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66)
#재능만렙 플레이어 166화
송정희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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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자신만만/즐거움/약자 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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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그렇다 치고. 약자 멸시? 지금 나를 보며 약자 멸시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은데. 송정희가 나를? 별다른 이유 없이 ‘약자’로 보지는 않을 텐데.
“김혁진 씨. 양치기 소년이라는 걸출한 수호자께 미움을 받기 시작하셨다죠.”
겉으로는 제법 걱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는 알 것 같다. 무려 ‘양치기 소년’쯤 되는 수호자의 미움을 받기 시작했으니, 알아서 기어라라는 뜻이다. 아마 양치기 소년으로부터 어떤 퀘스트를 받았겠지.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 기운은 구성민.’
구성민이 다가오고 있다. 예전 다롱이에게 코인이 탈탈 털렸었던 전적이 있는 구성민. 구성민이 이 타이밍에 이곳을 향한다?
‘저기 있네.’
DMC리버뷰 자이 1단지 정문을 통해, 비교적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다. 무엇인가를 굉장히 경계하는 것 같다.
‘무엇을?’
도적이 무엇인가를 경계한다? 무엇인가 훔칠 것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송정희가 이 자리에 있고, 굳이 내 신경을 분산시키고 있다. 그래봤자 그다지 분산되지도 않지만. 구성민은 수호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적안을 노리는 거네.’
제 딴에는 제법 조심스레 움직인다고 움직이는 것 같기는 한데. 관찰자의 눈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내 어깨 위에 있던 다롱이의 머리 위에 [!!!] 표시가 떴다. 구성민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투다다다!
내 몸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구성민을 향해 달려갔다. 타고난 절도 천재가 절도 꿈나무를 향해서 말이다. 저번에도 그렇게 탈탈 털리더니. 경험으로부터 학습을 못하는 녀석인가.
내가 말했다.
“플레이를 하다보면, 제 플레이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나올 수 있죠.”
그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모든 수호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런 수호자까지 잡으려고 발버둥치다가는 대다수의 수호자를 잃는다.
“그래서. 그것을 친히 알려주시려 오신 것입니까?”
철혈여제 송정희. 이상하다. 어떻게 철혈여제가 되었지? 너무 뻔하고 어리숙한데.
“제가 만약 당신이었다면, 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뜻이죠?”
“상대의 약점이 될 수 있는 패를, 상대의 면전에서 이렇게 까발리지는 않겠다는 뜻이죠.”
송정희의 속내가 뻔히 보인다.
“양치기 소년께 어떤 퀘스트를 받으셨겠지요.”
그래서 이곳에 나타났다.
“그 퀘스트는 적안과 분명히 관련이 있을 거고.”
손가락으로 구성민을 가리켰다.
“여기에 하필이면 도적 클래스의 플레이어가 있네요. 이건 뭘 의미할까요?”
“…….”
송정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뭘 노리고 저한테 오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겁을 먹기라도 바랐던 것인가. 겁을 먹을 리가.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고 후회는 없다. 후회할 거면 시작도 안 했다.
송정희의 몸이 움찔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그렇게 곱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상대 앞에서 그런 표정도 짓지 않을 겁니다. 저는 당신의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요.”
송정희가 얼굴을 풀었다.
“비즈니스 파트너요?”
뒷 말이 생략됐다. 감히 네 까짓게? 라는 말이. 지금 송정희는 자존심이 상했다. 한낱 플레이어에 불과한 내가 송정희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봤으니까.
“비즈니스 파트너. 물론 좋죠. 그런데 양치기 소년과 같은 분께 미움을 받는 분과 어떤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불미스런 일로 인해 양치기 소년께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저를 어여삐 여겨 주시는 수많은 수호자분들이 계십니다.”
나는 저들의 유일무이한 콘텐츠 제공자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한 명의 미움을 받았다고해서 내가 당장 망하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해서 더 다양한 콘텐츠를 뽑아낼 수도 있다. 그건 내가 하기 나름이다.
“그렇기에 저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두루뭉술하게. 내가 가진 비전과 포부를 밝히는 게 최고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그저 ‘정석’에 가까운 말. 다시 말해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 말만 선택해서 하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송정희가 무슨 말을 할 지 두고 보기 위해서.
“네. 그래요. 최선을 한 번 다해봐요.”
송정희의 표정이 또 변했다. 억지로 웃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만, 웃지 못했다. 눈빛에는 거의 살기에 가까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
‘어설퍼.’
정말 어설프다. 어설프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하다.
‘송정희는 철혈여제의 자격이 없어.’
될 성 푸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철혈여제 송정희는 그저 허울뿐인 이명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것을 확실히 판단할 수 있었다.
‘송정희에게는…… 또 다른 조력자가 있어.’
송정희는 그저 겉으로 내세웠던 간판에 불과하다. 송정희는 절대로 송기열과 태극방패를 집어삼키고 더 나아가 성신을 지배자가 될 수 없다.
‘잭슨과 송정희가 만났다 했었지.’
그렇다면 잭슨이 송정희를 움직였을까?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기는 한데.’
한국에 온 적이 없다고 밝힌 ‘위대한 탐험가.’ 한국어를 잘하면서 한국어를 못한다고 밝힌 잭슨. 무엇인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어서, 아예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부정했던 것이라 생각한다면?
‘아직 확정하기는 이르지만.’
아직 확정은 어렵다.
‘그래도.’
그래도 그 걸 감안해야 한다. 현재 서로를 이용하려는 관계인 잭슨-송정희의 관계가 언젠가 역전 되어, 잭슨이 송정희를 전면에 내세우고 성신을 지배하게 되는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는 있어야 한다.
내가 송정희에게 말했다.
“고맙네요.”
등장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주셔서 말입니다. 당신의 그 허접함이 퍼즐조각 하나를 더 선물해줬습니다.
“뭐가 말이죠?”
“제게 선물을 주신 모양이네요.”
다롱이가 어느새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구성민으로부터는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악! 내 아이템!”
[다롱이가 인벤토리 열람을 요청합니다.]다롱이의 인벤토리에는 ‘도굴삽’이라는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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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삽]유적/아티팩트/유물 등의 ‘정수’를 채취할 수 있는 아티팩트입니다.
*등급 : 레전드
*도적 클래스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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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레전드?’
초월급 아이템을 두 개나 목격한 적이 있는 내게도, 레전드 등급은 놀라운 등급이다. 초보구간에 존재하는 레전드 등급이라.
‘클래스 특전…… 같은 건가.’
어쩌면 구성민 인생 최초이자 최후인 레전드 등급 아이템일 수도 있겠다.
[다롱이가 칭찬을 요구합니다.]다롱이의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다롱이가 적극적인 칭찬을 요구합니다.]조금 더 적극적으로 문질렀다.
[다롱이가 매우 적극적인 칭찬을 요구합니다.]다롱이는 내 어깨 위에서 배를 까뒤집고 누웠다.
[다롱이가 더욱더 적극적이고 열렬한 칭찬을 요구합니다.]손가락으로 살살 간지럽혀주었다. 가끔 다롱이가 강아지인지 다람쥐인지 헷갈린다.
[다롱이가 주인의 손길에 만족해합니다.]다롱이를 몇 번 만져줬더니 레전드 등급 아이템이 생겼다.
“글쎄. 이 도굴삽은 뭘 하려던 걸까요?”
송정희는 태연했다.
“그게 뭐죠?”
아까까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 못하더니. 지금은 아주 잘한다. 나쁜 짓은 잘하는 것 같다.
“글쎄요. 이게 뭘까요.”
송정희가 스스로 불지 않는다면, 구성민을 털어야지 뭐. 서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그래. 그 호칭이 어려운 거 나도 알아. 나도 좀 별로야. 그래. 주인님. 알겠으니까 본론을 해봐.
[얘는 어떻게 할까요?]어떻게 하긴. 도둑은 잡아야지. 심지어 ‘적안’을 훔쳐가려던 도둑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붉은실이 쏟아져 나왔다. 수호탑 틴틴의 능력과 결계술사 안서희의 능력이 융합된 상태. 이곳 수호필드에는 이미 결계가 펼쳐져 있던 상태였고, 구성민이 붉은 실에 팔다리가 꽁꽁 묶여 버렸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연서에게 말했다.
“검으로 이 실들 잘라봐. 아참. 네 검 엄청 좋은 거지? 기본 공격력이 몇이더라?”
신연서가 밝게 웃었다. 역시 신연서는 눈치가 빠르다.
“응. 한 100정도 돼.”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다. 아무리 ‘아수라’라고 해도 어떻게 100이 된단 말인가. 저건 사기다. 그렇지만 도둑에게는 사기 좀 쳐도 되지 뭐.
신연서가 검으로 붉은 실을 내리쳤다.
깡!
알루미늄과 알루미늄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내가 말했다.
“봤죠? 신연서의 검으로도 안 잘려요. 당연히 과학으로 만든 톱이나 칼 같은 것도 의미 없고.”
“사, 사, 살려주세요.”
구성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완전히 갇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연서가 여전히 밝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굶어죽는 게 세상에서 제일 괴롭다던데……”
나는 송정희를 힐끗 쳐다봤다. 정말로 어설프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네.
‘설마.’
송정희는 혼자 오지 않았다. 그녀의 오른팔인 금강불괴 강웅민. 그리고 왼팔이라 할 수 있는 ‘독인’ 정상철이 함께 왔다. 정상철은 DMC리버뷰 자이 2단지 정문 근처에 있다.
‘설마 아니겠지.’
그때 구성민이 외쳤다.
“다, 다, 다 말하겠습니다! 사, 살려만 주세요!”
그리고 나는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마주해야만 했다. 정상철이 구성민을 공격하려는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정상철은 독인. 이명에서 알 수 있듯, 암기와 독을 다루는 클래스다. 주특기는 기습과 독살. 특히 원거리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GVG에서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로 통했다.
‘PVP나 GVG도 아닌데, 구성민을 공격하려 한다고?’
무방비 상태의 구성민이다. 지금 정상철이 구성민을 공격하면?
‘구성민은 거의 확실하게 죽겠지.’
그리고 구성민이 죽은 다음은?
‘그 책임을 나에게 떠넘길 거고.’
구성민의 죽음. 구성민의 희생을 통해 송정희가 얻어갈 수 있는 것이 꽤 많을 거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면 사용하면 안 되는 방법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 할지라도, 그 이득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그건 안 하는 게 맞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도적이 괘씸한 건 맞는데요.”
말을 이었다.
“살인은 더 죄질이 더럽거든요.”
송정희는 나를 너무 무르게 봤다. 아니. 무르게 본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역량이 없는 거겠지. 전성기의 독인도 아니고, 초보구간의 정상철 따위의 능력으로 내 앞에서 암살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현재 나는 안서희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상태.
‘안서희. 움직여.’
붉은 실이 쏘아졌다.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낚아챘다. 길이 약 10센치미터 정도 되는 얇은 독침이 잡혔다.
송정희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겠네요.”
아니.
“함께하지 않겠습니다.”
송정희는 지금 실수한 거다.
“앞으로도 영원히.”
사람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이제부터 송정희는 내 적이다. 비즈니스 파트너 후보군에서도 지운다.
[주인님은 양치기 소년한테 미움받았는데, 저 사람은 주인님한테 미움받았네요.]확실히. 안서희는 많이 밝아졌다. 헤헤-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보고 선택하라고 하면, 저는 양치기 소년의 미움을 선택할 것 같아요. 에휴. 저 여자 불쌍하다.]자. 그러면 다음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최대한 질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이왕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수호자들이 환장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어내야 할 텐데.
그런데 그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