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23)
#재능만렙 플레이어 423화
새벽 2시 40분.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세니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새벽 2시 42분.
세니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혁진 플레이어는 필요한 상황에 저를 죽일 의향이 있습니까?”
“…….”
김혁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째깍째깍. 시계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세니아는 저 시계초침 소리에 커다란 무게추가 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째깍째깍 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새벽 2시 43분.
김혁진이 대답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렇다고 대답했겠지.”
“…….”
“그것이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옳다고 믿었으니까. 우리는 비즈니스로 엮여 있고, 비즈니스 파트너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새벽 2시 44분.
김혁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세상에 정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저를 죽일 수 없다는 뜻입니까?”
“지금 그 질문. 내가 널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묻는 거야?”
“한 중간 관리자가 말했습니다. PVM 권능을 가진 플레이어는 위험하다고. 김혁진 플레이어의 가능성이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그랬는지 알 것 같다.
“강솜이 씨의 관리자가 그랬겠지.”
“…….”
“그리고 다른 말도 하지 않았어?”
김혁진은 세니아가 왜 이렇게 심란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중간 관리자들의 채널이나 많은 커뮤니티에서 세니아를 욕하고 있을 것이다. PVM 권능을 가지게 된 플레이어를 감싸고 돈다고.
“했습니다.”
“너를 흔드는 말이 많겠지.”
“그렇습니다.”
“뭐라고 대답했어?”
“그런 무가치한 말들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세니아의 말이 맞다. 김혁진은 중간 관리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꿰뚫어봤다.
결국 저들도 인간과 같다. 이미 많은 이들이 세니아를 시기질투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 비정상적인 성장에 대해서도 온갖 루머가 떠돌고 있을 테고.’
세니아에 대한 비상식적인 인신공격, 이해할 수 없는 루머, 사실에 기반하는 척하는 악성 허위 사실유포 등 과거 잘나갔던 몇몇 중간 관리자가 독점계약을 맺었던 플레이어를 죽이고 자살한 사건도 일어났었다.
“정답을 잘 알고 있네.”
김혁진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는 않았다. 세니아도 어차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안다. 정답도 알고 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인 것들과는 별개로 세니아가 많이 외로울 것이라는 것도 안다.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모두 적이 된 것 같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것 같고, 모두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담담하게 사실만을 말했다.
“세니아. 너는 잘못한 게 없어.”
“…….”
세니아의 날개가 가늘게 떨렸다. 사실 저 말이 듣고 싶었다. 머리로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었다. 세니아는 잘못이 없다는 저 말에 흠칫 놀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말을 듣고 안도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놀랐다.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더 솔직하게 마음을 살펴보니, 김혁진에게 저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김혁진이 뭐라고. 김혁진은 일개 플레이어에 불과할 뿐 아닌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고마울 것도 없어.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김혁진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우리는 우리 일에 집중하자. 수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 그런데 그 호의는 와닿지 않아. 호의보다는 악의가 더 기억에 남거든.”
세니아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오히려 세니아가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중간 관리자로서 수많은 수호자들을 상대하고 있으니까. 호의는 고맙고 말지만 악의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내일 [망령들의 요람]을 클리어 해야 돼.”
“예. 알고 있습니다. 쇼비도비와 함께 예고영상도 준비 중입니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할 일에 집중하면 된다. 김혁진은 눈을 감았다. 자려고 했는데, ‘화살쏘는 아기천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은밀한 다과회’를 준비합니다.]김혁진은 황당했다.
‘지금…… 중계 중이었어?’
* * *
김혁진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세니아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예상 외였다. 김혁진의 예상을 한참 뛰어 넘었다.
세니아는 ‘은밀한 다과회’라는 장소를 빌어 하나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넬보와 나눈 대화였다.
“넬보가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
김혁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상 속에서 넬보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막내 황녀님은 중간 관리자 살해에 열을 올리는 수호자입니다. 그걸 해내기만 한다면 폭발적인 지원까지 아끼지 않는 변태 같은 놈이죠.
아마 넬보는 커다란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수호자를 대놓고 저격하며 욕을 했다. 넬보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세니아에게 귓말이 들려왔다.
-인간들 사이에서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있지.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십니까?
역지사지(易地思之).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니아는 그 뜻을 약간 잘못 알았다.
-역으로 지X을 해줘야 사람들은 지가 뭘 잘못했는지 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김혁진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완전한 무표정으로 저런 말을 내뱉으니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역으로 지X을 하겠다고?
-분명한 경고가 될 겁니다.
분명히 그럴 거다. 막내 황녀님을 대놓고 저격했다. 변태 같은 놈이라고. 막내 황녀님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무자비한 철퇴를 가할 것이다.
세니아는 이를 통해 뭇 중간 관리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거다. 건드리면 문다고.
김혁진은 직감했다.
‘강솜이의 중간 관리자를 새로 물색해 줘야겠네.’
화살 쏘는 아기천사는 약간 불만인 듯했다.
[‘은밀한 다과회’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가 오가고 있습니다.] [‘은밀한 다과회’의 유지 시간이 대폭 감소합니다.] [‘은밀한 다과회’를 보다 ‘다과회답게’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은밀한 다과회에서 수호자들에게 영상을 폭로한 세니아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는 눈동자로 김혁진에게 말했다.
“김혁진 플레이어.”
“어?”
“좋아합니다.”
“…….”
얼음장 같은 표정이었다. 딱히 진심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김혁진은 순간 황당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세니아는 이 폭로의 장을 만들기 위하여 화살 쏘는 아기 천사를 제 입맛대로 이용했다.
이용만하고 끝낼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아기천사의 장단에는 맞춰줘야 한다.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끝낸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
“마침 이사벨이 없는 틈을 타서 고백하는 거야?”
김혁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철저히 비즈니스다. 김혁진은 김혁진의 일을, 세니아는 세니아의 일을 하면 된다. 김혁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미안해.”
“…….”
세니아의 날개가 미세하게 떨렸다. 김혁진은 화살 쏘는 아기천사를 위한 답안을 내놓았다.
“나는 한 사람을 마음속에 품기로 결정했어.”
“예. 순혈의 검제. 그분이시지요.”
“맞아.”
세니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김혁진 플레이어에게 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은, 앞으로 김혁진 플레이어를 좋아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겠다는 의미입니다.”
“…….”
김혁진은 조금 헷갈렸다. 철저히 비즈니스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하게 세니아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그래.”
“저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훌륭히 그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저는, 김혁진, 플레이어의, 비즈니스, 파트너니까요.”
“고마워.”
“아닙니다. 잠시 당황하게해서 미안합니다.”
세니아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건넸다. 김혁진이 그 손을 맞잡았다. 김혁진은 이 정도 연출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화살 쏘는 아기천사를 향한 성의는 충분히 보인 것 같다. 이 정도 했으면, 아마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약간 아쉬워합니다.]크게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 * *
다음 날.
강솜이와 함께 창릉 신도시 부지에서 만났다. 창릉천 근처. 강솜이는 조금 당황해했다.
“제 중간 관리자가 보이지 않아요.”
“아마 계속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저를 중계해 주시는 분이 없잖아요. 손해가 막심할 텐데…….”
“임시적으로 세니아가 해줄 겁니다.”
“아 진짜요?”
강솜이는 중간 관리자의 세계를 잘 모른다. 그러나 김혁진의 중간 관리자가 대단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세니아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인 것 같군요. 세니아입니다. 제가 차질 없이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섬김의 탐험가 강솜이 씨.”
강솜이는 눈치가 빨랐다. 굳이 이렇게 길게 표현하는 것은 수호자들에게 중계하기 위함이다. 얘는 이러이러한 플레이어니, 이런 플레이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인사로 전달했다.
“네. 저는 김혁진 플레이어를 섬기는 섬김의 탐험가입니다. [망령들의 요람]에서 큰 도움이 되고 싶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끝낸 강솜이는, 탐험가 특유의 예리한 감각으로 세니아의 눈이 붉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뭐지?’
세니아를 여러 번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이 느껴졌다.
‘눈이 많이 부었는데?’
섬김의 탐험가쯤 되어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미세한 변화이기는 했지만 분명히 눈이 부어 있었다. 마치 어젯밤 내내 운 것처럼.
강솜이가 말했다.
“제가 사실 어제 새벽에 여기 답사를 미리 왔었는데요. 창릉천 내에 특별한 마나를 가지는 조약돌들이 느껴져요. 제가 그것들을 미리 구해놨거든요.”
세니아는 강솜이를 집중 조명했다. 세니아의 채널에는 수많은 수호자들이 몰려있다. 저들 중 강솜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 수호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수호자들 사이에서 더 유명해지면, 아마 더 유능한 중간 관리자가 강솜이에게 붙을 것이다.
김혁진이 가볍게 웃었다.
“훌륭하네요, 강솜이 씨.”
“기본이죠.”
강솜이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각 조약돌과 비슷한 마나파장을 내는 특별한 스팟들이 있어요.”
강솜이는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면서 조약돌들을 하나하나 위치시켰다.
“그러면 이 마나파장이 한 곳으로 흐름이 유도되거든요.”
강솜이가 앞장섰다. 김혁진과 강솜이는 계속 걸었다. 한 시멘트 공장에 도착했다. 시체술사 바르테리가 김혁진을 향한 함정을 팠던 곳이었다.
그리고 저만치 앞.
검은색 일렁이는 공간이 보였다.
강솜이의 진두지휘에 따라, 어느새 던전에 입장하는 게이트가 완성되어 있었다. 김혁진과 강솜이는 망설이지 않고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 ‘망령들의 요람’에 입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