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337)
#재능만렙 플레이어 337화
나흘이 흘렀다.
슬슬 6월 초를 지나 6월 중순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은 상당히 변덕스러웠다.
사람들은 급작스레 밀려온 더위에 반팔 반바지를 찾아 입었다가, 바로 어제는 갑자기 또 추워져서 얇은 외투를 꺼내 입기도 했다.
6월 9일.
저녁 7시, 김혁진은 집에서 휴식을 취했고 7시가 되어서 선화가 돌아왔다.
“사람들이 엄청 춥대요. 저는 하나도 안 춥던데.”
“추운 게 정상이야.”
“그래요?”
“네 몸이 너무 튼튼해서 그래.”
김혁진에 대한 걱정으로 예민해져있던 선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 게이트에서요. 보스가 결전기를 사용했어요. 그 뭐더라. 무슨 길드였는데 까먹었다. 거기 길드장이 죽을 것 같아서 막아줬어요. 둔기 형태였는데 대충 흘려주니까 쉽게 막을 수 있더라구요.”
선화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그걸 정통으로 막으면 방패가 뚫릴 것이 뻔히 보이는데. 왜 정통으로 막으려고 들었을까요?”
선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살려주기는 했는데. 진짜 바보인 줄 알았어요. 다음에 또 그러면 안 도와주고 싶어요.”
“왜?”
“너무 답답해서요.”
15살의 선화는 아직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낮았다. 김혁진은 선화에게 좀 더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선화, 너는 방패가 뚫릴 것이 어떻게 뻔히 보였어?”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보면 딱 보이니까요.”
김혁진이 쇼파에 앉았다. 김선화는 바닥에 앉았다. 다리를 쫙 피고서 앉았는데, 김선화는 쇼파보다 땅바닥에 앉는 것을 더 선호했다.
“보통 사람들한테는 그게 딱 보이지 않아.”
“왜요?”
“선화, 네가 마이클보다 요리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요?”
“그럼 강상구보다 불마법을 잘 사용할 수 있어?”
“아니요.”
“마이클은 재료들을 보면 어떻게 배합해야 맛있는 음식이 나올지. 보면 딱 감이 온대. 강상구는 어떻게 마나를 조합해야 좋은 마법이 튀어나오는지 알 수 있고.”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탱킹의 분야에서 네가 대단한 거지, 그 사람들이 못난 게 아니야.”
선화는 아직 어리다. 김혁진은 오빠로서, 가족으로서 선화에게 말했다.
“운 좋게 너는 그걸 딱 보면 알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고, 그 사람들은 그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어.”
재능을 타고난 것도. 김혁진 자신을 만난 것도. 그래서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그 모든 것에 운이 작용했다.
“네가 했던 노력만큼, 다른 사람들도 노력했을 거야. 어쩌면 너보다 더 많이 노력한 사람도 있을 거고.”
김혁진은 처음, 김선화의 재능을 보고 도와줬다.
그때에는 어떤 노력이 가미되지 않은 상태였다. 선화는 그냥 처음부터 강력한 탱커였다.
그렇게 태어났다. 선택받았다. 김혁진은 그걸 짚었다. 꼭 짚어주고 싶었다. 김혁진이 원래 [재능 없음]을 겪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김혁진은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었다.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이 없어서 플레이로 대성할 수 없었을 뿐. 치열하게 살았지만 가족을 모두 잃었고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게 치열함의 대가였었다.
지잉-!
김혁진은 순간 또 머리가 아파왔다.
‘송진철……!’
그 얼굴이 떠올랐다. 희뿌연 세계가 보였다. 노이즈가 잔뜩 낀 세상. 아무리 집중해서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괴상한 세계. 그곳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능판 67개? 개소리하고 있어.
수많은 노이즈가 끼어 있어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김혁진이 제대로 들은 것은 ‘재능판’이라는 단어와 ‘개’라는 단어뿐이었다. 온통 지직- 지지직- 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송진철의 목소리와 똑같다.’
노이즈가 많이 껴있지만 분명 송진철의 목소리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송진철이 계속 떠오르고, 송진철에 대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점점 더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김선화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김혁진을 흔들었다.
“오빠. 괜찮아요?”
“어. 아니야, 아무것도.”
선화가 또 걱정할까 싶어 거짓말했다.
“강솜이 씨가 귓말 보내서 그거 확인 좀 했어.”
“그렇구나. 그럼 다행이에요.”
김혁진은 김선화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선화의 재능은 출중하다. 앞으로 더욱 성장할 거다.
재능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뒤쫓아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갈 거다.
김혁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무튼. 너보다 실력이 낮은 이들을 폄하하고 못되게 굴어서는 안 돼. 답답해 죽겠다. 바보 같다. 그런 말 하면 못 써. 알겠지?”
“……”
김선화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30초 정도 생각하던 김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김혁진이 김선화의 머리를 두어 번 슥슥 문질러주었다. 선화는 아직 어리다. 도덕책을 공부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세상이 이론과 조금 다를지라도, 김혁진은 선화에게 좀 더 세상다운 세상을 알려주고 싶었다.
진짜 세상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저절로 익히게 될 테니까.
적어도 선화가 송정희 같은 어른으로 크지 않도록 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꼰대 같았어?”
“아니에요. 오빠 말 듣고 보니까 맞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까 저는 처음부터 고블린한테 안 죽었더라구요. 그렇게 튼튼한 몸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한 것도 맞고. 오빠가 없었다면 저는 이렇게 튼튼한 몸을 가지고서도 튜토리얼 필드에서 죽었을 것 같아요. 그때 오빠가 날 답답하게 생각해서 두고 갔으면, 지금 저는 없을 거잖아요.”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김선화는 잘못 생각했다고 말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선화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오빠. 근정전에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분명, 검황 단천우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했었는데. 아직도 집에서 쉬고 있는 게 이상했다. 그로부터 또다시 하루가 지났다.
* * *
한국은 코리안 스타일로 유명한 국가다. 개인 전투에 있어서 탁월한 실력을 보이는 서버이기도 했다.
직접 전투분야에 강한 한국 서버.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길드는 거신길드였고, 개중 PVP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는 미소검객 신연서였다.
“이번에 미소검객이 전투하는 거 봤어?”
“영상 쫙 퍼졌던데.”
신연서가 강남에 나타난 게이트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영상이 널리 퍼졌다.
“그 정도면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검술가 아니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가장 뛰어나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신연서는 미소 검객으로 유명하다. 남녀를 막론하고 신연서의 눈웃음에 푹 빠진 사람들이 ‘미소검객’ 팬카페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어지간한 아이돌보다 더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미소 때문에, 신연서의 이미지는 그렇게 강렬한 편은 아니었다.
“솔직히 생각해 봐. 우리는 그 예쁜 미소에 속고 있다고. 당장 미소검객이랑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검술가가 누가 있어?”
“……”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건 그렇네.”
“그렇지? 게다가 지금 공식적으로 PVP에서 1패도 없대.”
원래 미소검객이 유명해졌던 계기는 PVP였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단 1패도 허락하지 않은 무패의 검객.
그게 지금의 신연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미소검객이 아니라 무패검사라고 부르기도 한다던데.”
무패검사라는 이명까지 생겼을 정도다. 무패검사 신연서는 오늘도 1승을 챙겼다.
상대는 검도 유단자이자 레벨 38에 이르는 검술가 계열 랭커. 한진호였다. 한진호는 사망 후 부활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한 수. 아니 두 수 이상 저보다 높은 곳에 계시는군요.”
“별말씀을요. 좋은 승부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신연서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이 없었다. 그녀는 가볍고 빠른 검술을 구사하는 만큼, 가벼운 도복을 입은 상태. 움직임에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펄럭거리지 않는 소재의 도복을 입었다. 신연서는 늘 이 옷을 입고 다닌다.
간단하게 인사를 끝마쳤을 때. 신연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혁진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신연서가 밝게 웃었다.
-알았어. 어디로 가면 돼?”
세 시간 뒤.
신연서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전에 던전이 생겼던 이래로 현재는 폐쇄된 상태. 대외적으로는 폐쇄되었고 비밀리에 태극방패의 PVP연습용 공간으로 쓰고 있다.
‘맨날 가벼운 도복만 입다가…… 이런 하늘거리는 옷 입으니까 불편하네.’
무릎까지 오는 치마가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지, 3cm밖에 안 되는 높이의 슬링백(*발꿈치 부분이 끈으로 된 구두)가 뭐 이렇게 불편한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크로스로 맨 이 작은 핸드백이 움직임에 엄청난 제약을 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진짜 플레이어 다 됐네.’
전에는 이런 복장 잘만 입고 돌아다녔는데. 플레이만 주구장창 하다 보니, 이런 옷이 영 어색했다.
신연서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과거 축구 구장으로 쓰였던 넓은 이곳은 태극방패의 관리 아래 있으며, 특별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경기장 안의 잔디는 모두 없어졌고, 대신 충격을 흡수해 주는 특수한 성질의 광물이 옅게 펼쳐진 넓은 대련장이 보였다.
경기장 가운데. 김혁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혁진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너 복장이…….”
장소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 그러니까 태극방패가 사용하는 비무장이다. 당연히 비무 때문에 불렀다.
검황 단천우가 찾아오기 전. 조금이라도 검술을 더 다듬어 놓기 위해서. 신연서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래서 신연서를 불렀다.
‘구두에 원피스에 크로스백?’
게다가 검술을 펼칠 때면 늘 질끈 동여묶던 저 머리카락을, 지금은 모두 풀어놓은 상태다.
‘생각보다 머리가 길었네.’
매번 묶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어깨를 다 덮을 정도의 기장이었다. 신연서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요즘 일상생활에서 검술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연습 중이야.”
“…….”
“환복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바로 움직여야 하니까.”
“…….”
“구두 신고 보법 펼치는 걸 연습하면, 아이템 착용했을 때 훨씬 편하게 보법을 펼칠 수 있더라고.”
“…….”
“크로스백은 좀 거치적거리긴 하는데. 오른손과 왼손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도와주는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
김혁진도, 신연서도 말이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걸 알았지만 둘 다 그 것을 짚지는 않았다.
“나도 너랑 PVP하려고 온 거야.”
태평한 척 말했지만 신연서의 얼굴은 상당히 붉어져 있었다. 신연서가 마검 아수라를 꺼내들었다.
“난 대장이랑 붙는 게 제일 재미있더라.”
김혁진도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고 이사벨을 꺼냈다. PVP필드는 세니아가 펼쳐주었다.
1시간 동안, 김혁진은 방어 위주로 PVP를 진행했다.
그 와중에 신연서는 두 번 사망했다가 부활했다. 김혁진과 신연서의 순수 검술 실력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김혁진은 느낄 수 있었다.
‘검에 관한 이해도 자체는 신연서가 더 높은데…… 피지컬적으로 내가 훨씬 우위.’
기술은 신연서가 더 좋지만, 스탯은 김혁진이 더 높다. 기본 근간이 되는 스탯 자체가 김혁진이 높다 보니 기술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김혁진이 말했다.
“찌르기 공격을 하기 전에. 눈을 살짝 아래로 까는 습관이 있어.”
“……내가?”
“그걸 읽히면, 반격당하기 쉬울 거야.”
“몰랐어.”
“보통은 찌르기를 이렇게 여러 번 사용할 상대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신연서는 부끄러움을 모두 잊었다.
‘즐겁다!’
김혁진과 검을 맞대며 싸우는 이 과정이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싸우면서 발전하는 것이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다.
“왼발 각도가 교묘하게 틀어지네. 왼발로 밸런스를 잘 잡으면 파괴력이 더 클 것 같은데.”
김혁진의 조언이 신연서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둘은 장장 여섯 시간 동안 PVP를 진행했다. 둘 모두 많이 지쳤다. 둘 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대장은 진짜 미친 것 같아.”
“왜?”
“검술 자체는 형편 없는 것 같은데 빈틈이 없어. 기술로 파고들려고 해도, 이상하게 막혀. 그리고 그 와중에 내 나쁜 버릇이나 약점 같은 것을 잡아준단 말이야.”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문득 선화의 말이 생각났다. 그건 당연하다고. 그냥 보인다. 김혁진도 그렇다. 보면 보인다. 그냥.
“그냥 보면 보여.”
김혁진과 신연서는 그 이후로도 3일 동안 매일 만났다.
매일매일 PVP를 진행했다. 실력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김혁진이 신연서의 패턴과 스킬을 모두 읽어냈기 때문이다. 김혁진은 김혁진 나름대로, 신연서와의 PVP에서 얻는 것들이 많았다.
신연서의 움직임. 스킬. 모든 것을 관찰자의 눈으로 세심하게 관찰했다. 실전을 통해 ‘검술가로서’ 많이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3일이 흘렀을 때.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신연서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응? 오늘 비 소식 없다고 그랬는데.”
원형돔 위로 보이는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김혁진이 핸드폰을 살펴보았다.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김혁진은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자연적인 천둥과 번개가 아니야.”
모르긴 몰라도. 상암 월드컵 경기장 밖은 쾌청한 날씨일 거다.
‘드디어 왔다. 검황 단천우.’
때맞추어, 마치 이때를 기다렸던 듯. 수호자들이 앞다투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