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34)
#재능만렙 플레이어 234화
안서희가 되물었다.
“플레이어는 활성화시킬 수 없다구요?”
“응.”
안서희는 김혁진과 등을 맞댄 채로 약간 생각했다. 김혁진이 안서희와 연결되어 있듯, 안서희도 김혁진과 연결되어 있다. 김혁진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뭔가 생각이 있으신 것 같네요.”
“맞아.”
안서희는 그게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녀도 안다. 지금의 이 대화가 오로지 둘만을 위한 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묻지 않았다. 이 대화는 수호자들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대화다. 이쯤에서 잘라야 한다는 것을 안서희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안서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근데 진짜 어떻게 할 생각이시지?’
전혀 모르겠다. 김혁진의 생각을 모르겠다는 것과는 별개로, 또 다른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둘만의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건 욕심일까.’
처음에는 걸을 수 있다는 것.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욕심이 났다. 하지만 안서희는 알았다. ‘중간 관리자’가 존재하고, ‘중계’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상. 둘만의 대화는 할 수 없다.
김혁진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채널 #19207번이 종료되었습니다.]채널 19207번은 세니아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세니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세니아가 사라졌다. 보통 중계를 종료할 때는 종료한다고 말을 하고 사라지는데, 오늘은 그냥 사라졌다.
‘급한 일이 있나?’
중간 관리자가 이 플레이어를 중계했다가, 저 플레이어를 중계했다가,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김혁진이 말했다.
“미안해. 많이 신경 못 써줘서.”
“아니에요. 다 이해해요.”
“네 마음 알아.”
안서희는 정말로 외롭다. 외로울 수밖에 없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다시 약속할게. 완벽한 육체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선화도 지켜야 하고 안서희도 도와야 한다. 안서희가 대답했다.
“그 말보다도, 그 마음이 고맙네요.”
정신이 연결되어 있어서 저 마음이 느껴진다. 안서희는 김혁진의 진심을 이해했다. 그때 김혁진에게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 지금 뭐 하는 거야!]이사벨이었다. 얘는 왜 자꾸 깨. 무슨 봉인된 검이 잠이 이렇게 없냐.
[남편이 지금 이러고 있는데 잠이 오게 생겼어? 얘 뭐야? 저 수호탑이잖아. 왜 남편이랑 등을 맞대고 있어!]김혁진도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른다. 그냥 안서희가 안쓰러워서 그녀가 등을 기대고 있는 걸 내버려 뒀다. 김혁진은 안다. 안서희가 자신을 남자로 보고 있는 건 아니다. 남자가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안서희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유일하게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이사벨. 너도 알잖아. 내가 서희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김혁진-안서희의 연결보다, 김혁진-이사벨의 연결이 더 끈끈하고 유대감이 깊다. 이사벨은 김혁진의 생각을 대부분 읽어내기까지 한다.
[그건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건 좀…….]‘지금 쟤 세상에는 나밖에 없어.’
이사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내가 서희를 대하는 마음은 네가 잘 알 거고. 서희가 나를 대하는 마음도 충분히 알 텐데? 지금 서희가 나를 남자로 보고 있다고 생각해?’
절대로 아니다. 김혁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유부남이라고. 지나치게 친절하단 말이야.]‘그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딱 한 명뿐이니까 그렇지.’
이제 김혁진은 이사벨과의 대화에 많이 능숙해졌다. 이사벨은 오랜 시간 검으로 살아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고가 단순하다. 대화에 능수능란한 편은 아니었다.
‘나는 내 신부에게, 이해받고 싶어.’
무작정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다.
‘내가 잘할게. 믿음 줄게. 너는 어차피 내 마음을 다 느끼잖아. 내가 안서희를 여자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안서희가 나를 남자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도 느끼고 있을 거고. 나는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서,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를 하고 싶은 거야.’
이사벨의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솔직히 김혁진은 왜 검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설득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뻔했지만, 가까스로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무서운 이사벨이 속마음을 전부 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이사벨이 말했다.
[남편 등은 내 거야. 알지?]알지. 당연히 네 거지.
[그럼 알겠어. 쟤 상황이 하도 딱하니까, 내가 특별히 양해하는 거야.]너라면 그렇게 말해줄 것 같았어.
[나, 나는 마음이 넓은 신부니까.]이사벨의 검신에 쩌적-금이 생겼다. 억지로 깨어 있어서 그랬다.
‘다시 자. 네가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걱정하는 일 만들지 않을게. 그러다 네 몸이 상하면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이건 진심이다. 초월급 아이템인 이사벨이 망가지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알겠어. 이 정도는 금방 자동수복되니까 너무 걱정 말고.]어느새 이사벨의 기분이 다 풀어졌다.
[다시 잘게. 나중에 나랑도 돈가스인지 치킨인지. 그런 것도 먹어야 해.]이사벨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사벨이 빠져든 사이, 안서희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김혁진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뭐라고 했어? 미안, 못 들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서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을 돌려 앉아 있는 김혁진을 쳐다봤다.
“제가 아까 했던 영창. 기억하세요?”
“숨 쉴 수 있어서 기쁘고, 만질 수 있어서 기쁘고, 살아 있어서 기쁘고. 그거?”
“네. 그다음이 제일 중요한 건데…….”
“돈가스 먹고 싶어요잖아.”
“맞아요.”
안서희가 밝게 웃었다.
“저 돈가스 먹고 싶어요.”
“몸 되찾은 다음에, 먹으러 가자. 선화랑 같이.”
“아. 선화도 보고 싶다.”
“선화보고 너 찾아가라고 그럴게.”
대화는 못 나누겠지만, 안서희는 선화를 볼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여러 번 찾아왔어요.”
“그랬어?”
“얘기 많이 하고 싶었는데, 수다 떨고 싶은데 못 떨어서 아쉬웠어요.”
안서희가 걸음을 옮겼다.
“저. 걸어보고 싶어요. 여기저기 좀 둘러보고 올게요.”
“그래.”
어차피 위험한 것도 없다. 위험해봤자 적색귀 안서희에게 위험할 만한 게 또 얼마나 있겠는가. 두 다리를 가지고 걸어본 것이 오랜만인 안서희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저렇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안서희와 연결된 정신을 통해 느꼈다.
안서희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살바레토가 다가왔다.
“제가 질문 좀 해도 됩니까?”
“얼마든지요.”
“영창에 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저럴 줄 알았다.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안 물어봤으면 실망할 뻔했습니다.”
“……혹시 결례가 될까 하여 여러 번 망설였습니다.”
“그렇지만 군주 살바레토라면 당연히 물어봐야죠.”
“살바레토요?”
아. 실수. 살바레토라는 말이 너무 입에 익어 저절로 나와 버렸다.
“……거기까지 파악하셨습니까?”
응?
“정말 놀랍군요. 함소현 씨의 능력인가요, 아니면 김혁진 씨의 정보력인가요, 그도 아니면 정보상인 피에트로의 힘인가요?”
“비밀입니다.”
“알겠습니다.”
살바레토가 뭐? 그건 미래에 당연한 이름인데. 김혁진은 말하지 못했다. 비밀인 게 아니라 말 못 해서 그냥 비밀이라고 대답했다.
“김혁진 씨가 했던 영창을 배우고 싶습니다. 혹시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어차피 재능이 없고 ‘의지’가 받쳐주지 않는 이가 해봐야, 그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영창은 철저히 재능의 영역이다. 살바레토는 그 재능이 충만한 군주 플레이어고.
‘내가 안 가르쳐줘도 언젠가는 스스로 깨달아.’
이 빌어먹을 플레이의 세계는 말 그대로 ‘될놈될’이다. 살바레토는 어차피 될 놈이다.
‘어차피 알게 될 거. 내가 가르쳐주면 더 좋지.’
은혜도 입혀 놓고. 생색도 좀 내고.
“시간도 많은데 천천히 가르쳐 드리죠. 단, 공짜는 아닙니다.”
* * *
10일이 흘렀다.
김혁진-대외적으로는 키엘리니-의 중재 덕택에 플레이어들 사이에 별다른 불협화음은 없었다. 10일만 지나면 이제 이곳이 완전히 클리어될 거고, 생존자에 따라 보상이 분배될 거다. 다들 휴식하면서 체력을 비축했다.
“어? 뭐가 생기는데?”
그런데 바닥에서 뭔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녹색 연기를 내뿜는 돌이었다. 그것이 여기저기, 하나씩 생겨났다.
──────────
[녹색 독을 머금은 돌맹이]강력한 독을 머금고 있는 돌맹이입니다. 일정 시간 내에 부수지 않으면 독성이 공기 중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부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독성이 더욱더 강력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 원거리 공격으로는 부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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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살바레토가 나섰다.
“제가 망치들을 나눠드리겠습니다.”
물론, 이 것 역시 김혁진이 선화와 함께 미리 준비한 아이템이다.
“태극방패 함소현 씨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궁수들이 망치를 받았다.
“열심히 부숴야 합니다. 독이 강해지니까요.”
이로써 김혁진이 준비한 모든 안배가 빛을 발했다.
“심심한데 잘됐네요, 뭐.”
“어우. 이거 엄청 딱딱한데?”
“빨리 부숴. 독 튀어나오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궁수들이 망치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10일이 흘렀다. ‘날개 잃은 천사상’ 게이트에 들어갔었던 플레이어들이 ‘날개 잃은 천사상’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왔다.
몇몇 소식들이 세상에 전해졌다.
-태극방패의 예지몽 능력자. 함소현. 그녀는 누군인가.
-군주 살바레토. 이탈리아의 저력을 선보이다.
함소현의 이름값이 더없이 높아졌고, 키엘리니는 이제 아예 ‘살바레토’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날개 잃은 천사상’ 덕분에 살바레토의 이름값이 미국의 군주 미셸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졌다.
-태극방패에는 예지몽 능력자뿐만 아니라 최종병기가 존재한다.
이런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날개 잃은 천사상’ 게이트에 들어갔었던 궁수들은 그에 관해서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태극방패에 최종병기가 존재한다는 것만 입을 모아 말했을 뿐. 더 이상의 정보제공은 하지 않았다.
성신병원.
VVIP 병실.
침대에 누워 TV를 보던 함소현이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TV에는 ‘태극방패의 예지몽 능력자’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나는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 옆에서 귤을 까먹던 여자가 낄낄대고 웃었다.
“저거. 분명히 혁진 씨 작품이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소현이 너도 혁진 씨를 보고 싶다고 했다며?”
“응. 궁금해. 어떤 사람인지. 수지 너는 봤지?”
“봤지.”
독마녀 천수지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 인간. 아무래도 게이이거나 고자인 거 같아.”
“왜?”
“내가 대놓고 유혹을 하는데, 안 넘어와.”
“네가 대놓고 유혹을 해? 천수지가? 근데 안 넘어와?”
함소현이 또 작게 웃었다.
“비웃지 마. 나 진지해. 그 남자 진짜 모르겠어. 어떻게 꼬셔야 꼬실 수 있을까? 신통방통한 예지몽 좀 없어? 나 그 남자랑 사귀고 싶은데.”
함소현이 고개를 저었다.
“포기해.”
“갑자기?”
“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무너무 궁금해. 그래서 송 길드장님께 부탁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
“알지. 근데 그게 왜?”
“너무너무 궁금한데. 너무너무 두렵기도 해.”
천수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먹던 귤을 내려놓았다.
“두렵다니?”
“그 남자의 등 뒤에. 나로서는 파악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이 있어.”
“파악할 수 없는 무서운 것?”
“응. 날카롭고 차갑고. 그런데 뜨겁고 단단해. 찬란하게 빛나는데 끝없이 어두워.”
천수지는 다시 귤을 집어 먹었다.
“역대급 개소리 같아.”
“예지몽이 늘 그렇지 뭐. 축복인데 저주같은 강대한 힘이 느껴져. 나도 더 이상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거랑 내가 김혁진 씨랑 잘해보고 싶은 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있어.”
함소현이 친구를 쳐다봤다.
“그 남자에게 너무 접근하지 마.”
“왜?”
“반드시 죽어.”
그런데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될까요?”
송기열 길드장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크게 나지 않는 함소현을 대신해서, 천수지가 말했다.
“들어오시래요.”
송기열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옆에는 김혁진이 서 있었고, 또 그 옆에는 또 다른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함소현은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은 김혁진.’
그리고 옆에 저 사람은 이탈리아의 정보상인 피에트로다. 두 사람의 정체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김혁진을 직접 보고 나니, 무엇인가가 보였다. 허공에 노란색 예지서가 생성되었다.
[D-ewer-Cresadel-Hometes-]원래는 잘 움직이지 못하는 함소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녀의 손에, 붉은색 붓이 저절로 생겨났다. 함소현의 눈이 하얗게 물들었다.
김혁진을 보자마자, 함소현이 무엇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