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61)
#재능만렙 플레이어 261화
김혁진을 멀리서 쳐다보던 ‘붉은 눈’이 반짝임과 동시에 사라지고, 김혁진의 눈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적색귀 안서희의 눈동자와 비슷했다. 김혁진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의지영창이 아니었다. 의지로 내뱉는 것이 아닌, 상황과 본능이 맞닥뜨려 저절로 새어나오는 영창. 무의식적 영창.
“지극히 풍만하여 크고 두려운 약속이여.”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맹세하리.”
“나와 나의 어머니의 집이 범죄하고 악을 행하였으며.”
“율법과 규례를 지키지 못하였으나.”
“옛적의 언약이 내게 명하여 이르되.”
“약속의 기도와 맹세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혼자서 읊조리는 것이 아닌, 누군가 듣는 대상이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의 영창. 새로운 형태의 영창이었다.
김혁진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내용이 그러했다. 예전의 영창과는 근본적으로 조금 달랐다. 김혁진의 입에서 다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늘날 나를 일으키어.] [모든 약속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김혁진의 붉은 눈이 번쩍였다. 붉은 기운이 김혁진의 몸을 감쌌다. 여전히 김혁진의 몸은 어디론가로 빨려가는 중.
‘편안…… 하다.’
그렇지만 괴롭지 않았다. 온 몸을 옥죄던 압박감도 사라졌다. 몸이 깨질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뭔가. 영창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해왔던 영창과 달라.’
어쨌든 그 영창은 성공적이었고 김혁진을 잡아먹을 것만 같던 폭압적인 마나의 기운을 몸 속에 녹여냈다.
‘마나와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 일체감을 느꼈다.
[일시적인 특성 ‘천공지체’의 숨겨진 권능을 일깨웁니다.] [일시적인 특성 ‘천공지체’의 권능이 플레이어의 몸에 각인됩니다.] [고유 능력. ‘동화(同化)’가 생성됩니다.]──────────
[동화(同化)]동화란 ‘밖으로부터 얻어 들인 지식 따위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라는 뜻입니다. ‘천공지체’의 숨겨진 권능으로 발화된 ‘동화’는 ‘마나’와 동화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주변의 마나와 신체를 일체화할 수 있습니다.
지속시간 : 5분
쿨타임 :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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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진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화?’
동화. 김혁진이 알고 있는 이름이다.
‘마왕이 마법사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능력.’
이 동화라는 능력은 마법사들에게 치명적인 능력이었다. 그 유명했던 ‘상하이 대전투‘에서 마왕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마법사들을 학살했다.
‘그러고 보니 상하이 대전투가 오늘로부터 정확히 1년 뒤인가.’
튜토리얼 필드가 발생한지 벌써 반 년이 넘게 흘렀다.
‘오늘이 2019년 1월 23일이니까.’
요약집에 적혀 있다.
-상하이 대전투. 2020년 1월 23일. 마법사 3천 명과 마왕과의 전투. 결과적으로 3천 명 중 2800명 사망, 180명 의식불명, 20명은 실종. 마왕의 공식적인 첫 전투.
결과적으로 3천 명이 궤멸당했다. 이후 ‘마왕군’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고 마왕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당시 마왕이 사용했던 고유 능력이 ‘동화(同化)’였다.
마왕이 직접 육성으로 ‘동화’라고 밝혔다. 스킬명을 스스로 말했다. 자신을 에워싼 마나로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흉폭한 천공의 마나조차도 흡수하여 자연스레 호흡할 수 있는 능력. 마법사들의 마법으로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거다.
‘마왕의 능력을…… 내가 얻은 건가.’
뭐랄까.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그 자식.’
얄밉기는 한데. 살아남기만 하면 보상이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이곳에 와서 일시적인 천공지체를 얻었고, 그로 인해 천공지체에 숨겨져 있던 히든 피스 하나를 얻어냈다.
‘고래일족의 보물을 빼앗긴 대신, 고유권능 하나를 얻은 거네.’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순간 주변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빨려들어 왔던 방향과는 반대로, 김혁진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압박감은 딱히 없고.’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 같은 느낌. 되감기를 한 것처럼. 김혁진의 몸이 움직였다.
“남편. 괜찮아?”
이사벨의 말을 들어보니, 마나홀이 김혁진을 뱉고서는 저절로 소멸되었다고 했다.
“괜찮아.”
나프탄이 중얼거렸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할 법하지.”
김혁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래일족이 어떤 일족인가. ‘언약’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일족이다. 그 언약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
“하지만 언약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을까?”
나프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했다.
“역시 제 딸은 안 되겠습니까?”
“그건 보다시피.”
김혁진이 옆을 힐끗 쳐다봤다. 순백색 로브를 입은 이사벨이 보였다. 옆으로 힐끗 봤는데도 예뻤다. 솔직한 말로, 지금 당장 손이라도 잡고 싶었다.
나프탄이 진지하게 말했다.
“검의 맹약자에게 사죄하기 위해. 어떤 것을 대신하여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내게 천공에 다시 오게 되는 날이 있다면.”
천공.
언젠가 다시 올 것 같은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를 도와줘.”
언약의 연장선이다.
“이번에 돕지 못한 것의 곱절로.”
“알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고래일족이 당신을 도울 것을 맹세합니다.”
“그것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일일지라도.”
“…….”
나프탄은 잠시 고민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저희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저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검의 맹약자를 위하여 저희의 숨결을 사용하는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김혁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좋네.’
천공에서 얻을 것은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왕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사라졌고, 김혁진 자신도 ‘동화’라는 새로운 권능을 하나 얻었다.
“근데 여기서 일반 필드로 어떻게 돌아가지?”
나프탄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글쎄요?”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
“저는 모릅니다.”
김혁진이 옆을 쳐다봤다.
“이사벨. 너는?”
“…….”
“이사벨? 뭐해?”
이사벨은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남편.”
“응?”
“마나홀에서 누구 만났어?”
“누구를 만나다니?”
“나 속이려고 하지 마. 누구 만났잖아.”
“말해도 모를걸.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마왕인데, 정체는 몰라.”
“마왕? 그런 허무맹랑한 이름은 누가 붙였어?”
“글쎄. 일단 편의상 그렇게 부르고 있어.”
그러고 보니 누가 마왕이라 불렀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느샌가부터 마왕은 마왕이었고, 강선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마왕에 대해서 알아?”
“모르지. 그렇지만…….”
이사벨이 김혁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눈을 감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이 정도의 성흔이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네.”
“어떤 성흔인데?”
“남편한테는 그저 향기만 묻어 있을 뿐일 텐데.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져.”
“그러니까 그게 어떤 성흔이냐니까?”
“이거야말로 말해줘도 몰라.”
이사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느껴져. 깊숙한 분노가. 뭐 이리 진득한 분노가 다 있어? 도대체 어떤 놈이지?”
“분노?”
“분노가 느껴지는데. 연민도 느껴져. 너무 살짝 묻어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정말 여러 가지 성흔의 냄새가 한꺼번에 섞여 있어.”
이사벨은 무엇인가를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나홀에서 남편을 불렀다는 거잖아.”
“그렇지.”
“아마 500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일이겠지. 이 착해빠진 고래일족을 이용해서 설정값을 뒤튼 거야.”
이사벨은 역시 이사벨이다. 모두 알아차렸다.
“설정값을 뒤틀어서 고래일족의 보물을 가져갔어?”
“응. 거의 빼앗긴 거나 다름없지만.”
이사벨의 얼굴이 붉어졌다.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나중에 내가 반드시 다시 빼앗아줄게.”
환청이 들려왔다. 감히 내 남편 것을 빼앗아? 가만 안 둔다. 환청이었지만, 그래도 꽤 믿음직스러웠다. 상대가 마왕인데 이 듬직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튼 계약결혼(?) 하나는 제대로 한 것 같다.
“아참! 남편. 무작위로 돌려보내줄 수는 없고, 맨 처음 하늘문을 열었던 곳으로 이동시켜 줄 수는 있어.”
“어떻게?”
“그야 당연히 워프 마…….”
순간 이사벨이 말을 멈췄다. 김혁진이 눈치챘다.
‘아. 워프마법이구나.’
그렇지만 ‘검’인 이사벨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특수한 설정을 가졌다.
김혁진이 대신 말해줬다.
“역시 검의 능력으로 공간을 격해 움직일 수 있는 거구나.”
“그, 그렇지. 바로 그거지. 남편이 전에 검기를 사용해서 길을 만들었잖아? 그런 거야.”
연관성이 없어 보였지만 이사벨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개연성이야 어찌됐든 이사벨이 납득했으니 다행이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고래일족은 천공에서 맹약자를 기다리겠습니다.”
나탈리도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안뇽. 나중에 봐요. 어린 오빠.”
김혁진 앞에 둥그런 공간이 생겨났다. 천공에 생겨난 다른 공간.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특수한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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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프 게이트]한국 서버. 튜토리얼 빌딩 D타워 2층의 ‘하늘 문’으로 연결되는 워프 게이트.
사용 제한: 검의 맹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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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참으로 훌륭한 아내다. 이토록 완벽한 마법을 구사할 줄이야. 도대체 이사벨은 왜 검인 것일까.
“아무튼 남편.”
이사벨이 김혁진의 손을 잡았다.
‘어?’
김혁진은 거부할 수 없었다. 이사벨의 강력한 악력에 의해 몸이 휙-돌았다. 이사벨과 마주보게 됐다. 순간. 주변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마법?’
시야가 차단되었다. 아주 잠깐.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 같았다.
“아까 그건 키스 따위가 아니었어. 그렇지?”
‘제2의 심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었던, 일종의 응급처치 같은 거였다. 나탈리가 그걸 일컬어 ‘키스’라고 표현했었고. 이사벨은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걸 키스라고 인정할 수 없어.”
이사벨이 김혁진의 몸을 끌어 당겼다. 김혁진은 이사벨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워낙에 압도적인 능력차가 존재했다. 애초에 반항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사벨의 입술이 김혁진의 입술에 닿았다. 가볍게 쪽-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사벨이 사라졌다. ‘검’의 모습으로 변해 인벤토리 속으로 들어갔다.
‘이거 뭔가.’
일반적인 남녀의 역할이 조금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만, 이 느낌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좋은…… 데?’
입술의 따뜻한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사벨의 얼굴이 가까워지던 그 순간, 이사벨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 걸 봤다. 이사벨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이사벨 스스로가 떨었던 것 같다.
‘귀엽네.’
이사벨의 입술이 닿았던 자신의 입술을 살짝 만져봤다. 꿈은 확실히 아니었다.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하늘문을 통과합니다.]어지럽지도, 메스껍지도 않았다. 설정값으로 열었던 ‘하늘문’보다, 돌아가는 길이 훨씬 편했다. 이사벨의 마법이 그만큼 완벽했다는 소리다.
[튜토리얼 빌딩 2층에 진입합니다.]튜토리얼 빌딩 2층. D타워 빌딩 2층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김혁진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어라? 이건 또 뭐냐?’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