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62)
#재능만렙 플레이어 462화
푸욱!
하얀 면사가 피에 물들었다.
기이하게 벌어진 입과 목구멍을 관통하여 검 한 자루가 뒤통수로 삐져나왔다.
푸욱!
하나가 아니었다.
푹!
푹!
수십 자루의 검이 목을 관통하고 뒤통수를 관통했다.
나찰사의 허상.
그녀의 이빨이 김혁진의 이마에 닿기 직전, 김혁진은 천검우를 사용했다.
순혈의 검제 이사벨이 선물한 능력.
마나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준비 동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수십 자루의 검이 나찰사를 꿰뚫었다.
풀썩!
나찰사의 몸이 쓰러졌다. 즉사처럼 보였다.
그녀의 등에는 수많은 검들이 꽂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시체 주변에는 수백 자루 이상의 검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콰직!
콰지지직!
뇌(雷)의 기운이 검을 통해 나찰사의 몸에 전해졌다. 나찰사의 몸 여기저기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검과 맞닿은 살결에 시꺼먼 구멍이 생겼다.
김혁진이 시체를 향해 물었다.
“이제, 네가 원하는 걸 이루었나?”
그랬더니 대답이 들려왔다.
“아름답군.”
나찰사는 애초에 허상이고, ‘염원’이 형태를 가지고 나타난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건 어차피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여기서 ‘죽음’이란 염원이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이 나찰사의 허상은 파멸을 원하지 않는다. 존재 이유인 파멸을 삭제해 버렸으니까.
쓰러진 나찰사의 목이 180도 돌았다. 김혁진을 쳐다봤다. 나찰사의 입에서는 어느덧 피가 멈춰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토록 황홀한 경험은 처음이야.”
“황홀했나?”
나찰사는 분명 ‘파멸’을 얘기했다. 그러나 상대의 파멸을 말한 적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파멸이야.
-파멸을 위해 태어났어, 나는.
-죽음이라는 건 아름다운 것이지.
-무(無)로 돌아가는 것은 숭고하니까.
-파멸은 곧 예술이야.
그 어디에도 김혁진을 죽이겠다는 얘기는 없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나와의 대화가 가능한 아가야. 너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겠지?
김혁진은 알고 있었다. 나찰사의 염원은 그 스스로의 파멸이었다. 나찰사쯤 되는 강대한 존재가 왜 스스로의 파멸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찰사가 남긴 염원은 자신의 파멸이었다.
“그래, 황홀했어. 방금 나를 죽인 자의 이름이 뭐야?”
죽인 자의 이름.
김혁진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이사벨. 그리고 단천우.”
나찰사는 그 두 이름을 읊조렸다.
“이사벨. 단천우. 아주 오묘한 힘이었어.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목이 180도 돌아간 나찰사의 허상은 무엇인가가 궁금한 것 같았다.
나찰사의 발끝이 보랏빛 연기로 변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찰사가 계속 말했다.
“나를 찢어발긴 자는 이사벨. 그리고 내가 재생할 수 없도록 파괴해 버린 자는 단천우.”
나찰사의 말은 두 가지 능력을 뜻하는 것이었다.
천검우.
단뢰.
“그런데 그 두 가지 능력이 어떻게 한데 섞여 있을 수가 있던 거야? 완전히 다른 두 힘이었는데 말이야.”
답은 간단했다. 김혁진이 ‘이능 융합’을 통해 섞었기 때문이었다.
천검우는 분명 강력한 살상 기술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찰사는 허상이고 염원이니까.
단순한 살상력만으로는 완벽하게 없애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거기에 단뢰를 섞었다.
단뢰는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세계조차 베어내는 검이다. 그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천검우와 융합시켜 나찰사의 허상을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다시 묻겠어.”
무릎까지 사라졌다.
“나를 죽인, 아니, 그 두 가지 힘을 하나로 묶은 이의 이름이 무엇이지?”
“김혁진.”
“김혁진. 김혁진이라. 좋은 이름이야.”
나찰사의 하반신이 완전히 사라졌다. 검이 꽂힌 상반신과 얼굴만이 남았다.
“벌써 화경의 경지에 들어섰구나.”
신연서를 통해 들었었다. 스스로를 검신이라 주장하던 NPC에게 설명을 들었다고 했었다.
-검을 휘두르면, 자연스레 검기가 형성되는 경지이다. 이것을 나는 ‘화경’이라 부른다. 네 출중한 재능으로 미루어보아, 레벨 80 정도면 이 경지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니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여라.
김혁진도 신연서를 통해 알았다. 자신이 화경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그때, 나찰사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네 수준에서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더더군다나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나찰사의 상반신도 사라졌다. 이제 목과 얼굴만 남았다.
“그런데 나와의 대화에 성공하고, 그도 모자라 나를 죽였어. 인제 보니 너, 무신지체를 가졌겠구나.”
목도 사라졌다.
“무신지체. 나는 오랫동안 너를 염원해왔어.”
얼굴의 반이 사라졌다.
“언젠가 네가…….”
얼굴이 완전히 사라졌다. 허공에 목소리만 남아 흩어졌다. 중간의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에서 기다릴게.”
마지막 한마디만 들렸다.
김혁진은 직감했다. 미래 기준으로도 몰랐던 새로운 시나리오에 한 발자국 진입했다는 것을.
그 시나리오에는 나찰들의 왕 ‘나찰사’가 관련되어 있었다. 스스로의 파멸을 원하는 상위 격 존재가 말이다.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와? 양파도 아니고.’
세계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던 것 같다. 마그나 이도교도 그렇고, 마왕도 그렇고, 포식수나 거인들도 그렇고.
거기에 나찰사까지.
알아갈수록 즐거웠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플레이가 체질에 정말 잘 맞는 모양이었다. 왜 과거에는 플레이에 참여조차 할 수 없었던 걸까.
‘회귀 때문에 내 재능이 바뀐 건가.’
또 환상이 보였다.
‘또 보이네.’
늘 환상 속에 보이는 사람이 있다. 성신 그룹의 막내, 송진철. 그 이름이 자꾸 보인다. ‘■’으로 꽉 닫힌 재능판이 보이는 종이도. 전보다 더 많은 정보가 보였다.
──────────
성별 : 남(男)
재능 계열 : 측정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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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알 수 없지만 흐릿한 사진 하나가 보였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이 너무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사진 속에는 여자로 짐작되는 사람이 한 명 보였고, 그 사람의 표정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환상 속에서 ‘재능 없음’ 글자가 보였다. 그리고 환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재미있어.’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이건 결코 단순한 환상은 아닐 것이다. ‘회귀’와 분명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회귀에 송진철이 관여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알림이 들려왔다.
[퀘스트. ‘성물의 주인’이 클리어되었습니다.]김혁진은 귀를 의심했다. ‘성물의 주인’이 클리어되었단다. 린하이가 밖에 있을 텐데.
린하이를 통해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려고 했다. 그 전에 잭슨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나찰뇌창의 세계 속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근데 클리어라고?’
김혁진은 퀘스트 상세 설명을 떠올렸다.
──────────
성물의 염원은 파멸(破滅)입니다. 성물의 염원을 잠재우기 위하여 성물의 주인을 찾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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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성물의 염원을 잠재우기 위하여 ‘성물의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김혁진이 염원을 잠재워 버렸다. 성물의 주인을 찾아서 염원을 잠재워야 하는데, 염원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퀘스트를 클리어해 버린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염원을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퀘스트 클리어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다음 퀘스트로 이어졌다.
* * *
창술가 린하이는 찔끔 놀랐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퀘스트가 하나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잭슨 씨, 퀘스트가 하나 떴는데.”
“알고 있습니다.”
성물의 진정한 주인.
성물의 주인 자격을 획득한 자가 한 명 나타났다고 했다.
“본래 주인의 자격을 갖춘 자는 당신이었죠.”
“…….”
“그런데 아무래도 거신의 길드장이 그 자격을 획득한 모양입니다.”
등평은 황당했지만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없던 자격도 만들어서 획득하는 사람이 김혁진이라고 생각하면 납득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잭슨이 가볍게 웃었다.
“성물의 진정한 주인을 가려야겠지요.”
등평이 끼어들었다.
“성물의 진정한 주인을 가린다는 게, 김혁진 씨로부터 저 창을 빼앗겠다는 소리야?”
“내 퀘스트가 그래.”
등평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린하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린하이.”
“왜 무게 잡아, 안 어울리게?”
“내 말 잘 들어.”
“뭔데?”
“나는 네가 충분히 강하다는 걸 인정해. 그래서 너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
“그만. 본론만 짧게.”
등평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본론만 짧게 말하자. 그게 린하이의 성격에도 맞는 일이지. 그렇게 생각한 등평이 말했다.
“넌 김혁진 씨한테 상대가 안 돼.”
“나도 알아.”
린하이가 히히 웃었다.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 같았다.
“농담 아니야.”
“나도 농담 아닌데?”
“김혁진은 네가 알고 있는 그냥 여름 군주 수준이 아니야. 내가 봐왔던 그 어떤 전투 계열 플레이어보다 강해.”
“안다니까?”
“모르잖아!”
“알아.”
린하이는 천하태평이었다. 린하이가 퀘스트 창을 공유해서 보여주었다.
“거봐. 내가 안다고 했지?”
“…….”
퀘스트 창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새로이 ‘성물의 주인 자격’을 획득한 자는 ‘김혁진’이라고 똑똑히 명시되어 있었다. 성물에 담긴 염원이 그 이름을 기억했고, 그 이름을 추억한다고 되어 있었다.
김혁진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뭔가를 하긴 한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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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물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태어난 자는 린하이, 당신입니다. 테헤란로는 기적을 일으키는 땅. 테헤란로가 당신에게 기적을 부여합니다. 테헤란로 필드에 한하여 김혁진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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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하이가 말했다.
“이렇게 나한테 특전을 부여해 줄 정도면, 김혁진이 나보다 훨씬 세다는 뜻이잖아.”
“…….”
“신난다. 엄청 센 놈이겠어.”
“린하이, 지금 이거 장난 아니야.”
“알아. 나도 장난 아니야.”
린하이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눈빛이 가라앉았다. 등평으로서는 거의 처음 보는 린하이의 진지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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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물의 주인은 둘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 명은 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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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는 죽는다.
“나는 죽고 싶지 않거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김혁진을 죽여야 해.”
“린하이.”
“너, 거신 길드의 명예 길드원이랬지? 저쪽 편에 서도 나는 너 원망 안 해. 그냥 너 마음 가는 대로 해. 나는 내 퀘스트를 진행할 거야.”
“…….”
김혁진도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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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물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PVP 필드에서는 오로지 ‘창술’만이 사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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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진에게 많은 페널티가, 린하이에게 많은 특전이 붙어 있는 퀘스트 진행이었다.
골목에서 린하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린하이는 기다란 창대를 어깨에 메어 들었다.
“당신이 김혁진이야?”
“린하이.”
“나를 알고 있다니, 영광이네.”
린하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김혁진은 거신 길드원들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한번 내밀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린하이가 물었다.
“우리, 싸워야 하는 거지?”
“아마도.”
“그리고 둘 중 한 명은 죽어야겠네?”
“아마도.”
“전투는 일대일이야?”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하이가 피식 웃었다.
“비겁하지 않아서 좋네. 여기서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린하이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한 가지를 물었다.
“굉장히 다재다능한 플레이어라고 들었어. 혹시 창을 다뤄본 적이 있어?”
“아니.”
“창을 한 번도 안 써봤어? 그럼 창과 관련된 스킬도 없겠네?”
김혁진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린하이는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김혁진에게 너무 불리하고 자신에게 너무 유리한 판 아닌가. 이런 건 싫다. 저쪽은 비겁하지 않은데, 이쪽은 비겁해지고 싶지 않았다.
약간 고민하던 린하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거 쓸게.”
상점표.
싸구려 철창을 꺼내 들었다.
[연계 퀘스트인 ‘성물의 진정한 주인’이 시작됩니다.]필드는 바뀌지 않았다. 린하이가 자세를 낮추었다.
“재미있게,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