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35)
#재능만렙 플레이어 235화
함소현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아아…… 하아……!”
백안(白眼)을 뜬 채,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노란색 예지서에 글씨가 새겨졌다.
[고향으로 돌아가라.] [천공에 길이 있으리라.]함소현의 몸이 붕 떴다. 그리고 침대 위로 풀썩 떨어져 내렸다. 천수지가 옆에서 이불을 덮어주었다.
천수지가 말했다.
“놀라셨죠?”
“예. 조금.”
“옆에 저분은 피에트로 씨인가 봐요?”
피에트로가 움찔했다.
“저를 아십니까?”
“네. 대충은요. 정보상인이라고 알고 있어요.”
피에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탈리아의 정보상인. 피에트로입니다. 검은 나비를 운영 중입니다. 반갑습니다. 천수지 씨.”
“역시 알고 계셨네요.”
“네. 태극방패의 모든 길드원들을 파악 중입니다.”
천수지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그러면 우리 태극방패의 최종병기. 아니. 최종 비밀 병기도 알고 계시겠네요?”
김혁진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어쩌다보니 태극방패의 비밀병기로 알려졌다. 세상에. ‘최종 비밀 병기’라니. 이 무슨 낯 간지러운 호칭이란 말인가.
“인사는 이쯤 하죠.”
“좋아요. 소현이도 곧 깨어날 거예요.”
피에트로는 천수지의 눈빛에 담긴 호감을 금방 읽어냈다.
‘내가 알고 있던 정보와, 내가 보는 천수지는 다르다.’
알고 있던 정보에서 천수지는 그야말로 냉혈한 마녀에 가까웠다. 주변 사람들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적‘이라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차가운 여자.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범접할 수 없는 독가시. 혹은 독마녀로 부른다는 것을, 피에트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독마녀? 독가시? 전혀 아닌데.’
정보가 틀리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에게는 모두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지.’
어떤 상황에 있느냐.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느냐. 그 것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성격이 다르게 표출된다.
그래서 피에트로는 생각했다.
‘김혁진 씨 앞에서는 저렇게 좀 풀어지는구나.’
여지껏 한국에 대해 너무 몰랐다. ‘태극 방패’와 ‘날개’. 그리고 튜토리얼 종결자인 마상현과 최근 아름다운 눈웃음으로 회자되고 있는 PVP의 천재 신연서. 그리고 뛰어난 궁술가 현정화 정도만 알았을 뿐이다.
‘김혁진을 몰랐으면 한국을 몰랐던 거야.’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독마녀 천수지가 김혁진 앞에서는 요조숙녀가 되어 버리는 느낌이랄까. 바로 옆. 태극방패의 길드장인 송기열도 김혁진에게는 한 수. 아니 두 수 이상 접어주고 들어간다. 한국의 실질적인 최강자는 김혁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피에트로의 판단에는 그랬다.
그 때. 함소현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음…….”
“좀 괜찮아?”
천수지가 침대 밑의 버튼을 눌렀다.
지잉-
소리와 함께 침대의 등받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의 90도에 가깝게 세워진 전동 침대를 의지해서, 함소현이 자리에 앉았다.
“여기요. 예지서. 드릴게요.”
함소현이 눈짓했다. 천수지는 함소현의 눈빛만 봐도, 함소현이 뭘 원하는 지 안다. 침대에 떨어져 있는 예지서를 들어 올렸다.
“이거. 김혁진 씨한테 주면 되지?”
“응. 고마워.”
함소현이 김혁진을 똑바로 쳐다봤다.
“보여요.”
“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위대한 성흔이.”
“어떤 성흔이죠?”
“모르겠어요. 감히 저 따위는 해석할 수 없는 위대하고 깊은 성흔이 당신의 등에 새겨져 있네요.”
눈만 돌려서 천수지를 쳐다봤다.
“왜? 나한테도 할 말 있어?”
“저분한테 접근하지 마.”
“또 같은 소리야?”
“위험해.”
“원래 위험한 남자한테 끌리는 거야.”
순간, 함소현의 눈이 다시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함소현의 백안(白眼)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독마녀 천수지가 움찔할 정도로.
병실안에 무거운 공기가 내리깔렸다.
“천한 것. 관심을 거두어라.”
“…….”
천수지는 지금의 함소현이 함소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함소현이 아니다. 무엇인가 함소현의 매개로 하여 말을 하고 있는 거다.
“경고하는 거야, 어린 독인.”
“…….저를 아세요?”
“알지. 소리없는 뱀좌를 따르는 어린 아이.”
“…….”
김혁진도 깨달았다. 지금의 함소현은 함소현이 아니다.
‘누구지?’
빙의인가? 강림? 뭐지? 그런 느낌과는 조금 다른데.
‘소리 없는 뱀좌는…… 천수지의 계약 수호자.’
그걸 짚어내기까지 했다. 함소현이 또 말했다.
“이 아이가 경고하지 않았어?”
“어떤 걸요?”
“죽을수도 있다고.”
“경고했어요.”
천수지가 피식 웃었다. 함소현의 ‘백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데 그 경고에 주눅들고 도망칠 거면, 애초에 저 남자한테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어요.”
혀로 붉은 입술을 핥았다. 확실히 천수지는 천수지였다.
“이러니까 더 갖고 싶네. 저 남자가.”
김혁진은 머리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했다. 함소현이 자신을 보고 싶다고 해서 와봤는데, 난데없는 치정싸움이라니.
‘도대체 뭐야?’
뭔가하고 깊게 생각해봤더니.
‘설마 이사벨?’
아무래도 이사벨인 것 같다. 이사벨. 너지? 너 지금 깨있지? 속으로 그렇게 묻자 대답이 들려왔다.
[나 쟤 싫어.]너 맞지? 지금 함소현을 빌어서 유치한 싸움 벌이고 있는 게?
[유치하다니. 나 지금 진지해. 인간들 말로 뭐라 하더라?]이사벨이 잠깐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 궁서체야. 나 지금.]어디서 이상한 말을 배워온 모양이다. 요즘 쓰지도 않는 말인데.
[아니. 저게 자꾸 유부남한테 관심을 보이잖아?]인벤토리 내. 이사벨의 검신이 부르르-떨렸다.
[그리고 예뻐서 더 짜증나.]천수지가 예쁜 건 맞다.
[아니. 도대체 왜 남편 주위에는 저런 여자들이 득실거려? 신연서도 그렇고. 현정화도 그렇고. 천수지도 그렇네. 이건 뭐가 조작된 거 아니야?]생각해보니 또 그건 그렇다. 랭커들이 다 예쁘고 잘생긴 건 분명히 아닌데.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건지는, 김혁진도 모른다. 그냥 우연이 겹쳤을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제일 예뻐.’
사실 이사벨은 그냥 검일 뿐이고, 굳이 따지자면 검처럼 생겼다. 아무리 봐도 예쁜 느낌은 없다. 그렇지만 말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그런 입에 발린 말 정도로는 이 몸을 기쁘게 할 수 없어.]이사벨의 검신이 조금 붉어졌다.
[전혀 기쁘지도 않은 나는 너무 졸려서 다시 자야겠다.]이사벨은 잠에 빠져든 척 했다. 김혁진은 알았다. 이사벨은 지금 잠들지 않았다. 멀쩡한 상태다. 그렇지만 모른 척 했다.
함소현이 정신을 차렸다.
“혹시 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
“김혁진 씨보고 사랑한다 그랬어.”
“내, 내가?”
천수지가 가볍게 웃었다.
“농담이야. 아무튼.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울게. 높으신 분들끼리 얘기를 좀 해야할 것 같으니까.”
천수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중에 봐요.”
천수지가 병실 밖으로 빠져 나갔다.
* * *
함소현과 얘기를 나눈 김혁진과 피에트로는 병실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운전기사가 대기 중이었다. 뒷자리에 올라탔다.
“튜토리얼 빌딩으로 가주세요.”
피에트로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피에트로가 말했다.
“제가 주선해서 자리를 잡아보겠습니다.”
“네.”
함소현과의 대화를 통해 협의를 할 수 있었다.
“함소현 씨도 이타치 씨를 만나보고 싶어하는군요.”
“뛰어난 예지 능력자들이니까요.”
“그 둘이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의 구심점이……. 김혁진 씨, 당신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겠죠.”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피에트로가 함소현을 찾은 이유는 함소현에 대해 알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이타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타치는 원래 지인이었던 명인 페드로를 통해 피에트로에게 접촉했고, 피에트로가 함소현을 찾아 이타치의 뜻을 전했다.
[너무나도 또렷한 미래가 그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도 그 사람과 관련된 꿈을 꾸면 구체적인 꿈을 꾼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얘기를 나눠보지 않겠습니까?]이타치가 먼저 제안했고 함소현이 동의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타치가 함소현을 만나러 한국을 찾기로 했다.
김혁진은 뒤로 멀어져 가는, 창밖의 풍경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타치가 한국에 온다.’
과거. 이타치는 일본을 벗어난 적이 없다.
‘내가 만들어낸 비틀림.’
이 비틀림은 또 무엇을 만들어낼까. 기대가 됐다. 함소현과 만나 어떤 얘기를 할 것이고, 또 어떤 미래를 그려낼까.
피에트로가 말했다.
“저들이 만나는 중심이유가 당신인 만큼. 당신에게도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글쎄요.”
“왠지.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인데요?”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 되네요. 재미있을 것 같고.”
피에트로도 창 밖을 쳐다봤다. 광화문 일대가 멀어져갔다.
“이곳은 정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군요. 최신식 건물들과 잘 닦인 도로. 도심 한복판에 저토록 아름다운 고궁이라니. 저곳이 광화문 던전입니까?”
“네. 저곳에 게이트가 열려 있습니다.”
“한국에 정말 많은 것이 숨겨져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한국을 알려주셔서.”
피에트로를 태운 자동차가, 광화문 광장에 위치하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동상’을 지나쳤다. 순간, 피에트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차를 타고 지나가서 제대로 못 봤는데.
‘이순신 동상과…….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동상과 눈이 마주친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피에트로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멀어지는 이순신 동상을 한 번 더 쳐다봤다. 순간, 피에트로는 헉! 소리를 냈다.
이순신 동상의 목이 돌아가 있었다.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그렇다. 옆을 쳐다봤다.
“김혁진 씨. 지금 아무것도 안 느껴지십니까?”
“느껴집니다.”
김혁진은 피에트로만큼 당황하지 않았다.
‘오늘이었던가?’
요즘 날짜 개념이 없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2018년 12월 22일.’
하나의 시나리오가 진행된다. ‘광화문 광장’에 몬스터들이 대거 생성되는 시나리오. 22일. 22시간 동안 각양각색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주 중요한 이벤트라고 볼 수는 없었다. 보상도 그닥이고, 나타나는 몬스터들도 아주 강한 놈은 없으니까. 내버려두면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어떻게든 사냥해 낼 거고, ‘광화문 광장 습격’ 시나리오는 22시간 만에 종료될 거다.
‘그런데.’
김혁진도 느꼈다. ‘이순신 동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걸.
‘과거에 이런 얘기는 없었는데.’
그냥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몬스터들이 많이 나타나고 피해가 조금 있었다. 그 정도로 넘어갔었다.
빵-! 빵-!
클락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교통체증이 유발되기 시작했다.
“기사님. 여기 내리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위이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비상 사이렌 소리다. 대피하라는 알림이 이어졌다. 김혁진과 피에트로가 차에서 내렸다.
“피에트로 씨. 봤습니까?”
“이순신 동상 말입니까?”
“네.”
“봤습니다. 고개를 돌려 저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까는 그랬다.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다. 김혁진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저기 뭔가 있는 모양이군요.”
“저, 저도 따라 갑니까?”
“저기. 지하 대피소로 가서 숨어 계세요. 혹시 지금 전파 터지나요?”
“네. 터집니다.”
“대피하시면서, 저희 길드원들 소집 좀 부탁드립니다.”
“길드라함은……. 태극방패 말씀이십니까?”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태극방패가 아니라는 거.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알겠습니다.”
피에트로의 가슴이 떨렸다.
“거신 길드원들을 부르겠습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피에트로가 파악하기에 한국 최강의 길드는 거신 길드다. 김혁진이 이끄는 최정예 길드. 그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단다.
“연락처는 이미 갖고 있습니다.”
“훌륭하네요.”
거신 길드장 김혁진이 거신 길드원들을 불렀다. 피에트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저도 따라가도 됩니까?”
거신 길드를 눈에 담고 싶다. 정보상인으로서. 그들의 저력을 실제로 보고 싶다.
“목숨은 못 지켜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제 한 몸은 제가 건사하겠습니다.”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알림이 들려왔다.
[퀘스트. ‘광화문 광장 습격‘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