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77)
#재능만렙 플레이어 177화
벨라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놈들. 우리가 3층으로 이동하는 것도 봤어.”
“확실해?”
“이 답답한 거북이 같은 자식들아. 형 먼저 간다. 하고 소리치면서 왔으니까.”
“…….”
김혁진은 ‘날개’가 오크 전사들과 트롤 병사들 따위에게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곧 3층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의 쿨타임이 끝납니다.”
날개가 올라올까?
‘아니.’
날개는 올라오지 않는다.
“누군가 다른 플레이어가 올라온다.”
아까부터 전신을 찌르는 묘한 감각. ‘위험’을 알리는 감각안의 필사적인 외침. 김혁진은 그것을 계속해서 느끼는 중이다. ‘위험한 플레이어’가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쯤 되면 플레이어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플레이어라고 구분하고는 있다. 그런데 모르겠다. 과연 ‘그’가 플레이어가 맞을까.
이내 김혁진의 감각안의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한다.’
누군가. 올라온다는 뜻이다. 그리고 김혁진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청바지에 티셔츠 한 장을 대충 걸쳐 입은 남자의 모습을.
누군가가 3층으로 올라왔다.
“오랜만이군.”
김혁진은 반응하지 못했다. 순간, 남자의 몸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김혁진의 몸 바로 앞에 섰다. 김혁진은 침착하게 앞을 쳐다봤다.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알고 있었는데…… 반응을 못 했다.’
그만큼, 상대가 너무 빨랐다.
“뭐. 반응은 못 했지만, 내 움직임을 읽었다는 건 칭찬해 줄 일이지.”
상대의 이름은 강선일. 진명인지 가명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플레이어인지 아닌지조차도 헷갈리는, 이후 ‘마왕‘이라 불리는 규격 외 생명체.
벨라는 마왕의 등장이 아니꼬운 것처럼 보였다.
“뭐야? 뭐가 이렇게 위협적이야?”
벨라가 주먹을 쥐었다.
“너. 싸움 잘하냐?”
주먹을 뻗었다. 김혁진이 말릴 새도 없었다. 벨라의 주먹에는 푸른색 기운이 넘실거렸다. 진심을 담아 뻗은 거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조력자’가 되기로 약속한 순간, 벨라에게 있어서 김혁진은 이미 동료나 다름 없는 듯했다. 동료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간 상대를 공격하는 것. 벨라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마왕은 벨라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퍽!
소리가 났다.
“컥!”
그런데 비명을 지른 사람은 마왕이 아니라 벨라였다. 벨라는 황급히 주먹을 거둬들였다. 더이상 주먹을 쥐지 못했다. 주먹뼈가 모두 바스라져 버렸다.
히죽.
마왕이 웃었다.
벨라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올렸다.
“실력이 없으면 안목을 길러라.”
마왕의 손가락이 벨라의 목을 파고들어갔다. 벨라의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미래의 투왕. 벨라마저도 마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발버둥쳤다.
“이, 이이……!”
김혁진이 말했다.
“그만.”
마왕은 벨라의 목을 잡은 채, 목만 조금 돌렸다. 또 히죽 웃었다.
“그만?”
김혁진의 태도가 재미있는 듯했다.
“지금 내게 명령하는 거냐?”
“…….”
김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지금 이 타이밍에 마왕이 나타났을까. 이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이 아니야.’
그렇다면 마왕이 노리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게 뭐지.
‘벨라를 죽이려고 했다면. 이미 벨라는 죽어 있을 거야.’
마왕은 벨라를 진짜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죽이려고 했으면 아까 주먹을 뻗기도 전에 죽였을 거다. 물론, 지금도 벨라가 죽을 위험에 처해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노리는 게 있다.’
그게 뭔지 찾아내야 한다. 그걸 찾아내지 못하면,
‘아마 나도 죽이겠지.’
마왕과는 얽히고 싶지 않은데 계속 마왕과 얽히는 기분이다.
“내게 할 말이 있는 눈치인데.”
크그극!
벨라의 눈이 초점을 잃어갔다. 마왕은 지금 벨라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이대로 두면 벨라는 죽을 거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벨라가 필사적으로 고유능력을 사용했다.
[고유 능력. ‘마지막 의식의 끈’을 사용합니다.]고유 능력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다. 끊어져 가는 의식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김혁진이 말했다.
“벨라는 놔줘.”
“미래를 알고 있다 했었나? 너는 이 상황을 미리 예측했겠지?”
김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예측하지 못했다. 여기서 마왕이 나타날 거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었다.
‘마왕에게는…….’
지나친 거짓말은 좋지 않다. 적당히 거짓을 섞어야겠지만, 아예 거짓은 안 된다. 7의 진실. 아니 9의 진실에 1에 거짓을 섞어야 한다. 그래야 마왕을 움직인다.
“내가 아는 미래에 너는 없었다.”
“그래?”
“네 존재 자체가 내가 아는 세계의 변수라는 뜻이지. 내가 아는 미래를 자꾸 뒤흔들어 놓는.”
“변수라. 솔직해서 좋군.”
마왕이 벨라의 목을 잡은 손을 움직였다. 김혁진의 얼굴에 벨라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벨라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미 의식을 반쯤 잃은 상태.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
“내기 하나 하지. 내가 과연 이놈을 죽일까, 살릴까?”
* * *
“내기 하나 하지. 내가 과연 이놈을 죽일까, 살릴까?”
나는 마왕의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내 대답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이 걸렸다. 그렇지만 아주 두렵지도 않았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답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과감한 결단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반대로 내가 물었다.
“왜 벨라를 안 죽였지?”
“죽이길 원하나?”
마왕이 손가락에 힘을 더 주었다. 까딱하면 벨라의 목이 두둑-하고 부러질 것 같았다.
벨라는 이제 의식을 잃은 상태. 팔과 다리가 축 처졌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끌면 벨라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 마왕에게 있어서 벨라는 죽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는 상황인 듯하다. 마왕에게 중요한 건 벨라가 아니라 내 대응방식인 것 같다.
“죽이려고 했다면 진작 죽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잘 아는군.”
마왕이 계속 말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죽이지 않았어. 그러고서 내게 답안지를 내놓으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
“결국 너는 나한테서 듣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겠지.”
마왕이 히죽 웃었다. 저번과 비슷한 느낌. 마왕의 입이 붉은색으로 크게 벌어져 히죽 웃는 것 같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커다란 입이 머리 위에 생겨난 느낌이다.
불길하고 끔찍한 느낌이다. 저 시뻘건 입에서 끈적거리는 혀가 튀어나와 당장이라도 나를 휘감고 삼켜 버릴 것 같은 느낌.
“좋아.”
마왕이 벨라를 집어 던졌다. 가볍게 던졌는데, 벨라의 몸이 마치 야구공이라도 된 것처럼 날아갔다.
쾅!
벽에 부딪쳤다. 벨라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저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
죽지는 않을 거다. 힐러에게 치료받으면 금방 회복되니까 부상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럼 내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해봐.”
“네가 나를 계속해서 살려두고 있는 이유. 그건 하나 아닌가?”
나도 마왕이 왜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애초에 플레이어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한 상대. 수호자들을 ‘직접’ 언급하며 믿지 말라고 말을 하는 존재. 현재 규격 외의 존재인 마왕이 왜 그럴까. 관심을 가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건 알고 있다.
“내가 너한테 닿을 수 있는 싹이 보이기 때문 아닌가?”
마왕이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나한테 닿을 수 있다라?”
아예 배를 잡고 깔깔대고 웃었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건지 모르겠다. 마왕이 내게 원하는 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린 건가. 아니면 일부만 맞는 건가.
“그래. 넌 강해져야 해.”
손가락을 탁! 튕겼다. 순간, 무형의 기운이 내 몸을 옥죄었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나에게 닿을 만큼이라. 표현이 아주 좋군.”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 차려야 해.’
마왕은 내게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 흥미 덕분에, 나는 지금 살 수 있는 거다. 나는 지금 죽고 싶지 않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가운데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아무리 10년 뒤라지만…… 한국의 8영웅이 마왕과 상대할 수 있었을까?’
한국의 8영웅은 마왕군과 상대하며 많은 위업을 달성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보는 ‘마왕’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초보구간의 플레이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
아직은 모른다. 내가 중수구간을 넘어 고수가 되고, 고레벨을 찍게 되면 마왕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튜토리얼 때의 라이칸스로프는 끔찍하고 무서운 괴물이었지만, 지금의 라이칸스로프는 식후 운동거리도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숨이 막혀왔다.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나를 탐색할 거지?”
“…….”
정신을 잃기 직전에, 나를 옥죄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방금의 그 ‘무형의 압박’이 실존하지 않았던 것처럼. 신기루처럼 없어져 버렸다.
“그것도 느꼈나?”
“다른 이로부터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
마왕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비슷한 경험?”
“누군가 말했다. 내 몸에는 [업적]이라는 것이 성흔처럼 새겨져 있다고.”
그 누군가는 바로 ‘위대한 탐험가’ 잭슨이다. 그가 성흔에 대해 알려줬었다.
“그가 내 몸의 업적을 읽어낼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재미있군.”
마왕은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네가 —의 장난감들을 사냥했나?”
나는 마왕을 쳐다봤다. 방금 분명 마왕이 무엇이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무엇이 내게는 해석되지 않았다. 분명히 듣기는 들었는데 들리지 않았다.
‘시스템의 간섭?’
시스템이 간섭했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알면 안 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소리다. 시스템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런 무언가.
“지금 네 수준에서는 절대로 사냥할 수 없는 놈인데.”
절대로 사냥할 수 없는 놈.
“불 거인을 뜻하는 거라면 내가 사냥한 게 맞아.”
“불 거인?”
마왕이 풉, 웃었다.
“진짜 불 거인들이 들으면 우습다 못해 혈압이 올라 쓰러지겠군.”
“…….”
도대체 마왕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고, 어떤 존재일까. 내가 사냥한 불 거인이 ‘진짜 불 거인’이 아닌가.
“뭐. 지금 네 시점에서 꽤 훌륭한 업적을 남긴 건 사실이다. 칭찬한다.”
“…….”
“그래봤자 어린애들 장난 수준이지만.”
마왕을 보면서 느낀다. 마왕은 정말로 날 죽일 생각이 없다. 물론 수틀리면 죽이겠지만, 적어도 그때가 지금은 아니다.
내가 말했다.
“내 몸에 새겨진 성흔을 알아보러 온 건가?”
“그럴 리가. 네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군.”
마왕은 마치 ‘너 따위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직접 행차했을 것 같으냐?’라고 묻는 것 같았다. 눈동자에는 무심함이 가득했는데 그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내게 흥미는 있으나…… 내가 마왕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지금 마왕은 마왕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 있고, 그 일을 처리하는 가운데 겸사겸사 나를 만나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장난감들을 부쉈다면 —를 얻었나?”
“…….”
대답하지 못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마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 못 알아듣나?”
“…….”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다. 해석이 안 된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제한되고 있다.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마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 멀었군.”
그러고 나서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었다.
“천공(天空)에서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