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67)
#재능만렙 플레이어 267화
캐스퍼는 많이 지쳤다. 일반적인 상태가 아니다.
“이곳은 네가 만든 인위적인 공간이지.”
말하자면 현실 기반의 가상공간이다.
“게다가 네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이곳의 사람들의 정신을 하나하나 컨트롤 하려고 했을 거야.”
반기명을 먹어치우기 위해서. 반기명처럼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앞에 두고서, 캐스퍼는 탐이 났을 거다.
여기에 김혁진 자신이 오지 않았다면, 캐스퍼는 반기명에게로 옮겨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와중에 선화와 아영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고.
“그러려면 정말로 많은 마나가 필요했을 건데.”
반쯤 가상의 공간을 일궈내느라 많은 마나를 썼을 거고, 그 마나로 이곳을 통제하고 있다. 사람들의 정신까지도.
김혁진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 마나조차도 내게는 힘이 되겠지.’
동화(同化) 덕분이다. 남들에게는 정신적인 영향을 끼치는 결계 같은 것이라지만, 김혁진에게는 하나의 먹이다.
마왕이 상하이 대전투에서 그 많던 마법사들을 학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마나가 마왕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화하나만 믿고 덤비면 안 돼.’
동화능력은 분명 뛰어난 능력이지만, 상대의 격이 나보다 지나치게 높다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1리터 용량의 용기에 2리터의 물을 부으면 넘친다.
‘이 기운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자.’
이 마나를 이용하지는 않기로 했다. 모든 준비는 끝냈다. 김선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김선화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나는 아직 네 동생 몸에 있어. 나를 죽이고 싶으면 동생을 먼저 죽여야 할 텐데.”
“…….”
“그리고 나는 네가 마음에 안 들거든.”
“…….”
“그래서 나는 전력을 다해 네 놈을 갈가리 찢어버릴 거야.”
캐스퍼는 영체다. 김선화의 몸을 이용하겠다는 소리다.
“네 동생과 한 번 잘 싸워보라고.”
김선화의 오른팔에 하얀색 커다란 방패가 생성되었다.
* * *
2층.
반기명은 자신에게 들려온 알림에 깜짝 놀랐다.
‘내가 플레이어가 됐어?’
플레이어가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던전과 게이트에서 나오는 물품들이 굉장히 비싼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갑자기?’
사실 반기명은 자살까지 결심했다. 죽기 전에 전국이나 한번 돌아보고 죽자고. 평생 가보지도 못한 여행 한 번이나 해보고 죽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돈 많은 사람은 자살 여행으로 스위스 같은 곳을 간다던데. 반기명은 돈이 없어 그것도 못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기쁜데 기쁘지가 않네.’
뭐랄까. 마음이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뇌와 몸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이 몽롱한 것이, 마취약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하네. 좀 어지러운 거 같기도 하고.’
사실 별 상관은 없었다. 어지럽든 어쨌든. 어차피 자살까지 결심한 마당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삶은?’
이제 플레이어가 됐다고 해서, 각성했다고 해서, 삶이 과연 달라질까?
이미 선발주자들은 레벨 30을 넘어 40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각성해봐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우울하고 짜증 나는 기억들이 밀려들었다.
-너 따위가 무슨 가수야? 때려치워! 등신 같은 놈.
-나가서 돈이나 벌어와.
-술 떨어졌잖아!
-술값! 술값을 벌어오라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다. 반기명은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냉엄한 현실의 벽 앞에 무너졌다.
아버지의 술값을 벌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었다.
누군가 정신을 조작하는 것처럼. 애써 잊고 있던 그런 기억들만 자꾸 밀려들었다.
-그래. 우린 친구잖아.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친구인 강식이 놈이, 정말 급하다고 1,000만 원을 빌려 갔다. 그 돈은 반기명이 20살 때부터 29살 때까지 9년 동안 모은 돈이다.
꼴에 피를 이은 아버지라고, 알코올성 치매에 걸려버린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어, 돈도 많이 못 모았다.
‘강식이 놈은 잠수 탔고.’
1,000만 원. 자신에게는 정말 큰돈이지만, 또 친구 관계를 끊어버릴 만큼 큰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9년 동안 모은 돈을 잃은 것도 슬펐고, 그것 때문에 유일한 친구마저 잃었다는 생각이 죽음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아. 내 인생.’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길을 찾자니 너무 늦은 것 같고. 어릴 때 배운 거라곤 아르바이트밖에 없고.
‘나 같은 거. 살아서 뭐하냐.’
사실 여행하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봤고,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예쁜 풍경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삶에 대한 의지가 조금씩 생기고 있던 찰나였다.
‘그냥 뒤져야지.’
그런데 이 빵집에 들어오고 나서 자꾸 우울한 기억만 떠올랐다. 누군가가 머릿속에 ‘그래, 너 같은 건 그냥 죽어야지’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환청이 들렸다.
‘그래. 그냥 죽자.’
그러던 찰나. 우당탕탕!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어?’
정신을 차렸다.
‘방금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울하고 짜증 나는 기억이 많이 밀려들었던 것 같은데.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잠에 빠져들어 있던 것 같다. 반기명은 몰랐다. 반기명이 정신공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3층의 김혁진이 캐스퍼와 대치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캐스퍼가 김혁진에게 신경 쓰느라, 다른 곳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졌다.
거기에 변수가 더해졌다.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여자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니,
‘신연서?’
그 유명한 미소검객 신연서가 달려오고 있었다.
‘튜토리얼 종결자?’
거기에 마상현까지.
‘곽태운과 강상구 콤비?’
꽤 유명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그들이 뛰어서 3층으로 올라갔다.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왔냐?”
“무슨 일이야? 선화는 왜 저래? 눈이 왜 붉어?”
“지금의 선화는 선화가 아니야.”
“그럼 뭔데?”
“설명하려면 길어. 일단 선화랑 싸워야 해.”
“미쳤어? 저 귀여운 애랑 어떻게 싸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신연서는 검을 뽑아 들었다. 마상현은 얼떨떨해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렇지만 주먹을 쥐었다. 형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모르겠지만, 형님 말이면 다 옳습니다!”
곽태운과 강상구도 마나를 끌어 올렸다. 김선화가 말했다.
“후후후. 인간 버러지들이 참 겁도 없구나.”
김혁진은 김선화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놈은 중간 관리자다. 지금 시점에서 중간 관리자를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다.
김혁진이 말했다.
“다들 선화랑 많이 플레이해 봐서 알 거야.”
선화는 정말로 단단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다.
“인정사정없이 공격해야 돼.”
팀원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김혁진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중간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어중간하게 공격했다가는 역공을 맞는다.
“놈은 정신계열 중간 관리자. 빈틈을 보이는 순간, 정신을 파고들 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
곽태운이 말했다.
“선화의 육체가 약해지면, 놈도 약화되는 건가요?”
“맞아.”
그리고 이쪽의 탱커는 ‘태극방패’ 송기열이 맡기로 했다.
“방어는 제가 전담하겠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지금의 선화는 완벽한 적입니다.”
송기열도 알았다. 저 말은 김혁진이 김혁진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그래서 송기열이 말했다.
“김혁진 씨는 일단 구경만 하시죠.”
“…….”
“저희 전력이면 일단은 해볼 만은 한 것 같습니다. 김혁진 씨 말대로라면, 지금 저놈은 엄청나게 지쳐있는 상태니까.”
“…….”
“혹시라도 정 위험한 타이밍이 있다 싶으면, 그때 김혁진 씨께서 참전해도 됩니다. 만에 하나, 놈이 김혁진 씨에게 빙의해버린다면, 일이 정말로 골치 아파지니까요.”
김혁진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가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김혁진은 잠시 뒤로 물러섰다. 타이밍을 노리기로 했다. 거신 길드. 그리고 송기열이 한 팀이 되어 움직였다. 김선화를 둘러싸고 각자의 공격을 퍼부었다.
송기열은 방패를 꺼내 들고서 김선화의 팔꿈치 공격을 막아냈다.
깡!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화의 팔꿈치에서 피가 조금 났지만 금방 회복되었다.
‘내가 중간 관리자랑 싸우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중간 관리자는 인류에게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다. 인류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위 존재들.
그런 중간 관리자와 싸운다니. 김혁진 옆에 있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긴다.
한편, 제삼자가 된 김혁진은 상황을 관찰했다.
‘캐스퍼의 힘을 빌은 선화와 나머지 팀원들의 실력은 호각.’
누가 더 먼저 지치느냐. 누가 더 운이 좋느냐의 싸움이 될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쪽에도 송기열이라는 꽤 괜찮은 탱커가 있다는 것이다.
‘캐스퍼도 상황을 읽을 테고.’
내가 만약 캐스퍼라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캐스퍼라면 어떤 그림을 그릴까?
‘이대로 계속 싸우지는 않겠지.’
캐스퍼로서는 어떤 돌파구를 찾아낼 거다.
‘놈은 이 상황에서도, 이 제과점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제과점을 아직도 자신의 영향력 안에 놓고 있다. 지배력 자체는 약화된 것 같지만.
컥!
마상현의 배가 접혔다.
선화의 주먹이 마상현의 배에 틀어박혔다. 마상현이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 사이, 강상구가 불채찍으로 김선화를 견제했다.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 거신 길드원들과 송기열은 조금 지친 것 같았는데, 김선화는 오히려 더 평온해졌다.
“나는 너희들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어.”
“그래서 너희들의 움직임을 미리 읽을 수 있지.”
캐스퍼는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김혁진은 느낄 수 있었다. 캐스퍼는 팀원들과 싸우면서 2층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해서 강화했다.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정말 여유가 있었다면 우리를 모두 죽였을 거다.’
그게 안 되는 걸 아니까, 지금 캐스퍼는 이런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다.
‘결국 반기명을 노릴 거야.’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거다. 선화의 육체에서 빠져나와 반기명 안으로 들어갈 거다.
그리고 아마 모종의 방법을 사용하여 탈출할 거다.
‘미래에 우리를 죽이려 다시 찾아올 테고.’
너무 큰 위협이다. 지금 여기서 죽여야 한다. 김혁진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네가 뭘 노리는지 너무 잘 알겠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김혁진이 검을 빼 들었다. 초월급 아티팩트. 이사벨을 들었다. 김선화도 조금은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김선화가 김선화의 목소리로, 김선화의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저 죽일 거예요?”
“…….”
“저는 오빠랑 언니랑 엄마랑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밖에 없었는데…….”
그리고 그때. 김혁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벅. 저벅. 2층에서 누군가 걸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김혁진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벤다.’
이를 악물었다. 김선화를 향해 전력으로 이사벨을 휘둘렀다. 이사벨이 김선화의 목에 닿았다.
서걱!
무엇인가가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