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15)
재능만렙 플레이어 215화
김혁진은 과거 ‘바람이 부는 언덕’을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외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저절로 외워졌다.
과거. 헌물함이 나타났을 때.
‘영향력을 행사하고 바람을 진정시켰었지.’
[성물 ‘헌물함’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성물 ‘헌물함’이 ‘바람 신전’의 바람을 진정시킵니다.]그것과 완전히 같았다. 맥락이 똑같다.
‘당시. 현정화는 바람이 부는 언덕에 없었어.’
바람이 부는 언덕에 없었던 플레이어다. 그렇다면 현정화는 혼자서 ‘바람 신전’을 클리어할 수 없었을 거다.
‘그렇다는 말은, 역시 내가 부순 천사상이 키 포인트였네.’
‘날개 잃은 천사상’ 때문에 내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나는 확실했다. 맥락 자체는 같지만 난이도는 훨씬 더 높아졌다는 것. 날개 잃은 천사상을 부숨으로써 난이도가 급작스레 높아졌다는 것.
‘그 말은 곧 보상도 커진다는 얘기.’
김혁진은 곽태운이 가져온 헌물함을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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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신전의 헌물함]헌물(獻物)을 위해 마련된 작은 상자입니다. 바람의 신전을 찾은 이들은 이 헌물함에 자신의 성의를 표시해야만 합니다. 헌물함이 가득 찼을 때, 바람 신전의 가호가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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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퀘스트 ‘10만 코인을 채워라!’가 주어졌었다. 난이도가 높아진 지금. 과연 이 ‘헌물함’은 어떤 퀘스트를 내릴까.
[퀘스트. ‘생명을 바쳐라!’가 주어졌습니다.] [퀘스트 보상 : 바람 신전 클리어 및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김혁진은 단순히 글자 그대로의 알림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보상의 등급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런데 보상은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다. 클리어야 당연한 거고.
‘공략 없이는 잡기 불가능한 몬스터인 백년 이무기까지 나왔는데.’
그런데 보상이 겨우 이거다? 오히려 김혁진의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럼 내가 얻은 [천사상의 날개]가 그만큼 중요한 아이템이라는 얘기겠어.’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어디에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르겠다만, 분명 도움이 될 거다.
‘궁신지체의 서까지 얻었으니.’
보상은 결코 나쁘지 않다. 이번 클리어. 굉장히 남는 장사다. 현정화는 잠자코 김혁진의 말을 기다렸다. 보통의 경우. 그녀는 이렇게 가만히 있기보다는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김혁진을 방해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에도 ‘헌물함’이 보였고 ‘퀘스트 내용’이 보였기 때문이다.
[퀘스트. ‘생명을 바쳐라!’가 주어졌습니다.]현정화는 바보가 아니다.
‘만약 백년 이무기를 사냥해버렸다면…….’
그러면 이곳을 클리어하기 위해 누군가 희생했어야 했다. 저 헌물함에 누군가는 잡아먹혀야만 이곳을 클리어하고 나갈 수 있다. 이걸 과연, 단순히 ‘운이 좋다’라고 누가 표현할 수 있을까.
‘운이 좋은 게 아니야.’
단순히 그게 아니라, ‘운이 좋도록’ 만들어간다. 눈앞의 저 사람이.
김선화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 그러면 저 이무기로 선택할게요. 생명 바치는 건.”
“그래.”
김선화가 헌물함에 손을 댔다. 헌물함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모두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생명 헌납은 ‘다수결 투표’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헌납할 생명을 지정하여 주십시오.]눈으로 보면 된다.
이곳의 모든 플레이어가 ‘백년 이무기’를 대상으로 지정했다. 김혁진, 김선화, 곽태운, 현정화.
[지정된 대상에 대한 찬성이 4표. 기권이 1표로 확인되었습니다.]당연히 여기서의 기권은 ‘백년 이무기’다.
[과반수를 초과하였습니다.] [대상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헌물함이 백년 이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블랙홀처럼. 엄청나게 거대한 백년 이무기가 작은 헌물함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빨려들어 갔다.
김선화는 그 광경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와…….”
저렇게 큰 뱀이. 어떻게 저 작은 곳에 들어가지.
“신기하다.”
몬스터가 먹히는 광경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냥 신기하게만 봤다. 김혁진은 좋다고 생각했다. 저 두부멘탈이 플레이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굴면 분명 문제가 생길 테니까. 차라리 저렇게 ‘우와 신기하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훨씬 좋다.
[헌물함이 생명을 헌납받았습니다.] [바람 신전의 가호가 이곳을 찾은 플레이어들에게 임합니다.]어디선가. 따뜻함을 머금은 푸른 바람이 불어와 플레이어들의 몸을 감쌌다. 그 바람이 몇 바퀴 가량, 플레이어들의 몸을 휘감고서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천사상의 날개’를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이 생성됩니다.]순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바람 신전의 가호 없이 이 ‘천사상의 날개’를 그냥 가지고 나가면 이 아이템은 파괴된다.
김혁진은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이렇게 겹겹이 보안 장치를 해놓았다는 건. 그만큼 의미 있는 아이템이라는 소리니까.’
아주 좋다. 아무래도 던전을 벗어나면 정보상인 피에트로에게 연락을 취해봐야겠다. 연락처는 가지고 있으니까.
[바람 속성 친화력이 높아집니다.]결국 ‘바람 신전’이 클리어되었다. 김혁진 일행은 ‘바람 신전’에서 벗어나 원래 있었던 필드. ‘마빈 공동묘지’로 돌아왔다.
[마빈 공동묘지에 입장하였습니다.]그리고 어렵지 않게 클리어 크리스탈을 찾아 ‘마빈 공동묘지’ 필드를 클리어했고 그랑 서울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 * *
‘바람 신전’ 클리어가 끝난 직후. 현정화는 김혁진과 함께 김혁진의 차에 올라탔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사무실로 가주세요.”
현정화와 함께 거신길드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이동한 이유는 하나였다.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를 얻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처분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엘리베이터 안.
김혁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실피드의 날개는…… 현정화 스스로가 인정한, 자신을 있게 한 아이템이라고 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금의 현정화 역시 이 아이템의 가치를 충분히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바람 신전 클리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나라는 것 역시 알고 있겠지.’
당연하다. 아예 시스템이 그걸 인정해줬다.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를 김혁진의 인벤토리에 넣어줬으니까. ‘직접 보상’의 형태로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왔다. 소파에 앉았다. 김혁진이 먼저 말했다.
“본론부터 말할게요.”
“네.”
현정화도 이런저런 격식을 따지는 것보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았다.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는, 시스템에 의해 제 소유권으로 인정 됐어요.”
“알고 있어요.”
현정화는 그 걸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릴 만큼의 철면피도 아니다. 그렇지만 김혁진의 속내를 못 읽을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굳이 이곳으로 절 데려오신 것은, 그 아이템을 제게 양도할 의향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맞아요. 저는 현정화 씨의 기여도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는 저보다는 현정화 씨에게 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아이템이니까요.”
“…….”
현정화는 솔직히 저 말에 대해서는 반박하고 싶었다. 그 엉성한 자세와 호흡으로, 자신 이상의 능력을 선보이는 괴랄한 궁수가 바로 김혁진이다.
재능의 격 자체가 다르다. 현정화는 그걸 인정하고 있는 상태.
‘당신에게 있으면 더 빛을 발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현정화도 지금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가 갖고 싶었다.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를 위해서는 일반 실피드의 날개가 둘 필요합니다.”
“…….”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실피드의 날개를 드려야만 하는 상황이죠.”
“값은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이 아이템은 이탈리아의 절친한 친구. 페드로가 제게 마음을 담아 선물한 것입니다.”
사실 친구는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친구하기로 했다.
“……절친한 친구입니까?”
“예. 목숨을 걸고 함께 클리어를 진행했을 만큼요.”
거짓말 하는 건 아니다. 정순한 불꽃. 아테네 앞에서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까딱 잘못했으면 타죽을 뻔한 것도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말씀드렸듯. 이 아이템은 현정화 씨에게 더 잘어울린다 생각하여 양도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일단 제 기준에서, 반쪽짜리 실피드의 날개는 5억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탈리아의 랭커 살바레토가 2억 5천에 눈을 까뒤집었다. 아직 초보구간이라서 그렇다. 그러니까 5억이라는 돈은 결코 적은 게 아니다. 실제로 현정화는 5억이 과하다고 생각 했다.
‘그렇지만.’
지금 현정화 자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김혁진이 이 정도 배려를 해줬으면, 자신도 응당 그에 맞는 배려를 해야 한다. 거래란 그런 거다. 어느 한쪽만 이득을 보고, 어느 한쪽만 손해를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납득하기로 했다.
“그리고 완전한 실피드의 날개는…… 사실상 현재로서는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죠. 돈으로는.”
“…….”
그럼 저 남자가 원하는 건 도대체 뭘까. 현정화는 잠자코 김혁진의 눈을 쳐다봤다.
‘마음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무슨 판을 그리고 있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된다. 이제 20살이라고 알고 있는데, 저 안에 100년 묵은 능구렁이가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컸길래 저럴 수 있는 거지.’
김혁진이 말했다.
“드릴게요. 그냥.”
“……예?”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으니까요.”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 그냥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현정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현정화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바람 신전 클리어에는 거신 길드장님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시스템도 그것을 인정했고, 저 또한 그것을 인정합니다. 정당한 공헌도에 따라 획득한 아이템을 제가 어찌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획득할 수 있습니까?”
현정화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 말씀과 호의에는 깊이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만.”
“…….”
“그 말씀은 같은 플레이어로서, 저를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김혁진이 가볍게 웃었다. 현정화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김혁진이 설계한 그림이다.
‘저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극단적으로는 ‘저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현정화도 말을 많이 가렸다.
김혁진이 잠시 기다렸다.
이쯤 되면 이제 현정화가 말을 할 때가 됐는데.
“부디 정당한 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럴 줄 알았다. 같은 물건을 얼마에 팔 수 있느냐는 장사꾼의 재량이다. 심지어 구매자가 더없이 만족하는 거래로 유도할 수 있다면, 판매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투명 상태로 상황을 중계하던 세니아는 생각했다.
‘어차피 공짜로 넘길 생각은 없으셨을 겁니다.’
날개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묘하게, 이상하게 김혁진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저도 모르게 놀랐다.
‘왜 저는…… 저런 사기에 가까운 거래 행각이 좋은 겁니까?’
뭘까 이건.
‘김혁진 플레이어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왜 제게 좋은 일이 되는 겁니까?’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김혁진 플레이어가 잘 풀려야 저도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호의가, 어쩌면 현정화 씨를 모욕한 것이 될 수도 있겠네요. 사과합니다.”
“그 정도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는요 뭘. 그럴 줄 알고 이런 건데. 김혁진이 또 가볍게 웃었다.
“그럼 제가 먼저 제시하죠.”
애초에 이 판을 그렸다.
[‘베니스의 상인’이 크게 즐거워합니다.] [‘베니스의 상인’이 당신을 더욱 주목하기 시작합니다.]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제가 현정화 씨에게 요구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들어보시고 거래를 진행할지. 진행하지 않을 지.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요구 조건을 말했다.
“첫째. 도합 10억을 요구하겠습니다.”
“수용합니다.”
말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현정화는 ‘반드시 정당한 값을 치르겠다’라는 의지에 가득 찬 것 같았다. 5억은 아까워했는데 10억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대화 조금 나눴을 뿐인데, 마인드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둘째. 현정화 씨의 능력을 사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 판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게 진짜 본론이었다.
“앞으로 저는 두 개의 던전을 클리어할 생각입니다. 하나는 싱가폴 서버에 있고 하나는 한국 서버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의 도움을 얻고 싶습니다. 단, 그곳에서 획득하는 모든 아이템과 전리품은 제 소유로 하고 싶습니다.”
현정화는 훌륭하게 걸려들었다.
“수용합니다.”
현정화는 현정화 나름대로 좋았다. 김혁진과 플레이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았으니까.
현정화가 물었다.
“혹시 무슨 던전, 무슨 던전인지 이름을 알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