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26)
#재능만렙 플레이어 426화
‘아!’
직접적으로 힌트를 더 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빙빙 돌아왔다. 스스로 생각해 내라고.
그리고 김혁진은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세니아를 불렀다.
“그런데 세니아.”
사실상 플레이어가 부른다고 해서 중간 관리자가 바로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나, 김혁진-세니아 관계에 있어서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호자들도 이에 대해 딱히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김혁진은 아무 이유 없이 세니아를 불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수호자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은신 상태로 대기 중이던 세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내가 요청하면 매뉴얼을 검색해 줄 수 있겠어?”
“매뉴얼 검색 요청은 플레이어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제대로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없다. 권리이기는 하지만 이 행위는 중간 관리자를 귀찮게 하는 행위다.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을이고, 대다수의 중간 관리자가 갑인 상황이다. 을이 갑에게 무엇인가를 어떻게 요구한단 말인가. 원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김혁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나는 원래 2만에 달하는 생명값을 성흔으로 얻게 됐어. 내 말이 맞지?”
“그렇습니다.”
파리에서 분명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한 내용은 강선일을 통해 알게 되었고.”
“예. 강선일에게 1만에 달하는 성흔을 강탈당했습니다.”
수호자들도 이제 강선일에 대해 알고 있다.
강선일이 말해줬다. 수호자들도 이제 강선일을 관찰할 수 있다고. 수호자들도 모두 직접 본 내용이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어떻게 2만에 달하는 성흔을 얻게 된 거야?”
알면서 물었다. 중간 관리자의 입을 통해 확답을 받기 위해서다. 세니아는 팩트에 기반한 내용들만을 담담하게 전달했다.
“육익천사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면 약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더 발생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누가 결정했는데?”
“시스템의 시나리오상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시스템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던 것을 막아내면 그에 걸맞은 성흔이 새겨진다는 소리네.”
“그렇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강선일이 내 성흔을 강탈해 간 것이 나한테도 이득이 됐었고 말이야. 그렇지?”
강선일은 1만 생명값 수준의 성흔을 강탈하며 칠상지나찰을 죽였다. 결과적으로 김혁진의 성흔을 지켜준 셈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칠상지나찰이 폭주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김혁진 플레이어의 성흔은 삭제되었을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예정되었던 일을 막아내면 생명을 구한 것으로 계산한다.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니지만 어떠한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거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면,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진다.
성흔 삭제라는 책임을.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시체술사 바르테리는 사기를 끌어모아 망령들의 요람을 완전히 활성화 시키는 것이 그의 시나리오였겠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세니아는 눈을 감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무엇인가를 검색하는 듯했다. 이윽고 세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단천학은 흡족한 얼굴로 김혁진을 쳐다보기만 했다.
‘역시 똑똑한 녀석이야.’
단천학의 표정을 본 김혁진은 확신했다. 지금 잘하고 있다. 잘 풀어나가고 있다. 강솜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체술사 바르테리가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꽤 많았겠어.”
“그렇습니다. 직접 죽이려한 이들도 있고, 사기를 공수해 오려고도 했습니다.”
“사기를 공수해 와?”
“더 이상은 정보를 공개할 수 없습니다.”
당분간 파리대참사 규모의 대규모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 사건들 중 비교적 큰 사건을 꼽으라면 ‘몰디브 해상전투’를 꼽을 수 있다. 거기서도 사람이 몇만이나 죽지는 않는다.
“내가 그들을 살린 셈이 되는 거네?”
“그렇습니다.”
세니아가 네 장의 날개를 펄럭거리며 떠올랐다.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보통 저런 모습을 보인다.
“김혁진 플레이어는 시체술사 바르테리를 살해하여, [예정된 죽음]을 막아내셨습니다. 그에 따라 김혁진 플레이어는 그에 관한 성흔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성흔을 부여받으시겠습니까?”
김혁진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물론.”
알고서 따지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
어쩔 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고, 따져야 받는다.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퍼주지는 않는다.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세니아의 몸에서 하얀빛이 피어올랐다.
“김혁진 플레이어의 요청을 수용합니다. 정식으로 안건을 제출하였습니다. 소요시간은 30분 정도로 예상됩니다.”
30분이 흘렀다.
“김혁진 플레이어는 시체술사 바르테리를 살해하여 약 2만 명의 생명을 구해냈습니다. 이는 시체술사 클래스의 시나리오에 계획되어 있던 것입니다. 김혁진 플레이어에게 2만 생명값에 준하는 성흔이 부여됩니다. 성흔은 김혁진 플레이어의 존재에 새겨집니다.”
세니아의 몸에서 피어나온 하얀 빛이 김혁진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게 끝이었다. 어떤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단천학이 껄껄 웃었다.
“그 정도 생기(生氣)면 저 안의 사기(死氣)를 중화하는 수준이 아닐 게다.”
“예?”
“중화 정도가 아니라 성질을 바꿔놓을 수 있을 게야.”
“성질을 바꿔놓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천학이 김혁진의 등에 손을 댔다.
“네가 내 제자를 도왔으니, 선물을 주는 것이다.”
김혁진의 등에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등 전체에 네 글자가 새겨졌다. 먹물로 쓴 것 같은 검은색 글자였다.
[성흔발현(聖痕發現)]단천학이 손을 뗐다. 단천학의 이마에서 땀 몇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역시 꽤 큰 힘을 소모한 것 같았다.
“네 성흔이 소모되어 사기를 정화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그래. 꼭 갚거라. 네가 해준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었으니.”
단천학은 굉장히 생색을 냈다.
네가 내 동생의 의지를 이었으니 열심히 해야 한다느니.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잘해야 한다느니. 잘하지 못하고 열심히만 하는 건 헛짓거리라느니.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엄청난 양의 성흔이 새겨졌더구나.”
“네. 그렇습니다.”
“바르테리라는 놈이 그렇게 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놈 같더냐?”
김혁진이 고개를 들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그게 가능했을까? 아무리 비밀리에 진행한다고 해도, 2만에 달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까? 티 안 나게?
‘과거에는 파리 대참사에서 그 사기를 공수해 왔다고는 해도.’
지금은 그것도 안 된다. 파리 대참사는 이미 지난 사건이다. 아까 세니아가 사기를 공수해 오려고 했다는 것에 힌트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알게 됐다.
‘바르테리는 혼자가 아냐.’
수만에 달하는 생명을 비밀리 혹은 대놓고 죽일 수 있는 어떤 세력이 있다. 그 세력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태극방패’에 첩자를 심어 놓은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제발 그 세력의 수장이 마왕 강선일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젠장.’
알고 싶지 않은 것을 하나 더 알게 된 기분이었다.
‘일단 강솜이를 구한다.’
* * *
강솜이는 임시 안전지대를 만들고 잠을 청했다.
완전하지 않은 안전지대였다. 혹시 잠꼬대라도 하는 날에는 저승을 구경하게 될 것이 뻔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 ‘망령’들이 낫을 휘둘러 자신의 목을 잘라 버릴 테니까.
‘괜히 남는다 그랬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김혁진이 나가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후회가 조금 되기는 했다. 인간적으로 당연한 후회였다.
‘으. 살 떨리네.’
방금도 머리 위로 망령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졸려 죽겠지만,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다. 위험과 스릴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렇게 출구 없는 위험과 스릴은 싫다. 극복할 수 있는 위험과 스릴이 즐거운 거다.
이렇게 미완성된 던전에서, 클리어 방법도 딱히 없는 곳에서의 스릴은 두렵고 외롭기만 한 것이었다.
‘아. 엄마 보고 싶다.’
이제 겨우 3일 지났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래도 길드장이라면 금방 올 거야.’
적어도 자신을 버리고 외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김혁진을 믿기로 했다.
외롭고 무서운 가운데, 믿음이라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김혁진 길드장이라고 해도 최소 2주 이상은 걸릴 거야.’
2주라는 시간도 정말 희망적인 계산이었다.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 졸려.’
3일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잠이 쏟아졌다.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습니까?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강솜이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강솜이가 눈을 번쩍 떴다. 꿈이 아니었다. 진짜 목소리였다. 김혁진의 귓말이었다. 눈을 떠보니 김혁진이 앞에 있었다.
-헐? 길드장님?
-네. 운이 좋아 빨리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엄청나게 많은 사기가 필요하다면서요.
김혁진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막상 김혁진이 이렇게 빨리 오자 조금 두려웠다.
-어디 던전 같은 데 돌면서 학살극을 벌인 건 아니죠?
-아닙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와요?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저는 이 던전을 완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발생 전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김혁진이 자리에 앉았다. 호흡을 들이마셨다. 단천학이 방법을 알려줬다.
-네놈. 영창을 다룰 줄 알지? 그중에서도 의지영창.
의지영창은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서 스스로 해내는 영창이다. 김혁진은 의지영창을 다룰 줄 안다.
-의지를 가지고 영창을 한다고 생각하거라.
-그게 안 된다면 [성흔발현]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김혁진은 집중했다. 몸속에 새겨진 성흔을 발현시켜 이곳을 정화한다. 사기를 모조리 생명값으로 덮을 것이다. 집중했다.
‘영창을 해낼 때의 그 감각을 기억해야 해.’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성흔발현.”
그와 동시에 몇몇 망령들이 김혁진을 발견했다. 소리에 반응했다.
낫을 들고 빠르게 접근했다. 유령처럼 접근하여 낫을 휘둘렀다. 김혁진이 눈을 떴다.
‘이형환위.’
이형환위를 사용하여 낫을 피해냈다. 김혁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더 많은 망령들이 김혁진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김혁진의 등 뒤에서 하얀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은 하늘을 향해 헤엄쳐서 올라가듯, 꾸물거리며 상승했다.
김혁진이 이센을 꺼내 들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거인 망령이라면 모를까. 일반 망령들은 상대할 수 있다. 망령 하나가 낫을 크게 휘둘렀다. 김혁진의 눈에, 낫의 궤도가 보였다.
‘여기.’
한 발자국 옆으로 움직였다.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그렇다면 검기를 사용해야 한다. 검기를 덧씌웠다.
‘놈의 본체는 낫이다.’
본체는 몸이 아니라 낫. 낫을 공략해야 한다. 저 놈들은 낫에 깃든 망령이다. 푸른 검기에 휩싸인 김혁진의 검이 낫 하나를 잘라냈다.
댕겅!
허무하리만치 쉽게 잘려 나갔다.
김혁진은 여세를 몰아 몸을 숙인 뒤 용수철처럼 몸을 튕겨냈다.
댕겅!
낫 하나를 잘랐다.
몸을 회전시켜 또 다른 낫을 잘라냈다.
그사이, 낫 하나가 김혁진의 어깨를 노렸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김혁진이 이센으로 낫을 막아냈다.
챙!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 와중에도 ‘하얀빛’은 하늘을 향해 계속해서 상승했다. 강솜이는 하얀빛에 집중하면서 김혁진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김혁진의 움직임은 가히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레벨 자체는 망령들이 훨씬 높은 것 같은데…….’
레벨은 망령이 높다. 그러나 가진바 신체 능력에서, 김혁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혁진의 레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격이 달랐다. 종이 다른 느낌이었다.
‘춤을 추는 것 같아.’
한차례 검무를 보는 것 같았다. 김혁진은 이미 몇 수 앞의 상황을 내다보고 있고, 그 상황에 맞추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김혁진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망령의 낫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낫을 잃은 망령은 그림자가 되어 사라졌다.
강솜이는 넋을 잃고 김혁진을 모습을 바라봤다.
‘와……!’
대단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하얀빛’이 상공 어느 벽에 부딪혔다.
이 공간은 한정된 공간.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얀빛이 상공에 모여들었다.
이내,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김혁진과 강솜이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상당량의 생기(生氣)와 축적된 사기(死氣)가 충돌합니다.]그와 동시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