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84)
#재능만렙 플레이어 284화
김혁진이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주긴 줄게요.”
“가, 감사합니다!”
“근데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이든 다 수용할게요.”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질문을 하죠.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루트를 알고 있습니까?”
“…….”
강솜이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김혁진이 바로 말했다.
“이 모든 것이 거래의 조건에 포함됩니다.”
“……네.”
“앞으로 대답은 1초 이내에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게…….”
“싫음 말고요.”
강솜이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요. 보기보다 악랄하시네요.”
“단호한 것으로 해주시죠.”
강솜이가 다른 핑계거리나 대답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아예 1초라는 시간제한을 뒀다. 여유롭게 다른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거다.
‘거래는 이렇게 하는 거지.’
보통의 경우. 이런 일방적인 거래는, ‘베니스의 상인’이 좋아하는 형태의 거래는 아니다. 어느 정도. 서로가 서로에게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이득을 챙겨가면서 무엇인가를 교환하는 것이 ‘베니스의 상인’이 좋아하는 플레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모든 것을 다 내주겠다며, 조건도 이득도 따지지 않던 그 시점에서 강솜이는 이미 베니스의 상인의 적이 되었다.’
적이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베니스의 상인’의 성향을 고려하면 ‘적’이라는 표현이 크게 틀린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베니스의 상인에게 있어서 강솜이는 악역 고구마 조연 정도 되겠지.’
연출을 일부러 그렇게 했다.
영화로 치면 플레이어는 배우이자 연출자이고, 수호자는 관객이다. 관객은 주인공급 배우들에게 이입한다. 주인공이 이유도 없이 선한 조연을 죽이거나 괴롭히면 욕을 먹겠지만, 반대로 쳐부숴야 할 악당이나 나쁜 놈을 괴롭히면 사이다라 칭찬을 받는다. 그와 같다. ‘베니스의 상인’이 보기에 강솜이는 ‘고구마 조연’이다.
‘베니스의 상인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런 조연을 처리하면…….’
굉장히 즐거워할 거다. 지금 김혁진은 ‘베니스의 상인’ 맞춤형 사이다를 선사하고 있는 거다. 적을 ‘거래’로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것. 베니스의 상인이 원하는 그림이다. 타깃팅을 정확하게 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최단 시간으로 최대한 안전하게 클리어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네.”
“어떻게 압니까?”
“그야…….”
강솜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그녀에게 있어서 ‘대동여지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대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짓말은 안 돼.’
저쯤 되는 플레이어라면 거짓말을 판독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김혁진에게 그런 능력은 없지만 강솜이 입장에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거짓말하다가는 ‘대동여지도’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수는 없다.
“이 게이트를 설계한 것이 저와 스승님이니까요.”
“이 게이트를 설계했다고요?”
신연서의 몸이 움찔했다.
‘헐? 그런 게 된다고?’
어떻게 인간이 게이트를 설계한단 말인가. 아예 처음 듣는 얘기다. 김혁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말했다.
“맵 제작자의 도움 없이, 탐험가 둘이서 설계를 했느냐는 질문입니다.”
“아니에요. 도움을 받았어요.”
강솜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맵 제작자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알아?’
강솜이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뭐야, 이 인간?’
탐험가들 중에서도 이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소수. 잭슨도 이렇게 말했다.
-맵 제작자는 정말로 희귀한 클래스입니다. 그리고 당분간 비밀로 해야만 하고요. 맵 제작자에 대해서는 무조건 함구하세요. 알겠습니까?
정말로 희귀한 클래스. 스승조차 비밀로 하라는 그런 클래스. 일단 강솜이가 알기로 ‘맵 제작자’는 전 세계에 한 명뿐이다.
김혁진은 강솜이의 표정을 보고서 읽어냈다.
‘맵 제작자가 활동을 시작했구나.’
김혁진이 원래 알고 있던 과거보다 시기가 3년 이상 앞당겨졌다. 원래 ‘맵 제작자’가 세상에 정체를 드러냈던 것은 2022년 7월경이었으니까.
‘맵 제작자 차지혜.’
아주 특별한 조건과 재료가 구비되었을 때. 그때에 한해 ‘맵 제작자’는 게이트를 설계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 ‘맵 제작자’로 알려진 플레이어는 차지혜 한 명뿐이었다.
“맵 제작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셨어요?”
“질문을 하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건 그랬죠.”
강솜이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래도 질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없습니다.”
“……네.”
‘진짜 악랄하다’라고 신연서가 중얼거렸다. ‘악랄해서 섹시해’라고 말을 이었지만 김혁진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김혁진이 다시 물었다.
“맵 제작자는 한국인이죠?”
“그건 저도 잘 몰라요.”
“확실히 모릅니까?”
“네. 진짜 몰라요. 맵 제작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스승님이 유일하다고 알고 있어요.”
김혁진은 잠시 고민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연출하고 이끌고 나갈까.
“그 제작자가 만약 한국인이고 성이 차 씨라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네. 그러면 거래는 성립됐나요?”
“아뇨.”
“아예 척추에 빨대를 꽂으시지 그래요?”
“진짜 꽂아도 됩니까?”
이사벨을 들어 올렸다.
“아, 아씨! 농담이에요!”
강솜이는 손사래치며 뒷걸음질 쳤다. 김혁진은 뜻하지 않게 ‘맵 제작자’의 정보를 얻었다. 맵 제작자가 무려 ‘메르헨의 흉갑’을 설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 잭슨이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구나.’
미셸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준 레전드급 아티팩트. 그 아티팩트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이트를 차지혜 혼자 설계했을 리는 없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차지혜는 비슷한 급의 많은 게이트를 만들어 수많은 ‘최상급 아이템’들을 양산해 냈겠지.
‘그러면서, 마왕과 보다 효과적으로 대적했을 거야.’
3년 후. 혜성같이 모습을 드러낸 맵 제작자 차지혜는 한국의 8영웅으로 드높은 명성을 얻게 된다. 8영웅을 성장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결계술사들과 함께 힘을 합쳐 ‘롯데 시그니엘 던전’을 봉쇄하는 영웅으로 성장한다.
아무튼 ‘맵 제작자’가 이미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맵 제작자가 굳이 이곳. 싱가폴에 게이트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에 잭슨이 또 깊숙하게 개입되었다는 것까지도.
마침 기절했던 라스본이 정신을 차렸다.
“으으음.”
김혁진이 마상현을 힐끗 쳐다봤다. 마상현은 그 눈짓만으로 이해했다.
“또 자라. 앞뜰과 뒷동산에!”
근본을 알 수 없는 기합을 내지르며, 손날로 또다시 라스본의 뒷목을 때렸다.
빠각!
목 뼈가 부러지는 것만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라스본이 다시 기절했다. 겉으로 보기에 과격해보이기는 했지만 나름 힘 조절을 잘해서, 죽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꽤 오래 재웠습니다, 형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이곳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제가 무엇을 얻을지 아시죠?”
“보상은 몰라요. 길은 알지만 무슨 보상이 있는지 알 수 없어요.”
“메르헨의 흉갑을 얻을 겁니다.”
“알겠어요. 최대한 도울게요.”
“그리고 하나 더. 주군으로 저를 선택하세요.”
“네?”
“왜요? 싫어요?”
“아니…… 싫은 건 아니고…….”
강솜이는 조금 머뭇거렸다. 잭슨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잭슨은 주군이 아니라 스승이잖아요. 스승은 스승대로. 주군은 주군대로. 따로 따르면 되죠.”
“그건 그렇지만…….”
“싫으면 이거 그냥 팔 겁니다. 미셸한테 팔면 돈 많이 줄 거 같은데.”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강솜이의 긴장을 풀어줬다.
“농담입니다. 각각의 아이템에게는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주인이 있는 법이니까요.”
“진짜 들었다 놨다의 귀재시네요.”
“아무튼. 이거 제가 안 주면, 어차피 섬김의 탐험가는 물 건너가는 건데.”
강솜이는 잠시 생각했다.
“잠시만 생각할게요. 또 다른 조건은요?”
“우리가 이곳을 클리어하는 시간은, 철혈사자가 난바 터미널을 클리어하기 전이어야만 합니다.”
“네? 그건 왜요?”
“저는 송정희 싫어하거든요.”
“……그치만 아까는 난바 터미널에 대해 몰랐잖아요.”
“이제 알잖아요.”
김혁진의 미소를 본 강솜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첩자가 있는지 떠보기 위함이었던 잭슨의 수는, 반대로 김혁진에게 명분을 줬다. 잭슨의 능력이 부족해서였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잭슨이 그렸던 판에는 ’라스본’과 ‘대동여지도’라는 변수가 없었을 뿐.
“송정희가 좋은 걸 얻게 놔둘 수는 없죠.”
“그, 그래도 저희 길드장님이신데.”
“싫으면 거래 포기하면 됩니다.”
“힝.”
강솜이는 저도 모르게 ‘힝’소리를 내버렸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하는 것 같다.
“진짜 너무하시네요.”
“싫으면 포기하세요. 거래는 원래 그런 겁니다. 마음에 들면 거래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거래 포기하실래요?”
“포기 못 하는 거 알면서 이러시는 거잖아요.”
강솜이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거래를 파토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거기에 신연서가 한 마디를 보탰다.
“이래서 대장이랑 적이 되면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요.”
“진짜 그럴 거 같아요.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얼굴로 이렇게 집요하고 악랄한 사람 처음 봤어요.”
“근데 그만큼 동료가 되면 너무 편해요. 악랄한 거. 대장이 다 대신해주거든요.”
옆에서 강상구가 ‘그래. 그건 그래’라면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솜이는 자포자기했다.
“알았어요. 게이트. 빨리 클리어만 하면 되는 거죠?”
“네. 그러면 대동여지도를 드립니다.”
강솜이가 앞장섰다.
“30분 정도면 될 거예요.”
“좋군요.”
김혁진은 기절한 라스본을 힐끗 쳐다봤다.
“영원히 재울까요, 형님?”
“아니. 그냥 둬.”
“알겠습니다, 형님.”
거신길드와 강솜이가 1층으로 내려갔다.
* * *
1층에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게이트’를 열었다.
[‘입장 자격’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입장 자격’을 거신길드 외 1명으로 설정하였습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게이트’에 입장합니다.]진행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미로형태의 게이트였는데 강솜이는 이미 길을 전부 알고 있었다.
“여기에는 그림 형태의 트릭 몇 개가 숨겨져 있어요.”
“거기는 함정이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이 곳은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야 해요. 불 계열 마법에 약한 놈들이 많아요.”
“여기서는 뛰어내려야 해요. 안 다치니까 그냥 뛰세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에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솜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말했다.
“저기. 클리어 크리스탈 있네요.”
“제가 부수겠습니다, 형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게이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게이트 클리어 보상’이 마상현 플레이어에게 주어집니다.]애초 김혁진이 알고 있던 대로 ‘메르헨의 흉갑’이 하나 주어졌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마상현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온 ‘메르헨의 흉갑’을 거리낌 없이 김혁진에게 넘겼다.
“고마워.”
“아닙니다, 형님. 이렇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형님.”
“…….”
“제가 발닦개입니다, 형님.”
“…….”
김혁진은 굉장히 쉽게.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메르헨의 흉갑’을 얻을 수 있었다. 무려 레전드급. 그것도 성장형이다.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왔다.
‘좋아.’
아주 좋다. 김혁진이 생각하고 있던 그림이 그려졌다. 이럴 줄 알고서, 기절한 라스본을 그냥 두고 클리어하고 나왔다.
세니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수호자들에게만 들리도록 중계를 이어갔다.
“김혁진 플레이어가 준비한, 다음 스테이지가 이어집니다.”
끼가 별로 없는 중간 관리자. 그렇지만 유일무이한 콘텐츠를 중계하는 세니아의 채널에 수많은 수호자들이 김혁진이 설계한 ‘다음 스테이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살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