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12)
#재능만렙 플레이어 412화
“마왕?”
왜 강선일이 이곳에 있는 거지. 그리고 어째서 레이첼을 도운 거지. 김혁진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 당황스러움을 티내지는 않았다.
“이유를 듣고 싶은데.”
“내가 너한테 이유를 털어놔야 하는 이유는?”
“…….”
마왕은 철저히 강자다. 이곳은 힘이 지배하는 세계다. 윤리나 도덕으로는 마왕을 설득할 수 없다.
김혁진은 순순히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없지.”
“그럼 얘기가 편하군. 너는 방해하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러지.”
잠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만치 널부러져 있던 레이첼이 ‘으음’ 하고 신음성을 내며 정신을 차렸다.
“도대체 뭐야……?”
정신을 차린 레이첼은 김혁진과 강선일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그랬다가 강선일을 알아봤다.
“충!”
커다랗게 외치며 반쯤 무릎을 꿇는 레이첼을 보며 김혁진은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저 강선일은 ‘진짜 마왕’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마왕군 3급 간부가 강선일을 보며 부복을 한단 말인가.
‘내 예상이 틀렸던 건가.’
혼란스러웠다. 강선일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의자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손을 한 차례 대충 휘저으며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그럼 하던 거 마저 해.”
레이첼이 다시금 채찍을 들어 올렸다. 눈이 가려진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김혁진은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해야만 했다.
‘어떻게 하지?’
또 무력하게 가만히 있어야만 하나. 강선일이라는 절대적인 강자 앞에서, 또 아무것도 못하고 죄 없는 어린 소년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해야만 하나.
김혁진이 입을 열었다.
“네 목적은 육익천사를 불러내는 것. 그게 아닌가?”
“그렇지. 놈을 불러내기 위해 이 아이들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뭐?”
김혁진은 마왕의 빈틈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마왕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실제로 김혁진 자신을 이용해서 몇 가지 이득을 취했었다. 전지전능했다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말이다.
“설마. 모르나?”
김혁진이 의도적으로 피식 웃었다.
‘억!’
강선일이 가까이 다가왔다. 김혁진은 강선일의 움직임을 전혀 읽지 못했다. 강선일은 한 손으로 김혁진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냐?”
“숨 막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기도를 열어놨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거야.”
“저 아이들을 죽이는 건 육익천사를 불러내는 조건이 아니다.”
김혁진은 자신이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말해주었다.
17명의 소년들을 죽이는 건 ‘육익천사’를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육익천사의 죄를 대속시키기 위한 제물이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었지?”
“육익천사를 죽이고 싶어하는 칠상지나찰이라는 자가 존재한다. 그에게 들었어.”
“칠상지나찰?”
마왕이 씨익 웃었다.
“좋아. 그렇다 쳐.”
마왕이 손아귀에 준 힘을 풀었다. 김혁진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두 발로 버티고 섰다. 다리가 풀려 쓰러질 뻔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얘기야.”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강선일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내게 정보를 준 놈은 이런 얘기는 안했는데.”
재미있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게 사기를 칠 리는 없을 텐데. 정말 몰랐던 건가?”
“누가 네게 정보를 주지?”
“몰라도 돼.”
“몰라도 된다 치자. 그러나 네게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 아닌가?”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
“놈의 목을 잘라야겠어.”
강선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말이야. 대속이든 뭐든 어차피 쟤들을 죽여도 문제는 없는 거잖아?”
강선일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어린 아이 한 명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김혁진을 괴성을 지를 뻔했다. 화가 났다.
‘제기랄!’
강선일의 잔인한 행동에도 화가 났고,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어?’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피가…… 흰색이다?’
피가 하얀색이었다. 저것이 칠상지나찰이 말하던 ‘양의 피’인가.
“생긴 게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인간은 아니지.”
강선일은 머리가 터져나간 어린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몸통을 들어 올렸다. 손날을 세워 심장을 향해 뻗었다.
콰직!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손날이 아이의 심장을 파고들어갔다.
그러자 신체가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등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크기가 조금씩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성인 남성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인간이 아니었나?’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다른 괴물인 것 같았다.
“놈들은 천족이다. 육익천사가 내려보낸 파수꾼이지.”
강선일은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그래. 저것들은 육익천사의 분신이겠어. 그래서 대속이 되는 거고. 잔꾀를 썼네.”
이곳 전체에 지진이 일었다. 강선일이 꽤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 거짓 정보를 흘렸다라. 칠상지나찰이란 놈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큭큭, 하고 웃었다.
“이봐. 김혁진.”
“뭐지?”
“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줬으니, 나도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겠다.”
김혁진의 머릿속에 직접 음성이 들려왔다. 이사벨과의 대화처럼 말이다.
-네놈. 양치기의 신물을 가지고 있지? 대답은 하지 마라. 내 말이 맞다면 헛기침을 한 번 해.
크흠. 헛기침을 했다.
-그걸 노리는 놈들이 몇 있을 거다. 아마도 최근에 네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놈들 중에 하나겠지. 특히 촛불을 끈 명필가라는 놈을 조심해라. 그놈이 양치기 녀석과 아주 친했거든.
김혁진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양치기 소년과 친했다고? 촛불을 끈 명필가가?’
촛불을 끈 명필가가 자신을 도왔던 것이, 단순한 호의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강선일의 말을 백프로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예 안 믿기에는 찝찝했다.
-너. 수호자 놈들과 내기를 했나? 눈동자를 왼쪽으로 움직여.
눈동자를 왼쪽으로 움직였다. 강선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 크하하하핫!”
뭐가 저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 강선일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촛불을 끈 명필가. 네놈의 수작이겠군. 그때 내가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귀찮게도 구는구나.”
김혁진은 강선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이지?”
“이제 수호자 놈들이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네 녀석 덕분에.”
강선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데.”
강선일의 시선이 김혁진을 향했다.
“너라는 변수가 끼어들어서. 일이 참 재미있게 됐어.”
“나라는 변수?”
“그래. 네놈이 수호자들이 반드시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어. 내기를 좋아하는 몇 놈들과 명필가 놈이 합심해서 꾸민 일이겠지. 나를 찾기 위해.”
그리고 김혁진 너머의, 은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세니아에게도 말했다.
“중간 관리자들에게 전해. 나를 중계하고 싶다면 목숨을 걸라고. 내 허락 없이 나를 중계하는 놈들은 모조리 목을 잘라 버린다.”
계속 말을 이었다.
“김혁진. 내기 내용이 무엇이냐?”
“레이첼이 벌이는 학살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내기의 내용이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막기 위해 이곳에 왔고, 너를 설득 중이지.”
“뭐, 좋아. 사실 이쯤 되면 수호자들도 내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을 거다. 네놈 말이 맞는지 시험을 한 번 해보지.”
마왕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열여섯 소년의 몸이 폭발했다. 모두가 사망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천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모두 인간이 아니었다.
“저 여자가 죽인 건 아니니까, 네 내기는 성공적인 건가.”
마왕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레이첼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켜본다. 육익천사가 강림하지 않으면 네놈이 죽는다. 나를 기만한 죄로.”
어쨌든 ‘레이첼의 학살’은 막았다. 라스베이거스의 목동이 내기에 만족했다는 알림이 있었다.
원래 보상이 굉장히 확실한 수호자인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보상이 따로 주어지지 않았다.
* * *
3일이 흘렀다.
육익천사는 강림하지 않았다. 김혁진은 많은 것을 생각해야 했다.
‘전조증상이 관측된 지 일주일이 흘렀는데.’
그런데 육익천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17명의 소년(의 탈을 쓴 천사)들은 이미 죽었다. 무지개도 관측되었고 무지개 깃털을 가진 새도 목격되었다. 대부분의 것들은 과거의 ‘파리 대참사’ 이전과 같았다.
‘뭐가 달라졌지?’
뭔가. 분명히 놓치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맞아. 나 때문에 크게 바뀐 것.’
그것은 블랙 크로우에서 파견 내보낸 두 명의 사람이었다. 레이첼과 앤드류. 둘은 원래의 임무를 포기했다.
레이첼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앤드류는 미국으로 돌아갔으니까.
‘그들이 원래 클리어하려고 했던 곳이 레인보우 게이트였나.’
미셸에게 연락해서 확인해 봤다. 맞았다. 확인해보니 ‘레인보우 게이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지개 입장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다행히 임무를 중도 포기했던 앤드류에게 무지개 입장권이 하나 있었다.
앤드류가 직접 파리를 찾았다. 김혁진에게 ‘무지개 입장권’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레이첼은 어디 있습니까?”
“글쎄요. 모르겠네요.”
“이상하네. 임무를 포기할 여자가 아닌데.”
앤드류는 고개를 갸웃하고서는 김혁진에게 무지개 입장권을 전해줬다.
“아쉽네요. 여름군주의 위명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한 입장권당 한 명밖에 못 들어가서요.”
“감사합니다.”
입장권을 전해 받았다. 원래 앤드류와 레이첼이 들어갔었을 ‘레인보우 게이트’. 돌이켜보니 이곳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적어도 김혁진이 아는 바에 의하면 그랬다. 그래서 블랙크로우 소속의 앤드류와 레이첼이 파견 나와 있었던 사실도 몰랐었다.
레인보우 게이트는 에펠탑 근처에 있었다.
김혁진은 망설임 없이 레인보우 게이트로 향했다. 무지갯빛이 일렁거리고 있는 작은 게이트. 사람들은 그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게이트와 던전이 많아졌고 이런 것에 많이들 익숙해졌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께름칙한 곳임에는 틀림없었으니까.
[무지개 입장권이 필요합니다.]곧바로 입장했다. 게이트를 지나자 형형색색의 공간이 나타났다. 색깔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꽤 정신 사나웠다.
여기저기. 시체가 보였다. 인간의 시체는 아니었다. 김혁진이 앞을 향해 걸었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변종 몬스터들이네.”
고블린도 보이고 트롤도 보였다. 더 강력한 놈인 오우거도 보였다. 흔적들을 보아하니 이곳을 공략하고 있는 ‘골든 글러브’의 실력이 꽤 뛰어난 것 같았다.
형형색색의 기운이 가득 들어찬 문이 보였다. 김혁진은 망설임 없이 걸었다. 그 공간을 지나자, 넓은 방이 나타났다.
저만치 끝에는 또 같은 형태의 문이 보였다. 약 4개의 문을 지났다. 방과 방을 지나는 형태로 이루어진 게이트였다.
알림이 들려왔다.
[몬스터가 등장합니다.]김혁진은 딱히 긴장하지 않았다. 시체들을 봤다. 대단히 위험한 몬스터들은 없었다. 어떤 놈이 나오나 하고 잠시 지켜봤다. 몬스터가 생성되었다.
‘뭐야, 이건?’
아무래도 고약한 게이트인 것 같았다. 가슴팍에 황금 글러브가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골든 글러브의 길드원?’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았다.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죽.인.다.”
김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에 생기는 없지만, 그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김혁진은 이센의 검등으로 그를 때려눕혔다. 일단 기절시켰다.
같은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마지막 방에는 골든 글러브의 길드장이 있었다. 김혁진은 역시 어렵지 않게 그를 기절시켰다.
김혁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 게이트는 도대체 뭐야?”
먼저 이곳을 공략하러 들어왔던 골든 글러브의 길드원들이 무엇인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았고, 마지막 방에 도착한 것 같은데 클리어의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근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몇 번이나 골든 글러브 길드원들을 기절시켰는지 알 수 없었다. 굉장히 여러 번 기절시켰다.
‘저대로 두면 저들도 위험한데.’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어라도 먹고 마시고 자야한다. 그런데 저들은 그런 게 없었다. 마치 인형 같았다. 누군가에게 자아를 빼앗긴 인형.
‘도무지 클리어 방법을 모르겠군.’
정신이 마모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형색색의 색깔들이 강처럼 흘러간다.
그것들을 보고 있기만 해도 정신 사나웠다. 만약 정신력 스탯이 낮았다면, 미쳐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는 클리어가 어렵지만, 레이첼과 앤드류가 있었다면 클리어가 가능했다라.’
과연 어떤 조건이었을까? 만약 이 곳에 레이첼이나 앤드류가 있었다면 뭘 어떻게 했을까? 특히 마왕군 3급 간부 레이첼이 있었다면?
‘혹시 골든 글러브 길드원들을 모조리 죽였던 거 아냐?’
인간의 생명.
그것이 이곳의 클리어 조건일 수도 있다. 지금 단서가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저들을 죽이려면 쉽게 죽일 수 있겠지만 김혁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 버티네.”
앳된 목소리였다.
“이제 슬슬 클리어 조건을 알아차릴 때가 되지 않았어?”
한쪽 벽면이 일그러지며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군 3급 간부. 레이첼이었다. 그런데 레이첼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지금 저 여자는 레이첼이되 레이첼이 아니었다.
‘레이첼의 모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존재.’
김혁진은 이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앳된 목소리. 일시적이나마 수호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수호자.
‘촛불을 끈 명필가!’
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