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92)
#재능만렙 플레이어 492화
홀로그램 속 모사꾼의 모습은 마치 승리를 예견하고 있는 자의 모습 같았다. 공포에 질려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김혁진은 알 수 있었다.
‘방금 죽어 없어진 건 분신이구나.’
본체는 어딘가에 숨어있다.
‘그렇다면 내가 본체라고 착각한 건가?’
단순히 그렇다고 보기에, 모사꾼이 느꼈던 공포의 감정은 진짜였다. 감각안으로 살펴보았던 최욱현 역시 진짜였다. 진짜이기도 하고 가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완전한 분신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몸은 따로 떨어져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분신.’
분신이 고통을 느끼면 본체도 거의 비슷한 강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걸 통해 유추해낼 수 있었다.
‘분신이 죽으면 본체에도 꽤 큰 타격이 가겠는데?’
홀로그램 속 모사꾼이 피식 웃었다.
“아주 치욕스런 시간이었어.”
“그래. 그랬겠지.”
모사꾼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공포에 질려 이성이 마비되었던 것도 맞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얘기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중 한 가지의 거짓말을 심었다.
“나와 처음 접촉했던 그 순간부터. 퀘스트의 시간이 집계되고 있었다.”
“오호.”
마지막 발악의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저거인]을 소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
“지저거인?”
김혁진의 몸이 움찔했다. ‘거인’이라는 단어가 또 나왔다. 그리고 김혁진은 이미 지저거인에 대해 알고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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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의 심장조각]마지막 천룡(天龍)이었던 베일사라는 ‘지저거인’들과의 전쟁 때문에 많은 존재력을 소모하였습니다.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 판단한 베일사라는 스스로의 심장을 잘게 부숴 세계 곳곳에 뿌려놓았습니다. 천룡의 심장조각은 상당한 ‘용기(龍氣)’를 품고 있어, 어린 용들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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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천룡 베일사라와 전쟁을 치렀었던 ‘지저거인’.
용의 존재력마저 소모하게 만드는 강대한 일족. 그게 바로 지저거인이다.
“제대로 된 지저거인의 소환에는 아주 많은 제약이 걸려 있었지. 너를 속이고, 속이고, 또 속여서, 시간을 아주 많이 끌어야만 제대로 된 지저거인이 소환된다.”
“그래서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
김혁진은 모사꾼이 했던 말을 떠올려 봤다.
-그림자 기사들을 제물로 삼아, 위대한 존재가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그림자 기사들을 제물로 삼기는 삼되, 퀘스트에 소요되는 시간을 길게 끌어야 완벽한 지저거인이 소환된다는 얘기였다.
모사꾼은 이제야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김혁진은 모사꾼의 말이 일부 맞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 자리에 ‘진짜 지저거인’이 등장한다면, 김혁진도 방법이 없었다. 거인들을 약간이나마 경험해 봤다. 최근에 경험했던 불거인 역시, 김혁진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다.
김혁진이 말했다.
“근데 말이야.”
모사꾼의 말에는 큰 맹점이 존재했다.
“네가 정말 진짜 [거인]을 소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퀘스트 보정을 받고, 수호자들의 도움을 받은 천재 진법가라고 해도?”
“무슨 뜻이지?”
“오래 전. 한국에도 거인이 나타났었다. 불거인이었지. 그 불거인을 본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었다.”
-진짜 불거인들이 들으면 우습다 못해 혈압이 올라 쓰러지겠군.
다시 말해,
“지금 네 수준. 아니 너희 악몽의 수준에서 진짜 지저거인을 소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지 않겠나?”
모사꾼은 여전히 여유로워보였다. 그만큼 자신 있는 것 같았다. 모사꾼이 말을 이었다.
“지저거인의 추정 레벨은 90이 넘는다.”
“오.”
“현재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확실히 아니지.”
“확실히 그건 그렇네.”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듣다보니 너무 가소롭다.
“그런데 그거 아냐?”
“무엇을 말이지?”
“진짜 거인들은.”
김혁진이 홀로그램을 베었다. 홀로그램이 옅어졌다.
“레벨을 추정할 수 없어.”
우웅-!
땅이 계속 진동했다.
“허세를 부리는군.”
모사꾼은 김혁진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김혁진은 똑똑하다.
그래서 지금도 머리를 굴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폭력을 행사한 것도 철저한 계산 아래 이루어진 행위였다. 모사꾼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마저도, 내게는 유리한 상황이다. 시간을 더 끌어라.’
사실 그가 생각하는 [완벽한 지저거인]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아직 3분가량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더 끌었다.
“김혁진. 당신이 정말로 거인을 만났다면 말이야.”
“…….”
“지금 어떻게 살아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모사꾼이 피식 웃었다.
“거인들은 흉폭하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지. 거인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너는 거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
“그것이 네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이유다.”
모사꾼은 말하면서 점점 즐거워졌다. 김혁진처럼 똑똑한 인간이 절망을 맛볼 때가 언제겠는가. 저 잘난 머리로 타개책을 찾지 못할 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출구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기분에 빠져들 것이다.
“너와 나는 동류지.”
“…….”
“그렇기에, 너는 지금 큰 절망을 느끼고 있을 거야.”
모사꾼은 상황을 좀 더 즐기기로 했다. 비록 분신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이어져있다.
아까는 정말 죽고 싶었다. 진짜로 이성을 잃었다.
그래서 김혁진에게 더 큰 절망을 맛보여주고 싶었다.
“곧. 지저거인이 네놈들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다.”
홀로그램 속 모사꾼이 서있는 자리. 그 아래에는 온갖 글자들이 새겨진 마법진이 윙윙 회전하며 마나를 피워 올렸다.
김혁진은 마법진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시간은 다 끌었어?”
마나 흐름을 보니 대충 때가 된 것 같다.
“수많은 연출기법들 중에.”
“…….”
“반전기법이라는 게 있어.”
김혁진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모사꾼의 눈이 커졌다. 잘 모르는 아이템이다. 그렇지만 괜스레 불안했다.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김혁진이 친절하게 아이템 이름을 말해주었다.
“악마의 타임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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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타임워치]시간을 속일 수 있는 타임워치입니다. 시스템 내에 적용된 시간에 간섭하여 왜곡현상을 일으킵니다. 왜곡값의 정도는 타임워치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강화 재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악마의 타임워치는 서버급 퀘스트 ‘단죄’ 진행 중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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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타임워치는 1회용 아이템이 아니다.
서버급 퀘스트 ‘단죄’를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허공에 굉장히 커다란 타임워치가 생겨났다. 타임워치의 시간이 마구잡이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저번과 똑같았다. 1부터 9까지 숫자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가 없어졌다.
[‘악마의 타임워치’가 시간값을 왜곡합니다.] [‘악마의 타임워치’는 사용자의 ‘강화 재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모사꾼이 다급하게 말했다.
“설마 시간값을 왜곡하는 아티팩트?”
“빙고.”
홀로그램 속 모사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안 된다. 무엇인가, 새로운 진을 짜내는 것 같았다. 김혁진은 홀로그램 속 모사꾼을 그냥 두었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다.
모사꾼이 하는 짓을 방해하는 것보다, ‘악마의 타임워치‘사용에 더 집중하는 게 옳았다.
[‘악마의 타임워치’가 시간값을 왜곡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강화재능과 연관이 있다. 김혁진은 김혁진이 생각하는 최적의 타이밍. 최고의 행운이 도래한 때에, 악마의 타임워치를 사용했다. 이 것은 누가 가르쳐 줘서 아는 영역이 아니었다.
김혁진 본인의 감. 말하자면 재능영역의 선택이었다.
모사꾼도 모사꾼 나름대로 진을 펼쳤다.
‘시간값 왜곡을 막는다.’
시간값 왜곡.
저 쪽이 공격. 이 쪽이 방어다. 누구의 실력과 운이 더 뛰어나느냐. 그 것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타임워치는 마치 전광판 같았다. 전광판에 초록색 숫자가 보였다. 모사꾼이 그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1.
-2.
-3.
숫자값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모사꾼은 참담한 심정에 빠져들었다.
‘안 돼.’
결국 숫자는 -24까지 올라갔다. 모사꾼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24라. 24분이면 어느 정도의 지저거인을 소환해 낼 수 있을 것인가. 24분을 줄였다면, 그래도 지저거인급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24분이면…….’
그런데 황당한 알림이 이어졌다.
[-24시간이 적용됩니다.]모사꾼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마이너스 24시간이라고?’
김혁진과 만난 지 24시간이 안 됐다. 그런데 어떻게 24시간이란 말인가.
[퀘스트의 전체 진행시간이 24시간 이내입니다.] [‘악마의 타임워치’ 적용으로 인하여 소요시간이 0초로 적용됩니다.]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어차피 완벽한 지저거인은 못 부르겠지만, 그래도 안전한 게 좋을 것 같아서.”
“…….”
“근데.”
김혁진이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퀘스트 진행을 뛰어넘는, 다른 진행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유일무이한 콘텐츠로서 말이다.
“어때? 나와 내기를 해보겠어?”
* * *
모든 것이 김혁진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김혁진이 제안한 내기는 ‘네가 말하는 완벽한 지저거인과 싸워서 누가 이길 것이냐’라는 내용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목동은 매우 신이 나서 김혁진의 승리에 베팅했다. 김혁진이 이 내기를 제안한 이유는 하나였다.
‘[구궁통치의 권좌]를 약화시켜야 한다.’
구궁통치의 권좌는 모사꾼을 매우 아끼고 있다. 이 정도로 간섭하고 도와줄 정도면, 단순한 최애정도가 아니다.
‘나는 어차피 모사꾼을 죽이게 될 거고. 그러면 구궁통치의 권좌는 어떻게 해서든 내게 해악질을 하려 노력하겠지.’
그래서 지금 그 힘을 대폭 줄여놓기로 했다. 구궁통치의 권좌도 지금 김혁진 자신을 죽이고 싶을 테니, 아마 수호력을 대폭 소모하여 지저거인의 소환을 도와줄 것이다.
모사꾼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되는 거고, 김혁진은 구궁통치의 권좌를 약화시킬 수 있다.
“내가 이겼을 때. 네놈은 내게 [악몽]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을 해줘야 한다. 그게 내기의 조건이다.”
“…….”
결국 모사꾼 역시 김혁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내기, 수용하지. 그러나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다시금 그림자 기사들을 불러내고,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그리고 다시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모사꾼이 정신을 추스리고서 말했다.
“지저거인을 소환하겠다.”
“그래.”
김혁진은 한 가지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 지저거인을 소환할 때는 모사꾼이 자신의 본신과 다름없는 분신을 제물로 바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제물없이 지저거인을 소환한단다. 김혁진이 아무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구궁통치의 권좌가 힘을 많이 썼겠어.’
김혁진이 의도한대로 됐다.
‘양치기소년과 같은 길을 걷게 해주마.’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지진이 나는가 싶더니 ‘소환진’ 속에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추정 레벨 90대.
지저거인이었다.
흙을 빚어 만든 사람 같았다. 몸에서는 진흙이 흘러내렸다. 썩은 내가 진동했다.
‘진짜 지저거인이 아냐.’
불거인을 만났을 때의 그 거대한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김혁진의 예상대로, 저건 진짜 지저거인이 아니다. 천룡 베일사라의 존재값을 소모시킬 만큼의 강력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정레벨 90대라고 주장하는 저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기는 했다. 모사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냐? 지저거인을 마주한 지금 기분이.”
“……이대로 싸우면 내가 죽겠군.”
모사꾼이 씨익 웃었다.
“지나친 자신감이 때로는 죽음을 부르는 법이다.”
김혁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대로 싸우면 죽는다고 했지. 이대로 싸운다고는 안 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