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88)
#재능만렙 플레이어 188화
나는 이곳. 사자상이 있는 곳을 지나 경회루 필드에 이미 여러 번 입장했었다.
[열기(熱氣)와 한기(寒氣)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곳. 왕도를 지나 조화의 길로 입장합니다.]맨 처음. 그때부터 이곳은 늘 ‘조화’를 강조해 왔었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의지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내 몸과 무의식은 이미 ‘조화’에 대해서 인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방법이 자연스레 떠올랐으니까.
반투명 상태로 상황을 중계하고 있는 세니아를 향해 말했다.
“지금은 내가 천년용암을 빼냈기 때문에 이곳의 조화가 깨졌어.”
“…….”
세니아는 내게 대답하지 않았다. 무어라무어라 중얼거리고는 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세니아는 지금, 세니아의 일을 하는 거다. 나도 내 일을 한다.
“그렇다면 결국 조화를 바로 세워야겠지.”
천년용암이 내게 있다. 천년용암이 뿜어내는 열기를 내가 흡수하고 있다. 흡수해서 내 기운으로 정제하고 있다.
내가 가진 화기보다 상위의 불길. 나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불 거인의 폭력적인 불꽃.
암화궁의 검은 불꽃.
아테네의 깨끗한 불꽃.
그리고 지금 무성질의 천년용암의 화기까지.
이 모든 경험들이 내게는 자산이고 양식. 그리고 그것들을 내 기운으로 만드는 것은 내 역량이고 실력이다.
“나는 이미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의 열기를 몸속에 받아들였어.”
“…….”
세니아는 열심히 상황을 중계했다.
[‘석양의 거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그래서 한마디 서비스 멘트를 던져줬다.
“이것은 지독히 황홀한 기운이지. 화기란, 인간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지극히 정순하고 아름다운 기운이니까.”
[‘석양의 거인’이 당신의 언행에 깊이 감동합니다.] [‘석양의 거인’이 300코인을 후원합니다.]코인은 짜다. 그렇지만 내가 원했던 건 ‘석양의 거인’이 주는 코인이나 후원 아이템은 아니었다.
“내가 천년용암과 천년빙수의 조화를 깨뜨렸으니.”
“…….”
사자상을 향해 걸었다. 지독한 한기를 내뿜는 ‘천년빙수’를 향해 움직였다.
“이것은 내 업보.”
“…….”
“천년빙수의 한기를 빼낸다.”
그제서야 세니아가 내게 질문을 했다.
“천년용암은 당신의 불 그릇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천년빙수는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불 그릇이 있으니까.”
“무슨 뜻입니까?”
“나는 불 그릇에 천년용암을 담았다.”
“그렇습니다. 수호자분들께서도 모두 지켜보셨습니다.”
수호자 놈들. 지금 내게 후원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곧 삭제될 캐릭터에 현질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수호자들의 심정이 그럴 것 같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여기서 죽지 않고 클리어해 낸다면.
‘더 큰 보상이 따른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세니아가 연출하기 좋도록 일부러 말을 더했다.
“불 그릇에 천년용암을 담는 과정을.”
내가 내 눈을 톡톡 두드렸다.
“내 눈으로 봤거든. 그 기운의 흐름. 과정의 연속. 그것을 내 눈에 담았다.”
“…….”
“봤으면.”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거지.”
사자상에서 천년빙수가 떨어져 내렸다.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 ‘조화의 길’을 빠져나와 천년빙수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죽음의 공포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나는 관찰자니까.”
[‘무명의 관찰자’가 기쁜 마음으로 관찰합니다.]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관찰자의 눈’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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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복사 : 관찰 대상의 행동을 따라합니다.(현재 사용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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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 관찰 대상은 불 그릇이었다.
‘스킬로는 불가능.’
그렇지만 내 능력으로는 가능하다. 여태까지 그래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권능인 ‘미래시’도 그랬고. 이번에 얻은 능력인 ‘탐색안’도 그랬다. 나는 이미 이 모든 것들을 ‘감각안의 직관’으로 해낼 수 있다.
‘스킬만큼의 정교함과 숙련도는 많이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감과 신체능력으로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소리다. 무명의 관찰자도 그냥 관찰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관찰하고 있다. 내 플레이 방향이 옳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김혁진 플레이어에게는 그릇이 없습니다.”
“그릇은.”
천년빙수 전부를 담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내가 죽는다. 아니. 담기도 전에 통째로 얼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 곳과 운명을 같이하겠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있잖아.”
떨어지는 천년빙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정말로 죽을 뻔했다.
[중간 관리자 세니아에 의하여 ‘일시정지 권능’이 발현됩니다.] [중간 관리자 세니아가 채널을 닫습니다.]그리고 나는 지금 ‘조화의 길’에 널브러진 상태다. 숨이 붙어 있다. 한기를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을 뻔했다.
“김혁진 플레이어. 미쳤습니까?”
“안 미쳤어.”
“방금 의식째로 얼어버릴 뻔했습니다만.”
“안 얼었잖아.”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
아직 몸이 덜 풀렸다. 해동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운이라는 건 분명히 존재해. 그런데 그 운을 내 것으로 활용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개인의 역량 아니겠냐?”
“그 역량을 시험하다가 죽는 머저리도 존재하겠죠.”
“벨라가 놈에게 멱살을 잡혔을 때. 기억하지?”
“물론 기억합니다.”
여기서의 놈이란 마왕을 뜻한다. 그때 벨라는 특수한 고유 능력 ‘마지막 의식의 끈’을 사용해서 의식을 붙잡았었다.
“그 고유능력. 흉내는 낼 수 있거든.”
“흉내내다 죽을 뻔했습니다만.”
그런데 대화하다 보니 조금 이상하다.
“근데 너 왜 화났냐?”
“제가 말입니까?”
세니아의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신경질적으로 일어섰다.
“저는 감정이 없는 천족입니다만.”
“화났는데?”
“…….”
“아. 내가 죽으면 네가 지금 누리는 큰 이득들을 못 누려서 그러는 거냐?”
“화 안 났습니다. 착각 마십시오.”
누가 봐도 화났는데. 어쨌든 몸이 조금 풀렸다. ‘불 그릇’에 담겨 있는 천년용암의 열기가 내 몸을 급속도로 녹여주었다.
“걱정 마. 죽을 생각 없고, 앞으로도 안 죽을 거니까.”
“죽으면 위약금을 300배로 물리겠습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죽어서도 갚으십시오.”
“그니까 죽었는데 어떻게 뭘 갚아? 죽으면 끝이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받아내겠습니다.”
오늘따라 세니아가 좀 이상하다. 왜 이 타이밍에 ‘일시정지’를 사용하고 채널까지 닫았지? 절단신공을 사용하기에 좋은 타이밍이었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좋았잖아.”
“과정이 무모했습니다.”
“덕분에 더욱 극적인 연출에 성공했을 거고.”
나는 내 몸을 그릇 삼아 천년빙수의 기운을 내 몸으로 받아들여 중화시켰다. 삐걱거리던 음양의 조화를 억지로 다시 맞춰놓았다. 수호자들이 보기에 굉장히 극적이고 재미있는 연출이 되지 않았겠는가.
“지금 시점에서 채널 닫아버렸으면…… 제대로 된 후원도 못 받았겠는데?”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지금 그게 중요하지. 네 성공이 곧 내 성공이니까. 네가 잘해야 나도 잘되니까. 너랑 나는, 적어도 플레이에 관해서는 같은 배를 탔고. 앞으로도 같이 가야 하잖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있다가 채널 열어. 내가 극적으로 회복한 것처럼 편집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뭐가?”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절박하게 합니까? 지금 시점에서도 그러한 연출과 중계가 중요합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뭐. 절박했던 것이 맞기는 하다. 나는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으니까. 살아서, 우리 가족들이랑 진짜 행복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내 미래는 내가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니까.
“살겠다는 것에 절박한 이유가 필요해?”
“제 말은 그것이 아니라…….”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어.”
“…….”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 내 힘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
“그러한 연출과 중계가 중요한 것도 당연하지. 너랑 내가 함께하는 것도 그 이유잖아. 독점계약을 맺은 것도. 너와 내가 함께 움직이는 것도.”
“물론 그렇습니다. 단지 독점계약 때문입니다. 당연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세니아가 갑자기 투명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일반적인 감정이 거의 없는, 퇴화화다 못해 소멸해버린 천족이 왜 분노한 것 같지?
[일시정지 권능이 해제되었습니다.] [채널 #19207번이 열렸습니다.]채널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무명의 관찰자’가 당신의 관찰에 만족합니다.] [‘석양의 거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속삭이는 악마’가 아쉬워합니다.]세니아가 실수한 덕분에 나도 제대로 된 후원을 못 받았다. 장면을 제대로 연출해서 보여주면 좋을 텐데.
’이미 지나간 버스고.’
내가 조화의 길을 회복시켰다. 이제 나는 광화문 던전을 빠져나가야 한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경회루 필드’를 클리어하면 나갈 수 있을 거다.
[열기(熱氣)와 한기(寒氣)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곳. 왕도를 지나 조화의 길을 개척하였습니다.]어라. 알림이 바뀌었다. 원래 알림은 ‘개척’이 아니라 ‘입장’이었다.
[열기(熱氣)와 한기(寒氣)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곳. 왕도를 지나 조화의 길로 입장합니다.]그런데 이제는 ‘개척’으로 바뀌었다. 개척. 내게는 익숙한 단어이기도 하다. 내게는 ‘승리의 개척자’라는 칭호가 있으니까.
[개척과 관련한 능력을 판별합니다.] [‘승리의 개척자’ 칭호를 확인합니다.]그에 따라,
[‘승리의 개척자’의 숨겨진 칭호효과가 활성화됩니다.]──────────
[승리의 개척자]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영역에서의 첫 번째 승리를 거머쥔 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칭호.
1. 파티원 전체 경험치 +20%
2. 타 칭호와 중복 적용 가능.
3. 타 효과(버프/디버프)와 중복 적용 가능.
4. 승리의 개척자가 개척한 필드에 한하여, 모든 칭호 효과를 증폭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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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된 경회루(慶會樓)’에 입장합니다.] [‘정화된 경회루(慶會樓)’는 승리의 개척자가 개척한 필드입니다.] [승리의 개척자 (4) 효과가 적용됩니다.]경회루에 입장했다. 내가 알던 경회루가 아니었다.
‘정화된 경회루?’
깨끗했다. 한국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 맑은 호수 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 건물은 마치 새것처럼 깔끔했다. 이 곳 필드에 우아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내 관찰자의 눈이 그렇게 해석했다.
‘오염된 생명체는 보이지 않아.’
그러면 이곳을 어떻게 클리어해야 하는 거지.
‘호수가 지나치게 맑고 깨끗하다.’
원래는 ‘식인어’가 있어야 할 곳인데 아무것도 없다. 바닥에 훤히 보인다. 너무나 맑아서 별로 깊지 않아 보인다. 그곳에 뿌리 없는 연꽃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호수 위에 우뚝 선 경회루.
투명한 맑은 호수. 그리고 맑은 호수 위의 아름다운 연꽃 군락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느꼈다.
‘어지럽다.’
특히 물에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엄청나게 깊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내 눈으로는 확인조차 힘들 정도로.
‘금은보화들.’
저 깊은 곳에는 금은보화들이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많은 아티팩트들.’
저 물 속에 잠겨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들어가면 꺼내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니.’
아니다. 나는 직감했다.
‘저 물은 일반적인 물이 아니다.’
과학적 시선에서 ‘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설중수(雪重水).’
설정에 따르면 마치 눈과 같이 희고 정순하다하여 ‘설’이라는 글자가 붙었고, 일반적인 물보다 훨씬 더 무겁다 하여 ‘중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설중수다.
’인간은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는 무거운 물.’
맑은 물처럼 보이지만 저것은 끈적끈적한 늪지대라고 보면 된다. 몬스터 사냥은 이곳의 클리어 요건이 아니다.
‘범선이……. 보인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범선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직감했다. 저 범선에 무엇인가가 있다. 과거 경회루 필드를 클리어할 때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던 범선. 경회루를 여러 번 클리어함에 따라 여러 번 보기는 했지만 특별할 것 없었던 범선.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범선은 꽤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다가왔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저 안에 답이 있다.’
범선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알림이 들려왔다.
[‘정화된 경회루 시나리오’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