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507)
#재능만렙 플레이어 507화
쾅!
소리와 함께 범선이 어딘가에 부딪쳤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과의 충돌.
[‘항해하는 범선’이 ‘경회루의 끝’에 도달하였습니다.] [‘경회루의 끝’이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범선의 선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범선이 아주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건…….’
김혁진은 볼 수 있었다.
경회루의 끝. 투명한 벽 너머에 있는 것들을.
* * *
지저.
이곳은 ‘경회루’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경회루의 지하.’
경회루의 지하는 천룡 베일사라의 심장 조각이 숨겨져 있던 곳이며, 동시에 용의 둥지로서 안성맞춤인 곳이다.
‘경회루 필드의 경계가 무너졌다.’
지하로의 경계가 무너졌다. 경회루의 설중수가 지저에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바깥의 경계들도 무너진 것 같았다.
‘경회루 필드 너머에 무엇인가가 있었어.’
당시 더이상 전진할 수 없었던 그 세상 너머에 있는 것들에 대하여 떠올렸다. 김혁진이 보았던 것은 인간의 형상을 가진 마나의 흐름이었다. 강상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혁진아. 방법 있는 거지? 그렇지?”
들리기는 했지만 그것에 신경 쓰지는 못했다. 경회루 바깥.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계속 떠올렸다.
‘당시 내 수준에서는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어.’
인간 형상의 마나흐름이 흘러 다닌다.
이 정도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복기분석시.’
복기분석시를 사용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지금의 능력으로도 완벽하게 복기해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저번보다는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졌다.
‘단순히 마나의 흐름이 아니야.’
어떠한 존재가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리고 그 존재는.’
순간, 김혁진의 몸이 휘청거렸다. 거대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거대한 눈동자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눈동자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거인.’
그 눈동자는 거인의 눈동자였다. 불거인을 만났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강력한 살기가 깃들어 있는 눈동자.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던 그 눈동자. 그와 매우 흡사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달랐다.
불거인의 눈동자가 화염을 담은 눈동자였다면, 지금 복기분석시로 느낀 것은 설중수를 담은 눈동자였다.
‘한없이 깨끗하고 맑지만, 더없이 무겁고 아득한.’
눈동자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정신 차려.’
이미 설중수는 무릎까지 차올랐다. 강솜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길드장님?”
강솜이 역시 탈출 방법을 찾지 못했다. 탐험가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인간 형상의 마나.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아득한 기운. 그리고 불거인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보이는 눈동자. 김혁진은 알 수 있었다.
‘경회루 바깥. 세상 너머에는 물거인이 있었다.’
그대가 만약 세상 너머의 것들을 보았다면.
세상 너머의 것들을 향해 전진할 수 있으리라.
김혁진은 세상 너머의 것. 물거인을 이미 보았다. 보았지만 닿지 못했었다. 반기명의 영창에 따르면, 물거인을 향해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설중수가 허리까지 차올랐다. 김혁진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거대하고 아득한 기운에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눈동자.’
푸른색 눈동자.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기이한 눈동자.
거인의 눈동자와 마주한 김혁진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야, 혁진아! 뭐해! 정신 차려!”
강상구의 가슴까지 설중수가 차올랐다. 김혁진은 무릎을 꿇은 상태. 설중수가 김혁진의 입을 덮었다. 이제 곧 코다.
“야! 정신 차려! 미친 자식아!”
강상구의 눈에 김혁진은 위태로웠다. 몇 초 안 남았다. 저 상태로면, 코까지 물에 잠길 거다. 아무리 김혁진이라도, 저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강상구는 온 힘을 다해 화기를 끌어 올렸다.
“으아아아아!”
치이이익-
증기가 피어 올랐다. 희뿌연 수증기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든 물을 증발시켜보려 했다. 김혁진에게 단 1초라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1초.
그 시간이라면, 김혁진이 정신을 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강상구는 그렇게 믿었다.
‘너라면.’
너라면 해낼 수 있어. 강상구가 이를 악물었다. 저 놈은 늘 이상하리만치 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녀석이다. 따라오기 싫은데, 괜스레 따라오고 싶게 만드는 괴상한 녀석. 지금 이 순간에도, 강상구는 김혁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혁진이 무의식중에 반기명의 영창을 따라했다.
“심연의 끝에 악몽의 눈동자가 그대들을 맞이하리니.”
“그림자에 숨어 눈동자를 마주하라.”
뽀글뽀글.
기포가 피어올랐다.
설중수가 김혁진의 코를 덮었다. 김혁진의 몸이 완전히 잠겼다. 강상구가 어떻게든 김혁진을 향해 헤엄쳐보려 안간힘을 썼다.
“야! 김혁진! 이 개자식아!”
강상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너 여기서 그렇게 가면 안 되잖아!”
현정화가 강솜이는 눈을 마주쳤다. 현정화는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정화도 턱 끝까지 설중수가 차오른 상태다.
“강솜이 씨. 방법이 없는 건가요?”
“탐험가로서는요.”
“그렇군요.”
현정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크가 절 기다리고 있을 텐데.”
눈을 감았다. 죽음을 직감했다. 여기서 몇 초 더 사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추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거신길드를 만나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왜 외국에 코리안 스타일이라는 말이 퍼졌는지도 몸소 깨닫게 되었고요.”
현정화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특히 탐험가인 강솜이 씨와 군주 김혁진 씨와 함께 플레이를 하였고, 같은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플레이어들의 곁에는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오늘은 그 죽음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까지 저희를 생각해주는 줄은 몰랐네요.”
김혁진의 목소리였다.
* * *
김혁진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 ‘물거인의 그림자’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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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인의 그림자]물거인의 발자취입니다. 물거인의 온기가 남아있는 신비로운 아이템입니다.
* 히든 시나리오 ‘물거인의 농장’ 진행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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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에 들어오기 전 반기명이 이렇게 말했었다.
-제가 느끼기에는 [물거인의 그림자]가 중요한 연결고리인 것 같아요. 혹시 그에 대한 정보 있으세요?
물거인의 그림자. 그게 가장 집중했었던 키워드였었다. 그리고 김혁진은 언령술사의 해석을 충실하게 따랐다. 그림자에 숨어 눈동자를 마주하라고 했었다.
김혁진은 ‘물거인의 그림자’를 꺼내들었고, 물거인의 그림자가 거신길드원들을 감쌌다.
[히든 시나리오. ‘물거인의 농장’이 진행됩니다.]현정화가 물었다.
“저희 지금. 물속에 있는 거 맞죠?”
손을 움직여봤다. 움직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맞아요.”
현정화의 몸을 검은색 기운이 감싸고 있었다.
“이게 뭐죠?”
“물거인의 그림자입니다.”
“물거인의 그림자요?”
“아무래도 초대를 받은 것 같네요.”
강솜이가 물었다.
“물거인이라면 수중 포식수의 샘플을 가져갔었던…….”
강솜이는 기억하고 있다. 예전 김혁진과 함께 물거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네 덕택에 소중한 포식수 샘플을 구할 수 있었다.
강솜이가 주변을 둘러봤다. 깨끗하고 맑은 물 속. 물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직감했다.
“지저는 결국 이곳으로 오기 위한 관문이었던 것 같네요.”
지저는 그저 관문이었을 뿐이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인 것 같았다. 강솜이는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상황들을 정리해 봤다.
1. 지저에 오게 된 것은 ‘변절자 처단’에서 얻게 된 석판 때문이었다.
2. 지저는 용의 둥지임과 동시에 경회루의 지하였다.
3. 경회루의 경계가 무너졌고 물거인에게 초대 되었다.
여기까지가 상황이었다.
‘물거인과 지저거인, 천룡. 셋 사이에 어떤 연관점이 있는 것 같네.’
대충 진행 방향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거인.
지저거인.
천룡.
이 셋의 연결고리를 찾되, 지금 이 곳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키워드는 ‘물거인’이었다.
“지저거인이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물거인이었네요.”
“그러게요.”
“길드장님은 알고 계셨어요?”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그런데 되게 태연하시네요. 방금 죽을 뻔했잖아요.”
“뭐. 안 죽었으니까요.”
김혁진 스스로도 의외였다. 가슴이 가볍게 뛰고 있었다. 설렜다. 이 위험천만한 플레이가 즐겁게 느껴졌다.
강상구가 김혁진의 등짝을 때렸다.
“야! 죽는 줄 알았잖아.”
물론 강상구의 손바닥은 허공을 갈랐다. 강상구의 손바닥이 아무리 매서워도 김혁진의 움직임과 감각보다는 훨씬 느렸으니까.
“야, 야! 같이 가! 나, 나 버리고 가지 마! 혀, 형! 나 걸음 느리잖어!”
* * *
강솜이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물속에서 헤매게 될 줄은 몰랐어요.”
탐험가로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움직여도 움직여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물뿐이었다. 게다가 이 ‘물거인의 그림자’가 언제까지 자신들을 덮어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음이라는 맹수가 바로 옆에서 입을 벌리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탐험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탐험이 아닌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죠.”
“길이 있는데 제가 못 찾는 걸 수도 있어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강솜이는 눈을 들어 김혁진을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무한한 믿음의 표현인 것 같기는 했다. 저렇게까지 무미건조하게 말하니 칭찬인지는 헷갈렸지만.
“강솜이 씨 덕분에 저는 한 가지를 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요?”
“길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요.”
“……네?”
“강솜이 씨 덕분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강솜이는 늘 그걸 확인시켜 준다. 김혁진에게는 늘 큰 도움이 되었다.
“……칭찬이죠?”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야겠죠. 다른 요소를 가지고서.”
“짚이는 부분이 있나요?”
“시나리오의 이름부터가 [물거인의 농장]이잖아요.”
거인들은 모종의 이유로 진주오공과 포식수를 필요로 한다. 테헤란로에서 만났던 불거인은 ‘강철 포식수’를 필요로 했었다. 물거인은 ‘수중 포식수의 샘플’을 필요로 했었다.
“농장을 가꾸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혁진은 이곳까지 도착하는 연결고리에 집중했다.
경회루를 통해 이쪽으로 오는 것이 훨씬 편하고 빨랐을 터. 그러나 굳이 지저를 통해서 이쪽에 당도하게 만들었다. 지저에서 씨앗들을 획득했었다. 그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씨앗.”
김혁진이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지저농부들에게서 획득한 ‘씨앗 주머니’였다. 강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김혁진이 아이디어를 냈다. 군주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구체화하여 실행하는 것은 탐험가의 몫이다.
“씨앗. 제가 좀 살펴볼 수 있을까요?”
강솜이가 씨앗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씨앗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죽은 씨앗이네요.”
“그런 것 같네요.”
강솜이가 씨익 웃었다. 이제야 밥값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김혁진도 방법까지는 알 수 없었다. 씨앗이 ‘물거인의 농장’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사실 정도만 유추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강솜이에게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방법이 있나요?”
“네. 일단 씨앗을 살리는 방법은 알 것 같아요.”
강솜이가 말을 이었다.
“굳이 지저를 통해 이 곳에 왔으니까요. 실마리는 지저에 있었겠죠.”
“실마리요?”
“네. 저는 탐험가니까. 혹시 몰라 준비했었거든요.”
“그게 뭐죠?”
현정화는 안력을 최대로 활성화하여 강솜이가 품속에서 꺼내는 것을 지켜봤다.
‘도대체 뭘 꺼내는 거지?’
강솜이가 인벤토리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