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87)
#재능만렙 플레이어 487화
스스로 김혁진의 시험대에 선 검은나비의 길드장. 피에트로가 말을 이었다.
“김혁진 씨는 변절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모사꾼이 그 변절자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고.”
“…….”
김혁진은 딱히 대꾸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시험대에 올라섰다는 걸 안다. 그리고 김혁진에게도 꽤 이로운 상황이었다.
피에트로는 김혁진의 시험대에 올랐지만, 단순히 김혁진만의 시험대는 아니었다. 피에트로는 정보단체의 수장다운 플레이를 해야만 한다. 저쪽 취향의 수호자들이 피에트로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내 시험대에 자처해서 오르면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겠다라.’
김혁진으로서도 꽤 마음에 드는 행동이었다. 정보단체의 수장이라면 응당 이렇게 플레이하는 게 옳다.
“첫째. 그 [모사꾼]이라는 자가 변절자가 아닐 경우를 가정하겠습니다.”
모사꾼은 악몽의 1급 간부다. 스스로 그렇게 밝혔다고 했다. 정말로 1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가 정말로 악몽을 배신했을까? 시스템이 말하는 악몽의 변절자일까? 일단 아니라고 생각해 봤다.
“아니라면, 김혁진 씨 당신에게 어떻게든 물밑작업을 걸어오겠죠.”
“…….”
“그래서 일부러 돈을 조건으로 내민 것이고요.”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1억 위안. 그 정도 돈에는 크게 관심 없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다.
“적어도 [모사꾼]이라는 자에게 메시지 전달은 되었겠죠. 협상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메시지요.”
그게 진짜 돈이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찌 됐든 김혁진이 ‘나는 협상할 생각이 있다’라고 우회적인 의사를 던진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모사꾼]은 김혁진 씨와의 협상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러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다. 눈앞의 저 김혁진이 말이다. 퇴로를 모두 막아놓고서, 딱 한곳의 길만 뚫어주었다. 그 길로 유도했다.
“그러나 만약 [모사꾼]이 정말 변절자라면.”
피에트로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도 그 나름대로 연출을 하는 중이었다.
“구슬이 공개되든 공개되지 않든 상관없겠지요. 어쩌면 구슬이 공개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대신, 책임을 물어 샤오잔을 살해할 것입니다.”
“…….”
“그리고 최욱현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김혁진 씨에게 연락을 취해오겠죠. 어떤 방식으로든.”
김혁진이 가지고 있는 퀘스트는 ‘변절자 색출’이나 ‘변절자 처단’ 같은 퀘스트가 아니다. 김혁진이 받은 퀘스트는 그저 ‘변절자 접촉’이었다. 접촉만하면 된다.
“그러니까 김혁진 씨는 상대가 변절자이든, 변절자가 아니든. 악몽의 편이든, 거신의 편이든. 어찌 됐든 상관없이 상대가 김혁진 씨와 접촉하도록 판을 깔아놓았다는 뜻이죠.”
“…….”
모사꾼은 좋든 싫든 김혁진에게 접촉을 할 것이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 됐든 간에.
“제 말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피에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니 쉽지만, 용살진에서 빠져나왔던 그 시점에, 어떻게 여기까지 판을 짤 수 있단 말인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김혁진이라는 인간이 놀라웠다.
김혁진이 한 가지 정보를 더 줬다.
“저는 한국에서 이미 용살진을 경험했습니다.”
“어쩐지.”
아무리 김혁진이어도 그렇게 용살진을 쉽게 파훼하고 나올 줄이야. 심지어 그 안에서 마정석까지 잔뜩 챙겨서 말이다.
“그리고 제게 용살진을 경험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모사꾼]이죠.”
“……그렇습니까?”
어라. 이건 또 무슨 전개지. 피에트로는 잠자코 김혁진의 설명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모사꾼]은 제게 큰 도움을 줬습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마정석을 뽑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맨 처음.
용살진의 생문과 사문이 처음 보일 때. 그때 세 번째 사문으로 들어가면 진의 뿌리로 이어진다. 김다롱같이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그 안에서 마정석을 잔뜩 채취해올 수 있다.
“[모사꾼]이 김혁진 씨에게 힌트를 줬다는 얘기입니까?”
“힌트였을지, 함정이었을지. 그건 대봐야 알 것 같습니다.”
피에트로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단체 수장으로서 많은 것을 읽어내고 상황을 분석했다.
피에트로가 김혁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되지.’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자꾸 잊게되기는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정보를 주로 다루는 클래스가 아니다. 군주라고 말하기 애매한 -군주라고 보기에는 본신의 능력이 지나치게 강하다- 군주.
아무튼 정보관련 클래스는 아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정보를 다룬다. 단순 분석을 넘어서 보다 괜찮은 조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플레이’다.
“만약 저였다면 샤오잔에게 사람을 붙였을 것입니다.”
“사람을요?”
“좋든 싫든, 샤오잔은 보고를 올리러 돌아가야 합니다.”
샤오잔에게 1억 위안이 있을리 만무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지켜봤다. 샤오잔은 싫어도 모사꾼에게 돌아가야 한다.
“뛰어난 은신기술을 가진 자를 샤오잔에게 붙여놓았다면 [모사꾼]의 본거지를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습니까?”
순간, 피에트로는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방금. 웃었는데?’
김혁진이 웃었다. 아주 잠깐.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웃었다. 피에트로는 그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
피에트로의 몸이 굳었다.
“이미 붙여놓으셨군요.”
“글쎄요.”
“거신에 살수가 있었습니까?”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피에트로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알게 될 거다. 그래서 그냥 말해주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뛰어난 살수거든요. 저도, 그가 저를 공격하기 전까지는 그의 은신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허.”
피에트로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살수는 비대칭전력에 가깝다. 정식전투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기습과 게릴라에 능하다. 정규 전투력을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강력한 살수 영입은 거신길드의 힘을 최소 5배 이상은 늘려줄 것이다. 피에트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득, 피에트로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떠올렸다.
“김혁진 씨가 언급했던 용 말인데요.”
“네.”
“정말 있는 겁니까?”
김혁진이 빙그레 웃었다. 대답해 주지 않았다. 피에트로는 괜스레 모골이 송연해졌다.
‘왠지…… 진짜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용을 언급했다면 그저 헛소리라 생각했을 텐데. 상대가 김혁진이다 보니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왠지 김혁진이라면 진짜 용을 데리고 있을 것 같다.
‘에이. 아니겠지.’
염두에 두기는 하되, 실제로 용이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피에트로의 정보원이었다. 정보원이 새로운 사실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샤오잔이 공개 처형될 것 같습니다.”
* * *
구슬이 공개되었다.
중국은 전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중국의 비호 없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느냐.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은 그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샤오잔을 즉각 총살시켰다.
샤오잔은 광장에서 공개처형을 당했다. 중국의 주석은 이번 일에 대해 심한 유감을 표했다. 실종자를 찾아내는 것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약조했다. 대대적인 기자회견도 열었다.
-……하여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중국정부는 ‘악몽’과 연관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악몽’의 반인륜적이고 끔찍한 행위를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관련자들을 찾아내 모두 처형하겠다고 약조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실제로 악몽의 플레이어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공안에 잡혀 즉각 사형당했다. 중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자 중국을 비호하는 여론도 들끓었다.
어쨌든 중국은 ‘악몽’과는 관련이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김혁진은 TV로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
김혁진의 호텔방.
김선화가 소파에 앉아 김혁진과 함께 TV를 봤다. 김선화가 귤을 까먹으며 물었다.
“[모사꾼]이 진짜로 연락을 해올까요?”
“아마도.”
“괜히 연락했다가 중국 쪽에 꼬리라도 밟히면 죽잖아요.”
“안 밟히게 접근할 거야.”
김혁진은 조금 더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최욱현이었다. 김혁진이 문을 열어주었다. 최욱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김혁진이 물었다.
“기문둔갑(奇門遁甲)은 잘 활성화시켰겠지요?”
“…….”
최욱현의 몸이 움찔했다.
“제가 혹시 기문둔갑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나요?”
“아뇨.”
“…….”
최욱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쳤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뭘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김선화는 최욱현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귤 하나를 건넸다. 김선화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최욱현의 심리상태를 아주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이거 드세요. 맛있어요. 엄청 달아요.”
“……고마워요.”
김선화는 최욱현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래요. 원래 그래요. 우리 오빠가 원래 그러니까, 너무 놀라지는 말아요.’ 그런 의미였다.
황당하게도 최욱현은 김선화의 손길에 조금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무튼…… 김혁진 씨의 말씀대로 저는 기문둔갑을 펼쳐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아마 저를 발견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죠.”
감각안도 방어해 냈던 기문둔갑의 힘이다. 저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 받으십시오.”
뭔가를 하나 건넸다.
“이건…….”
“영상통화가 가능한 노트입니다. 보시다시피 아이템이죠.”
신문물 중 하나다.
인류의 과학과는 상관없이 ‘영상통화’가 가능하다. 기록도 남지 않는다. 과학으로 해킹도 못 한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안전한 통화수단이겠지.’
모사꾼으로서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김혁진이 노트를 받아들었다.
노트에는 초록색 그림과 빨간색 그림이 있었다. 스마트폰의 통화버튼. 그리고 끊음버튼과 비슷했다. 김혁진이 통화버튼을 누르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김혁진의 눈에만 보이는 홀로그램이었다.
“당신이 모사꾼?”
홀로그램 속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도 변조된 것 같았다. [모사꾼]이라 짐작되는 이가 입을 열었다.
“내게 사람을 붙였더군.”
“떠보는 거. 싫어하는데.”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모사꾼’이 조커의 은신을 알아차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 플레이어들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
김혁진은 가차 없이 빨간 버튼을 눌렀다.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
최욱현이 두 눈을 끔뻑거렸다.
“……끊은 겁니까?”
“네.”
“이거 3회밖에 사용 못 하는 건데요.”
“압니다.”
김혁진은 최욱현에게 노트를 건네주고서 선화 옆에 앉았다. 김혁진도 귤을 까먹었다. 아주 편안한 모양새였다.
최욱현은 괜스레 당황했다.
“저기…… 이래도 됩니까?”
“곧 다시 전화 올 겁니다.”
최욱현이 영상노트를 내려다봤다. 우웅- 우웅-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진짜네.’
정말로 영상통화가 다시 걸려왔다. 김혁진은 한참 후에야 그 영상통화를 받아주었다. 김혁진이 다시 끊기 전, 모사꾼이 빠르게 말했다.
“나는 살수가 붙었을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나는 광역마법 스크롤을 찢었다. 그때, 그 살수가 나를 공격했다.”
“알아.”
모사꾼은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김혁진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설마…….’
모사꾼은, 김혁진이 샤오잔에게 미행을 붙일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김혁진도, 모사꾼이 예상할 것을 미리 알았다.
그럼. 그다음은?
‘함정인가.’
등골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