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73)
#재능만렙 플레이어 273화
김혁진은 인벤토리 내의 천공석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공석이 조금씩 부서지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마나가 김혁진의 몸을 통해 가공되었다.
그리고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내가 현신할 줄은 몰랐네.”
안서희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저도요.”
김선화가 달려왔다. 안서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서희 언니!”
“선화야!”
김선화와 안서희는 서로 부둥켜안고서 몇 바퀴를 돌았다. 김혁진은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이들의 재회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선화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다행히 안서희가 선화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서는 떼어냈다.
“우리는 저 붉은 악마를 잡아야하지 않겠어?”
그랬더니 이사벨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붉은 눈의 아이야. 너는 가만히 있거라.”
순백의 로브를 입은 이사벨. 그녀의 지팡이 끝에 달린 보라색 마법석에서 흉폭한 기운이 새어 나왔다.
“아줌마는 누구세요?”
“아줌마?”
순간, 이사벨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아줌마?”
“네. 아줌마요.”
안서희는 이사벨을 보자마자 무엇인가,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김혁진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실 안서희도 안다.
‘아줌마는 아닌데.’
아무리 봐도 자신의 나이 또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 수호탑 안서희가 아니라 사람 안서희였다면 언니라고 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느껴진다. 무수한 세월의 흔적이. 눈앞의 보이는 저 여자는 절대로 20대가 아니다.
“아이야. 너는 내가 누군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텐데?”
“네. 아줌마요.”
이사벨은 저 멀리서 가까이 다가오는 붉은 악마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사벨이 가장 신경쓰는 것은 붉은 악마가 아니라 안서희였다.
“내가 남편과 정신적으로 굉장히 강력하게 묶여있다는 사실도 느끼고 있을 거고?”
“저는 수호탑이 된지 얼마 안 돼서, 그렇게 자세하게는 못 느껴요.”
“거짓말하지 말거라.”
“거짓말 아닌데요. 그리고 왜 남편이에요?”
“맹약자이기 때문이지.”
“맹약자면 맹약자지, 왜 남편인데요?”
김선화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화는 이사벨의 현신을 처음 본다. 저게 누군가 싶다. 검의 맹약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이사벨?’
그 초월급 아티팩트 이사벨?
‘근데 이사벨은 검이잖아.’
검인데 왜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김혁진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지금 둘 다.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이사벨이 말했다.
“아이야. 너는 수호탑으로 돌아가거라.”
“싫어요. 얼마만에 제 의지로 움직이는 건데요?”
옆에서 선화가 거들었다.
“언니가 안 돌아가면 좋겠어.”
이사벨이 인상을 조금 더 찡그렸다.
“내가 묻지. 너는 이곳에 나타난 붉은 것들을 모조리 소탕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
“모조리 소탕할 자신은 없지만 주인님께 다가오는 것들은 죽여 버릴 수 있어요.”
안서희가 히죽 웃었다. 눈이 붉게 빛났다.
“주인님을 위협하는 건 모조리 죽여 버릴 거니까.”
김혁진은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속으로만 ‘주인님’ 소리를 듣는 건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대놓고 ‘주인님’이라 부르니 속이 거북하다. 강상구가 그 말을 애써 못들은 체 했고 신연서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 서희야. 도대체 그게 무슨 괴상망측한 호칭이야? 주인님이라니?”
“수호탑이 되면서 강제력이 생겼어. 내가 어떻게 불러도 주인님이라는 호칭으로 변해서 나가.”
“아…… 그래?”
김혁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붉은 악마를 상대하는 것보다, 이 상황은 조금 더 난처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 사이. 붉은 악마는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감각안‘이 위험을 경고하지 않는다. 보통 이쯤 되면 ‘붉은 악마’의 강력함을 인지한 감각안이 온몸에 위험신호를 보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게 안 느껴진다.
이사벨이 또 말했다.
“아이야. 이번에는 네가 양보하렴. 길게 말할 시간이 없단다. 남편의 능력은 한정적이고, 너와 내가 모두 현신한 상태면 제대로 된 힘을 끌어낼 수 없어.”
“…….”
“너도 느끼고 있다시피, 둘이 현신하면 천공석의 힘이 훨씬 빨리 약화되거든.”
“…….”
안서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에는 양보할게요.”
“잘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음번에는 양보하지 않아요.”
안서희는 괜스레 이사벨이 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나 지금 질투하는 거야?’
김혁진을 남자로 느껴서 질투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것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나보다 더 상위의 계약으로 묶여 있어.’
계약과 계약의 관계. 그런데 저 쪽은 계약이 아니라 맹약의 관계다.
‘그게 분해.’
자신보다 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안서희는 그게 싫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수호탑 안서희는 짙은 패배감을 느껴야만 했다.
“아줌마. 저는 수호탑으로 돌아갈 거예요. 제가 양보한 만큼. 주인님께 큰 도움이 되셔야 해요.”
안서희는 신연서. 그리고 김선화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 뒤 다시 수호탑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붉은 악마’는 100미터 앞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붉은 악마가 조금 이상했다. 수호탑이 몬스터들을 밀어내는 ‘척력’을 발생시키지 않고 있음에도,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크륵. 크르르륵.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모양새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이사벨이 잠시 눈을 감았다.
“남편. 저 빨간 애들이 남편 괴롭혔어?”
“…….”
김혁진의 ‘관찰자의 눈’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사벨의 권역 선포.’
이사벨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기운이 이 일대를 뒤덮었다. 현재 김혁진의 능력으로는 감히 측량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게. 굉장히 넓은 면적을 뒤덮었다. 이사벨의 기운이 덮인 곳은 곧 이사벨의 권역이었다.
이사벨이 말했다.
“내가 혼내줄게.”
* * *
성신병원
VVIP병실 안.
그 곳에 한 일본인 남자가 찾았다.
“당신도 느꼈습니까?”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외모. 아직 젖살이 다 빠지지 않아 앳된 외모의 남자. 그는 ‘통역구슬’을 가지고서 병실 안에 누워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이름은 함소현.
“제게는 예지몽 외에 다른 능력은 없어요.”
“그렇군요.”
그리고 남자의 이름은 이타치다. 이타치는 몸을 움직여 창문 쪽으로 향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약 1년 전의 저는, 제가 한국에 올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별도 제가 이곳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꾸만 ‘거대한 별’에 의해 무엇인가가 바뀌고, 미래가 바뀌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한국에 오게 됐다. 원래는 일본을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어야 했을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별이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움직이는 걸 어떻게 알아요?”
“느낄 수 있습니다. 존재자체가 너무 거대해서 제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죠.”
이타치가 예언서 하나를 꺼내들었다. 복사본이었다.
[재로 뒤덮인 신전의 초석 앞에 인연이 있다.] [적이 되어 만나면 지옥의 겁화가 될 것이요.] [벗이 되어 만나면 천상의 성가가 울려 퍼질 것이라.]“하나의 별이 노래했습니다. 성가를 불렀습니다. 성가는 지극히 황홀했고. 그것은 또 하나의 별을 쏘아 올렸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네요.”
“김혁진이라는 사람이 별을 쏘아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혹시 최근에 김혁진과 관련된 어떤 꿈을 꾸신 적이 있습니까?”
함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며칠 전. 김혁진과 관련된 예지몽을 꾸었다. 예지몽을 꾸면서 작성했던 예지서. 그 내용을 읊었다.
“거짓되고 달콤한 향기가 몸에 젖어 들리라.”
“…….”
“진정한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되리라.”
“그 예언은 혹시 이루어졌습니까?”
함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루어진 것 같아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특정해서 예지몽을 꾼다는 것도 신기할뿐더러, 그게 그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고, 또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사실까지도 느낄 수 있죠. 제가 알기로 이런 경우는 없어요.”
오로지. 김혁진만이 그렇다. 그게, 이타치가 한국으로 날아온 이유다.
“김혁진 씨를 만나봤습니까?”
“네. 한 번요.”
“어땠습니까?”
함소현이 조금 머뭇거렸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무엇이든 좋으니까.”
별자리를 바꾸고, 별을 쏘아 올리고, 어쩌면 별을 파괴할 수도 있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플레이어. 김혁진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요.”
“……예?”
“그를 봤다는 사실은 기억이 나는데.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열심히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안 보여요.”
“특별한 능력을 사용한 것 아닐까요?”
김혁진에게는 인지부조화가 있다. 그렇지만 그때 김혁진은 인지부조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함소현이 머뭇거리다가 또 말을 이었다.
“어둠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이타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명확한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어둠처럼 느껴진다라. 신기한 일이네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김혁진 씨를 보호하는 위대한 별이 지금 이곳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별의 이름은…… 컥!”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함소현이 황급히 간호사를 호출했다. 이타치는 기절한 상태로 또 다른 병실로 옮겨졌다.
* * *
이사벨이 말했다.
“내가 혼내줄게.”
그리고 또 말을 이었다.
“어차피 한 마리 한 마리 색출하는 건 힘들어. 시간도 없고. 천공석에 내재된 마나를 사용해서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낼 거야.”
“어떻게?”
“귀찮아지기 싫으면 일단 인지부조화를 사용해봐.”
일단은 시키는 대로 했다.
“여기에 내가 좀 더 도와줄게.”
알림이 들려왔다.
[인지부조화가 ‘광역 인지부조화’로 임시 승격됩니다.] [‘광역 인지부조화’가 ‘광역 인지왜곡’으로 상향 조정되어 적용됩니다.]여기서의 광역이 어느정도로 광역인지, 김혁진도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광역 인지왜곡’이 발생되었다.
이사벨이 어떠한 영창을 내뱉었다.
“——-.”
그와 동시에 이사벨의 몸이 사라졌다. 목소리만 들렸다.
“만검우(萬劍雨).”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100미터 앞. 다가오지 못하고 얼쩡거리고 있던 ‘붉은 악마’의 머리에 ‘검’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붉은 악마의 머리를 관통하고 몸을 관통했다. 붉은 악마가 세로로 쪼개졌다.
‘어?’
알림이 들려왔다.
[‘붉은 악마’를 사냥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500 COIN]‘날개 잃은 천사상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 획득한 COIN이 2,000 COIN이었다. 그런데 한 마리를 잡았더니 500COIN이 주어졌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붉은 악마’를 절명시켰다. 직접 사냥이 아니라, 이사벨이 사냥한 것이어서 그런지 ‘관찰자’의 페널티도 적용되지 않았다. 경험치도, COIN도 모두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근데…….’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붉은 악마’를 사냥하였습니다.] [‘붉은 악마’를 사냥하였습니다.]…….
[‘붉은 악마’를 사냥하였습니다.] [‘붉은 악마’를 사냥하였습니다.]끝없이 알림이 생성되었다. 알림이 생성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확인조차 되지 않을 정도.
[동일한 중복 알림이 720개 존재합니다.]그리고 천공석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아…… 이거…….’
아무래도 이사벨이 힘 조절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순간적으로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어지럽다.’
알림을 끝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이타치가 기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혁진도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