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358)
#재능만렙 플레이어 358화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세니아의 질문에 김혁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아티팩트를 선물받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야.”
“분수에 맞지 않는 아티팩트요?”
김혁진은 어쩔 수 없는 척하며 선물함을 공개했다. 선물함에는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이 들어 있었다. 김혁진은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게 이 것을 선물해주신 분께서 나를 정말 좋게 봐주셨어.”
“그렇겠군요.”
이후 알려지게 되겠지만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은 레전드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초월등급일지도 모르지만 공개되기로는 레전드였다. 게다가 흔치 않은 성장형. 신연서에게 아수라가, 김혁진에게 이사벨이, 살바레토에게는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이 있는 셈.
“그런데 나는 이것을 선물해 주신 분의 의도만큼 정말 잘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이 없어서.”
소음의 지휘자는 전신 살바레토의 계약 수호자였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계약 수호자는 계약 플레이어의 성향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호자가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를 선택한다.
‘살바레토는 사실 상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그것에 기초하여 생각했다. 그렇다면 ‘소음의 지휘자’ 역시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저들 역시 인격이 있고 감정이 있다. 오늘 보여준 모습이 소음의 지휘자를 엄청나게 흥분하게 만들었다면, 이 ‘선물’은 실수일 수도 있다. 실수인지 아닌지.
그것은 좀 더 살펴봐야 알겠지만.
세니아가 말했다.
“수호자께서 응당 가치가 있다 생각하셨으니 하사하셨을 것입니다. 선물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겠지.”
세니아는 지금 김혁진의 의도를 대충은 눈치챘다. 김혁진이 정확히 무엇을 노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김혁진은 ‘마에스트로의 지휘봉’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그것을 넘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김혁진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까딱 잘못하면 수호자가 준 것인데 그까짓 것 필요 없습니다, 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연출은 위험합니다. 김혁진 플레이어.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단천학쯤 되는 인물이라면 수호자와 동등한 선상에서 대화를 할 수도 있겠지만 김혁진은 아니다.
대부분의 수호자에게 있어서 플레이어는 그저 유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유희거리는 유희로서 충실해야 한다. 유희거리가 기어오르거나 대들면 안 된다. 말대꾸를 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콘텐츠일 뿐이니까.
“그런데 과분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경우에 따라 상당히 무례한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수호자의 안목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 말까지 하려다가 참았다. 괜히 도와주려다 역풍이 불 수도 있으니까.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세니아. 나를 몰라?”
세니아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지만, 결국 수호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수호자들의 빈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원하는 것을 이끌어내는 것. 김혁진이 플레이 초기에서부터 줄곧 해왔던 거다.
“무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이 말을 꺼냈겠어?”
“그건 그렇습니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많은 수호자도 인정할 것이다. 세니아가 전 서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중간관리자가 되었다는 것은 즉, 수많은 수호자가 항시 시청하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
“사실 나는 이 선물을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그만이야.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라는 플레이어에게는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이야.”
“그렇습니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면서도 나는 이것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해서 그래.”
‘소음의 지휘자’라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소음의 지휘자라면 분명 냉철하고 이성적인 수호자니까. 용맹한 사자왕 같은 수호자가 준 것이라면 이런 딜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운이 좋아서 좋은 플레이를 보일 수 있었어. 내 목표는 전 서버에서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가 되는 거야.”
“이미 상당 부분 이루었습니다.”
“플레이어로서는 그래. 그러나 군주로서. 나는 살바레토 이상으로 대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은 살바레토의 독문무기였고 그가 사용할 때 가장 빛났다. 김혁진은 또 한 가지 사실에 집중했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를 선보여도, 최애는 어지간하면 바뀌지 않는다.’
저울의 아낙네.
석양의 거인.
천마산의 진주 등.
많은 수호자들이 그랬다. 그렇다면 과연 ‘소음의 지휘자’는 실수가 아닌 진심으로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을 넘겼을까? 아직 반반이다.
“귀중한 선물을 내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까 봐. 그게 두려워.”
입장은 확실히 전달했다. 어떤 수호자도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반은 성공이다. 수호자들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명분을 준 것 같았다.
“그렇다고 주신 것을 함부로 반환하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내 그릇의 부족함 때문에 그분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의 연출을 해냈다.
“그래서 나는 이 지휘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거야.”
세니아의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김혁진은 모르겠지만, 수호자들의 여론은 김혁진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진명을 밝힌 수호자들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고 진명을 밝히지 않은(못한) 수호자들이 열심히 떠들어댔다.
-개념이 있는 플레이어네.
-싹수가 보여. 플레이는 저렇게 해야지.
세니아의 시선이 김혁진에게 향했다.
‘정말이지.’
교묘한 줄타기를 정말 잘하는 플레이어다. 여론이 이렇게 우호적으로 형성되면 다음의 일은 편해진다. 플레이어의 의견에 수호자들이 힘을 얹어주기 시작하니까.
수호자들을 움직이려면 또다른 수호자들을 움직여야 한다. 김혁진은 그 기본적인 것을 잊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상황을 좋아하는 수호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니스의 상인.
라스베이거스의 목동.
진명을 밝힌 두 수호자가 한 번에 나섰다.
[‘베니스의 상인’이 거래를 제안합니다.] [‘라스베이거스의 목동’이 내기를 제안합니다.]* * *
김혁진은 베니스의 상인과 라스베이거스의 목동 중 하나가 등판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거래 혹은 내기라는 형태를 통해, 김혁진에게 더 큰 보상을 내려줄 수 있을 테니까.
‘누구를 선택하지?’
안정적으로 제안해서 적당한 이득을 취하려면 ‘베니스의 상인’의 제안이 유리하다. 도박수를 던져서 아주 큰 이득을 취하려면 ‘라스베이거스의 목동’의 제안이 좋다. 그런데 그 때 또다른 수호자가 메시지를 전했다.
[‘소음의 지휘자’가 당신의 깊은 통찰에 감탄합니다.]소음의 지휘자는 김혁진 자신을 정말로 좋게 보는 듯했다. 자신의 판단이 감정에 의한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소음의 지휘자’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합니다.]의외였다. 수호자가 콘텐츠따위에게 실수를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직접 보내다니.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어?’
김혁진은 피식 웃을 뻔했다. 필사적으로 웃음기를 감췄다.
아까까지는 반반이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거. 소음의 지휘자가 노리는 게 따로 있는 거네.
소음의 지휘자가 무슨 의도로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을 준 건지는 깨달았고 그 의도를 완전히 읽었지만, 겉으로는 황송한 척하기만 했다.
‘꼼수다.’
수호자는 플레이어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인간이 게임영상을 보면서, 게임 속 캐릭터에게 사과하지 않듯.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소음의 지휘자는 나를 엄청나게 좋게 보고 있다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쉽게 잘 넘어갔어.’
그렇다면 소음의 지휘자가 노리고 있는 다른 것이 있다는 얘기다.
‘소음의 지휘자의 최애는 살바레토다. 그는 살바레토에게 어떻게든 이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을 전해주고 싶었을 거야.’
그렇게 가정한다면 이 상황이 말이 된다.
사실 ‘소음의 지휘자’는 이 아이템을 살바레토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나 줄 수 없었다. 살바레토가 그만한 업적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을 획득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업적을 쌓은 사람은 김혁진뿐. 그래서 소음의 지휘자는 이 아이템을 김혁진에게 주었다.
‘내가 살바레토와 거래하길 바라고 있는 거야. 그게 [소음의 지휘자]의 진의다.’
세계의 법칙조차 통찰했던 김혁진이다. 상황을 눈치챘다. 사실 소음의 지휘자가 김혁진 자신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은 이게 아니라는 거다. 김혁진은 소음의 지휘자의 의도를 읽었고, 소음의 지휘자도 김혁진의 생각을 읽었다.
[‘소음의 지휘자’가 또 다른 제안을 요청합니다.]고민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소음의 지휘자가 또 다른 요청을 하고 있는 거다. 명분도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목동. 베니스의 상인 대신 소음의 지휘자를 선택했다.
처음 듣는 알림이 들려왔다.
[진명의 수호자 ‘소음의 지휘자’의 히든 시나리오가 생성되었습니다.]진명의 수호자?
보통 히든 시나리오면 히든 시나리오지, ‘진명의 수호자’라는 수식언이 붙지 않는다. 이번에는 평소와 무엇인가가 달랐다.
순간,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세니아가 중간관리자의 권한으로 일시정지 권능을 행사했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는 중간관리자의 매뉴얼에도 존재하는 내용이며, 합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약간의 설명?”
“김혁진 플레이어는 전 서버 최초로 [진명 수호자의 시나리오]를 획득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부연설명 하겠습니다. 질문은 부연설명이 모두 끝난 후 받도록 하겠습니다.”
세니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은 약 5분 동안 진행되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오히려 조금 아리송해졌다.
‘그래서 최애가 나라는 거야, 살바레토라는 거야?’
설명 자체가 조금 애매했다.
수호자인 ‘소음의 지휘자’를 마음을 깊이 움직였고, 그에 따라 소음의 지휘자는 평생에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진명 수호자의 시나리오’를 발생시켰다고 했다.
평생에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으며, 어지간한 수호자들은 이 ‘진명 수호자의 시나리오’를 발발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수호자에게도 상당한 페널티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내가 소음의 지휘자의 의도를 정확히 읽은 건 맞긴 맞는데…….’
아무튼 김혁진의 예상 대로이기는 했다. 결국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은 살바레토의 것이다. 소음의 지휘자도 그걸 원하고 있다.
‘좀 헷갈리네. 제일 중요한 진명 수호자의 시나리오는 나한테 준 거고.’
그러면 이렇게 판단을 해볼 수도 있었다.
‘최애가 나라고 치고. 내가 소음의 지휘자의 마음을 완전히 읽고 의도를 눈치채서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을 살바레토에게 넘기는 판단까지 하고 나서야 실행 가능한 시나리오를 내게 준 건가? 결국 최애인 내게 이 시나리오를 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살바레토는 소음의 지휘자에게 있어서 조연이었다. 소음의 지휘자가 진정 원하는 건 김혁진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렇다고 보기엔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이 너무 뛰어난 아티팩트인데.
“설명은 모두 끝났습니다. 아.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과 라스베이거스의 목동께서도 이번 시나리오에 관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셨습니다.”
“한 시나리오에 세 분이 함께 관여한다고?”
보통 수호자가 주는 시나리오는 한 수호자당 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시나리오에 세 명의 수호자가 붙었다. 이 역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보상을 모두 따로 내리시기 원합니다.”
그 말은 즉, 같은 상황에서 각각 다른 연출을 원한다는 뜻이다.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보여준다.’
소음의 지휘자.
베니스의 상인.
라스베이거스의 목동.
세 수호자가 내린 시나리오를 김혁진의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