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516)
#재능만렙 플레이어 516화
코를 찌르는 피 냄새. 그리고 피범벅이 되어버린 계단. 김혁진은 직감했다.
이곳이 하나의 ‘던전’이었다. 김혁진은 다시 몸을 되돌려 원래 있던 반지하 단칸방으로 걸어갔다.
문손잡이를 잡아봤다.
‘큭.’
따가웠다. 특별한 어떤 설정값이 걸린 것 같았다.
‘당장 문을 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른 방법을 좀 찾아야겠다. 이곳이 던전화되었다면, 분명 클리어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저도 모르게 말했다.
“강솜…….”
그러다 아차싶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에 강솜이와 함께했다 보니, 습관이 되어 버렸다. 있을 때는 잘 못 느꼈는데, 막상 옆에 없으니 불편했다. 강솜이라면 분명 좋은 아이디어들을 많이 냈을 텐데.
김혁진은 몇 걸음 움직여 봤다. 다른 문 앞에 섰다. 김혁진의 바로 앞. 툭하면 술에 취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살던 곳이었다.
B-02호.
김혁진은 그곳의 문고리를 잡아보았다. 따갑지는 않았다.
끼익-
문을 열었다.
턱!
순간, 문 속에서 손 하나가 튀어나와 김혁진의 발목을 붙잡았다. 김혁진은 반사적으로 발을 빼고 이센을 휘둘러 손목을 잘라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이름 모를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썩은내가 가득했다.
‘시체야.’
그륵. 그르륵.
시체가 괴이하게 몸을 뒤틀며 몸을 일으켰다.
“편히 쉬시길.”
김혁진이 이센을 휘둘러 시체의 목을 잘라냈다. 목을 잃은 시체는 바닥에서 몇 번 꿈틀거리다가 이내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별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는데.’
이 곳이 던전화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이 던전화가 왜 전직 퀘스트인 ‘무명의 관찰자‘와 관련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단서가 더 필요했다.
김혁진이 머물던 이 원룸건물의 모든 사람이 죽어 있었고, 좀비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김혁진은 모든 이들을 깔끔하게 죽였다.
꼭대기 층. 5층에 살고 있었던 여자의 목을 베어냈다.
“미안합니다, 주인아주머니.”
그르륵!
그르르륵!
발광하던 여자마저 쓰러졌다. 이미 몬스터화가 되어 있던 시체였고, 아이템을 하나 드랍했다. 열쇠 꾸러미였다.
B-01, B-02 부터 시작하여 101, 102 등의 숫자가 적혀 있는 열쇠였다. 각 호실의 비상열쇠인 것 같았다. 김혁진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있던 곳은 B-01호.’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 늘 습한 곰팡이 냄새가 꿉꿉하게 올라오던 저곳. 저곳의 키를 획득했다.
‘윽.’
열지 못했다. 문이 키를 거부했다.
‘단순히 이걸로 여는 게 아닌가본데.’
김혁진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열쇠가 ‘꾸러미’로 주어졌다. B-01호실의 열쇠가 아니라 모든 열쇠를 다 줬다.
‘일단……. 한 번 다 뒤져보자.’
주인아주머니가 살고 있던 5층부터,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5층에는 딱히 아무것도 없었다.
4층에는 3개의 호실이 있었다.
사실 김혁진은 이 건물에 누가 사는지 잘 몰랐다. 그저 오다가다 누군가 마주쳤고,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401호.
그곳에는 대학생 커플이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커플템들이 여러 군데 놓여 있었고,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여러 벌의 옷들이 있었다. 이른바 ‘과잠’이라 불리는 과 점퍼도 보였다. 검은색과 자주색이었다.
‘뭐 별거 없는데.’
402호.
20대 초중반의 남자였다. 집이 굉장히 지저분했다. 피범벅이 된 지금, 사실 깨끗하고 지저분하고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노트북 하나가 놓여있는 그냥 그런, 20대 초중반 남자의 집이었다.
‘여기도 딱히.’
403호.
여긴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벽면에는 피가 묻은 결혼사진과 애기 사진도 있었다.
‘얘가 그 애기네.’
이제 겨우 갓 걷기 시작한 아이 같았다.
‘아무리 신혼부부여도 애랑 같이 살기에는 너무 비좁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했다. 복도에서 몇 번 마주쳤던 것 같다.
4층. 3층. 2층. 1층. 모두 별 거 없었다. 모두가 그냥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상.
‘단서가 안 보이는데.’
결국 다시 지하로 돌아왔다.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봐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뢰로 이 공간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일단 미뤄뒀다. 단순히 여기를 빠져나가는 퀘스트가 아닌 것 같았다. ‘무명의 관찰자‘가 전달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그걸 찾아내야 했다.
‘어?’
김혁진이 머물던 곳.
B-01호의 문고리에서 희미한 노란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혹시 몰라 다시 열어봤다.
이번에는 문이 김혁진을 거부하지 않았다.
‘뭐가 달라진 거지?’
모든 층을 다 둘러봤다는 것밖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도 비상용 키가 문 속에 쏙 들어갔다.
철컥.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갑자기 환한 빛이 느껴졌다. 김혁진마저도 눈을 질끈 감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능판 67개? 개소리 하고 있어.”
목소리가 어딘지 낯이 익었다. 눈을 떴다. 이곳은 한 방이었다.
‘송진철?’
송진철은 이 쪽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2028년의 송진철은 어엿한 20대가 되어 있었다.
“이 새끼.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
김혁진의 눈에 또다른 사람이 보였다. 김강철이었다. 김혁진에게 ‘재능없음‘ 검사지를 직접 전해주었던 그 사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김혁진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문 쪽이었다. 김혁진은 어느새 다시 반지하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송구스러운 결과를 전하게 됐습니다. 재검사를 해봤는데 재능이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감각안에 김강철의 속마음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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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미안함/비겁한 자신에 대한 혐오
요약 :
1) 자괴감에 빠진 비겁한 대한민국의 가장
2) 스스로 인정하는 위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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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철이 김혁진에게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재능판 검사지였다.
“공시 공부를 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힘내십시오.”
김혁진이 재능판 검사지를 받아 들었다.
[재능 없음.]김강철이 씁쓸한 결과를 전해주고서 몸을 돌렸다. 김혁진이 물었다.
“제 눈에는 왜 재능판이 67개로 보이죠?”
“……예?”
김강철이 몸을 휙 돌렸다.
“송진철은 44개고.”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김혁진은 화가 났다. 회귀를 하면서 새로운 능력과 힘이 생긴 게 아니었다. 원래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이 충만했다. 만약 각성만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8영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결과를 이뤄냈을지도 모른다.
손아귀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김혁진의 눈이 아주 잠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참자.’
무명의 관찰자가 왜 이것을 보여주고 있을까? 그리고 저 김강철이 진짜 김강철인가? 이곳이 정말로 ‘2028년의 서울’일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여기는 특별하게 생성된 던전인데.”
계단에도 피범벅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건물의 모두를 다 죽이고 시체를 조종했다. 다시 말해, 누군가 다른 존재가 있다는 얘기다. 시체를 만들고 조종하는 이가.
“이 곳에는 어떻게 들어왔으려나?”
재능판 검사지를 전해주는 척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조작된 환상일 뿐이다. 그것을 깨달았다.
‘그 때 있었던 일은, 나랑 김강철밖에 몰라.’
당시 중간 관리자들이 김혁진을 중계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방에 CCTV가 설치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방금 이 ‘김강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는, 김강철이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심지어 김혁진은 몰랐던, 송진철과 관련된 내용까지 정확하게 재구성해서 보여주었다.
‘내가 진짜로 미래로 온 게 아니라.’
확신했다.
‘그때의 사실을 토대로 똑같이 재구성된 공간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사실. 2028년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자는 누구였을까?
아무도 몰랐던, 반지하방의 ‘재능없는 인간’에 관한 것조차도 다 알고 있을 만큼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자.
“무명의 관찰자.”
김강철이 씨익 웃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군.”
“…….”
김강철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진짜 김강철은 아니다. 아까 감각안에 읽혔던 감정과 상태도 모두, ‘무명의 관찰자’가 거짓으로 만들어냈던 것이었다.
“지금의 이 상황은, 중계되고 있습니까? 세니아. 중계되고 있어?”
한편, 세니아는 당황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버가 불안정했다. 서버는 충분히 확충해 놓았었다. 그런데 중계가 되지 않았다. 김혁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노이즈가 가득한 공간. 잿빛 세계에 갇혀 버렸다. 세니아도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마치 자신이 미궁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빠져나가야 해.’
당연히, 김혁진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중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명의 관찰자가 말했다.
“중계되고 있을 리가. 시스템은 회귀를 인정하지 않아.”
“…….”
김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역시 함정일 수도 있다. 김혁진이 회귀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떠보는 것일 수도 있기에.
무명의 관찰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판단이야. 대답했으면 실망할 뻔했어.”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께서 시스템이 말하는 율법이나 룰 등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금지하는 ‘회귀‘도 알고 있는 것 같고. 세니아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세니아는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은 내가 만들어낸 특별한 공간에 갇혀 있어.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네가 차기 [무명의 관찰자]가 되면, 저절로 풀려날 테니까.”
“중간 관리자를 가두는 수호자라니. 들어본 적도 없군요.”
“엄밀히 따졌을 때, 나는 수호자가 아니니까.”
수호자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나면서부터 수호자인 자도 있고, 업적을 쌓아 수호자가 된 자도 있지, 그렇다면 수호자가 아니면서도 수호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자도 있지 않을까?”
“…….”
“뭐. 이해하지 않아도 좋아.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네가 어떻게 회귀를 했느냐지.”
무명의 관찰자가 김혁진의 침대에 앉았다. 앉은 채, 김혁진을 올려다 보았다.
“자. 전직 퀘스트의 질문을 시작하겠다.”
몬스터를 때려잡고 클리어 크리스탈을 부수는 것이, 전직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당신이 시험관입니까?”
“그래. 내가 김강철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송진철과 관련된 얘기를 보여주면서부터, 이미 시험은 시작됐지.”
김강철이 빙그레 웃었다.
“만약 이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송진철이나 김강철을 죽였다면.”
“전직 퀘스트는 실패로 끝났겠군요.”
“정답.”
김강철도 무명의 관찰자였고, 송진철도 무명의 관찰자였다. 무명의 관찰자는 모든 자를 관찰했고, 이 공간에서 모든 자였다.
“일부러 흥분시키기 위해 이 건물 안의 모두를 죽이게 만들었고.”
피를 보면 흥분한다. 누군가를 죽이면 더 흥분한다. 그 것이 비록 시체일지라도. 게다가 이 시체를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긴장하고 흥분하게 된다.
“그 이후, 송진철의 모습을 보여주어 분노를 돋군 다음.”
그다음 상황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절망감을 안겨주었던, ‘재능없음’ 검사지를 가져다주던 그 때의 그 상황을 재연해서 보여주었다. 원래는 67개의 재능판이 박혀 있는 검사지여야 하는데. 그 것이 ‘재능없음’으로 한순간에 둔갑되었다.
솔직히 정말 화가 났다. 가까스로 참아냈다.
무명의 관찰자는 계속 빙그레 웃었다. 김혁진의 말이 굉장히 흡족한 것 같았다.
“그래. 좋아. 다 좋아. 역시 내가 차기 무명의 관찰자로 점찍을 만해.”
눈이 가늘어졌다.
“문제는 서술형.”
“…….”
다리를 꼬고 앉았다. 무명의 관찰자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였을까? 왜 이곳에 있을까?”
“정답이 있기는 합니까?”
무명의 관찰자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진지한 표정 같기도 했고 약간은 웃는 것 같기도 했다.
“판단은 시험관이 하는 거지. 일단 생각할 시간을 3분 줄게.”
그리고 3분이 흘렀다. 김혁진은 이 시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형태만 조금 달라졌을 뿐 김혁진이 매일같이 해오던 것이었다.
‘알겠다.’
무명의 관찰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