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83)
#재능만렙 플레이어 183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이템.
‘게이트 오프너?’
마치 와인 병따개같이 생긴 저 아이템은 활성화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 게이트를 강제적으로 여는 기능을 가진 아이템이다. 아주 희귀한 아이템도 아니지만 아주 흔한 아이템도 아니었다.
“어디서 얻었냐?”
“한국에서.”
“한국에서?”
게이트 오프너가 아주아주 귀한 물건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래도 초보구간에 있을 만한 아이템은 아니다. 초보구간 내 한국에 저게 벌써 나왔었나?
‘하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내가 알던 세계와 지금의 내가 아는 세계는 다르다. 랭커들에게는 랭커들의 세계가 있다. 대중들이 범접하지 못하고, 또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 나만 하더라도 이미 초월급 아이템을 두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거 뭐냐. 음. 윌슨. 거기 어디였지?”
“D타워.”
“아 맞아 D타워. 저번에 그 D타워 던전 1층에서도 비슷한 짓을 하던 놈팽이가 있어서.”
아. 문지기 이성철을 말하는 건가.
‘벨라에게 걸렸으니.’
이성철은 아마도 죽었을 것 같다. 아까 대화를 떠올려보니, 벨라가 이성철을 죽인 것 같다.
‘그래. 벨라는 이런 놈이지.’
선도 악도 아니다. 순수에 가깝다. 좋은 게 좋고 싫은 건 싫은 단세포 생물.
‘벨라가 이성철을 죽였고.’
따라서 이성철에게서 ‘게이트 오프너’가 드랍되었다는 소리다.
‘그래. 여기는 이런 세계야.’
나는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굉장히 싫어하는 축에 속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다.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것도 찝찝한데 사람을 죽인다니. 그렇지만 이 세계는 이런 세계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 나는 이러한 세계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
내가 말했다.
“타 서버에서의 살인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냐.”
유독 한 서버에 애착을 가진 수호자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타국에서 넘어온 플레이어가 그 서버의 플레이어를 죽이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니까.
벨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윌슨과 똑같은 말을 하네?”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야. 김혁진아. 혹시 너 중간 관리자야?”
“플레이어인데.”
“근데 어떻게 그래?”
“뭐가?”
“뭐 이렇게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이지?”
“예지안 능력자란 말, 못 들었냐?”
“진짜 뭐하는 인간인가 싶다.”
벨라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이내 억지로 수긍은 했다.
“그러면 예지안 궁수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길도 모르겠고. 나 길치야.”
나는 페드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페드로 씨.”
“네?”
“저기 보이죠? 만년한철.”
“네……!”
페드로의 눈동자에 욕망이 가득 서렸다. 저 만년한철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중인 것 같다.
“채굴 불가능 상태가 억울하고 원통하죠?”
“물론입니다. 저거 뭔가 엄청 좋은 거 같은데.”
“이제는 채취할 수 있을 겁니다.”
“응? 어떻게요?”
“도굴삽 드렸잖아요.”
도굴삽은 도적 클래스 전용이다. 그런데 페드로는 도적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명인과 도적. 안 어울리는 느낌이긴 하지만, 하여튼 그렇다.
페드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중얼거렸다.
“도굴삽에는…….”
도적 클래스 전용이라고? 내가 핑계 만들어줄게.
“제작 클래스 플레이어 전용이잖아요. 페드로 씨는 제작 클래스 아니었습니까?”
“……예?”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름부터가 ’도굴삽’이다. 제작 클래스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말이 안 되는 것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세상이니까.
“제작 클래스 맞습니다.”
“그러면 채굴이 가능한 것 아닙니까?”
내가 뭐가 문제냐는 듯 묻자 페드로는 조금 머뭇거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싶겠지.
“저라면 당장 채취했을 텐데요.”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페드로는 더욱 그렇다.
“저는 한 플레이어로부터 그 아이템을 샀습니다. 그 아이템의 원 주인이 가지고 있을 때에는 제한조건 설명이 없었습니다.”
아이템의 주인. 불쌍한 도둑 꿈나무 구성민이 알면 아마 눈을 까뒤집고 욕을 했겠지. 그렇지만 이 자리에 구성민은 없다. 미안하다, 성민아.
“그래서 한국 플레이어 협회를 통해 환불을 하느니, 마느니하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었죠.”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물론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만들면 된다. 한국 플레이어 협회는 성신의 것이나 다름없고, 성신은 내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테니까. 없었던 일도 만들 수 있다.
“예.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확인해 보시면 기록이 남아 있을 겁니다.”
사실은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상세하게 말하는 것도 의심해 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페드로는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 내 말을 믿고 싶은 것 같다.
페드로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게 된 거군요. 사실 제가 처음 봤을 때에는 도적 클래스 전용이라고 되어 있었거든요.”
맞아. 그거 원래 도적 전용이야. 네 서브 직업이 도적이고. 잘 낚이네.
“근데 김혁진 씨의 말을 듣고 나니, 조건 충족으로 인해 제작자 클래스 사용 제한조건으로 바뀌었어요.”
“역시. 소유주가 바뀔 때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 시킬 때마다, 제한 조건이 랜덤으로 바뀌는 설정이군요.”
“레전드급 아이템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응. 아니야. 원래부터 도적 전용 템이었어.
“그럼 채굴을 한 번 해볼까요?”
* * *
페드로는 결국 ‘만년한철’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저거 굉장히 귀한 건데. 지금이야 시세가 형성되어 있지 않지만 ‘만년한철’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시세를 자랑하는 고가품이다.
페드로가 말했다.
“저희는 드워프들의 성. 겨울성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겨울성이요?”
알고 있다. 드워프들이 드래곤의 습격을 막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천혜의 요새…… 라는 설정이기는 한데, 사실 의미는 없다.
‘드워프 숲의 위기 시나리오에서 드래곤은 나타나지도 않았었는데.’
드래곤의 ‘드’ 자도 보이지 않았던 시나리오. 그런데 겨울성이 무너질 뻔했던 위기가 있었다. 해외 서버의 일이라 아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대충 그렇다.
‘실제 가진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후한 평가를 한 거지. 드래곤의 습격을 막아낸다니.’
차후 설정들이 풀리겠지만 일단 드래곤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 중 하나로 분류된다.
물론, 인류는 단 한 번도 드래곤을 직접 마주한 적이 없다. 여러 정황과 문건들을 토대로 ‘드래곤’이라는 강력한 생명체가 존재한다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어쨌든 중요한 건…….’
드워프들이 스스로의 힘을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는 것. 즉, 자기객관화가 덜 됐다는 거다.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자존감의 결정체.
‘그게 뭐 나쁜 건 아닌데.’
다만 그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다른 이들을 깔아보고 무시한다는 것이 문제다. 페드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기분 나쁜 일이 많이 생길 수도 있어요. 상남자인 저이기에, 대인배 같은 마음으로 넘어갔을 뿐.”
쇠로 만들어진 숲을 지나 걸었다.
“굉장히 무례하고 사람을 업신여기거든요.”
페드로도 아마 쌓인 게 많기는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워프들에게 배울 것들이 워낙 많아서, 그래서 허리를 굽히고 다니겠지.
“벨라는 제발 거기서 입 닥치고 있고. 네가 나대면 그냥 끝이야.”
“드워프. 싸움 잘하냐?”
“상남자인 나도 가만히 있는 거 보면 모르냐?”
“아니. 상남자가 왜 가만히 있어? 싸워야지.”
“진정한 남자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법이니까. 진정한 남자가 아닌 네가 그걸 알겠어?”
“…….”
벨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하지는 않았다. 소꿉친구에게 잡혀사는 투왕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름 재미있었다.
“하여튼 나대지 마. 알겠냐?”
“쳇.”
벨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폭업해서 다 때려잡아야지.”
지금은 약하지만 나중에 강해져서 패면 된다. 그게 벨라의 마인드인 것 같다. 아무튼 주눅 드는 법이 없다.
“나중에 그러더라도 지금은 그냥 입 닥치고 설설 기어. 그게 우리 도와주는 길이니까. 알겠지? 약속 안 하냐? 상남자의 뭇매를 맞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아- 알았다.”
벨라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페드로의 잔소리가 매우 귀찮은 듯했다. 마치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중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페드로가 말했다.
“저기가 겨울성입니다.”
절벽에 둘러싸여 있는 지형. 절벽이 너무 높아 그 끝이 하늘에 맞닿아 있었다. 구름과 맞닿아 있는 부근에서는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강철과 구름. 그리고 눈으로 덮어져 있는 곳.’
그래서 이름이 ‘겨울성’인 것 같다. 겨울성의 위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성벽의 높이가 어지간한 빌딩보다 높네.’
관찰자의 눈으로 관찰했다. 튼튼한 내구성.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중압감. 드워프들이 건축한 ‘겨울성’은 수호성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페드로가 또 말했다.
“저기 문지기 성깔이 굉장히 더럽습니다. 남매인데 제가 쥐어팰 뻔했습니다. 스승님만 아니었어도 개팼는데 말이죠.”
여러 번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드워프들은 사람을 업신여기니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 한다고. 겨울성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겨울성이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겨울성이 마치 살아 있는 거인이 되어 나를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성.’
지금 내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없다. 그런데 저 겨울성에도 분명히 ‘숨겨진 설정값’이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뭘까.’
묘하게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겨울성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마치 첫사랑을 마주하는 것 같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분명 뭔가가 있다.’
직접 마주하니 알겠다. 그것이 뭔지는 차차 알아가야겠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겨울성에는 물리적인 입구가 없었다. 다만 입구라 짐작되는 곳 앞에 두 명의 드워프가 보였다.
키는 약 130cm.
그러나 그 작은 키에 비해 압도적인 근육. 머리카락까지 땅땅한 근육으로 만들어져 있는 느낌. 머리에는 바이킹 모자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몸에 존재하는 모든 털은 붉은색에 가까운 검붉은색. 머리카락과 눈썹 역시 검붉은 색이었다. 특이한 건 눈썹이 굉장히 길어 눈을 덮을 정도였고, 검붉은색 수염을 배까지 길게 늘어뜨렸다는 것 정도.
대뜸 반말로 말했다.
“너희는 뭐냐?”
“너희의 정체는?”
재미있는 건, 나도 저들의 언어가 이해되고 벨라와 페드로 역시 저들의 언어를 이해했다는 것. 통역구슬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소하다면 정말 사소한 거지만 놓치지 않았다.
‘뭔가 있어.’
드워프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 또 다른 드워프가 말했다.
“어휴. 인간들 냄새. 역겹구나.”
“더럽구나, 더러워.”
두 드워프는 쌍둥이란다. 어쩐지 똑같이 생겼다. 저들의 이름이나 레벨을 읽을 수는 없었다. 나보다 한참 강력한 놈들이기 때문이다.
“장인정신이 없는 놈들. 장로님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너희를 보자마자 머리를 쪼개줬을 텐데.”
“그것보다는 노예로 삼는 게 낫지 않아?”
“흠. 그것도 나름 괜찮긴 하겠어.”
“쟤들은 제법 반반하니 관상용으로도 괜찮잖아.”
당사자들을 앞에 두고 못 하는 소리가 없다. 나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드워프는 원래 저런 종족이니까.
“그런데 저놈들을 어떻게 할까, 오빠?”
나를 무시하는 말에는 화가 나지 않았는데 오빠라는 말에 화날 뻔했다. 저 둘은 이란성 쌍둥이이며 한 명은 여자고 한 명은 남자인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똑같이 생겼는데.
‘외모로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종족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장로님은 쇠 냄새 나는 놈들만 들여보내 주라고 했잖아.”
“그런데 저기서 쇠 냄새가 나는 놈은 한 명밖에 없는걸?”
“그렇지? 저 자식, 장로님이 예뻐해 주는 놈이잖아. 그럼 쟤 빼고 잡을까?”
“그럼 잡아다가 노예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체조각을 해도 괜찮고.”
페드로의 상태를 읽었다. 굉장히 초조한 상태다. 저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앞으로 나섰다. 페드로가 움찔했다. 안 그래도 두려운 상태인데 더 무서워하고 있다. 상남자의 기세는 어디 가셨나, 레이디 페드로.
‘괜찮아.’
나는 드워프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다. 아무런 대책 없이 겨울성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나도 내 목숨 귀한 줄 아는 사람이다.
“너희는 나를 들여보내 줘야 할 거야.”
쌍둥이 중 ‘오빠’인 드워프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도끼를 높이 들어 올렸다.
“다짜고짜 반말질이야? 죽고 싶어? 쇠 냄새도 안 나는 놈이 감히……!”
저 도끼에 얻어맞으면 나는 즉사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움직였다. 저 도끼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나를 죽이면 후회할 텐데.”
“헹! 내가 왜 후회해? 헛소리를 작작 하는 걸 보니, 네놈의 혓바닥부터 잘라줘야겠네.”
드워프가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아장아장 걷는데 그 안에 담긴 괴력이 느껴져서 굉장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근육 덩어리가 아장아장 걷는 느낌.
나는 침착하게 드워프를 바라봤다. 드워프는 내 바로 앞에 서서 도끼를 들어 올렸다.
“혀부터 잘라주고 조각으로 만들어 감상해 주마.”
내가 입을 열었다.
“천년용암의 위치를 내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 겨울성 안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는 물리적인 문이 없다. 문이 없는데, 성벽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페드로가 누군지 아는 것 같다.
“스승님?”
장로. 드워프계의 귀족. 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페드로가 스승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부파파 장로’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장로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예상 시나리오가 조금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좋은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