동차 딜러라도 된 것처럼 내게 정중하게 설명했다.
‘잘 됐네.’
기사딸린 차가 생겼다. 안 그래도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송기열이 알아서 배려를 해줬다.
한바탕 설명이 이어진 뒤 내가 말했다.
“경회루 필드 공략을 넘긴 것에 대한 보상치고는 너무 약소한 것 같은데요.”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송기열이 숨을 들이마신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할아버님과 함께 김혁진 플레이어를 만난 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말이 정말 길었다. 그 긴 말을 요약하자면, 단순한 ‘돈’으로는 내가 가져다준 정보의 가치를 측량할 수가 없단다. 다가오는 신문물 시대에, 단순 돈은 내게 별로 가치가 없다나 뭐라나. 어차피 나는 돈을 엄청나게 벌 거라나 뭐라나.
‘아닌데. 돈이 좋은데.’
사실 가장 명쾌하고 좋지 않은가.
“……하여 김혁진 씨가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성신 차원에서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의 일환으로 이 차와 기사가 주어졌다.
“편하게 이동하실 때에는 이 차와 기사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참. 904호에 기사를 입주시켜 놓도록 했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그 비용은 저희가 부담합니다. 보험을 비롯한 모든 제반 사항도 저희 측 보험 팀에서 일임하겠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타시라고 스포츠카 후보군 몇 대를 준비해놓았습니다. 웨이팅 없이 바로 출고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중에서 고르시면 됩니다.”
삐까뻔쩍한 사진 몇 개를 보여줬다. 이 중에 하나를 고르란다. 이런 것들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한 대에 대략 5억은 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차량 유지와 보수와 관련된 모든 비용은 성신이 부담합니다.”
‘귀찮은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또한 플레이어 협회에서 발행하는 최상위 등급의 플레이어 라이센스를 발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혹여 신분을 숨기고 싶으실 때를 대비하여 중위 등급의 라이센스를 따로 하나 더 발급하겠습니다.”
차 두대. 신분증. 어차피 알려질 정보를 가지고 얻어낸 것치고는 꽤 괜찮은 보상인 것 같다. 송기열의 말대로 단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귀찮지 않다는 것’. 그리고 ‘신경이 분산되지 않는다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네.’
그 성의가 보였다. 성의, 나쁘지 않다. 나쁘지는 않은데 딱 거기까지.
“그런데 과연 이것들이 송정희 씨가 제안할 수 없는 내용일까요?”
“…….”
성의가 마음에 드는 건 드는 건데, 역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아니겠는가.
“정희도 제안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제가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파악해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러한 부분들은 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회를 조금 더 주는 거다. 송기열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것들은 본격적인 거래에 앞서, 제가 먼저 보인 성의표시입니다.”
거래조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잘 보이기 위한 선물. 성신의 통이 생각보다 크긴 큰 것 같다.
송기열이 납작 엎드렸다.
“혹시 다른 거래조건이 있으실까요?”
송정희라는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 송기열의 배려로, 나는 평소 불편했던 것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부족한 것들이 있다.
“저는 송기열 길드장님에게 두 가지를 요구할 겁니다.”
“말씀하십시오.”
최대한 맞추어주겠다는 것 같다.
“선화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살다보니 집이 조금 비좁은 것 같습니다.”
돈으로 받아 집을 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귀찮다. 신경 쓸 것들이 많다. 집이라는 건 슈퍼에서 과자 사듯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대형평수로 이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러한 생각이 있으실 것 같아 미리 매물을 파악해놓았고 내일이라도 당장 거래가 가능합니다.”
합격.
“또한 대형 평형이니만큼, 청소나 가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도우미분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것도 합격. 송기열. 눈치가 제법 빠르다. 송기열의 선택한 것은 옳았던 것 같다.
“그리고 김혁진 씨의 편의를 위하여, 904호에 입주시킬 예정인 운전기사 역시 대형평수의 바로 아랫집으로 입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생각해 놨던 것이 틀림없다. 이토록 술술 말하는 것을 보면. 송기열 역시 많은 시나리오를 생각해놨던 것 같다.
“가능하다면 서희를 저희 옆집으로 이사시키고 싶습니다만.”
“안서희를…… 말입니까?”
“예. 송정희 씨가 노릴 뻔했던 안서희요.”
“어렵지 않습니다만……. 혹시 이 일이 알려지면 차후 김혁진 씨에게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습니다.”
송기열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바로 옆집에, 이쁘장한 어린 여자애를 이사시킨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내가 유명인은 아니지만, 유명인이 되면 아주 작은 흠집도 커다랗게 부풀려질 수 있으니까. 세상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일일이 해명하지는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안서희의 ‘결계’는 내게 꼭 필요하다.
송기열이 다시 말했다.
“제법 살만하게 인테리어를 꾸미려면 한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사이, 김혁진 씨의 편의를 위하여 안서희를 1003호에 입주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송기열의 정성은 충분히 느꼈다.
“공략 하나를 판 것치고는 과한 것 같네요.”
“거래가 아닌 투자니까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향한 투자’가 되겠지. 단순 공략 하나로 이 정도 정성을 들이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저 대답도 꽤 마음에 들었다.
‘제법이네.’
내가 세세하게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신경 써줬다. 성의와 정성을 느꼈으니, 나도 이제 응당 거래에 응해줄 때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이득인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니까. 나와 송기열. 나와 태극방패는 서로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만 지나치게 이득을 취하는 기형적인 관계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했다.
“한 가지 선물을 드릴 것입니다.”
이 ‘선물’은 어쩌면 커다란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드려볼만한 영역의 선물.
‘그래도 건드린다.’
약간의 도박이 포함되어 있는 선물이다. 뭐든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감당할 만한 위험이 예상될 때에는, 투자하는 것이 옳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 선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