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71)
#재능만렙 플레이어 471화
고래일족의 수장. 나프탄은 순간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일평생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는 나프탄이다. 운해로 추방되어 아사직전까지 갔을 때도 공포를 느낀 적이 없다.
‘생소한 느낌이군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포는 아니었다. 뭐랄까. 온몸이 회 떠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걸치고 있는 가죽까지 벗겨먹을 것 같은 괴이한 기분.
인간들 표현으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기분이랄까.
“또 제 딸을 구해주셨으니…… 응당 마땅한 보상을 해야겠지요.”
더 이상 당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조커는 또다시 황당했다.
‘이걸?’
말하자면,
플레이어를 죽이라고 만들어놓은 최종 보스몬스터에게 당당하게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또 진지하게 고민해?’
조커는 이런 플레이를 처음 본다. 김혁진을 만나고서 처음 보는 것들투성이다. 이 비슷한 걸 들어본 적은 있다.
‘이게…… 코리안 스타일.’
그걸 소문으로만 들었지 이렇게 적나라하게 경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코리안들은 유독 유별나고 괴상하며 특별한 방식으로 플레이를 한다고 했었다. 그게 완벽하게 확인되었다.
“그에 따른 보상은 잠시 후에 드리겠습니다. 일단 본 퀘스트의 내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나프탄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김혁진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갈 것 같은 공포스런 눈빛이었다. 일단 할 말을 하기로 했다.
“퀘스트의 내용이 제 분노를 감당하는 것이었다면, 이미 클리어된 것입니다. 저는 당신과 언약으로 맺어졌고, 결코 당신을 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그, 그렇죠?”
나프탄이 말을 이었다.
“제 딸을 구해주신 것에 대한 보상은…… 3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3분의 시간을 요청한 나프탄과 나탈리의 몸이 사라졌다.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 * *
모든 중간 관리자들이 숨을 죽였다. 세니아의 날개가 눈에 띄게 바들바들 떨렸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내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공.
고래일족.
불멸자.
계획되어 있던 시나리오.
김혁진이 그 모든 요소들을 알아냈다.
‘최상위 시나리오 [심판]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습니다.’
챙! 챙!
가위질을 하며 쇼비도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간 관리자에게만 들리는 언어로 얘기했다.
“쟤. 안식의 번개를 획득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차원급 퀘스트도 클리어하게 생겼네?”
“그러게 말입니다.”
쇼비도비가 계속해서 가위질했다. 과거. 세니아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 시나리오를 깨고서 [안식의 번개]를 획득하는 미친 자식이 존재할 줄이야.
-안식의 번개는 최상위 시나리오 [심판]과도 연결 되는 거. 알고 있지?
그때만 해도 그저 미친 자식인 줄 알았는데 그냥 미친 자식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다니 굉장히 미친 자식이다. 그것도 레벨 70대에.
쇼비도비가 알기로 전 차원 최초였다.
“전 차원 최초지?”
“제가 알기로 그렇습니다.”
“시간이 무지 오래 걸리네.”
“…….”
“시스템도 이따위 클리어는 처음 보는 거니까. 히든 매뉴얼에도 저런 내용은 없었을 걸.”
“그런 것 같습니다. 실시간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퀘스트는 클리어 되었다. 아직까지 퀘스트 클리어 보상 알림이나 다음 퀘스트 진행과 관련된 알림은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나프탄이 말했던 3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김혁진의 몸을 무엇인가가 감싸기 시작했다.
“억!”
마침 김혁진 근처에 있던 조커가 화들짝 놀라 김혁진과 멀어졌다.
‘뭐, 뭐야, 이 끔찍한 기운은?’
김혁진의 몸이 사라졌다.
* * *
조커가 화들짝 놀라서 멀어진 기운. 그것은 다름 아닌 ‘천공의 마나’였다.
천공의 마나는 고래일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물체에게 매우 끔찍하고 파괴적인 기운이다. 김혁진은 그 기운이 자신의 몸을 덮는 것을 자연스레 느꼈다.
“흠.”
천공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천공지체를 가진 김혁진이다. 천공에서 숨을 쉬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제 2의 심장인 이사벨이 천공의 마나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갑자기 왜지?”
천공의 마나로 둘러싸인 세계. 이 곳은 말하자면 ‘소천공’이었다. 아주 작은 천공. 그 작은 천공에 나프탄과 나탈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선물 드리는 걸 깜빡했습니다.”
“선물?”
“예.”
김혁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천공으로 돌아가던 고래일족이 다시 나타나 선물을 주겠다니.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나프탄이 나프탄의 영창을 시작했다. 대부분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지막 시동어라 짐작되는 영창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정순함을 빌어, 기적을 강림시키리.]그리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혁진은 느낄 수 있었다. 천공의 마나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끓는 것이 느껴졌다. 나프탄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 천공의 마나는 제 몸속에서 끄집어 낸 것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소천공이라 부릅니다.”
“그래.”
“천공의 마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마나입니다.”
“…….”
“그래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기…….”
순간, 김혁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소천공 내 기포가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하나의 형상으로 뭉쳤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얀색 옷을 입고 있는 금발머리의 여자였다. 풍성한 머리카락이 정돈되지 않은 채 어깨에 맞닿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수수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수수함이 존재의 아름다움을 깍아내지는 못했다.
나탈리가 감탄을 내뱉었다.
“와…… 저 언니가 그때 그 언니?”
나탈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저토록 아름다운 존재는 처음 본다.
“저번에 봤었을 때랑 다른데.”
외모는 같았다. 외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단순히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존재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미(美)에 압도되어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탈리는 이런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나탈리예요. 천공에서 뵈었죠?”
“오랜만이구나.”
나프탄조차 크흠, 신음성을 내었다.
“아빠 지금, 감탄했죠?”
“감탄하지 않고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엄마한테 다 일러야지.”
나프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너도 느끼지 않느냐, 저분의 존재값을. 네 어머니도 이해할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과연 가슴으로도 이해해주실지는 의문이네요. 헤헤.”
나프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탈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프탄조차도 ‘순혈의 검제’로서 나타난 이사벨을 보며 일종의 경외심을 느꼈다.
나면서부터 수호자로 태어난 이사벨은 그토록 고고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고래일족에게도 말이다.
김혁진은 저도 모르게 이센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사벨.”
이사벨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걸음이 빨라졌다.
와락!
이사벨을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나프탄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지막히 말했다.
“소천공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15분이 한계입니다.”
“고마워.”
김혁진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고래일족이 줄 수 있는 모든 선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다.
이사벨이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김혁진과 이사벨 주변에 작은 막이 생겼다.
이사벨도 김혁진을 살짝 안았다.
“시야와 음파를 잠깐 차단했어.”
“차단?”
“저 녀석들한테도 얘기가 들리면 좀 그렇잖아.”
순혈의 검제로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엄중한 모습을 보이던 이사벨이었다. 그러나 시야와 음파를 차단하자마자 김혁진을 꽉 끌어안았다. 강아지처럼 그녀의 볼을 김혁진의 가슴에 부볐다.
김혁진은 알 수 없는 행복감이 차올랐다.
‘이 모습을 보면 누가 그 순혈의 검제라고 생각하겠어?’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
수호자와 불멸자를 사살하는, 나면서부터 강대한 수호자인 이사벨이 김혁진 앞에서는 한 명의 사람이 되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김혁진도 지금은 거신길드의 길드장이 아니라 사람 김혁진으로서, 이사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에 설 수 있었다.
김혁진이 이사벨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그리고 금방 떨어졌다. 이사벨은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사벨이 본론을 꺼냈다.
“시간이 길지 않아. 짧게 말할게.”
“응.”
“나는 잘하고 있어. 검림은 안정화되고 있고. 마탑주의 행방을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이사벨은 역시 이사벨이었다. 모든 것을 잘 해내고 있었다. 김혁진도 말했다.
“나도 잘하고 있어. 지금은 차원급 퀘스트를 진행 중이고, 바베룬탑의 꼭대기에서 나프탄의 분노를 잠재웠어.”
“…….”
연인은 서로의 안부를 짧게 전했다. 연인에게 있어서 ‘본론’은 별 게 아니었다. 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것을 경험하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이 본론이었고 이야기 주제였다.
“내일은 검림의 축제가 있는 날이야.”
“검림에도 축제가 있어?”
“응. 성탄절.”
들어보니 제1대 검제인 ‘에텔’이 태어난 날을 기리는 날이라고 했다.
“검림에서는 그 날을 연인들의 축제라고도 불러.”
“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됐어. 따뜻한 노래가 흐르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고, 맛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 날이야.”
이사벨이 김혁진의 가슴팍에 안겼다.
“네가 없어서 조금 허전하겠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더 애틋했다. 김혁진도 확신할 수 있었다. 수호자면 어떻단 말인가. 검의 일족이면 어떻단 말인가. 이 감정은 진짜였다.
이사벨이 품에 안겼을 때,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충족감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했다. 그거면 됐다.
“그런데…… 남편에게서 ‘그놈’ 냄새가 나네.”
이사벨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김혁진 자신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크게 말했다. 음파 차단을 잠시 해제했다.
“나프탄. 체력을 좀 소모시켜도 괜찮겠어?”
멀리서 목소리만 들려왔다.
“괜찮…….습니다. 제 업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나탈리. 너도 도와. 너 역시 장성한 고래일족이니까.”
“알았어요, 언니!”
김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뭘 하려고?”
이사벨의 손에 지팡이 하나가 생성되었다.
이사벨은 순혈의 검제이지만, 마탑주마저 두려워할 정도의 마법재능을 가진 마법의 천재다. 그러나 이사벨은 자신이 마법사임을 늘 부정한다. 그런 그녀가 검을 버리고 지팡이를 들었다는 것은 무언가 큰 결심을 했다는 얘기였다.
“검림은 어느 정도 안정됐어. 그러니까 수호력을 일부 소모하려해.”
“수호력을?”
이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남편 객사하면 안 되잖아.”
마침 이 곳은 소천공이다. 천공의 마나는 파괴적인 힘이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기도 했다. 다룰 수 있는 자에 한해서는 말이다.
‘운이 좋아. 여기서 남편을 만나고.’
나프탄에게 감사인사라도 올려야 할 지경이었다.
이사벨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몸에서 하얀 빛이 폭사되었다.
그녀의 발밑에 거대한 백색 원형 마법진이 생겨났다. 김혁진은 직감했다. 이건 수호력을 ‘일부’ 소모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사벨이 김혁진의 어깨를 짓눌렀다.
“괜찮아. 가만히 있어.”
김혁진은 저항하지 못했다. 이사벨에게 힘으로 졌다.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긴 영창을 시작했다. 영창은 1분가량 이어졌다.
1분이 지났다.
알림이 이어졌다.
[‘순혈의 검제’가 절대권능을 사용합니다.] [‘검제의 낙인(烙印)’이 적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