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5)
#재능만렙 플레이어 25화
“김혁진 플레이어에게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나는 서울역 던전의 최초 클리어 보상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1번은 황금.’
직접적인 재물이 주어진다. 그램(g) 단위까지도 알고 있다. 단골 시험문제이기도 했다.
‘3.75kg.’
그램(g)으로 치면 무려 3750g이 주어진다. 왜 저 숫자가 나온 건지. 나는 알고 있다. 단발성 던전 말고, 스토리가 이어지는 스토리던전에서 필요한 숫자. 이후에 쓰이는 숫자다.
‘그렇지만 지금 내게는 의미가 없어.’
물론 가슴이 뛰는 건 사실이었다. 약 4kg에 달하는 황금은 거의 2억 원에 육박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후 시나리오와 관련되어 있는 ‘숫자’답게, 세니아가 직접 그 숫자를 읊어줬다.
“황금 3.75kg이 담긴 주머니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내 눈 앞에 홀로그램이 떴다. 내게만 보이는 홀로그램이다. 선택지가 주어졌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금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2억.’
평생 만져보지도 못했던, 아니 구경도 못해본 돈이다. TV나 인터넷에서는 개나 소나 수십억의 자산가이고, 수백억의 건물주였는데. 나는 수십, 수백억은커녕 수중에 수십만 원도 없었다. 심지어 100원짜리 동전 몇 개도, 나한테는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 황금의 출처는 불분명하지.’
아직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어디서 주워들고 온 황금은 그 가치를 제대로 증명받기 어렵다.
‘나라에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이고.’
플레이어 협회가 생기고, 성신을 필두로 한 대기업들이 플레이어의 세계에 발담구기 시작할 거다. 그 이후부터 관련법이 제정되기 시작한다.
플레이 초기. 불합리하게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보상을 나라에 헌납해야만 했다. 세금이라는 이유로.
‘뭐였더라. 미지의 세계에서 나온 물품이니만큼 위험해서 압수한다고 했던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해가며, 혹은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주머니를 뜯어갔었다. 지금 상식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하여튼 플레이 초창기에는 그랬다.
‘그러니까 황금은 패스.’
탐나는 보상이지만 탐내지 않기로 했다.
“다음 선택지는?”
“다음 선택지는 회복의 비약입니다.”
홀로그램이 또 떴다.
──────────
[선택 보상]1) 황금 주머니 (황금 : 3.75kg)
2) 회복의 비약
A형 -?
B형 -?
C형 -?
──────────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이곳의 최초 보상은 원래 서주환이 받았다. 이제 서주환은 이 자리에 없다.
‘미래는 바뀌었어.’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았다. 보상은 같았다. 그렇다면 내 선택도 이미 정해져있다.
“나는 B형 회복의 비약을 선택하겠다.”
“B형 회복의 비약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운이 나쁜 경우, 정말로 쓸모 없는 것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뭐가 나올지는 모른다. ‘회복’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모든 ‘치료약’이 나온다. 하다못해 무좀 치료약이나 감기약 같은 것도 나온다.
“나는…….”
“바꾸시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로 표시된 B형 회복의 비약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B형으로 선택하겠다.”
[‘무명의 관찰자’가 당신의 선택을 궁금해합니다.] [‘저울의 아낙네’가 당신의 선택에 의문을 표합니다.] [‘속삭이는 악마’가 당신의 선택을 재미있어합니다.]많이들 궁금할 거다. 서주환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면, 미래를 모르면 황금을 놔두고 이런 걸 골랐을 리는 없으니까.
마상현의 경우는 ‘민첩+1’ 옵션이 붙은 ‘철제 건틀릿’을 획득했고 강선화는 ‘체력+2’ 옵션이 붙은 머리띠를 얻었다.
‘꽤 좋네.’
초보 등급에서 스탯추가 옵션이 붙은 아이템은 꽤 효과가 좋으니까. 어쨌든 서울역 던전이 클리어되었다.
분명히 알림도 들었다.
[‘서울역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가 봉인되었습니다.]이제 서울역 던전의 ‘브레이크’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다행인 일이다. 과거. 플레이어들은 서울역 던전 브레이크를 막지 못했다. 무려 세 차례나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했고 그에 따라 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사망자 2300여 명. 중상자 800여 명.’
경상자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나는 지금 미래를 바꾸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를. 언제까지 내 지식이 통할지는 모른다. 원래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려면, 나는 던전 브레이크를 방치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잖아.’
내가 뭐 대단한 영웅이나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뻔히 막을 수 있는 걸 막지 않는 건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2028년. 4월 27일 종로의 대격변을 이미 경험했다. 수많은 이들이 눈 앞에서 죽었다. 막을 수 있다면 막는 게 옳다.
거창한 목표나 영웅 의식 같은 건 없다.
‘그냥…….’
이번 생의 목표는 간단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사람답게, 좀 더 행복하게. 예전, 튜토리얼 필드에서 내가 살기 위해 많은 이들을 외면해야 했던, 그런 일들이 최대한 벌어지지 않게. 그렇게 사는 거.
[레벨업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현재 레벨 : 19]레벨업과 동시에 알림이 들려왔다.
[‘서울역 던전’에서 탈출합니다.]* * *
마상현이 내게 번호를 물어왔다. 간단하게 번호를 교환했다.
“형님 번호를 얻어서 행복합니다.”
이게 뭐 저렇게 행복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교환은 했다.
“예. 형님. 들어가십시오!”
일단 플레이어로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마상현이다. 대중의 관심도 마상현이 받을 거다. 내가 그러라고 했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미래가 최대한 비슷하게 흘러가도록.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써먹을 수 있도록.
‘과거에는 내가 없었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 있다. 이 변수가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던전 브레이크 같은 건 막는 게 옳지만, 필요 이상의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아직 나는, 내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
위대한 탐험가. ‘잭슨’은 이렇게 표현했다. 보이는 검보다 보이지 않는 검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내 스스로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때까지 나는 내 스스로를 감추기로 했다. 일단 대중에게는 말이다. 대중 말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 가치를 증명할 필요도 있었다.
나는 대놓고 한 건물을 찾아갔다.
‘여기가 성신 본사.’
강남에 위치하고 있는 92층짜리 거대 빌딩. 서주환이 과거에 이렇게 했었다. 무작정 성신의 본사를 찾아가 ‘내가 회장님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단다. 황당하게도, 서주환은 그렇게 성신그룹의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저 싹퉁머리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이씨, 뭐야.”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나와 저 어린애-중학생 정도로 보인다-가 회전문의 같은 칸에 탔다. 저놈은 그게 많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대놓고 실크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싫다는 듯.
본사에 들어와서, 마치 지나가던 한 남자를 붙잡고 다짜고짜 반말로 말했다. 나와 거리는 제법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들리기는 다 들렸다.
“저 더러운 놈은 뭐야? 뭐 저렇게 거지꼴로 돌아다녀? 여기 성신 본사라고.”
명문 사립초등학교 교복 같긴 한데, 뭔가 실크 같다. 교복부터 좋아 보인다. 귀티가 좔좔 흘러내린다.
“내 에르메스 손수건이 없었다면 숨을 못 쉴 뻔했어.”
아. 저 손수건이 그 명품인가 뭔가 하는 에르메스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황당했다. 저 어린애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과연 있을까?
‘송진철.’
재벌가의 망나니. 아주 유명했다.
‘이야. 어릴 때부터 저따구였구나.’
나중에는 술과 여자문제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많이 일으키는 놈이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 재벌 3세. 더 나아가 재벌가의 막내손자다. 뭐였더라. 14살 때 할 수 있었던 재능판 검사도 귀찮다고 미루고 미루다가, 19세가 되어서야 재능 검사를 했다나 뭐라나.
‘재능판이 44개쯤 되었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재능판이 닫히기 시작했을 시점인데, 그래도 44개면 꽤 많은 재능판을 보유하고 있었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나 같은 놈은 ‘재능 없음’. 재능을 갖고 싶어도 못 가졌던 놈인데, 쟤는 싫다싫다 귀찮다를 외쳐대도 무려 44개의 재능판을 가진 놈이니까.
송진철이 자신 앞에서 굽실거리고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말했다.
“쟤 청소부야? 옷도 좀 좋은 걸로 입고 다니라 그래. 꼬라지가 촌스러워서 역겨울 정도니까. 어떻게 인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싸구려야? 같이 숨 쉬는 것조차 너무 더럽잖아.”
내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내게는 비싼 옷도, 신발도 없으니까. 나름 깔끔하게 입는다고 입었는데, 재벌가의 막내손자가 보기에는 싸구려만 걸친 것으로 보였나보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미래의 송진철에 비하면 지금의 송진철은 그냥 귀여울 정도다.
남자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제가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도련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정말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관리 좀 잘하라고.”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그사이 나는 송진철의 정보를 한 번 살펴봤다.
──────────
[비각성자]이름 : 송진철
나이 : 14
상태 : 평온/우쭐거림/무시
성향 : 오만/파괴/이기
요약 : 자칭 선민
+ 비각성자입니다.
+ 성향 및 특징은 대표적인 성향 몇 가지가 드러나며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합니다.
+ 감각안의 숙련도가 높지 않아 상세 정보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
역시 이름은 송진철. 자기 할아버지 회사에 와서 그런지 상태는 평온했다. 성향은 오만하고 파괴적인데, 요약이 ‘자칭 선민’으로 정리되었다.
‘나이는 선화랑 동갑이었네.’
그러니까 중1 송진철을 요약하자면 오만하고 파괴적인데다가 이기적이기까지 한 자칭 선민 정도가 되겠다.
‘신경 쓰지 말자.’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저 어린 송진철이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 어린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기는 하지만, 저 어린애보다도. 애를 저딴 식으로 가르친 재벌 2세를 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 겨우 14살짜리가 뭘 보고 배웠으면 저런단 말인가. 이건 애 잘못 보다도 어른 잘못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송진철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딘가로 올라가 버렸고, 그에게 굽신대던 중년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회장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거든요.”
서주환도 이렇게 말했다지. 그 말에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게 말하고 이곳을 찾아온 사람이 벌써 10명도 넘습니다.”
“하지만 고친 사람은 없었죠.”
회장의 병은 다름 아닌 탈모증이니까. 그리고 내가 선택한 ‘B형 회복의 비약’의 이름이 바로 ‘효과가 매우 뛰어난 발모제‘이니까.
“회장님은 엄격하신 분입니다. 귀하의 말에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나를 보는 눈빛이 영 사기꾼을 대하는 눈빛이다. 신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저게 맞는 거다. 이미 10명이 비슷한 짓을 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내하는 걸 보면, 성신 회장도 꽤 다급한 모양이다.
“안내하겠습니다. 뒤따라오시면 됩니다.”
나를 안내하는 저 뒷모습. 어린 송진철에게 극도로 굽실거리던 저 뒷모습이 그리 즐거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
상태 : 의심/굴욕감/인내
──────────
중년 남자의 주름진 손등이 보였다. 왼 손에는 커다란 결혼반지가 보였다.
──────────
요약 : 대한민국 아버지
──────────
저 남자라고, 겨우 14살에 불과한 송진철에게 굽신굽신하며 욕을 듣고 싶겠는가. 대한민국에 태어나 아버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이 굴욕도 견디며 산다. 이게 옳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다 그렇게 산다. 더럽게도.
‘힘내요.’
나는 남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회장의 명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나는 바로 회장실로 안내받았다.
똑똑. 남자가 회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회장님. 손님 모셔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갔다. 성신그룹. 제1대 회장 송기영과 만났다. 맨몸으로 시작하여 지금의 거대 기업. 한국 제1기업 성신을 일궈낸 입지전적인 기업인. 이후 플레이어 협회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제1대 플레이어 협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남자.
“반갑습니다. 송기영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간 의외의 상황과 마주해야만 했다.
‘어? 이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