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14)
#재능만렙 플레이어 414화
“보상을 전달하겠습니다.”
세니아가 붓을 들어 올렸다. 김혁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 붓을 받으십시오.”
“붓이 보상이야?”
“아닙니다. 붓 안에 선택지가 있을 것입니다.”
김혁진이 ‘낡은 붓’을 받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알림이 들려왔다.
[‘촛불을 끈 명필가’가 강림했던 대상의 특성을 취사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살인광(殺人狂)] [2. 강림지체(降臨之體)]레이첼이 가지고 있던 특성이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살인광’의 경우는 감각안을 통해 읽어냈었는데, ‘강림지체’는 처음 본다.
“김혁진 플레이어는 두 가지 능력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전이받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해.”
“알겠습니다. 많은 수호자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일시정지 권능을 활성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니아는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지금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벅차오름을 느끼는 중이었다. 방금 가짜 수호자인 ‘촛불을 끈 명필가’를 소멸시켰다.
진짜 수호자들은 그에 열광했고 세니아에게 도합 600만 코인이 한 번에 전송되었다. 단일규모로는 최고 수준의 후원이었다.
세계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김혁진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두 가지 선택지를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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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광(殺人狂)]살인을 할 때에 빛을 발하는 고유능력입니다. 살인 시 극도의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어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함과 동시에 레벨업을 했을 때와 같은 치유효과가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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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진은 순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살인이라고 한다면…… PVP에서는 효과가 없을 거야.’
PVP가 아니라 ‘진짜 살인’을 뜻하는 것 같다. 사람을 죽이면 모든 상처가 치유된다. 살인마에게는 더없이 좋은 능력이다.
만에 하나라도 김혁진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빛을 발하는 능력이었다.
‘평생 쓸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따지고 보면 김혁진은 지금 레이첼을 죽였다.
마왕군 3급 간부였던 서주환도 김혁진이 죽였다. 플레이를 시작했고 상위급 랭커가 된 순간, 살인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슬프게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만에 하나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김혁진은 모든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적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이상이라면. 김혁진에게는 여벌의 목숨이 생기는 셈이었다.
그 때. ‘발소리를 죽인 흑표범‘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발소리를 죽인 흑표범’은 ‘살인광’ 특성을 매우 선호합니다.] [‘살인광’ 특성 선택시, ‘흑표범의 신발’을 후원할 것을 약속합니다.]김혁진은 흑표범의 신발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도적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대도적 라스본이 있다면, 암살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암살자는 통칭 ‘그레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자였으나 그의 정체는 밝혀진 적이 없었다. 암살자니까 당연한 얘기다. 보통 회색 두건을 쓰고 움직인다하여 ‘그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미셸사단이 끝까지 추적하여 그레이를 사살하였다.
그레이의 신원을 밝히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레이의 사망과 동시에 시체가 산화되어 사라져 버렸으니까.
‘시체는 없어졌지만 아이템 하나는 남겼었지.’
그당시 그레이가 드랍했던 아이템이 바로 ‘흑표범의 신발’이었다. 이후 흑표범의 신발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었다. 등급은 레전드.
‘흑표범의 신발까지 준다고?’
일대다 혹은 다대다 대인전에 있어서 여벌의 목숨과 다름없는 특성. 거기에 세계 최강의 암살자가 사용했었던 레전드급 아이템. 솔직히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강림지체는 내가 예상하고 특성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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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가 플레이어의 신체에 빙의하여 해당 신체를 지배하는 것을 강림이라고 합니다. 강림지체는 강림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특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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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짜가 레이첼에게 성공적으로 강림할 수 있었던 건가.’
말하자면 레이첼은 ‘강림’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던 것 같았다. 수호자를 굉장히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특성.
‘플레이어에게 좋은 특성은 아닌데.’
강림은 사실 플레이어에게 좋은 현상은 아니다. 플레이어가 받아들이기에 수호자의 존재가 너무 강대했다. 게다가 신체의 주도권까지 빼앗긴다.
극단적으로 설명해서, 수호자가 자살을 한다고 해도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김혁진이 물었다.
“세니아. 중간 관리자로서 어떤 특성이 더 좋을 것 같아?”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해줄 수 없습니다.”
“그럼 세니아 너는 내가 살인광 특성을 선택하면 좋겠어?”
대답은 바라지 않았다. 그냥 날개 끝만 바라보았다. 날개가 안정적으로 차르르-떨렸다.
“아니면 강림지체를 선택하면 좋겠어?”
날개 끝이 조금 더 빠르게 떨렸다. 눈가도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걸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니아는 ‘살인광’ 특성을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김혁진 생각에도 그랬다. 괜히 강림지체를 선택했다가, 수호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강림하겠다고 난리를 피워댄다면 김혁진으로서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강림당할 수도 있는 거고.
“세니아. 보상을 선택할게.”
“무엇입니까?”
“살인광.”
“잘 선택하…….”
“……을 배제하고 [강림지체]를 선택할 거야.”
세니아의 날개가 바짝 섰다. 하늘을 향해 빳빳하게 서버린 날개는 세니아의 당황스러움을 대변해주었다.
“잘못 들었습니다. 다시 말씀하여 주십시오.”
“강림지체.”
“잘못 들었습니다.”
“강림지체.”
“죄송합니다. 제 청력에 문제가 생긴 듯한데,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여 주십시오. 엄지가 1번. 검지가 2번. 같은 방향으로 새끼손가락이 5번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1번이 살인광. 2번이 살인광. 3번이 살인광. 4번이 살인광. 5번이 강림지체입니다.”
김혁진은 황당해져서 피식 웃고 말았다. 중간 관리자가 이래도 되나 싶다. 김혁진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5번.”
“…….”
세니아는 한동안 김혁진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이내 이해했다.
“5번. 강림지체를 선택하셨습니다. 보상을 전달하겠습니다.”
알림이 들려왔다.
[레이첼의 특성 강림지체(降臨之體)가 강제전이 되었습니다.] [특성 강림지체(降臨之體)를 획득하였습니다.]그러자 다시 메시지가 전해졌다.
그에 따라 중간 관리자인 세니아가 말을 이었다. 이제 중간 관리자는 중간 관리자로서의 일을 할 때였다.
“어째서 강림지체를 선택하셨습니까?”
“수호자분들을 내 몸에 단 한 번이라도 품을 수 있다는 건 영광이잖아.”
솔직히 거짓말이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라면 ‘강림’을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세니아도 김혁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저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지 않…… 있다?’
중계채널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중이떠중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당수의 진명을 가진 수호자들조차 김혁진에게 호감을 보냈다.
‘이게 통한단 말입니까?’
세니아는 믿을 수 없었다.
세니아에게도 수호자들은 고결한 존재이며,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들이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 원초적인 욕망이나 한 가지 목적에 매몰되어 살아간다고는 해도, 그래도 수호자는 수호자다. 진명을 가진 수호자마저 저런 일차원적인 아부에 매료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귓말을 보냈다.
-진심이십니까?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럼 어째서입니까?
세니아는 귓말을 보내면서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혁진 플레이어의 판단을 믿고 존중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일단 통하기는 했지?
-예. 믿을 수 없게도 통했습니다. 수호자분들이 저런…….
-1차원적인 아부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 못했지?
-……그렇습니다.
수호자들은 고결하고 위대하다? 물론 일정 부분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김혁진은 마냥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성인이 성인을 갑자기 칭찬하거나 아부하면 이상해.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치원생이 갑자기 칭찬하거나 아부하면 어때?
-귀엽게 볼 것 같습니다.
-그 정도야. 수호자들에게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호자들에게 있어서 김혁진의 능력은 보잘 것 없다.
저들은 김혁진을 동등선상에 놓고 보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김혁진은 김혁진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세니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육성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강림지체에 대하여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볼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일시정지 권능은 1분 후 해제 됩니다.”
세니아가 중계를 잘해주는 덕분에, 김혁진은 다른 것에 신경쓰지 않고 귓말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잘 키운 중간 관리자 하나, 열 플레이어 부럽지 않았다.
-수호자들의 눈에 나는 그저 어릿광대나 재롱을 부리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이런 아부가 먹히는 거야.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내가 강림지체를 선택한 건, 나를 두고 수호자들을 경쟁시키기 위해서야. 많은 수호자들이 내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어.
-그렇습니다. 각각 다른 성향의 수호자들이 이렇게 한 뜻이 되어 한 가지 시나리오를 진행시키는 것은 저로서도 처음 보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사념이라 할지라도 위대했던 수호자의 분신이었다. 수호자들은 가짜를 혐오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레이어가 그 사념을 없애 버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것을 위해 수호자들이 합심하여 판을 짜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김혁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내가 어느 한두 명의 수호자의 관심만 받고 있다면 [강림지체]는 독이 될 거야. 한 명의 관심만 식어도 나는 노리기 좋은 먹잇감이 되어 버리니까.
-저도 그 점을 고려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게 집중하는 수호자가 정말 많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강림을 할 수 없어. 강림을 하게 되면, 내 몸이 망가질 테니까.
합당한 이유나 명확한 명분 없이는 강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가 한 번은 내 몸에 강림해보고 싶겠지. 그들은 유희에 미쳐 있으니까.
-아.
세니아의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말하자면 김혁진은 스스로 그림 속 떡이 되었다. 너무나 가지고 싶고 실제로는 가질 수 없는 것. 희소성을 엄청나게 높여 버렸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강림해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
김혁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관이 있을 때. 그때에 강림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수호자의 강림을 받아들이면, 적어도 그 난관은 헤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위기를 타파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를 아끼는 수호자가 많으니 내 몸을 함부로 해치지도 못할 거고.
수호자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 누구 하나가 아주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서로의 위대함을 인정하니까.
세니아는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자신의 몸을 담보로 삼아 몸값을 극대화하는 저 전략은, 김혁진이 아니면 불가능한 전략이기도 했다.
-이해했습니다.
육성으로 말했다.
“일시정지 권능이 해제됩니다.”
일시정지 권능이 해제되었다. 김혁진의 예상대로 ‘레인보우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조건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골든 글러브 길드원들은 제정신을 차렸고 ‘레인보우 게이트’ 클리어 만족 알람이 들려왔다.
[레인보우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보통은 ‘클리어 되었습니다’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레인보우 게이트에서 사망한 ‘인간’의 숫자를 합산합니다.] [레인보우 게이트에서 사망한 ‘인간’의 숫자는 0명입니다.]그와 동시에 다른 알림이 이어졌다.
[제물이 불충분합니다.] [‘육익천사’의 죄가 대속되지 않았습니다.]형형색색의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빠르게 회전하던 색깔들이 한곳을 향해 빨려들어 갔다.
화악!
갑자기 빛이 밝아졌다. 눈이 너무 부셨다. 김혁진도 눈을 뜰 수 없었다.
[레인보우 게이트 클리어에 의하여 ‘육익천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정신을 차려보니 에펠탑 근처로 이동해 있었다. 하늘에 하얀색 문이 생겨났다. 크기가 굉장히 컸다. 그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김혁진의 기억과 달랐다. 파리대참사를 일으켰던 ‘육익천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