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502)
#재능만렙 플레이어 502화
강상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혁진아.”
“…….”
“필살기로 저것들 다 쓸어버릴 수 없어?”
강상구가 말하는 필살기는 극상마법. 만검우를 뜻했다.
백검우.
천검우.
만검우.
단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어 사용할 수 있는 김혁진의 필살기.
‘백검우로 전부 쓸어버린 건 어려울 것 같고.’
천검우로도 부족해 보인다. 특히 놈들은 초기 방어력이 대단히 높다. 천검우 한 번보다는, 차라리 백검우 여러 번이 나을 것 같았다.
‘만검우를 사용한다면 모두 죽일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김혁진이 ‘만검우’를 다룰 수 있느냐였다. 초월검 ‘이센’은 만검우를 버틸 수 있으나, 그것을 시전하는 김혁진이 아직 만검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백검우에 천검우까지 섞어서 사용하면…….’
이센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며 힘을 소모하면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저놈들까진 어찌어찌 될 것 같은데.”
“근데?”
“저놈들이 과연 끝일까?”
김혁진이 저만치 아래. 어둠을 꿰뚫어봤다. 수십 마리의 지저농부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다. 여기까지 도착하는 데 5분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기명아.”
“네, 형.”
“놈들이 못 올라오게 막아.”
완전히는 못 막는다. 김혁진의 주문은 ‘시간을 끌어라’라는 내용이었다. 반기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놈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단순히 저지하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현정화가 물었다.
“저격할까요?”
“아뇨. 현정화 씨는 일단 대기합니다. 놈들을 흥분하게 만들 수 있어요.”
언령마법으로 놈들을 조금 더 힘들게 하고,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것. 그것과 직접 공격은 다르다.
최대한 흥분하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끌어보기로 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김혁진은 상황을 정리해 봤다.
게이트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너무 쉬웠다.
NPC를 만났다.
NPC의 상처가 특이했다.
‘내 체력을 빼앗고, 지저농부가 등장했다.’
지저농부는 강했다. 어찌어찌 지저농부를 처치했다.
지저농부를 처치하자 이번에는 지저농부 떼거리가 나타났다.
‘그사이. 내 체력은 회복됐고.’
만약 시스템이 노리는 것이 김혁진의 사망 혹은 그에 준하는 페널티라면, 왜 시간을 줬을까?
‘나한테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서?’
단순히 그런 이유일까?
‘아닌 것 같은데.’
아까 감각안이 느꼈던 죽음의 냄새는 허상이 아니었다. 간만에 튜토리얼 때와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초감각이 사형을 선고하던 그때의 그 느낌. 죽음이 바로 옆에 다가와 있는 것 같은 느낌.
‘이곳은 그런 곳이야. 위험한 곳.’
지금 지저농부들은 굉장히 불리한 상태다. 지저에서부터 기어 올라오고 있다. 곡괭이로 절벽을 짚어가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질 거다.
아무리 지저농부가 강하더라도 체력이 바닥난 지저농부를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쪽은 이미 체력을 다 회복했으니까.
‘그 위험한 곳에서, 이렇게 쉬운 진행을 보여준다는 건 이상하지.’
김혁진은 결론을 내렸다.
“저놈들을 사냥하기는 할 건데.”
필살기는 쓰지 않는다. 체력을 아낀다.
왜냐하면, 저놈들 뒤에 더 강한 놈이 도사리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지저농부는 끝이 아니다. 저놈들은 그저 던전 초입에 존재하는 잡몹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현정화 씨. 연옥궁을 회수하겠습니다.”
“…….”
“걱정마세요.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다시 빌려 드릴 테니.”
현정화의 얼굴이 잠깐 붉어졌다. 이 활은 원래 김혁진의 활이다. 김혁진이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자신이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고맙습니다.”
저렇게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플레이어로서의 김혁진은 이전부터 인정해 오기는 했었다. 격이 달랐다. 위대한 플레이어라고 부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약간 느낌이 달랐다. 플레이어 김혁진이 아니라, 인간 김혁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김혁진이라는 ‘사람’에게 약간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로 멋있다고 느낀 사람은 더러 존재했다. 현정화의 남자친구인, 미셸사단의 마크 역시 그러했다.
그런데 사람으로 멋있다고 느낀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김혁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별 말씀을.”
“…….”
“현정화 씨는 현정화 씨의 무기를 꺼내세요. 손에 익은 걸로. 위력이 강한 것보다는, 속사가 가능한 것이 유리할 것 같습니다.”
“네.”
현정화가 연옥궁을 넘기고 다른 활을 꺼내 들었다.
“상구. 너도. 강력한 한 방 마법보다는……”
“알았어. 슈퍼 속사포 자양동 방화마스터를 보여주라는 거지?”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리적으로는 이쪽이 월등하게 유리하다.
현정화가 활시위를 겨누었다. 김혁진을 힐끗 쳐다봤다.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 김혁진 길드장의 선택이 옳다.’
처음 지저농부들을 봤을 때. 현정화는 아득함을 느껴야 했다. 지저농부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었다. 그런데 여러 마리라니. 그것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위험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김혁진은 달랐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이 짧은 시간 동안 해냈다.
훌륭한 ‘군주’가 맞았다.
반기명이 말했다. 반기명의 이마와 목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저도 저지보다는 공격 쪽으로 방향을 틀까요?”
“직접 공격보다는, 강상구를 서포트하는 쪽으로.”
“네.”
거신 길드원 셋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현정화가 활을 쏘아냈다.
‘연속속사.’
그녀의 주특기는 빠른 속도로 활을 쏘아내는 것이다. 여타 다른 궁수들은 흉내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와 정확성을 자랑한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으니. 이번에는 잘한다.’
정확하게 미간을 맞추기로 했다. 한두 방은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낸다.
저만치 아래서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놈이야!”
“비료들이 설치는 것 같은데!”
“모조리 잡아 갈아버리자!”
현정화는 담담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한두 발로 안 되면, 세 네발을 꽂아 넣으면 된다. 빠르고 정확하게. 놈들을 화살로 죽이는 게 목표가 아니다. 화살을 맞춰서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다. 상황은 이쪽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다음 놈.’
활시위를 당겼다. 지저농부들을 향해 활을 쏘아내면서, 현정화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다름 아닌 김혁진의 ‘연옥궁’ 때문이었다.
‘나랑 속도가…… 거의 같아?’
현정화도 방금까지 연옥궁을 다뤄보았다. 연옥궁은 무겁다. 마나 소모도 크다. 다루기 까다로운 활이었다.
대신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 활로 현정화 자신과 거의 비슷한 속사를 선보였다.
현정화는 기분이 좋아졌다.
‘질 수 없지.’
최근 그녀는 라이벌을 만나보지 못했다. 궁수 계열이 아주 흔한 것도 아닐뿐더러, 그녀 수준의 궁수는 더더욱 흔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로서는 지더라도, 궁수로서는 질 수 없잖아.’
그나마 가장 뛰어난 라이벌은 남자친구인데, 남자친구는 계열이 달랐다. 미셸사단의 궁수. 미국을 대표하는 궁수 플레이어인 마크는 강력한 한 발을 구사하는 궁수다. 파괴력 위주의 궁수였다.
마법사보다 파괴력은 조금 약하지만, 마법사보다 더 빠르고 간결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궁수. 일반적인 궁수들과 마법사들의 중간 즈음 클래스라 할 수 있었다.
‘쏜다.’
현정화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활시위를 당겼다.
‘더 빠르게.’
지기 싫다는 마음. 자신보다 더 뛰어난 궁수를 따라잡고자 하는 마음. 더 뛰어난 궁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현정화에게 영향을 끼쳤다.
‘즐거워.’
이렇게 원 없이 활을 쏘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무엇인가 깨달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벽 하나. 딱 하나만 더 부수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딱 하나만. 하나의 벽만 더.
그러던 어느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정화 씨?”
무아지경으로 활을 쏘아내던 현정화가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모든 지저농부들이 땅에 곤두박질쳤다.
현정화는 허공에 활을 쏘아대고 있었다.
“괜찮아요?”
“……네.”
조금 아쉬웠다. 뭔가가 보일 것 같았는데. 김혁진이 활을 당기는 모습을 보면서, 김혁진이 활을 운용하는 걸 보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두…… 땅에 떨어졌네요.”
그 많던 지저농부들을 모두 사냥했다. 지형적인 이점을 십분 활용한 탁월한 전투였다. 이쪽의 피해는 전무했다. 단 세 마리가 지상까지 올라와서 가까이 다가왔으나 지칠 대로 지친 터라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현정화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머쓱하게 웃었다.
“코리안 스타일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거 같네요.”
“……네?”
“거신 길드원 넷이 모여서 이 정도잖아요.”
만약 거신 길드원 전원이 모여서 플레이를 한다면? 해외 서버 플레이어들이 본다면? 코리안들은 원래 저런 괴물들인가, 싶을 터였다.
현정화는 이제 알게 됐다. 사실 정확한 명칭은 코리안 스타일이 아니라 거신 길드 스타일인 것 같았다.
“저는 한국인인데, 진짜 코리안 스타일을 오늘 처음 알았어요.”
현정화가 말을 이었다.
“지저농부들을 상대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랍고.”
김혁진이 분명 말했다. 지저농부보다 더 강한 놈이 뒤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보스 몬스터’라는 얘기도 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게이트라면 분명 보스급 몬스터도 있을 거다.
“필살기가 따로 있다는 것도 놀랍고.”
그냥 다 놀라웠다.
“[유성이 떨어지는 밤]께서 왜 저를 보내셨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런 말은 현정화 씨의 플레이에 유리하지 않습니다만.”
“솔직한 심정이에요.”
보고 배울 수도 없는 영역이다. 김혁진은 격이 다르다. 격이 다른 존재에게서 뭘 보고 배운단 말인가.
“제게 재능의 벽을 느껴보라고, 저를 당신에게 보낸 건 아닐 텐데요.”
“…….”
김혁진은 잠시 고민했다. 위로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현정화는 위로 따윈 필요 없는 플레이어다. 그녀 역시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다. 대신 사실을 말해주었다.
“현정화 씨는 분명 필요한 사람일 겁니다.”
김혁진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노란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노란빛은 김혁진에게 기연을 가져다주는 빛이다. 아마 저 빛은 현정화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지.
“아마, 이곳을 무사히 넘긴다면, 현정화 씨는 다른 현정화가 되어 있을 겁니다.”
“다르다뇨?”
“그런 느낌이 듭니다. 아마 벽 하나를 부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현정화가 움찔했다.
‘나를 파악하고 있는 거야?’
김혁진에게 ‘노란빛’이 보인다는 것을 모르는 현정화는 오해했다.
‘내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된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 같다. 이게 보인다는 건, 김혁진이 자신보다 최소 세 단계 이상의 고수라는 소리였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말해주니, 자신감이 생기네요.”
마음이 가벼워졌다. 뭐랄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혁진의 말 몇 마디가 그렇게 만들었다.
강솜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우리는, 내려가야 하나요?”
* * *
반기명의 언령마법을 여러모로 유용했다. 공격계열 마법사들처럼 강력한 마법도 없고, 궁수처럼 재빠른 몸놀림도 보여주지 못하지만, 전천후로 다양한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부양’을 통해 천천히 하강했다.
김혁진은 지저로 내려가는 와중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석판이 진동하고 있어.’
이곳으로 안내한 석판이 진동하고 있다. 무엇인가와 반응하고 있다.
땅에 도착했다. 땅에 지저농부들의 시체가 가득해야 했지만,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필드가 변했다.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저만치 앞 거대한 문이 보였다.
[’지저의 문’이 생성되었습니다.]‘지저의 문’이 열리는 조건에 대한 정보가 전해졌다. 지저농부가 씨앗을 뿌려야 하고, 지저농부들의 피를 머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저의 문.
아주 거대한 문이었다.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 동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거대한 문에는 이렇다 할 문양은 새겨져 있지 않았다.
녹슨 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그리고 그 앞.
생물체가 하나 보였다.
[’지저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플레이어들을 맞이합니다.]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상의 인간들이냐?”
지저농부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손에는 제대로 된 무기인 창을 들고 있었다. 녹이 슬어 있기는 했으나 갑옷도 갖추어 입은 상태.
‘최소 지저농부보다는 훨씬 강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당장 전의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 수문장은 무턱대고 이쪽을 공격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단순히 싸우는 게 옳은 진행은 아닌 것 같았다. 김혁진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지저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조건이 필요한 것 같은데.”
“눈치가 빠른 녀석이군.”
수문장이 한 손을 내밀었다.
“지저의 문을 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수문장이 씨익 웃었다. 마치 촛농을 녹여서 만든 것 같은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자. 수수께끼다. 세 번의 기회를 주지.”
“…….”
“이 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아참. 대답에 필요한 시간은 10초다.”
알림이 들려왔다.
[퀘스트. ‘지저 수문장의 수수께끼’가 생성되었습니다.]“세 번의 기회를 모두 날리게 되면, 네 놈들은 여기서 죽는다. 감히 지저를 침범한 죗값을 달게 받게 될 거야.”
김혁진 일행의 눈 앞에 타이머가 생성되었다.
[10:00] [09:00]시간이 줄어들었다.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좋은 퀘스트네.”
시간은 5초 남았다. 김혁진은 지저 수문장에게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나랑 내기하나 할까?”
“……내기?”
순간, 타이머가 멈췄다. 지저 수문장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