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50)
#재능만렙 플레이어 250화
-나 좀 잠깐 보자.
곽태운과 잠깐 만났다. 곽태운은 기본적으로 과묵한 편에 속한다. 강상구 앞에 있을 때. 그리고 김혁진 앞에 있을 때에만 말이 많아지는 편이다. 물론 강상구 앞에서와 김혁진 앞에서의 태도와 모습이 사뭇 다르긴 하지만.
거신 길드의 사무실.
태극방패나 철혈사자쯤 되는 길드의 사무실에 들어가면 정장을 차려입은 비서나 수행원들이 안내를 도와주고 차를 타주지만, 거신 길드에는 그런 게 없었다.
사무실에 단둘만 남은 상황.
“네. 형. 계약서 가져왔어요.”
곽태운이 인벤토리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노란색 서류봉투에 들어있는 계약서. 곽태운이 정부와 맺은 협약이다.
김혁진은 이 협약을 쭉-읽어봤다.
‘정부의 지원을 얻을 수 있는 대신, 정부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여야 한다는 게…… 주 골자네.’
김혁진이 물었다.
“정부의 지원이 뭐래?”
“저번에 보신 것처럼. 헬기 같은 운송수단 지원. 고속도로에서 버스 전용차선 쓸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 유사시 민간인 통제권. 이런 것들이요.”
김혁진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게 다야?”
“네.”
“들어봐, 태운아. 헬기가 필요한 건 응급 상황이라는 거지?”
“네. 그렇죠.”
“응급 상황. 네가 헬기가 급할까, 정부가 헬기가 급할까?”
“…….”
곽태운은 잠시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자신보다는 정부가 급할 거다. 급한 불을 꺼야 하니까.
“정부가 급한 거고.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도 뭐 마찬가지고. 유사시 민간인 통제권은 권리라고 할 수 있겠어?”
곽태운이라면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곽태운은 기본적으로 ‘공익’과 ‘정의’를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말만 권리지. 권리가 아니라 의무가 되는 거야. 통제권을 가진 네가, 통제하지 않아서 불의의 사고가 나게 되면? 그 책임은 네가 지겠지.”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정부는 네 탓을 하면 되는 거고. 너 같이 뛰어난 플레이어가 주변에서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 이래버리면 그만이거든.”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이것들 봐라.’
특혜다운 특혜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플레이 초창기라지만, 너무 날로 먹으려 들었다.
“내가 어지간하면 네가 하는 계약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곽태운에게는 곽태운의 생각이 있고, 그 판단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이 계약. 아직 가계약 상태라고 했지?”
“네.”
“계약금 받은 건?”
“없어요.”
저번에 ‘불멸함대 게이트’ 사건 때, 헬기를 한 번 이용한 것 외에, 곽태운이 정부로부터 빚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그냥 파기해.”
“네.”
곽태운이 너무 쉽게 대답하자, 오히려 김혁진이 조금 당황했다.
“이유는 안 물어?”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래도 이유 정도는 물어볼 줄 알았는데.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곽태운은 과묵한 편이다. 강상구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말 수가 별로 없는 곽태운이다. 곽태운은 보통 농담을 잘 안한다.
김혁진의 감각안에 곽태운의 상태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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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형을 따르는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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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형을 따르는 ‘바람의 마도사’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형을 따르는 ‘남동생’이었다.
김혁진은 조금 헷갈렸다.
‘아니. 이게 좋은 건가?’
조금 애매했다. 곽태운은 곽태운 나름대로 훌륭한 플레이어다. 과거 8영웅 중 한 명이라 불렸다. 그랬던 곽태운이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바꿔먹는 것. 과연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태운아.”
“네, 형.”
“네가 날 신뢰해 주는 건 고마운데. 좀 더 네 생각을 어필해도 좋아. 내가 뭐 신도 아니고. 나는 네 자주적인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도울 거니까.”
“네. 앞으로 그렇게 할게요.”
곽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곽태운은 김혁진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었다.
“완전히 파토 내라는 뜻은 아니죠?”
“어. 맞아.”
완전히 쫑 내라는 게 아니라, 일단 퇴짜를 놓으라는 소리다. 계약 조건을 다시 짜오라고.
‘그래. 태운이도 태운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대답을 한 거네.’
마음이 조금 놓였다. 명색이 과거의 8영웅인데,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으로 전락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조건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까요?”
“일단은 세금 면제.”
이후 플레이어들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세금이 부과된다. 초고소득자로 분류되어 약 50퍼센트 가량의 직접세를 내야 한다. 쉽게 말해 100만 원을 벌면 50만 원이 세금이다.
“그리고 아이템 획득에 대한 우선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정부와 협약을 맺지 않은 일반 파티원들과 던전을 공략하고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 그때 주어지는 아이템에 대한 우선권을 받아야 한다.
“애국심과 헌신이라는 단어는 아예 지워 버리고.”
저 ‘애국심’과 ‘헌신’이라는 가치 자체는 숭고한 것이나, 곽태운 개인에게는 무조건적인 불이익이다. 저런 추상적인 것이 계약서에 들어가는 순간, 곽태운의 발목을 잡는다.
무슨 일이 생기든 ‘애국심’을 바탕으로, 혹은 ‘헌신’을 바탕으로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계약서는 구체적인 것이 좋다.
“그리고 정부의 일보다 거신 길드의 일을 더 우선시한다는 특별조항을 넣어.”
“과연 받아들일까요?”
“안 받아들이겠지.”
선례를 한 번 남기게 되면, 정부 입장에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곽태운이 씨익 웃었다.
그 표정 어딘가가 김혁진과 닮아 있었다.
“안 받아들이면, 받아들이게 해야겠네요.”
요약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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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좋아하는 형을 닮고 싶은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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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 뒤.
김혁진과 곽태운의 예상대로, 그들의 제안은 거부되었다.
* * *
송기영 회장은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다. 글로벌 대기업 성신을 이끌고 있는 수장. 그리고 태극방패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스폰서. 한국을 지배한다고까지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무턱대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과거 머리카락이 없을 때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기회마저도 사라졌다.
“이렇게 갑자기 나를 찾아오고, 또 나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자네가 유일할 거야.”
송기영 회장이 허허-하고 웃었다. 기분이 딱히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 옆에 젊은 친구가 그 유명한 바람의 마법사. 곽태운인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송기영 회장은 김혁진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정부와의 계약 건이면 정부의 인사들과 얘기를 해야지, 왜 나한테 온 건가?”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이시니까요. 플레이어의 권익 보호를 위해 힘써주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송기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군.”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 협회장을 찾아왔는데, 플레이어 협회장께서는 협회장이 아닌 금력과 권력이 있는 재벌가의 수장으로서 저희를 대하셨습니다.”
“내 실수네.”
“실제로 금력과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었겠죠.”
김혁진은 잊지 않았다. 정부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던, 제2기 ‘플레이어 협회’의 인사부장이 김강철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관련이 없지 않았다.
송기영 회장이 죽은 이후로도, 한국은 성신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손아귀 안에 있다는 건 조금 비약인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어쨌든 송기영이 입김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
“큰일 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만. 어디 가서 그런 말 했다가는 정경유착이라고 돌팔매를 맞을 게야.”
“진실은 때로, 대중을 불편하게 만드니까요.”
곽태운은 잠자코 김혁진과 송기영 회장의 대화를 지켜봤다. 사실 곽태운은 이곳에 오는 동안, 내내 긴장했다. 재벌가의 수장. TV에서만 봤었던 전설적인 인물이 눈앞에 있다. 그런데 이곳에 오자 긴장이 풀렸다.
‘혁진이 형의 기세가 송기영 회장한테 안 밀리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크고 높게만 느껴졌던 송기영 회장이, 이제는 넘을 수 있는 산처럼 느껴졌다. 신기했다. 오늘 또 새삼스레 느꼈다.
‘혁진 형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게 신의 한수였어.’
김혁진이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하다못해 그 눈빛까지도 배우기로 했다. 김혁진의 모든 것이, 자신을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양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혁진이 말했다.
“진실이 불편하든, 불편하지 않든. 정경유착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제게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게는 포식수의 씨앗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는 필드를 열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딜을 걸겠다는 거군.”
“네. 태극방패가 보라카이 서버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지. 거기서 마정석이 많이 드랍 된다더군. 자네 말이 맞았어.”
태극방패의 2군이 보라카이에서 활약 중이다.
“그 마정석을 바탕으로 제약시설을 만들고 계시지 않습니까?”
“기열이가 알려줬나?”
“설마요. 그랬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텐데요. 성신을 지배하고 싶은 이가 그런 실수를 했다면, 저는 송기열 길드장과 연을 끊었을 겁니다.”
송기영이 기분 좋게 웃었다.
‘제약시설에 크게 투자한다는 소식을 토대로, 마정석과 연관 지어 생각한 것 같군.’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다. 마정석을 활용한 제약산업. 아직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일반인들이 접할 만한 정보는 확실히 아니었다.
“마정석을 바탕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하면, 회장님께도 큰 도움이 될 텐데요.”
“마정석. 그리고 포식수의 씨앗은 이미 전에 다 얘기가 끝난 걸로 알고 있네. 거래 조건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미라클이 꽤 도움이 될 겁니다.”
“미라클?”
“송정희 길드장이 알고 있을 겁니다. 미라클에 대해서.”
‘미라클’은 숙취해소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후, ‘미라클’은 단순히 숙취해소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온갖 약을 만드는 보조 아이템으로 쓰인다. 같은 약이라도, ‘미라클’이 포함되어있느냐 포함되어있지 않느냐에 따라 값이 차이가 나게 된다. 미라클은 ‘부작용이 없는 기적의 아이템’이라고 불리게 된다.
“포식수의 씨앗. 마정석. 그리고 미라클. 이 세 가지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저 역시 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황금뿔의 도깨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흠.”
송기영은 턱을 매만졌다. ‘미라클’이라는 새로운 정보를 어디선가 획득해왔다. ‘마정석’을 기반으로한 제약시설 투자를 파악한 것도, 김혁진이 정보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이 정도의 정보력을 갖고 있다. 미라클에 대한 힌트도 줬다. 그런 내가 황금 뿔의 도깨비에 대해서 알아봐주겠다. 그러니까 정부와 알아서 얘기 좀 해줘라. 플레이어 협회장의 자격으로. 이런 얘기겠군.’
재미있다. 김혁진과 대화하면 늘 즐거웠다.
“좋군.”
“아참. 한 가지 더. 이 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알기로는 국가안보실에서 작성한 걸로 알고는 있네.”
누가 됐든 상관없다. 뜻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
“저희는 이탈리아와 미국과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혁진은 지금 두 명을 떠올리는 중이다. 미국의 군주 미셸. 이탈리아의 정보상인 피에트로.
“저희 거신길드가 통째로 이민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물론 진짜 이민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나도 그렇고 어머니도 한국을 좋아한다. 거신길드원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진짜로 이민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송기영이 또 웃었다.
“높으신 분들이 들으면 발작하겠어.”
“발작하지 않게. 중간에서 잘해주세요.”
송기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서 한 가지를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네만.”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생긴 꽃이 필요하네.”
김혁진이 사진 하나를 받았다.
“조만간 구해드리겠습니다.”
“이게 뭔지 아나?”
“알 것 같습니다.”
“허허허. 탐험가들도 모르던데. 진짜로 이게 뭔지 아나?”
김혁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의 백 마디 말보다 이후에 가져다드릴 꽃 한 송이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기대하겠네.”
송기영은 조금 놀랐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탐험가들조차 모르는 이 ‘꽃’의 위치를 김혁진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정보력을 과시하려고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아닌 것 같다. 정말로 아는 것 같다.
‘정말로 신기하구만.’
멀어지는 김혁진의 등을 바라보면서, 송기영은 죽은 아들을 또 떠올렸다.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저렇게 자랐을까?
‘아니.’
송기영은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이 정말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김혁진과 같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더니.’
변화해 버린 세계. 이 세계의 영웅은 아마도 김혁진이 될 것이다. 송기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김혁진과 곽태운은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 앞. 곽태운이 말했다.
“협상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쉬웠어요?”
“그냥 뭐 사람 하기 나름이지.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
“플레이어 협회장께서 움직여 주실까요?”
“움직일 거야.”
모르긴 몰라도, 정부와 성신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분명 제안을 수락할 거다.
“감사해요. 오늘 많이 배웠어요. 형은 이제 뭐하세요?”
“나?”
김혁진이 뒤를 힐끗 쳐다봤다. 때마침. 세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 문을 열거야. 안전한 곳에서.”
주변 정리는 대충했다. 이제 김혁진 자신의 ‘진짜 시나리오’를 진행해야 했다.
‘하늘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