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14)
#재능만렙 플레이어 214화
백년(百年) 이무기.
김혁진은 이 몬스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플레이 피디아’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 놈이기도 했다.
-백년 이무기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혹자에 따르면 뱀보다는 구렁이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거대한 뱀이다. 작은 놈은 20m에서 큰 놈은 50m까지 자란다.
그런데 놈은 단순히 ‘동물형 몬스터’가 아니었다.
-뱀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놈을 ‘요괴형’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곽태운이 ‘허상’을 봤었던 거다. 잡아먹히는 허상. 그렇게 사냥감을 경직시킨 뒤 그 거대한 몸으로 천천히 옥죈다. 온몸을 부러뜨리거나 질식시켜서 잡아먹는다.
허상.
혹은 환상을 이용하여 사냥감을 사냥하는 개체.
그러한 개체들의 천적이 바로 김혁진이다.
‘레벨의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복하지 못할 정도의 레벨 차이도 아니다. 끽해야 10내외다. 갓 각성했을 때에도 라이칸 스로프를 잡았다.
‘공략만 잘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담력과 실력만 있다면. 레벨 격차. 능력 격차를 좁혀줄 ’의지 영창(意志 詠唱)’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혁진이 집중했다. 그리고 마지막 영창 시동어를 내뱉었다. 백년 이무기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l’자의 눈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졌지만 두렵지 않았다.
“이것이 곧 직관(直觀)의 권능이고.”
살기 속에 감춰진 허상과 환상의 권능을 부술 수 있는 능력. 김혁진에게는 그것이 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안(洞察眼).”
김혁진이 읊조렸다.
[모든 거짓은.] [부서지리라.]그와 동시에 허상이 깨졌다. 김혁진의 시야가 유리창 깨지듯 깨졌다.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서 쳐다보던 ‘백년 이무기’는 가짜였다.
‘진짜 실체는 내게 더 접근했겠지.’
이미 레이드는 시작되었다. 김혁진의 시야 속에서 ‘백년 이무기’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김혁진을 쳐다보기만 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가만히 있던 모습은 환상. 제법 가까이 다가온 지금의 모습이 진짜다.
‘꽤 접근했네.’
놈은 이미 김혁진 자신을 사냥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움직임 자체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스르르르-.
놈의 비늘과 땅이 맞닿아 비벼지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후우웅-!
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타고서 놈의 냄새가 느껴졌다. 비릿한 오존 냄새가 났다. 놈의 살결에서 나는 냄새다.
김혁진이 순간 ‘실피드의 날개’을 꺼내들었다. 빠르게. 이사벨을 인벤토리에. 그리고 ‘실피드의 날개’를 손에.
벨라가 주로 구사하던 스위칭 기술이다. 벨라를 통해 파악했다.
‘감각안’의 ‘행동복사’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깨닫는다. 그게 김혁진의 ‘감각안’이다.
[옵션. ‘거리 벌리기’를 사용합니다.]순간적으로 김혁진의 몸이 뒤로 이동했다. 누군가 뒤에서 잡아끈 것 같은 모양새. 김혁진의 몸이 자석이 되어 뒤로 빨려간 것 같은 모양새다.
현정화는 김혁진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줬다. 곽태운이 올라간 ‘중앙 기둥’에도 신경 쓰면서, 김혁진의 움직임을 읽었다.
‘지금 저건 거리 벌리기.’
현정화는 자주 쓰지 않는다.
저 ‘거리 벌리기’는 순전히 ‘거리를 벌리는 행위’에는 유리하지만, 그 이후에 답이 없다. 거리를 벌린 이후에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밸런스가 무너지는데.’
그런데 김혁진은 아니었다. 상체를 살짝 숙이고서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게 보였다.
‘밸런스가 전혀…… 무너지지 않았어.’
말도 안 될 정도로 밸런스를 잘 잡았다. 그 순간 김혁진의 몸이 사라졌다.
[특수스킬. 이형환위(移形換位)를 사용합니다.]실피드의 옵션과 특수스킬 이형환위를 적절히 섞어서 이동했다. 김혁진은 ‘백년 이무기’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현정화가 파악한 김혁진의 움직임은 그랬다.
‘순전히 이동만을 위해 근육을 쓰고 있는 느낌인데.’
어째서일까.
‘설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 것 같았다. 지금 김혁진은 놈을 ‘사냥’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김혁진은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었다.
김혁진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백년 이무기’에 교묘하게 접근했다가 몸을 타고 이동했다. 몇 번은 ‘백년 이무기’의 몸을 타고 움직이다가 놈의 머리 쪽을 타고 오르기도 했다.
김혁진이 높이 뛰었다. 순간, 단도를 꺼내들었다. 놈의 목을 찍었다.
깡!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김혁진은 이 단도가 놈의 피부를 뚫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피부를 뚫으려던 게 목적이 아니다. 김혁진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백년 이무기’가 고개를 들고 있던 상태.
높이는 약 10미터가량.
김혁진의 단도가 찍어낸 그 자리에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단도를 목에 찍어서, 떨어지는 속도를 늦췄다.
김혁진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고, 단도가 놈의 몸을 긁었다.
키이이이익!
스파크가 튀었다.
단도로 떨어지는 속도를 늦췄다. ‘백년 이무기’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꼬리가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단도로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면, 꼬리에 잡혔을 지도 모른다. 현정화가 침을 삼켰다.
‘아니. 잡혔을 거야.’
전력 자체는 절대적인 열세다. 잡혔다면 끝이다.
‘김혁진 씨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놈의 몸을 스스로 묶게 하고 있어.’
저놈의 몸은 굉장히 길다. 거대한 실이다. 그 실을 꼬아버리고 있다. ‘백년 이무기’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약을 올리면서.
김혁진은 놈과 거리를 좁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조금씩 더 여유로워졌다.
‘놈의 움직임이 보인다.’
놈에게 잡히면 끝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안 잡히면 된다. 일단 잡히면 끝이지만 놈은 많이 느렸다. 김혁진은 감각안으로 놈의 움직임을 모조리 읽어냈다.
그리고 조금 애매할 때. 그때에는,
미래시로 미래를 읽었다. 마력과 심력의 소모가 커서 신체에 부담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그걸 가릴 때는 아니었다. 덕분에 느린 채찍처럼 달려드는, 올가미처럼 조여오는 놈의 포위망을 뚫고서 놈을 묶어낼 수 있었다.
거리를 잠시 벌렸다.
“선화.”
“네.”
선화가 준비하고 있던 것을 꺼냈다. 아까 김혁진이 몰래 말했던 것.
-공격 막을 생각 말고.
-원한의 인면조의 깃털을 물에 담궈. 물 있지?
물은 플레이어의 필수품이다. 레이드 시에 항상 넉넉한 양의 물을 챙긴다. 선화처럼 몸을 많이 쓰는 클래스는 더욱 그렇다. 선화는 아예 인벤토리에 굉장히 커다란, 욕조 크기의 물통을 담아서 다닌다.
김혁진이 이사벨 대신 ‘녹슨 철검’을 들었다. 욕조처럼 보이는, 희뿌연 물이 가득 담겨 있는 선화의 물통에 ‘녹슨 철검’을 집어넣었다.
-특수스킬. 이형환위(移形換位)를 사용합니다.
다시 거리를 좁혔다. 허연 물이 뚝뚝 떨어지는 ‘녹슨 철검’을 꼬여있는 놈의 곳곳에 발랐다.
현정화는 김혁진의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저게 뭐하는 거지?’
그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백년 이무기’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쿵! 쓰러졌다. 놈은 이리저리 꼬인 실타래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쩐지. 여기서 원한의 인면조가 나온다 했습니다.”
“……예?”
현정화는 직감했다. 지금 김혁진은 자신에게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수호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구나.’
새로운 세계를 봤다.
‘저렇게 하는 거구나.’
좋은 배움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 맞춰주기로 했다.
“놈의 깃털을 물에 녹이면 굉장히 강력한 접착제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렇군요.”
현정화는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대화 상대는 자신이 아니니까.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놈은 꼬인 몸을 원래대로 풀었을 겁니다.”
“풀지 못하게 접착제로 몸을 붙여 버린 건가요?”
현정화는 아까의 상황을 떠올렸다.
-땀에 반응해서 그럴 거야. 음. 너무 오래 쥐고 있지 마. 좋을 게 없을 거 같네.
솔직히 궁금했다.
‘원한의 인면조’의 깃털에 대해서 원래부터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땀에 반응했다’라는 저 사실을 토대로 알아차린 건지.
스스로 판단했다.
‘너무 오래 쥐고 있지 마. 좋을 게 없을 거 같네…… 라고 말했었어.’
그때 파악한 것 같다. 땀에 반응해서 작용하는 접착제.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그 순간 판단해 버린 거야. 그 사실만 가지고.’
이걸 과연 ‘통찰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단순히 통찰력일까. 현정화는 잠깐 소름이 돋았다. 김혁진이라는 사람이 다시 보였다. 김혁진이라는 플레이어 자체가 조금 더 궁금해졌다.
“맞아요. 그런데 이 걸로도 완벽하지는 않겠죠. 놈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현정화가 적절히 추임새를 넣어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힘을 못 쓰게 해야죠.”
“…….”
“놈의 힘이 저 수염에서 나오는 것 같거든요.”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저 수염을 잘라내거나. 그게 안 된다면 묶거나. 어떤 식으로든 제약을 가해놓으면, 놈의 힘이 약해질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김혁진은 솔직히 고마웠다. 현정화는 말수가 많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말은 꼬박꼬박 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 자신은 현정화를 이용하고 있는 거다. 현정화는 그것을 알면서도 적극 협조해주고 있는 거고.
“제 영창. 듣지 않으셨습니까?”
아까 그 신기했던 능력. 그걸 영창이라고 하는 군요. 현정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기브 앤 테이크였다. 현정화는 김혁진에게 맞춰주는 대신 ‘영창’이라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
“들었죠.”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이것이 곧 직관의 권능이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안. 그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맞아요.”
“그럼 눈으로 보고 아셨다는 말씀이네요.”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연출이면 수호자들이 원하는 그림이 충분히 그려졌을 거다. 수호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들도 모두 풀어줬을 거고.
‘그러면 이제.’
자신을 지원하는 메인 수호자. ‘무명의 관찰자’를 다분히 의식해서, 한 마디를 더했다.
“관찰의 힘이죠.”
거기까지 말한 김혁진이 다시 ‘백년 이무기’에게 다가갔다. 수염을 잘라내려 했지만 ‘초월급 아이템’인 이사벨로도 잘라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김혁진은 그 두 가닥의 수염을 서로 묶었다.
김혁진은 백년 이무기 공략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백년 이무기’의 움직임을 막은 뒤, 수염을 묶어버리면 굉장히 수월한 사냥이 가능해진다. 수염을 묶는 것만으로도 ‘백년 이무기’의 능력은 대부분 소실되어 버린다.
현정화가 물었다.
“확실히 기세가 많이 줄어들었네요. 그럼 어떡하죠?”
놈의 방어력이 너무 높아 죽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김혁진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다.
“죽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재 가지고 있는 공격 수단으로는 이 보스몬스터를 처리할 수 없으니까.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과연. 이놈을 죽이라고 만들어놓은 놈일까요, 시스템이?”
“보스 몬스터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이라고 생성시킨 놈이 아니에요.”
지난번에 클리어했었던 ‘바람이 부는 언덕’과 계속해서, 상당부분 겹친다. 단순히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으로 이곳이 끝나지 않을 거다. 이건 클리어 조건이 아니다.
이곳의 진행 자체가 너무 공교롭고 인위적이다. 분명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혁진은 그렇게 판단했다.
“오히려 이 놈을 죽이려 했다면, 이곳 클리어를 실패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드네요.”
못 죽이는 것도 사실이고. 하필이면 이곳에 ‘원한의 인면조’가 나타났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김혁진은 확신했다.
“뭔가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곽태운이 빠르게 내려왔다. 곽태운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헌물함. 가져왔어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헌물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