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356)
#재능만렙 플레이어 356화
“5분의 시간을 벌어주마.”
단천학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걸었다. 청색 불거인의 진화판. ‘염원을 좇는 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얌전히 있겠느냐?”
‘염원을 좇는 자’의 불꽃이 조금 사그라졌다. 김혁진에게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염원을 좇는 자’는 대답을 한 것 같았다. 단천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주제를 잘 아는구나.”
단천학이 빙그레 웃으며 김혁진을 바라보았다. 김혁진도 단천학을 쳐다봤다. 플레이어들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김혁진이 물었다.
“……끝입니까?”
“왜? 뭘 더 해주랴?”
“염원을 좇는 자를 없애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혈루를 사용했다고는 해도, 그 정도까지 방대한 자유가 허락되지는 않는다. 도대체 뭘 얼마나 바란 것이냐?”
단천학이 끌끌대며 웃었다. 그는 이곳의 긴박했던 상황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혈루는 분명 이곳을 타개할 만한 중요한 아티팩트였다.’
그런데 겨우 5분의 시간을 버는 것으로 끝이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애초에 ‘염원을 좇는 자’가 10분의 시간을 줬다. 그런데 왜 구태여 5분의 시간을 벌어준 말인가?
단천학의 미소 속에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 김혁진은 확신했다. 무엇인가를 알아내야만 한다. 5분의 특별한 시간은 그러라고 주어졌다.
“어르신은 어떻게 청색 불거인. 아니 염원을 좇는 자를 멈추셨습니까? 그저 존재의 격이 더 높기 때문입니까?”
“단순히 격이 높기 때문이었다면, 네놈은 저놈 앞에서 오줌을 지리며 도망쳤어야 했다.”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혁진도 안다. 지금 자신의 격보다, ‘염원을 좇는 자’의 격이 더 높다. 염원을 좇는 자가 훨씬 더 상위의 존재다.
“나의 염원이 놈의 염원보다 더 짙고 깊었기 때문이다.”
순간, 김혁진의 심장이 간질거렸다.
나의 염원이 놈의 염원보다 더 짙다. 더 깊다. 저 말이 왠지 모르게 김혁진에게 깊이 와 닿았다.
김혁진이 홀로 중얼거렸다.
“나의 염원이…… 더 짙고 깊다.”
직접 중얼거려보자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이건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불 거인이 처음 나타났을 때를 떠올려봤다. ‘불거인’과 관련된 모든 일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 바로 염원이었다.
예전. 불 거인이 처음 나타났을 때를 떠올렸다.
-‘불거인’이 ‘강력한 염원’의 흔적을 인식하였습니다.
-‘불거인’이 ‘강력한 염원’의 흔적을 찾기 시작합니다.
-‘불거인’이 ‘강력한 염원’의 흔적을 보다 정확하게 인지합니다.
그때도 분명 염원과 관련이 있었다. 이윽고 김혁진은 깨달았다.
‘단천학의 말은……. 염원과 관련된 영창이다.’
염원. 이것은 영창의 힌트였다. ‘청색 불거인의 심판’은 어찌 보면 불거인의 습격의 연장이라 볼 수 있다.
그때보다 더 강력한 불거인이 나타났다는 것이 다를 뿐. 장소와 배경. 그리고 내용이 매우 흡사했다.
‘그때도 영창이 필요했어.’
불거인을 사냥할 당시에도 영창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었다. 안서희의 숙적필멸결계에도 영창이 필요했었고.
‘영창에 답이 있어.’
다시 한 번 중얼거려 봤다.
“나의 염원이 더 짙고 깊다.”
단천학의 말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염원을 좇는 자’와의 전투는 염원과 염원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염원을 좇는 자’의 염원은 김혁진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다.
세계의 법칙이 그러한 염원을 가진 존재를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염원은?’
뒤를 힐끗 쳐다봤다.
DMC리버뷰자이.
높이 솟은 아파트 건물이 보였다. 저 곳에 보금자리가 있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누나도 이제 이 자리에 있고, ‘내가 네 엄마 하겠다고 해서 미안하다’며 울었던 어머니도 이제 같이 있다.
꿉꿉하고 냄새 나던 반지하가 아니라 대형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다. 팔자에도 없던 동생까지 생겼다.
‘잃고 싶지 않아.’
애초에 여기까지 달려온 것도 이 모든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키고 싶었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함께 있는 사람들. 모든 것을 다 지키고 싶었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죽지.’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기적 같은 기회로 맞이한 두 번째 인생인데. 어떻게 이렇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적으로 맞이한 이 기회를 기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나의 염원이 네 염원보다 깊고 짙다.”
김혁진은 직감할 수 있었다. 염원에도 등급이 있다. 구체적으로 ‘등급‘이라 표기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이 시스템과 세상의 법칙은 염원의 등급에 차등을 두고 있다.
‘파괴하려는 염원보다 지키려는 염원의 등급이 더 높다.’
마치 적화보다 청화의 등급이 높고, 청화보다 암화의 등급이 더 높은 것처럼.
김혁진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김혁진의 눈이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다. 뿐만 아니라 김혁진의 몸에서 암화(暗火)가 타올랐다. 김혁진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다.
“지키는 염원이 부수는 염원보다 더 높으며.”
거기까지 말했을 때. 김혁진의 ‘감각안’이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차렸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세계가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 세계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김혁진을 둘러싼 세계 전체가 마치 환상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염원을 좇는 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더 높은 염원이 더 높이 비상하리라.”
단천학은 김혁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 김혁진이 훌륭하게 해내었다.
‘그래. 그것이 염원의 영창이다.’
단천학은 알 수 있었다. 김혁진의 영창에는 힘이 있었다.
‘염원을 좇는 자’의 염원을 뛰어넘는 염원을 가진 영창이었다. 영창을 통해 잠재력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김혁진의 몸을 뒤덮고 있는 암화가 그 증거였다.
‘집중하거라.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 보일 것이다.’
단천학의 예상대로, 김혁진은 깨달았다.
’가짜다. 이 모든 것이.’
청색 불거인.
불거인.
그리고 이 퀘스트 ‘청색 불거인의 심판’까지.
모든 것이 가짜다.
‘내가 아까 느꼈던 감각안의 통증도 이것 때문이었겠지.’
가짜 세계가 감각안을 속이기 위해 강력한 힘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감각안이 버티지 못하고 끔찍한 고통을 느꼈던 것이다. 퍼즐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단천학의 말을 곱씹어 봤다.
-스스로 알아내거라. 네가 잘하는 것 있지 않느냐?
-5분의 시간을 벌어주마.
그리고 김혁진은 결국 알아냈다.
“혈루는…… 제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한 아티팩트였군요. 더 생각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단천학의 말이 말 그대로였다.
-5분의 시간을 벌어주마.
말 그대로 그것이 목적이었다. 5분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 5분 동안, 김혁진은 모든 것을 파악해야 했다. 김혁진은 단천학의 말을 똑바로 이해했다.
‘지키고자 하는 염원이 부수고자하는 염원보다 더 높다고 했다.’
그것이 세계가 정한 등급이다. 그런데 세계는 반대로 김혁진을 죽이고자 했다. 모순된다. 논리적이지 않다. 김혁진은 그것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세계의 법칙은 나를 죽일 수 없어.’
그러니까 이 퀘스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법칙의 퀘스트가 주어졌으니 그에 따른 제약도 많았다. 이 많은 불거인과 청색 불거인은 ‘환상’이다.
이곳 DMC리버뷰자이 일대에 집단 환영마법이 펼쳐진 셈이다. 계속해서 꼼수를 써가면서. 완벽한 확신이 생겼다.
“저는 강력한 염원을 이미 경험했었습니다.”
노란 부적 게이트에서 경험했다. 거기서 영창 하나를 배웠다. 지금 이 세계에는 거짓된 권위가 선포되어 있다. 실체가 아닌 환상으로 김혁진 자신을 죽이려하고 있다.
“그 곳에서도 저는 거짓된 권위를 부숴야만 했습니다.”
부수는 방법은 알고 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1분 남았다.”
“지금 이 세계는 거짓입니다.”
“거짓?”
“저는 이 것을 환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렁거리는 저 청색 불길. 공포스럽고 흉폭하지만, 저것은 ‘진짜’가 아니다. 한편, 김혁진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송기열은 김혁진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송기열은 예전 함소현에게 예지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예지서의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다.
-한 가닥의 화마(火魔)와 또 한 가닥의 화마(火魔)가 부딪치리라.
예전에는 불 거인과 불 거인이 싸운 미래를 예견한 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아니었다. 지금 똑똑히 보인다. 검은 불꽃에 휩싸인 한 가닥의 화마.
김혁진이. 그리고 청색 불을 피워 올리는 ‘염원을 좇는 자’가.
김혁진이 말했다.
“결국 저는 사냥이 아니라 환상을 부숴야 하는 것이겠지요.”
환상을 부수는 영창. 직관의 권능 통찰안을 활성화시키는 영창은 이미 의지로 활성화 시킬 수 있다.
송기열은 또 다른 예지서를 떠올렸다.
-한 가닥의 화마(火魔)와 다시 또 부딪치며 사냥의 미완성을 완성하리라.
함소현이 예지한 미래는 지금이었다. 사냥의 미완성. 미완성 될 수밖에 없는 사냥이다. 사냥 대상이 환상이니까. 그때의 예언이 모두 성취되고 있다.
-한 가닥의 화마(火魔). 그리고 한 가닥의 화마(火魔)가 결국 이빨을 드러내며.
김혁진이 씨익 웃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이빨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송기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소름이 끼쳤다. 검은 불꽃에 휩싸인 포식자 같았다. 마지막 예지서를 떠올렸다.
-영창과 영창과 영창의 기로 끝에서 거짓과 진실. 왜곡과 통찰이 서로를 할퀴리라.
-강력한 염원. 지키려는 의지와 생명이 그곳에 깃들리라.
김혁진의 영창이 이어졌다.
“이것이 곧 직관의 권능이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안.”
김혁진의 몸에서 검은 불꽃이 폭발했다. 목소리가 변했다.
[모든 거짓은.] [부서지리라.]쩌적-!
이 일대에 허공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쩌저적-!
청색 불거인의 몸. 불거인들의 몸에도 균열이 생겼다.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뭐야, 이거?”
“금이 가는데?”
랭커들 역시 이게 무슨 일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 부서지고 있어.”
마치 유리를 망치로 깨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렀다. 세계가 깨졌다.
김혁진과 플레이어들을 둘러싸고 있던 ‘거짓된 권위’가 모두 부서져 내렸다.
시스템 알림이 이어졌다. 노란부적 게이트때와 똑같은 알림이었다.
[거짓된 권능이 해제됩니다.] [‘거짓된 퀘스트’를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합니다.]세계의 법칙은 꼼수를 쓰면서까지 김혁진 자신을 죽이려 했다.
그에 따라 더욱 큰 보상을 내려야 할 거다. 김혁진은 그렇게 판단했다.
[퀘스트. ‘청색 불거인의 심판‘이 완벽하게 클리어 되었습니다.]일반 클리어가 아닌 완벽 클리어. 회귀자인 김혁진도 세 번밖에 듣지 못했던 알림이다.
[‘청색 불거인의 심판’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칭호. ‘영창의 군주’가 주어집니다.]칭호가 주어짐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호탑 틴틴이 ‘영창의 군주’에게 순종합니다.]제일 놀란 사람은 미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