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00)
#재능만렙 플레이어 400화
[‘순혈의 검제’가 퀘스트를 내리기 원합니다.]수호자 알림이었다.
김혁진이 이사벨을 쳐다봤다. 금발 머리. 순백색 사제복 같은 옷을 입고, 싸구려 철검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
적어도 김혁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수호자라니.
“뭐야, 이 수호자 알림은?”
“내가 너한테 정식으로 퀘스트를 주겠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네가 수호자라고?”
수호자는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삶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고 오랜 시간을 심심하게 보내온 이들은 플레이어들의 처절한 사투를 유희처럼 즐긴다. 그마저도 지루해질 때쯤이 되면 소멸을 선택한다.
이사벨 역시 그와 같은 부류였던가.
“수호자와 동격이 아니라면, 어떻게 수호자를 죽일 수 있겠어?”
“…….”
“왜? 내가 수호자인 게 마음에 안 들어?”
김혁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수호자들은 플레이어들의 사투를 놀이처럼 즐긴다.’
어쩌면 이사벨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도 그러고 있거나.
수호자들은 보통 진지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진지할 필요가 없는 존재니까. 천공의 고래일족이 ‘머리 쓰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수호자들 역시 본능과 원초적인 재미에만 충실해서 살아간다.
‘그럼 나는?’
수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나한테 수호자라는 걸 왜 안 밝혔어?”
“네가 물어보지 않았잖아.”
이사벨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내가 수호자인 게, 왜? 그게 왜 네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건데?”
이사벨이 들고 있는 철검이 바르르 떨렸다.
1급 중간 관리자로 승격한 세니아는 해일처럼 덮쳐오는 이사벨의 감정에 날개를 추슬러야만 했다.
‘검제의 감정이 변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마나가 동화된다.’
1급 중간 관리자의 격으로도 그 감정과 마나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는 없었다.
이사벨의 격이 세니아의 격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벨에게서 큰 슬픔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김혁진이 말했다.
“기분 나쁘지 않아.”
“기분. 나빠 보이는데. 퀘스트 받기 싫으면 거절해.”
김혁진은 자신이 왜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어렵지 않게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상대가 수호자라면…… 내가 무조건적으로 맞춰주고, 그를 이용해 이득을 뜯어내야 한다.’
그것이 플레이어가 수호자를 대하는 방식이다.
플레이어는 수호자와는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수호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해 주면서, 그들이 제공하는 이득을 취하는 어릿광대. 그게 플레이어의 본질 아닌가.
솔직하게 말했다.
“기분 나빠.”
이사벨이 철검을 회수했다. 김혁진과 눈을 마주쳤다. 이사벨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왜?”
“…….”
“내가 수호자인 게 왜? 그걸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잘못이야, 아니면 내가 수호자인 것 자체가 잘못이야?”
“…….”
김혁진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김혁진이 입을 열었다.
“너랑 내가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고민해서 기분이 나빠.”
“뭐?”
김혁진은 사실 이사벨이 수호자든, 수호자가 아니든 크게 상관은 없다. 수호자여도 이사벨은 이사벨이고, 수호자가 아니어도 이사벨은 이사벨이니까.
이사벨이 이사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사벨이 수호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김혁진은 스스로 위축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수호자와 플레이어는 동등해질 수 없다. 이사벨과 자신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나는 달변가가 아니니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이 와중에 페드로와 세니아는 조금 황당했다. 김혁진이 스스로 달변가가 아니란다. 둘 다 똑같이 생각했다.
‘저는 김혁진 플레이어같은 달변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만.’
‘당신이 달변가가 아니면 누가 달변가야?’
어쨌든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나는 너랑 동등하게 만나고 싶은 거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김혁진은 이런 말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하기로 했다. 딱히 돌려서 표현할 말이 없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
김혁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이사벨에게 이렇게 대놓고 표현한 적은 처음이다.
“그런데 네가 수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위축됐어. 너랑 내가 그렇게 만날 수 있을까? 네가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잠시나마 자신이 없어졌고, 그 사실이 기분이 나빴어.”
알림이 들려왔다.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당신의 위험한 사랑을 응원합니다.]이사벨이 허공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떤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은밀한 다과회’를 준비합니다.] [‘순혈의 검제’와 ‘김혁진 플레이어’의 은밀한 다과회가 시작됩니다.]순간, 공간이 일그러졌다.
* * *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협주곡. 네모난 형태의 원목 식탁. 그 위에는 달콤한 디저트들과 이름 모를 차 두 잔이 놓여 있었다.
김혁진이 물었다.
“이건 뭐야?”
“은밀한 다과회. 이 공간은 너와 나만의 공간이야. 중간 관리자도, 다른 수호자들도 참관이 불가능해. 이곳을 만들어낸 주체자인 [화살 쏘는 아기천사]만 이곳의 대화를 일부만 엿들을 수 있고.”
중간 관리자를 포함하여 다른 수호자들조차도 이 얘기를 듣지 못한다. 화살 쏘는 아기천사도 얘기를 제한적으로만 들을 수 있단다.
이사벨이 말했다.
“내가 수호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네가 기분이 나쁜 줄 알았어.”
이사벨은 초콜릿을 하나 집어 들었다. 껍질을 까고서 입속에 넣었다.
부드러운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혀를 굴려 먹었다.
초콜릿을 맛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무안함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주 짧게 말했다.
“미안해.”
너무 빠르게 말해서 김혁진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김혁진이 듣기에는 ‘ㅁ’ 정도만 들렸다. 그만큼 빨랐다.
“뭐라고?”
“미안해.”
또 너무 빨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말을 이해했다.
“뭐가?”
“내가 먼저 화냈잖아. 왜? 내가 수호자인 게 마음에 안 들어? 이러면서.”
“내 태도가 먼저 삐딱했던 것 같아.”
김혁진도 괜스레 무안해졌다. 뭐랄까. 이 상황이 딱히 익숙하지가 않았다. 김혁진도 사과했다.
“나도 미안해.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도 내 기분을 잘 모르겠어서 태도가 좀 안 좋았어.”
기분 나쁜 티를 냈던 것도 사실이다. 이사벨과 김혁진의 대화는 따뜻한 조명만큼이나 부드럽게 이어졌다.
수호자와 최상위급 플레이어간의 대화가 아니라, 그냥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 같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특별할 것 없이 지극히 무난한 대화였다.
김혁진이 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수호자였어?”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게 가능해? 업적을 쌓아 수호령이 된 다음, 그 다음에 다시 한 번 업적을 쌓아야 수호자가 된다며?”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수호자였어. 진명과 목적을 가진.”
대부분의 수호자들은 ‘목적’을 상실한다. 그러나 이사벨은 달랐다. 진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되 목적과 임무를 가지는 수호자다.
“마탑주는?”
“마탑주는 불멸자야.”
“불멸자?”
처음 듣는 개념이다. 수호자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모르는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나와버렸다. 이사벨이 설명을 이었다.
“수호자들은 모든 것을 다 이루었어. 더이상 이룰 목적이 없는, 위대하지만 의지 자체는 소멸된 사념에 가까워.”
알림이 들려왔다.
[‘은밀한 다과회’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가 오가고 있습니다.] [‘은밀한 다과회’의 유지 시간이 대폭 감소합니다.] [‘은밀한 다과회’를 보다 ‘다과회답게’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이사벨은 그 알림을 무시했다.
“그러나 불멸자는 반대야. 위대한 업적을 이미 이루었지만, 그보다 더 높은 업적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이들. 그들은 수호자들처럼 유희를 즐기지 않아. 자신의 목표에만 매몰되어 살아가.”
“마탑주도 그중 한 명? 그가 원하는 게 뭔데?”
“마도의 끝을 보는 것.”
그러나 그 끝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끝’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탑주는 죽지 않고 영원히 ‘마법’이라는 학문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보통 불멸자들은 괴물이 되게 마련이야. 하나에 미쳐서 오랜 세월을 살아가니까.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
“그게 검림의 존재 이유고. 검림의 진짜 의무는 불멸자들을 소멸시키는 것이거든. 수호자의 소멸의식은 부가적인 거고.”
김혁진에게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 세계에는 역시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인간의 기준에서 초월자들이, 어떤 존재의 기준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니까. 어떤 생명은 곤충으로 태어나고, 어떤 생명은 인간으로 태어나. 곤충보다 인간이 강한 것은 당연해. 천공의 고래일족이 인간보다 강한 것도 당연하고. 그냥 나는 애초부터 수호자로 태어났을 뿐이고, 너는 인간으로 태어났을 뿐이야.”
이사벨이 가볍게 웃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된 거 같네. 원래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다과회라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이 속에서 지낼 수 있는데. 우리 단 둘이서. 아주 달콤하게.”
이사벨은 어딘가 아쉬운 듯 했다. 차라리 그 쪽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
“이곳은 가짜세계니까.”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혈의 검제! 내 공간에서는 내 법칙을 따르란 말이다! 사랑을 속삭일 거라 약…….]이사벨은 손짓 한 번으로 소음을 차단시켰다. 김혁진은 직감했다. 저 목소리는 ‘화살 쏘는 아기 천사’의 목소리고, 화살 쏘는 아기천사는 지금 화가 났다. 그가 ‘은밀한 다과회’에서 원했던 대화는 이런 대화가 아니었을 테니까.
[‘은밀한 다과회’가 곧 종료됩니다.] [잔여 시간 : 10초]이사벨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가 수호자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잔여 시간 : 6초]“내가 수호자든, 수호자가 아니든, 어차피 내 기준에서 너는 약해.”
[잔여 시간 : 3초]“약해도 상관없어. 약한 이를 사랑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잔여 시간 :1초]이사벨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불편한 태도로 마지막 말을 이었다.
“내가 남편, 좋아해도 되지?”
순간, ‘은밀한 다과회’가 끝이 났다. 김혁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사벨이 직접 ‘사랑’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너무 찰나여서 꿈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은밀한 다과회’가 끝나고, 어느새 이사벨과 김혁진이 위치한 곳은 다시금 검림이었다.
김혁진은 환상을 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방금 이사벨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것 같은데.’
분명히 그랬는데, 지금 보는 이사벨은 무표정이다. 세니아와 표정이 매우 흡사했다. 아까의 이사벨과 지금의 이사벨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김혁진의 감각안이 격차이가 많이 나는 이사벨의 상태를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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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매우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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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진은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퀘스트. ‘검제의 귀환’이 생성되었습니다.]이사벨이 철검을 들어 올리고 몇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이사벨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날씨가 참 좋네.”
김혁진은 그 다음 말을 듣지 못했다.
“사람 죽이기 참 슬픈 날씨야.”
그와 동시에 검림 여기저기서 검을 들고 있는 어떤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NPC에 가까운 존재들이었으나 김혁진은 처음 보는 형태의 생명체였다.
‘NPC 같기는 한데…….’
NPC는 보통 보면 NPC라는 것을 저절로 안다.
그러나 NPC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이나 플레이어도 아니다. 몬스터도 아니다. 새로운 설정의 ‘다른 존재’들이었다.
이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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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림 척후병 L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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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색깔이 검붉다 못해 아예 검은색이었다.
김혁진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저절로 열렸다. ‘검제의 귀환’에 대한 설명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