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398)
#재능만렙 플레이어 398화
도도도도!
김다롱은 거리낌 없이 피리를 향해 달렸다.
페드로는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했다. 이사벨을 향해 내뱉었던 경탄의 신음과는 약간 다른 감탄이었다.
‘귀여워!’
게다가 저 앙증맞은 손으로 피리를 집어 들고서 어깨를 쭉 펴고 있는 모습이란.
‘너무 귀엽다!’
이사벨을 접하고서 상남자라는 허울을 벗어버린 페드로는 자신의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졌다.
“너무 귀엽습니다. 지금은 손을 내밀고 있는데, 무엇을 원하는 것입니까?”
한 손에는 피리를, 또 한 손은 김혁진을 향해 내밀고 있는데, 저 행위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다. 김혁진이 대답했다.
“최근에 맛 들린 뿌링클 치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뿌…… 뭐요?”
페드로는 발음조차 하기 어려웠다. 뿌링클 치킨이라니. 그런 보물이 있나? 페드로는 제작 계열의 명인이고, 따라서 저 피리가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지니는지.
아이템 자체가 가지는 위엄을 금방 알아봤다. 따라서 ‘뿌링클 치킨’이 저 보구와 맞바꿀 수 있는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가만.’
그런데 발음이 익숙하다.
‘치킨?’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치킨인가? 그러고 보니 김혁진의 말 중에 ‘맛 들린’이라는 표현까지 있었다.
“후라이드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김다롱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김혁진이 어이가 없어 해석해줬다.
“후라이드와 뿌링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무튼 닭을 기름에 튀긴 음식을 말씀하시는 거죠?”
페드로는 보고 말았다. 김다롱의 눈이 커지고 손이 바르르 떨리며 혀로 입맛을 다시는 것을 말이다.
‘다람쥐가 치킨을 좋아해?’
처음 안 사실이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귀엽습니다. 귀여워서 미칠 것 같습니다. 김혁진 씨는 도대체 못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저렇게 멋진 언니와 결혼을 했고. 게다가 저토록 귀여운 다람쥐를 가졌다니. 문득, 김혁진이 굉장히 부러워졌다.
김혁진은 김다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김다롱은 자신이 획득한 ‘피리’를 빼앗길까 싶어 품속에 감추었다.
[‘김다롱’이 선제시를 요구합니다.]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다롱아.”
지금의 상황은 수호자들이 모두 보고 있다. 그에 맞춘 연출해 주기로 했다.
“그 아이템은 신성한 거야.”
김다롱이 뒷걸음질 쳤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템으로 거래를 할 수는 없어.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물건이니까.”
그러나 저 물건을 사용할 수는 없다. 감각안이 경고하고 있다. 저 물건에 욕심을 내는 순간, 생명자체가 위태로워진다. 무서운 물건이다. 김혁진 자신은 아직 저 물건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었다.
“그 것은 일단 나한테 넘겨. 그 것과는 별개로, 충분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게.”
김다롱은 싫다는 듯 고개를 휙휙 젓다가 김혁진과 눈이 마주쳤다.
머리 위에 [;;;] 표시가 떠올랐다. [;;;] 표시는 이내 [;;;;;] 로 변했다가, 땀표시가 머리 위를 가득 채웠다. 대충 세어봐도 30여개의 [;] 표시가 보였다.
김다롱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쭈뼛쭈뼛 걸어왔다.
“고마워. 다롱.”
김혁진은 아이템을 받아들지 않았다. 김다롱에게 말했다.
“나는 수호자의 신물을 만질 자격조차 없어.”
검제 이사벨조차 수호자의 소멸에 묵념을 보냈다. 이사벨은 김혁진 자신의 편이다. 자신을 위험하게 만든 이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벨 스스로 소멸시킨 대상을 향해 무려 30초나 묵념을 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았다.
김혁진이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이사벨. 네가 이것을 대신 받아줄 수 있겠어?”
“어쩌려고?”
“좋은 곳에 묻어두고 추모해야지. 수호자의 위명을.”
이사벨은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딱히 이렇다 할 말은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세니아의 날개가 쉴 새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제 독점 계약자이지만…….’
가끔은 저런 모습이 무섭다. 무려 수호자의 신물을 눈앞에 두고도 어떻게 저렇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혁진의 선택 자체는 옳았다. 정답이었다.
세니아가 물었다.
“김혁진 플레이어. 어째서 수호자의 신물을 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수호자의 신물을 가질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 게다가 지금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를 향한 애도와 묵념의 시간이라고 생각해.”
“[양치기 소년]은 당신을 적대시했으며, 율법의 빈틈을 이용하여 당신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성흔을 새긴 위대한 수호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그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게 마땅해. 그를 향한 추도는 내가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의식 같은 거야.”
세니아의 날개가 계속해서 떨렸다.
‘당신의 대답이 옳습니다.’
저 말이 너무나 맞다. 너무나 옳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김혁진은 스스로 옳은 길을 찾아가고 있다.
실제로 지금 세니아의 채널에서, 수많은 수호자들이 김혁진을 칭찬하거나 ‘양치기 소년’을 향해 묵념하고 있다.
눈앞의 신물에 욕심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제 일을 해나가는 플레이어.
자신의 분수를 알고 분수대로 행동하며, 초심을 잃지 않는 기특한 플레이어.
콘텐츠로서의 매력도 넘치는데, 인간적인 매력도 뛰어나다.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함을 갖춘 플레이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이사벨이 말했다.
“검림의 무덤으로 안내할게.”
“검림의 무덤?”
“수호자들이 찾아와 스스로 소멸을 선택하여 묻히는 영광스러운 곳. 수호자들이 소멸하는 세계. [최후의 장]이 열 번도 넘게 펼쳐졌던 신성한 곳이야.”
김혁진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검림에 왜 수호자들의 무덤이 존재하는 건지. 왜 거기서 ‘최후의 장’이 펼쳐지는 건지. 양치기 소년이 말하던 ‘과거의 영광’은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안내해 줘.”
이사벨의 안내에 따라, 검림을 걷기 시작했다.
* * *
공간이 움직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겨울성’에서 받아본 느낌이었다. 분명히 일자로 걷고 있는 것 같으나 걸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계가 변했다.
‘봄.’
어느 순간 봄이 되었고,
‘여름.’
또 걷다 보니 여름이 되었다.
’가을.’
붉은 철로 이루어진 단풍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겨울.’
눈이 내렸다. 페드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건 백금?’
백금으로 만들어진 눈이었다. 말하자면 백금설(白金雪). 백금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손을 대보았다. 백금설이 녹아내렸다. 가져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 금이 떨어져 내리는 이 기현상을, 페드로는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눈보라가 점차 거세졌다. 페드로는 이 눈보라가 왠지 외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느낌이 묘하네.’
백금설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걷는데 지장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적막감과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이사벨이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네, 언니.”
이사벨은 페드로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듯 피식 웃고서 페드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무덤으로 향하는 길에는, 소멸을 선택한 수호자들의 마지막 감정들이 녹아있어. 이 감정의 잔재에 동화되는 순간, 인간은 낙엽처럼 바스라질 거야.”
다시 또 봄이 되었고, 여름이 되었고, 가을이 되었고, 겨울이 지났다. 4계절을 7바퀴 지났다. 이사벨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마지막 겨울을 지날 거야.”
김혁진 일행은 땅바닥에 검이 거꾸로 꽂혀있는 곳에 도착했다.
[‘검림의 초입’에 도착하였습니다.] [‘소멸과 환생의 장’에 입장합니다.]순간, 필드가 변했다. 잘 관리된 공동묘지였다. 관리인은 보이지 않았으나,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저만치 멀리 거대한 나무 하나가 보였다. 지름이 3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나무였다. 그 나무는 그 육중한 크기만큼이나 광활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사벨이 그 쪽으로 움직였다.
“소멸목이야.”
“소멸목?”
“수호자가 스스로 소멸을 선택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때. 그때 소멸목 앞에서 최후의 장을 펼쳐.”
김혁진이 궁금했던 것 중 하나를, 이사벨이 스스로 설명해 주었다.
“검제는 수호자들을 소멸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사신(死神)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어.”
“수호자들을 소멸시켜 준다고?”
“스스로 소멸을 원해 찾아오는 수호자들이 있거든.”
“왜?”
“나도 그만큼 오래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몰라.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거든. 아마도 그래서라 짐작돼.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은데, 도전하기에 그들은 너무 강대하거든. 이룰 것도 없고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조차 찾지 못할 때. 그때 이곳을 찾아와.”
“…….”
그렇다면 검제는 그 수호자들을 죽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사벨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7번의 겨울을 지나 이곳에 도착하면, 그들은 선택을 되돌릴 수 없어.”
“무슨 뜻이야?”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변심하는 수호자들이 있거든.”
김혁진은 직감했다. 변심한 수호자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검제의 힘이 필요하다. 마음을 바꾼 수호자를 강제로 죽일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검제는 수호자를 반드시 죽여야 하고, 수호자는 반드시 검제를 죽여야만 살아나갈 수 있어.”
“변심하는 수호자가 많아?”
“열에 한둘 정도.”
또 궁금해졌다. 아까 ‘양치기 소년’이 말하던 ‘네 오라’라는 내용. 아무래도 그 ‘오라’는 ‘오라버니’ 혹은 ‘오라비’를 뜻하는 말 같다. 거기까지 묻지는 않았다.
이사벨이 피리를 건넸다.
“소멸목 앞에 피리를 바쳐. 이 곳에서라면 만질 수 있을 거야.”
김혁진이 피리를 받아 들었다. 무릎 한쪽을 꿇고서 피리를 바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성해 보이는 의식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소멸목에서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내렸다. 수호자가 소멸할 때처럼, 피리도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스템 알림이 들려왔다.
[수많은 수호자가 ‘양치기 소년’의 소멸에 묵념합니다.] [수많은 수호자가 ‘양치기 소년’의 애도의식에 동참합니다.]따돌림을 당했든, 싫어했든, 어쨌든 그들도 죽음 앞에서 애도에 동참했다. 약 30초 뒤. 메시지가 전해졌다.
[‘원탁의 안개꽃’이 당신에게 ‘수호석’을 선물합니다.]…….
[‘푸른빛의 결계’가 당신에게 ‘수호석’을 선물합니다.]무려 17개의 수호석을 선물 받았다.
설명를 살펴보니 ‘미량의 수호력이 담긴 돌’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미량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수호력을 선물 받았다. 이 돌은 안서희에게 모두 넘겨주면 될 것 같았다.
중간 관리자. 세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혁진 플레이어는 응당 취해야 할 예의를 모두 갖추었으며, 수호자의 소멸에 대해 해야 마땅한 도리를 모두 다했습니다.”
마치 매뉴얼을 읽는 것 같았다.
“소멸목이 [양치기 소년]의 완벽한 소멸을 인정하였습니다.”
세니아의 날개가 양옆으로 펼쳐졌다.
“소멸목의 신성한 애도의식에 의하여, [양치기 피리]에 담긴 수호자의 의지가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가루가 되어 사라졌던 ‘양치기 피리’가 다시 생성되었다. 양치기 피리는 순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소멸목 중앙에 떠서 찬란한 빛을 뿌렸다.
세니아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양치기 피리를 조심스레 손바닥으로 받쳐 들었다.
“마땅한 예를 모두 취한 애도자에게, 소멸목이 소멸된 수호자의 유품을 선사합니다. 유품의 이름은 양치기 피리이며 [양치기 소년]을 상징했었던 물건입니다.”
세니아가 천천히 다가와 양치기 피리를 김혁진에게 건네주었다. 소멸목의 나뭇잎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다시 계절이 바뀌었다. 소멸목의 변화가 계절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앙상한 가지만이 남았다. 하늘에서는 백금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소멸목이 신성한 애도의식의 종료를 선포합니다.]그리고 그 순간, 세니아에게서 갑작스런 변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