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392)
김혁진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진명이 부파파?’
진명. 진명. 여태까지 많이도 들어왔다. 실제로 소음의 지휘자가 내리는 ‘진명 퀘스트’까지 수행하지 않았던가. 그를 통해 수호탑 안서희를 완성형으로 진화시키기까지 했고.
‘부파파가 진명이라면……. 내가 아는 그 부파파인가.’
아테네의 불꽃 속에서 기뻐하며 승천한 부파파 장로. 아무래도 그인 것 같았다.
[진명을 밝힌 ‘검의 숲을 향한 망자’와의 대화의 테이블에 응하시겠습니까?]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의 테이블은 또 뭐야?’
처음 듣는다. 과거에도 이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김혁진은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공략이나 플레이피디아 같이 대중에게 공개된 곳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공간이 밝아졌다.
[대화의 테이블에 입장합니다.]김혁진은 몸이 딱딱하게 굳어짐을 느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김혁진은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
바닥은 모두 하얀색 천연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테이블 역시 하얀 대리석 테이블이었다. 약간 떨어진 자리에 세니아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세니아. 이건 뭐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정보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세니아 역시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중간 관리자의 매뉴얼에 없는 내용. 다시 말해, 아직 제대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세니아. 너도 움직일 수 없어?”
“네. 저도 움직일…… 아. 매뉴얼에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이곳은 [대화의 테이블]이라는 특수한 공간으로서, 대화 외의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네.”
“그러나 이곳을 만들어낸 주체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테이블의 주인은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김혁진은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잘못 걸리면 큰일 나겠는데.’
업데이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던 ‘대화의 테이블’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화의 테이블을 만들어낸 주체는 이곳에서 움직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곳에 들어온 플레이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김혁진이 그곳을 쳐다봤다. 밝은 빛 사이로 그림자가 보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붉은 수염. 붉은 눈썹.
“부파파 장로님.”
“귀인이시여.”
부파파 장로가 뛰어왔다.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부파파가 맞았다. 김혁진은 조금 안심했다. 부파파가 허튼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부파파가 자리에 앉았다. 김혁진이 물었다.
“수호자…… 이십니까?”
“아닙니다.”
메시지를 받았을 때, 수호자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수호자들이 보내오던 메시지와는 느낌이 약간 달랐었다. 부파파가 대답해줬다.
“저는 현재 수호령입니다. 수호자 전 단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호령이라는 전 단계가 존재하는군요.”
“네. 궁금한 것이 많으실 테지만,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일정량 이상의 ‘성흔’을 인생에 새기게 되면 세계는 그 것을 ‘업적’으로 인정한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이는 죽어서 수호령이 된다. 그러면 수호령들이 모여 살게 되는 하나의 또다른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살게 되는데,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낸 이들이 진명을 가진 수호자가 된다.
“그들이 바로 진명을 가진 수호자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쌓은 [업적]을 기반으로 하여 큰 [수호력]을 쌓아 올립니다. 수호력은 수호자들의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일정 수준 이상의 수호력이 쌓이게 되면, 수호력은 스스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수호자는 스스로 소멸을 원하지 않는 한, 소멸하지 않습니다.”
부파파의 말이 조금 더 빨라졌다. 시간이 아주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김혁진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려 했다.
“막 태어난 수호령은 자신의 인생을 세 가지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시 한 번 위대한 업적을 쌓아 진명을 가진 수호자로 승격되는 것.
“또다른 하나는 업적을 쌓지 않고 편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진명이 없는 수호자]로 승격 됩니다.”
진명이 없는 수호자가 된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수호력을 점점 잃게 되고, 굉장히 긴 세월 동안 조금씩 소멸해간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명이 없는 수호자들은 본래의 생각이나 목적 등은 잊게 됩니다. 수호령에 따라 다르지만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원초적인 감정이나 욕구만이 남게 됩니다.”
세니아 역시 부파파의 말에 집중했다. 채널 내에서 툭하면 아우성치는 ‘진명이 없는 수호자들’. 그들은 대부분 단순했고 원하는 바가 한결같았다.
‘그렇다면 진명이 없는 수호자들은…… 수호령들의 사념 같은 건가.’
그들은 코인을 지불하지도 않고, 그저 원하는 바를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생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하게 말이다.
“물론 그러한 수호령들도 마음먹기에 따라 진명을 가진 수호자로 승격될 수는 있습니다.”
세계는 이미 한 번 ‘위대한 업적’을 가진 이들을 상당히 배려한다고 했다. 원한다면 다시 성흔을 새기고 진명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시간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에 따라 고통과 인내도 따르겠죠. 그래서 대다수의 진명이 없는 수호자들은 고난의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미 한 번 힘들게 살아서입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성흔을 새기고 살아가기에 그들은 너무 지쳤습니다. 그들의 인격은 생명체의 시간으로는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동안 점점 무뎌지고, 의욕을 잃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슬픈 얘기인데, 부파파 장로님에게서는 슬픈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네요?”
“전혀 슬프지 않습니다. 수호령이 되었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는 것이고, 그 것은 꿈을 결국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유희를 즐기다가 사라지는 것도 전혀 나쁜 일은 아니죠.”
부파파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부파파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갓 태어난 수호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호력을 모두 사용하여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세상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놀라운 기적들의 대다수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수호령들의 특권이죠.”
“수호력은 생명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기적을 발현한 대가로 수호령은 소멸합니다.”
부파파가 씨익 웃었다.
“그래서 저는 기적을 일으키려 합니다.”
* * *
김혁진은 움직일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입으로 말을 내뱉는 것뿐이었다.
“뭘 하려고 하십니까?”
“마법사의 붉은 보석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원래 노아를 통해 만들려고 했었다.
“노아를 통해 만들면 됩니다. 수호력을 소모하면 부파파 장로님은…….”
“맞습니다. 소멸합니다.”
부파파가 빙그레 웃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수호자로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이룰 것은 모두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그자는 믿을 수 없습니다.”
“노아에 대해 잘 아십니까?”
“노아는 마탑 소속의 마법사입니다. 아니. 마법사였습니다.”
“마법사요……?”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었다. 노아가 마법을 썼던가.
“현재는 마법을 봉인당했겠지요. 정확히는 스스로를 봉인했을 겁니다. 마탑과 연결되지 않은 동 떨어진 세상으로 도망쳤지만 그래도 두려웠을 테니……. 그래서 마법을 모조리 봉인했을 겁니다.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을 테니까요.”
“누구로부터 스스로를 감춘단 말입니까?”
“마탑주. 겔론. 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쳤거든요.”
김혁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탑주 겔론의 물건이라는 게 설마…….”
“맞습니다. 초월급 아티팩트. 이사벨 님이십니다.”
마탑주 겔론으로부터 훔친 물건 이사벨. 그것 때문에 지구의 한국 서버로 도망을 쳤고, 스스로의 마법을 봉인했다.
유플렉스 던전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은 원래는 연결되지 않았던 세상에 강제로 침입하기 위해 무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의 법칙이 옭아맸겠지.’
연결되지 않은 세계를 억지로 연결시켜 도망쳤다. 그래서 세계의 법칙이 노아를 유플렉스 던전 4층에 묶어 버렸다.
‘그러면 말이 되네.’
김혁진이 하나 더 물었다.
“마탑주 겔론은 어떤 인물입니까?”
“위험한 인물입니다. 한때, 검림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갔던 마탑의 탑주니까요.”
“검림을요?”
그런 인물이 이사벨은 어떻게 갖고 있었던 겁니까? 물으려고 했지만 묻지 못했다.
“아쉽게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마법사의 붉은 보석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부파파는 김혁진의 품을 뒤져서 하늘 사자의 심장, 달의 조각, 정체 모를 붉은 보석을 꺼냈다. 그 자리에서 망치를 꺼내 두드리기 시작했다.
땅! 땅!
약 3분간 망치질이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저절로 아이템들 사이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꽃의 기운이 익숙했다. 정순한 불꽃 아테네. 그 기운이었다.
불꽃이 높이 치솟아 올라 이글거렸다. 불꽃 속에서 세 가지 아이템이 융합되어 하나의 아이템이 되었다.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정체 모를 붉은 보석이 ‘마법사의 붉은 보석’으로 바뀌었다. 부파파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괴로운 것 같았다.
“완성 되었습니다. 제 수호력이 충만했다면, 이사벨님을 완전히 회복시켜드릴 수 있었을 텐데.”
부파파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 수호력이 부족합니다.”
김혁진은 직감했다. 지금 부파파는 유언을 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유언. 수호자가 되지 못하고, 여기서 완전히 소멸해 버릴 것이다.
“부파파 장로님.”
“네. 저는 소멸할 겁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쁩니다.”
그런데 그때 이사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파파. 늙은이. 제정신이야? 소멸이 뭔지 알 만한 놈이 왜 이래?”
이사벨이 현신했는데도, 김혁진은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이 공간에 무엇인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이사벨. 그게 무슨 말이야?”
“소멸이란 존재의 사라짐을 뜻해. 이 세상에 부파파는 없었던 거야 처음부터. 모든 이에게 잊혀지겠지. 소멸이란, 모두의 망각 속에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 사그라지는 거야. 타들어가는 낙엽처럼. 영혼이 그렇게 사라져 버려.”
부파파가 가볍게 웃었다. 이사벨의 말에 딱히 대답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소멸은 정해진 수순이고, 그 소멸이 그렇게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기하게도 이사벨은 ‘대화의 테이블’에서 자유로이 걸을 수 있었다. 부파파 앞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소멸은 못 막는다. 이사벨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김혁진은 거기서 신비로운 감각을 느꼈다.
‘이사벨에게서……. 상서로운 힘이 느껴진다.’
정확히 무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신비한 힘이었다. 김혁진은 이사벨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영창을 읊는 거야.’
검의 여제. 이사벨이 입을 열었다. 영창이었다.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영창이었다.
이사벨의 말이 곧 영창이 되는 경지. 무형식의 영창이었다.
“너는 여기서 죽지만 너의 역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가 너를 잊어도 내가 너를 잊지 않겠다.”
부파파가 무릎을 꿇었다. 부파파의 몸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단천우가 소멸될 때와 비슷했다.
“너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내 영혼에 네 이름을 기억하겠다.”
이사벨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팔뚝에 글자를 새겼다.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글자가 이사벨의 팔뚝에 새겨졌다.
-부파파.
세 글자가 팔뚝에 새겨진 상태로 흡수 되었다. 힘을 모두 소모했는지, 이사벨이 검의 모습으로 변했다. 땅에 떨어졌다.
검 손잡이에 ‘부파파’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검이 된 이사벨과 대장장이의 붉은 보석. 그리고 마법사의 붉은 보석이 맹렬히 반응했다.
음각으로 새겨진 ‘부파파’ 글자가 유독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