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58)
#재능만렙 플레이어 158화
[‘관찰자의 눈’으로 관찰합니다.]무엇인가에 홀린 듯, 나는 나도 모르게 쪽지를 계속해서 읽어내렸다.
-세 가닥의 화마(火魔)가 강림한다.
내 눈에 무엇인가 희미한 영상 같은 것이 잡혔다. 이 느낌은 내가 예지안을 느꼈을 때와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다’라고 표현할 길은 없지만, 희미한 무언가가 미세하게 잡히는 느낌.
‘이 감각.’
이 미묘한 감각과 더불어 내 과거의 지식이 더해졌다.
‘이건 분명히.’
세 가닥의 ‘화마’는 분명히 광화문 던전의 브레이크를 의미한다. 거기서 튀어나올 세 마리의 재앙급 몬스터. 지금 우리들이 손 쓸 수 없는 강대한 몬스터들. 그저 자연스레 소멸해 주기를 바라고 피하기만 해야 하는 그 놈들을, 함소현의 예지몽은 ‘화마’라고 표현했다.
“송기열 길드장님. 제 말 잘 들으세요.”
모든 사람을 구하지는 못한다. 그럴 의무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한다.
“광화문 던전의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할 겁니다.”
“…….”
광화문 던전은 아직 우리들의 실력으로 클리어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경회루 필드’를 클리어하는 것뿐. 경회루를 클리어한다고 해서 광화문 던전이 클리어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함소현이 전해준 이 쪽지에서 대단히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 예지몽 각성자의 예지서가 특별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불길할 줄은 몰랐다.
‘내가 알고 있던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 역시 재앙은 재앙이었어.’
그 누구도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에 대항하지 못했다. 그 당시 한국 플레이어들은 그저 숨을 죽였다. 원래대로라면 브레이크 현상이 일어났어야 했을 서울역 던전이나 유플렉스 던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놈들이 튀어나왔으니까. ‘불 거인’이라는 괴물들이.
‘놈들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놈들과 대적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너무 위험하니까. 일대일로 부딪치면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죽을 거다.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고. 인지하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불길해.’
섬뜩함이 뱀의 형태를 하고서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느낌. 마침내 그 뱀의 혀끝이 내 목을 감싸고서 혀를 낼름거리고 있는 느낌.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요?”
“세 가닥의 화마는 그곳에서 튀어나올 몬스터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역과 유플렉스같이 굵직한 던전이 브레이크 되지 않았다 뿐이지, 자잘한 던전 브레이크와 게이트 브레이크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송기열도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거다.
송기열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김혁진 씨도 클리어가 불가능한 던전이 브레이크된다라…….”
나는 계속해서 ‘예지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이 간질간질 거렸다. 눈동자 속에 작은 애벌레가 들어와 꿈틀거리는 것 같은 기분.
[한 가닥의 화마(火魔)와—.]뭐지.
[현재 ‘관찰자의 눈’의 숙련도가 낮아 해석할 수 없습니다.]여러 번 해석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현재 ‘관찰자의 눈’의 숙련도가 낮아 해석할 수 없습니다.]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아주 조금의 단서를 더 얻을 수 있었다.
[현재 ‘관찰자의 눈’의 숙련도가 낮아 ‘단지 일부분’의 해석만이 가능합니다.]—로 표시된 부분이 조금 더 해석되었다.
[한 가닥의 화마(火魔)와 또 한 가닥의 화마(火魔)가–.] [한 가닥의 화마(火魔)와 다시 또—.] [한 가닥의 화마(火魔)의 그리고 한—.] [영창과 영창과 영창의 기로 끝에서—.]원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했다. 반대로 보이는 만큼 안다고도 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불길해.’
원래대로라면 생존 가능성이 극악에 가까운 튜토리얼 필드를 클리어할 때도. 나보다 강한 몬스터들을 만나 대적할 때도. 이 정도 불길함은 느낀 적이 없다. 단순히 위험한 것이 아니라 불길하다. ‘예지서’를 더 해석한 만큼 불길함이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함소현의 예지서 덕분에 나는 깨달았다.
‘단순히 내가 해왔던 대비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에 대비하여 큰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일단 이곳. DMC리버뷰 자이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속한다. 남가좌동 일대는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에서 꽤 안전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브레이크 현상이 끝날 때까지. ‘불 거인’들이 사라질 때까지, 몸을 사리고 체력을 비축하려고 했었다.
함소현의 예지서를 해석한 순간, 나는 생각을 바꿨다.
‘그것만으로는 안 돼.’
내가 알고 있던 광화문 브레이크와는 조금 달라질 확률이 높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서.
* * *
마상현은 핸드폰의 액정을 꾹꾹 눌렀다.
“에이씨.”
손가락마저도 강대한 근육으로 만들어져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구. 그 옆에 앉은 선화는 마치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보일 정도였다. 선화는 양손으로 콜라 컵을 들고서, 콜라를 쪽쪽 마시다가 마상현에게 물었다.
“왜요, 아저씨?”
“DM이 엄청 왔어.”
“DM이요?”
마상현이 액정을 보여줬다. DM. 다이렉트 메시지. 마상현이 요즘 열심히 하고 있는 SNS의 메시지 기능이다.
“세상에. 이게 다 아저씨한테 손해배상을 하라는 요구예요?”
“그런가봐.”
선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보들. 수호탑이 있으면 좋은 건데, 그것도 모르고.”
“좋은 게 아직 증명이 안 됐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그걸 왜 아저씨한테 물어내라고 그래요? 성신에서 복구도 다 하고 있잖아요.”
“음.”
마상현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글쎄?”
그 옆에서 조용히 햄버거를 오물거리던 안서희가 대신 말했다.
“만만해서.”
마상현은 인상을 찡그렸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만만한가봐. 하여튼 돈 물어내라고 난리야. 고소한다나 뭐라…….”
그러다가 마상현은 문득 김선화와 안서희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야. 너네.”
김선화와 안서희가 동시에 마상현을 쳐다봤다.
“네?”
“…….”
입은 여전히 오물거리고 있는 중. 햄버거 세 개째다. 마상현은 매우 두터운 손가락으로 선화를 가리켰다.
“형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너 가만히 있을 거야?”
지금 두 여자애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햄버거만 먹고 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부당한 일에 대해선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만히 있을 거냐니까?”
선화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표정만으로도 생생한 분노가 느껴졌다.
“다 개 패버릴 건데요?”
“…….”
마상현은 굉장히 황당해졌다. 너. 입술에 케찹이랑 마요네즈나 닦아라. 침은 그만 튀기고.
“서희, 너는?”
안서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애초에 그 오빠는 그럴 일을 만들지 않겠죠.”
그리고서 햄버거 먹는 것에 열중했다. 마상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두 여자애들은 자신이 처한 곤경 따위보다는, 눈앞의 햄버거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그냥 건성으로 대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은 형님(김혁진)이 아니라는 사실을. 형님만큼 관심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또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그건 그래.”
안서희의 말이 맞기는 했다. 형님이시라면 이런 귀찮은 일을 아예 발생시키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태극방패를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 아니겠는가.
“역시 형님이시네.”
그런데 문득 또 이상함을 느꼈다.
“야. 서희야.”
“……네?”
얘 방금 형님을 일컬어 ‘오빠’라고 한 것 같은데? 자연스러워서 그냥 넘어갈 뻔했는데, 진짜로 그랬다.
“아니다.”
“…….”
아니. 근데. 왜 자꾸 나는 아저씨고 형님은 오빠지?
“서희야. 내가 말 안 할라 그랬는데.”
“네.”
“왜 혁진형님은 오빠라고 불러?”
“제가 언제요?”
“아까 오빠라고 했잖아.”
“그런 적 없는데요.”
안서희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만약 김혁진이 봤다면 ‘적색귀’라고 해도 좋을 정도. 마상현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아니면 말고. 살벌하게 노려보지 좀 마라. 오줌 지릴 거 같단 말이야.”
“…….”
마상현은 발견하지 못했다. 안서희의 귓볼이 붉어져 있는 것을 말이다. 안서희가 쥐고 있던 햄버거 빵에 손가락모양으로 구멍이 뚫려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서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괜히 민망해진 마상현이 배를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오늘은 배가 좀 더부룩하니까.”
햄버거나 먹어야지. 오늘은 가볍게 9개만 먹기로 했다.
* * *
태극방패가 경고했다.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알 수 없었다.
-광화문 근처의 대피소를 반드시 파악하여 두시고 브레이크 발생에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한국 최고의 길드인 ‘태극방패’에서 열심히 홍보하고 경고했다. 튜토리얼 필드를 지나 여기까지 오면서 사람들은 이 세상이 더 이상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위험한 건 알긴 알겠는데…….”
“근데 출근은 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일대를 아예 통제할 수는 없는 법. 김혁진도 그걸 바라지는 않았다. 광화문 근방을 통제하면 광화문 근방의 피해는 막을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그 외의 다른, 더 큰 피해가 생길 확률이 높다.
어떤 사람들은 태극방패의 경고를 수용했다.
“태극방패 말 듣고 수영씨는 연차 냈다던데?”
혹시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그 경고를 알면서도 무시했다. 그 경고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무시하고 욕하기도 했다.
“그게 무슨 헛짓거리야. 던전이 언제 브레이크 될지 어떻게 알고? 왜? 내년에 올 태풍 무서워서 지금부터 숨어있지?”
“그러니까. 아이씨, 이기적인 거지. 그저 지들 생각밖에 안 한다니까.”
태극방패가 광화문 던전의 브레이크를 예고하고서 며칠이 지났다. 11월 중순. 날씨가 급작스레 추워졌다. 광화문 근처. 이곳에는 많은 기업들이 모여 있고, 오후 12시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점심밥을 먹으러 쏟아져 나온다.
“어우. 추워.”
“그러게나 말이야. 갑자기 뭐가 이렇게 춥냐?”
옷깃을 여몄다. 삼삼오오 모여 오늘의 한 끼를 먹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응? 그런데 저거 뭐야?”
이순신 동상 너머.
“불 난 거 아니야?”
“음? 불?”
사람들은 태극방패의 경고를 떠올렸다.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의 전조증상으로 세 개의 문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지몽 능력자의 예지몽에 나왔단다. 불길이 타오를 거라고.
“태극방패의 경고가 진짜야?”
“어, 어, 그러게…….”
-불길이 타오르면 도망치십시오. 근처의 대피소를 파악해 놓아야 합니다.
-반드시 도망치십시오.
대피소를 미리 파악해 놓은 사람들은 대피소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을 향해 뛰었다. 광화문 일대에 소동이 벌어졌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보에 많이 늦었다. 태극방패가 SNS와 매스컴 등을 통해 굉장히 많이 홍보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저기요, 왜 이렇게 갑자기 뛰는…… 야!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일단 같이 뛰기 시작한 사람도 있고,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모습으로 전조증상에 대응했다.
불길이 더욱 세차게 치솟아 올랐다. 검은 연기가 광화문 일대에 피어올랐다. 일대의 플레이어들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광화문 던전의 브레이크가 시작됩니다.]광화문(光化門)
경복궁의 동서남북을 둘러싸고 있는 4개의 대문 중 남쪽에 위치한 정문. 세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3개의 불길이 타올랐다.
같은 시각. 예지몽 능력자 함소현은 악몽을 꿨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그녀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의 손이 미친듯이 ‘예지서’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함소현의 손이 덜덜 떨렸다.
“바뀌…… 었어.”
함소현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예지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그 ‘예지서’가 누군가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다시 말해 미래가 발설되었기 때문에.
처음 그녀가 봤던 미래에서 ‘세 가닥의 화마(火魔)’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소멸했다. 그런데 방금의 예지몽에서는 달랐다. 저절로 소멸하지 않는 미래. 누군가 소멸시켜야만 하는 미래.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광화문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세 마리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광화문 근처가 피바다가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연달아 전해졌다. 헬기도 격추되었단다. 군인도 경찰도 힘을 쓰지 못했다. 태극방패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피해상황이 집계되지 않았지만 길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만 해도 최소 수백구가 넘는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졌다.
김혁진은 뉴스를 통해 그 사실을 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래시나 예지안의 권능으로 본 것도 아니고 예지몽을 꾼 것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본능적으로 읽혔다.
파티원들을 소집했다. 어차피 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다. 모으는 데에는 금방이었다. 바로 말을 시작했다.
강상구가 눈을 크게 떴다. 강상구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침을 꿀꺽 삼켰다.
“슈밤. 그게 리얼이냐, 혁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