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89)
#재능만렙 플레이어 489화
김혁진은 이 퀘스트의 허점을 알 것 같았다. ‘변절자 접촉’으로부터 시작된 이 퀘스트들의 진행은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능캐와 지능캐의 싸움.’
이번 퀘스트들은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지금의 진행역시 마찬가지다.’
머리를 굴리고 지략으로 싸운다. 계속 그렇게 유도해 왔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여태까지의 모든 진행에 있어서 ‘모사꾼’은 늘 유리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먼저 정보를 알고서 다른 인격의 최욱현을 통해 김혁진에게 접근했다.
‘함정을 연달아 준비했고.’
정보의 우위에 서 있었다. 그가 잘나서였을까? 악몽이 그만큼 대단해서?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김혁진의 확실한 우군에는 검은 나비의 피에트로도 있고, 태극방패의 송기열도 있다. 이들과 자신의 정보력이 악몽에게 뒤처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나를 시험하는 듯한 진행을 보여줬어.’
시험을 내리는 사람은 역시 모사꾼이었다. 여태까지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깨달았다.
‘밸런스 패치가 되어있었네.’
저쪽에 유리하도록 밸런스 패치가 되어 있었다.
저쪽은 계속 공격하고, 시험하고,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에 반해 이쪽에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었고, 실제로 중첩된 용살진에 들어가서 퀘스트를 클리어했어야 했다. 심지어는 중간에 수호자의 화신도 죽였어야 했다.
‘퀘스트의 판 자체가, 저쪽에 유리하게 되어 있어.’
그렇다면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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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자 판단]변절자라 함은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그 마음을 바꾼 사람’을 뜻합니다. 해당 퀘트의 ‘변절자‘는 무엇으로부터 마음을 바꾸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변절자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흐름이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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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모사꾼의 편이었던 시스템의 진행이, 이제 와서 갑자기 자신의 편을 들 것 같지는 않았다.
‘이중함정이다.’
머리를 써서 상황을 타개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김혁진이 머리를 많이 쓰는 플레이어니, 한껏 꼬고 꼬아서 시험문제를 던진 것 같다.
“때로는 말이야.”
“…….”
모사꾼은 꾸벅꾸벅 졸다가 졸린 눈을 뜨고서 김혁진을 쳐다봤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김혁진이 모사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김선화는 고개를 돌려 김혁진을 봤다가는 이내 귤을 까는 것에 집중했다.
귤은 말캉말캉하고 새콤달콤했다. 요즘 귤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거람. 다롱이가 훔쳐가기 전에 다 먹어야지. 김선화는 왠지 오빠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것 같았다.
“주먹이 더 편할 때가 있거든.”
김혁진이 다짜고짜 모사꾼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비몽사몽이었던 모사꾼은 그 주먹을 피해내지 못했다.
퍽!
커다란 소리와 함께 모사꾼의 몸이 붕 떴다. 실제로 붕 떴다가 땅에 철푸덕! 쓰러졌다. 몸에 ‘진’을 덕지덕지 바르고 온 덕택에 다치지는 않았으나 꽤 당황한 것 같았다. 쓰러진 그가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뒤로 물러섰다. 벽에 등이 닿았다.
“뭐, 뭐, 뭐, 뭐하는 짓이야?”
“패면 안 된다는 말은 없던데.”
모사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봤다. 김혁진 저놈은 약간 미친 구석이 있었다. 아까 최욱현을 진짜로 베려고 했다.
만약 모사꾼이 튀어나오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 것이다.
그 모사꾼이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왜? 무슨 할 말이라도?”
“나는 김혁진. 당신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고, 당신을 파악해 왔다.”
“30초 준다.”
30초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패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잘 모르겠으면 패서 불게 하면 된다. 시간제한도 없다. 밤은 길다. 그리고 혹시 몰라 대비도 했다.
-김다롱. 혹시 모를 워프 포탈 같은 게 있으면 찾아내고.
-용돌이. 저놈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결계를 쳐.
도망칠 수 있는 길도 막아놓기로 했다. 용돌이는 조금 불만인 것 같았다.
-아버지. 왜 김다롱을 먼저 불러?
-원래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용돌이가 헤벌쭉 웃었다. 신이 난 무색용은 자신의 특기인 마법을 펼쳤다.
-절대로 여기서 도망 못 쳐. 흐흐흐. 역시 주인공다운 힘이었지?
그 사이, 모사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절대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
“……흠.”
모사꾼이 파악하기로는 그랬다. 적을 죽일 때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먼저 나서서 사람을 살육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계속해 봐.”
“그만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서, 그토록 대의명분에 맞도록 행동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지금처럼 유리한 상황에서 내 말을 차분히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은.”
그는 모사꾼답게 행동했다. 김혁진의 모든 것을 읽어내고 상황을 추론해냈다. 김혁진의 돌변한 태도에 당황했지만 모사꾼다운 모습으로 응대했다.
“네게 그만큼 큰 제약이 걸려있다는 것이겠지.”
“이를테면?”
“이를테면 절대선 계열의 수호자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거나.”
“흠.”
“그도 아니면 네 클래스가 정의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를 가진 클래스라든가.”
“좋은 추론이야.”
아주 합당하고 올바른 추론이었다. 만약 김혁진 자신이 모사꾼이어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모사꾼은 모사꾼 나름대로 이제 자신감을 찾았다.
“어쨌든 너는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네게 큰 페널티가 생기겠지.”
“좋은 추론이야.”
김혁진이 모사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모사꾼의 얼굴에 주먹을 뻗었다.
쾅!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났다. 화약과 관련된 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레벨 30대 플레이어의 손목 정도는 가뿐히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 40레벨 이상 플레이어의 손목에도 큰 부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의 폭발력이었다.
김혁진은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사꾼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쾅!
쾅! 콰과광!
폭발음이 여러 번 터져 나왔지만 그 어떤 폭발도 김혁진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아버지! 용돌이는 소음도 차단하고 있다.
-진동도 차단해.
-그, 그, 그러엄! 위대한 용은 그 정도도 이미 신경 쓰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김혁진의 일방적인 구타는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더 이상은 방어진도 모사꾼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드디어 모사꾼의 모든 방어진이 힘을 다했다.
퍽!
모사꾼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모사꾼은 순간 별을 봤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이렇게 맞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고통이 얼굴과 턱뼈를 타고서 뇌까지 파고들었다. 극도의 고통은 모사꾼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모사꾼이 소리쳤다.
“그, 그, 그 그만!”
김혁진이 그제서야 멈추고 말을 이었다.
“네 논리에는 한 가지 맹점이 존재해.”
모사꾼은 울고 싶었다.
머리로 싸우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몸으로 싸우는 것은 자신 없었다. 자신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젬병이었다.
김혁진의 말이 일부 맞았다. 일단 맞으니 정신이 없었다. 평소의 자랑하는 지능을 뽐낼 수도 없었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내가 그렇게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플레이어였다면.”
“…….”
“아무런 선택 없이 너를 무자비하게 패지는 않았겠지.”
모사꾼이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이 번쩍 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 그렇다면 너는……!”
악몽의 변절자가 아니라, 한국의 변절자로 판단한 것인가.
“나를 [한국을 배신한 변절자]로 선택할 거란 얘기냐?”
모사꾼은 그제야 희망을 찾았다. 이 퀘스트는 김혁진이 ‘판단’하고 ‘선택’하는 퀘스트였다.
김혁진이 어떤 판단을 하든,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상황이 모사꾼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더더군다나 ‘한국을 배신한 변절자’라는 선택을 내리면, 모사꾼에게 더욱 유리해진다.
김혁진에게는 ‘변절자 처단’이라는 퀘스트가 주어질 것이고, 자신에게는 ‘추적자 말살’이라는 퀘스트가 주어진다.
겉으로는 속내를 철저히 감췄다.
‘내가 심판자가 된다면……!’
그러면 김혁진을 무력으로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잠시나마 얻을 수 있게 될 거다. 퀘스트의 진행이 그랬다.
시스템은 공정하지 않다. 이쪽 편이다. 모사꾼은 그렇게 확신했다.
‘어서, 선택해라!’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누가 그렇대?”
불행하게도 김혁진도 모사꾼의 속내를 눈치챘다.
안타깝게도 모사꾼은 생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고통을 경험 중이었다. 그에 반해 김혁진은 너무나 평온한 상태였다.
심리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었고,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그리고 김혁진의 예리한 ‘관찰자의 눈’이 모사꾼의 눈에 서렸던 찰나의 희망도 읽어냈다.
“사실 국가를 배신했든, 길드를 배신했든,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닌데.”
김혁진은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거나, 국민은 국가의 일원이니 국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거나하는 소속감 같은 건 별로 없었다.
그가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 국가는 자신을 위해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국가는 그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그것에 딱히 큰 불만도 없었지만, 반대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도 없었다.
‘네가 진짜 [악몽]소속의 1급 간부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악몽이 자꾸 먼저 건드려 온다. 예전에는 눈 감고, 귀 닫고 살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악몽을 확실히 뿌리 뽑을 것이다.
“사람을 잘못 건드렸거든, 너희가.”
모사꾼은 피떡이 됐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처음 겪는 이 고통이 공포가 되어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
“…….”
“심플 이즈 더 베스트.”
간단한 것이 최고다.
지금 같은 상황에 제격이었다. 사실 쉽게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는 회귀자다. 미래를 안다. 미래에서 한국은 어이없으리만치 황당하게, 진법 싸움에서 패배했다. 모사꾼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어렵게 생각할 게 없었다. 놈은 시스템이 말하는 ‘악몽을 배신한 변절자’가 아니라 ‘한국서버를 배신한 변절자’가 확실했다. 그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두들겨 팼다.
“그래서. 넌 어디 소속이냐?”
모사꾼은 그래도 모사꾼이었다. 악몽의 간부답게,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괜찮아. 밤은 길어.”
“…….”
“맞다보면 입을 열겠지.”
모사꾼은 욕하고 싶었다. 무슨 이따위 클리어 방식이 다 있냐. 판단을 하라고 했지, 폭력을 행사하라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반대로 폭행을 하지 말라는 얘기도 없기는 했다. 그렇지만 김혁진이 이런 식으로 플레이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과 동류라고 생각했다. 머리로 싸우는 것을 즐기는 변태. 분명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명백한 계산 실수였다.
TV를 보던 김선화가 고개를 돌렸다. 김선화는 소파에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오빠. 귤 먹고 해요.”
다롱이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만, 오빠에게라면 귤 두 개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그럴까?”
“네. 귤 엄청 맛있어요.”
김혁진은 귤을 먹고 나서 다시 모사꾼에게 다가갔다.
“좀 더 맞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김혁진의 말대로, 밤은 길었다. 모사꾼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영원의 시간 동안 고통받던 모사꾼은 결국 입을 열었다.
“다, 다 말하겠습니다! 제, 제발 그, 그만! 그만!”
“그건 내가 정해.”
폭행이 이어졌다. 모사꾼은 머리가 좋은 놈이다. 머리를 쓸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려야 한다. 김혁진은 그것을 철저하게 계산했다. 딱 죽지 않을 만큼, 그렇지만 정말 아프게 두들겨 팼다.
-용돌이. 치료해.
용은 치료마법에도 탁월했다. 모사꾼은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 그, 그만! 제, 제발 그만해 주세요! 다, 다 말하겠습니다! 다!”
같은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제발!!! 이 미친놈아!”
그제야 김혁진이 폭행을 멈췄다. 욕을 했다. 이성이 마비됐다는 신호다. 김혁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말해봐. 말과 말 사이에 텀은 1초 이하. 중요하지 않은 얘기가 나와도 일련의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이런. 말을 너무 길게 했나.
김혁진은 다시 한 번 모사꾼을 반쯤 죽여놨다가 살리기를 반복했다.
이 개새X야! 차라리 죽여라! 악마 같은 새X! 라며 악에 받칠 때쯤 김혁진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잔머리를 굴리지 못할 것이다.
최대한 짧게 말했다.
“말해.”
마침 김선화가 보는 TV에서 대화가 흘러나왔다. B급 액션영화였다.
-가끔은 주먹이 법보다 가까운 법이지.
생존본능에 찌든 모사꾼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