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508)
#재능만렙 플레이어 508화
강솜이가 꺼내든 것은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붉은 액체였다. 현정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피?’
저 피는 뭐지.
“지저 주술사의 피예요.”
지저 주술사의 피.
저건 또 언제 챙긴 건지 모르겠다. 현정화는 유심히 살펴봤다. 왜 지저 주술사의 피를 챙겨왔을까?
거신길드와 플레이하면서 느꼈다. 김혁진과 강솜이의 모든 행동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늘 그랬듯 코리안 스타일의 정수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했다. 그녀는 거신길드와 플레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도 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김혁진은 이미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정화는 왜 강솜이가 굳이 저 피를 챙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어봐도 되나?’
현정화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고, 탐험가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사실 현정화에게는 ‘탐험가로서의 재능’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딱히 도움을 주지는 못했었다.
물어보기로 했다.
왜 강솜이라는 탐험가가 저 피를 챙긴 건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탐험가적 사고방식에 대해 배워보고 싶었다.
“저기…….”
“네?”
“그 피는 왜 챙긴 거예요?”
“조금 이상했거든요.”
“이상했다고요?”
“네. 지저 주술사가 피를 흘렸잖아요.”
그게 왜 이상한 거지.
“플레이 도중 나타났던 지저인들은 피를 획득하기 어렵게 되어 있었어요.”
심지어 나중에 나타난 지저농부들은 시체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다른 지저인들은 이사벨의 기세에 눌려 모두 도망쳐 버렸다.
“그런데 지저 주술사는 피를 철철 흘리더라구요.”
“…….”
현정화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저 주술사가 유독 피를 많이 흘렸고, 그 피를 채취하기 쉽게 되어 있었다라는 사실이 그렇게 특별한 건가?
“그리고 지저의 문을 여는데 조건이 필요했죠. 현정화 씨도 기억나죠?”
“……네.”
[‘지저의 문’이 생성되었습니다.]‘지저의 문’이 열리는 조건에 대한 정보가 전해졌었다. 지저농부가 씨앗을 뿌려야 하고, 지저농부들의 피를 머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저희는 이곳으로 오기 위해 지저를 통과해서 왔어요. 그 말은 곧, 이곳을 제대로 탐험하기 위해서 지저의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었겠죠.”
지저에서 있었던 일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들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강솜이가 포션을 흔들었다.
“[문]이 열리기 위해, 피가 있어야 해요.”
지저에서 그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스테이지. 지저 주술사가 나왔을 때, 피를 마구 뿌려댔죠.”
“……그렇긴 했죠.”
“그래서 저는 피를 채취했어요. 연계되는 다른 필드에서 피와 씨앗이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정말로 다른 필드가 연계된다면. 그 필드의 게이트를 여는 열쇠가 피와 씨앗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거기까지 들은 현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를 알고 나니 쉬운 얘기였다. 강솜이의 의견과 사고 과정을 듣기는 했으나, 약간은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저런 걸 챙길 생각을 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다.
현정화는 뛰어난 궁수였지만 탐험가로서의 자질은 부족했으니까. 탐험가인 동생을 위해 대신 배워보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석이한테…… 도움이 되어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동생에게 도움을 주기는 글러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혹시나 싶어 김혁진을 쳐다봤다.
“김혁진 씨. 김혁진 씨는 혹시 다 알고 있었어요?”
“다 알지는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강솜이가 ‘피’를 꺼내기 전까지는 몰랐다. 강솜이가 ‘피’라는 단서를 제공해 주었고, 그 이후부터는 김혁진도 유추해냈다. 저 ‘피’가 단서가 된다는 사실도.
“하지만 현정화 씨처럼 자세한 설명이 필요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시겠죠.”
현정화는 김혁진의 담담한 눈빛을 받아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저한테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게 내버려 둔 것도, 의도하신 거죠?”
김혁진이 빙그레 웃었다. 현정화는 어이가 없어 허허-웃고 말았다.
“…….”
현정화가 이렇게 질문을 해주는 만큼, 오히려 김혁진은 돋보이게 된다. 플레이는 플레이어들끼리 하는 게 아니다. 플레이어들을 지켜보는 수호자들이 있다. 뛰어난 플레이어라면 늘 수호자를 염두에 두고 플레이하고 연출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 중 기본이었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 때때로 잊는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제가 이렇게 하면 할수록 강솜이 씨와 김혁진 씨는 더 돋보일 테니까요?”
“현정화 씨한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당장 피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현정화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현정화는 다시 웃고 말았다.
‘내 어리숙한 모습에 실망한 수호자들은 김혁진 씨와 강솜이 씨에게 더 집중하게 되겠지. 나보다 훨씬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김혁진한테 이렇게 당하는 건 배우는 값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한 것 같았다.
그때 김혁진이 말했다.
“다 잘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현정화 씨는 뛰어난 궁수 플레이어죠. 그렇지만 탐험이나 용병술 분야에 있어서는 보통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욕이에요, 칭찬이에요?”
“모든 취향을 다 잡을 수는 없습니다. 현정화 씨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돼요.”
현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맞다. 모든 수호자의 입맛을 다 맞추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궁수 플레이를 좋아하는 수호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면 된다. 그게 현실적인 최선책이다.
“다 맞는 말인데요.”
한숨을 내쉬었다.
“김혁진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재수 없네요.”
김혁진이야말로 모든 클래스를 아우르는 만능잡캐 아닌가. 모든 취향을 다 잡는 유일하다시피한 인간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재수 없다 못해 허탈했다.
김혁진이 또 빙그레 웃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김혁진 씨 미간에 화살 한 발만 쏴도 돼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 * *
강솜이가 씨앗에 피를 뿌렸다. 씨앗은 마치 솜처럼 피를 빨아들였다. 좁쌀만 한 크기의 씨앗이 피를 머금고 커지기 시작했다. 피를 빨아들인 진드기 같았다.
김혁진은 씨앗을 관찰했다.
‘씨앗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피와 씨앗이 만나 다른 것으로 변하고 있다.
화학 작용과 비슷했다. 다른 성질의 무엇인가가 되었다. 부풀어오르던 씨앗이 펑! 터졌다. 그 것은 작은 씨앗이 되어 눈처럼 흩날렸다.
강솜이가 말했다.
“수중 포식수의 씨앗이 된 것 같네요.”
“그러게요.”
전에 봤던 것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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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포식수의 씨앗-LV 20]──────────
저번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일도 정해져 있었다. 강솜이야 이 상황을 함께 겪었지만 반기명과 현정화는 아니었다. 김혁진이 빠르게 말했다.
“수중 포식수로 성장할 겁니다.”
김혁진의 말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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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포식수의 발아된 씨앗 -LV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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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포식수의 작은 묘목 -LV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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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포식수의 묘목 -LV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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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중 포식수 -LV 50]──────────
씨앗들은 순식간에 작은 수중 포식수가 되었다. 꿈틀꿈틀. 포식수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거신길드원들에게 알림이 이어졌다.
[포식수가 더욱 성장하기 위하여 ‘군락지 생성’이 필요합니다.]현정화도 그 알림을 들었다.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눈치로 보아하니 강솜이와 김혁진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저들의 독무대였다.
그사이 포식수들이 더 크게 성장했다. 거의 10미터에 달하는 포식수들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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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중인 수중 포식수 -LV 55]──────────
강솜이가 씨익 웃었다.
“수중마물 군락지 때와 똑같네요.”
“수중마물 군락지 클리어로 얻었던 보상을 기억하죠?”
“네.”
그게 바로 ‘물거인의 그림자’였다. 김혁진의 예상이 맞았다. 이곳은 이어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획득한 아이템이 이곳에서 빛을 발했다.
김혁진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더 얻었습니다. 강솜이 씨도 알죠?”
“당연하죠.”
수중마물 군락지 내.
지네여왕과 다 성장한 수중 포식수가 전투를 벌이고 있을 시점.
그때 김다롱이 지네여왕의 몸통 중앙부근에 끼워져 있던 ‘천룡의 심장조각’을 빼내왔었다.
“천룡의 심장 조각을 얻었었잖아요.”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 최초의 게이트는요?”
“오공굴이었죠.”
지네(오공). 포식수.
천룡.
지저거인. 물거인.
계속해서 연관된 단서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혁진이 계속 말했다.
“포식수가 저 상태에서 더 성장하기 위해선, 오공들의 사체가 필요합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준비해 놨죠.”
맨 처음.
오공굴에서 만났던 몬스터가 바로 ‘오공소인’이었다.
“그때도 이상하게 생각했었잖아요.”
몬스터들이 너무 약했다. 지나치게 약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진주오공들이 한데 엉켜서 숫자만 많았지, 입장 난이도 치고는 너무 쉬웠었다. 그래서 강솜이는 일행과 따로 움직였었다. 전혀 위험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래서 챙겨놨죠.”
강솜이가 검은색 기운이 일렁거리는 구슬 하나를 꺼냈다.
“여기 지네들을 모조리 담아놨어요.”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키운 탐험가 하나, 열 궁수 안 부럽다. 그런데 그 때. 물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설중수가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거대한 인간의 형태를 한 물의 흐름이 보였다.
‘물거인.’
이미 마음속으로는 준비하고 있었다. 물거인이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왔구나, 인간.”
“저번에 나와 한 번 만났었던 물거인인가?”
수중마물 군락지에서 만났었던 물거인.
-네 덕택에 소중한 포식수 샘플을 구할 수 있었다.
-네 목숨은 살려주마, 인간.
이렇게 말했던 물거인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정확히는 두 번 만났었지.”
“두 번?”
“너와 나의 세상이 이어지기 전. 나는 너를 돌려보냈었다.”
경회루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항해하는 범선’이 ‘경회루의 끝’에 도달하였습니다.] [‘경회루의 끝’이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김혁진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나를 막았던 게…….”
시스템이 아니었다.
“물거인 당신이라고?”
“그래.”
“어째서?”
“그 때의 너는 내 존재의 파편과 마주하기만 해도 녹아 없어졌을 테니.”
“……지금은 네 존재를 마주할 수 있나, 내가?”
“내 존재의 파편 정도는.”
물거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포식수들을 데려올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네가 바로 ——때문이다.”
김혁진은 간만에 시스템의 간섭을 경험했다. 시스템은 아직 김혁진 자신에게 더 이상의 정보를 허용하지 않는 듯했다. 김혁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너는 예전, 수중마물 군락지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내 목숨은 살려준다고.”
애초에 물거인은 김혁진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물거인에게는 자신이 필요한 존재 같았으니까. 그런데 굳이 그 장소에서 ‘목숨은 살려주마, 인간’이라고 말을 했었다.
“그 말은 즉…….”
모골이 송연해졌다. 물거인이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다른 요소로부터 살려준다는 의미였다.
“그 곳에서 내가 살아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는 뜻인가?”
“그렇지.”
그 곳에서 수중 포식수들을 사냥해서 폭발적인 레벨업을 했었다. 그 것이 단순히 실력과 운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물거인이 영향력을 행사해 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쩐지.’
아무리 용의 숨결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무려 14일의 시간을 너무 쉽게 버틴다 했었다. 이제서야 알겠다. 그때도 물거인이 도와줬었다.
“그때 이미 우리에게 [물거인의 그림자]를 씌워줬던 거겠군.”
알 것 같았다. 상황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물거인의 그림자]를 씌워줬던 이유는, 따로 있었겠어.”
강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방해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주도권은…… 길드장님이 갖고 시작하겠어.’
왠지 모르게 보였다. 무표정인 김혁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