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528)
#재능만렙 플레이어 528화
세니아는 김혁진을 포기했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너무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순혈의 검제. 그리고 김혁진의 관계에는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존중했다. 그렇기에 물러나 주었다.
“아주 중요한 얘기를 전달하겠습니다. 김혁진 플레이어의 계약 중간 관리자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미셸은 아니었다. 세니아는 중간 관리자이고, 중간 관리자들의 영상들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셸의 생각. 미셸의 의도 등을 대략적으로는 다 알고 있었다.
미셸이 진심어린 감탄을 토해냈다.
“정말. 볼 때마다 아름다우시네요.”
그러나 그 감탄에는 익숙했다. 세니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제 할 말만 했다.
“김혁진 플레이어는 유부남입니다.”
“아닌 걸 다 확인하고 왔는데요.”
김혁진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유부남 얘기가 왜 튀어나오고, 뭘 또 확인했단 말인가. 미셸은 여유로워 보였다.
“법적으로 완벽한 싱글이던데.”
“법과는 무관합니다.”
“법으로 혼인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데, 어떻게 유부남이라는 거죠?”
세니아는 아주 잠깐, 말이 막혔다. 사실상 둘이 법적으로 결혼한 건 아니었으니까. 세니아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저 역시 한때, 김혁진 플레이어를 이성으로 봤던 적이 있습니다만.”
김혁진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저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김혁진은 세니아가 자신에게 이성적인 마음을 가졌던 것이, ‘화살 쏘는 아기천사’의 농간이라고 생각했다.
천족은 본래 감정이 없다시피 한 종족이다. 천족이 누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지금 세니아가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요?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세니아님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엄청 힘들 거 같은데.”
김혁진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또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메시지를 보내더라니.’
미셸에게도 도박성 짙은 무언가를 걸은 모양이다. 내기를 좋아하는 미셸 입장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인 것 같고.
미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지금 하는 건 뭔가요? 견제? 질투? 뭐 그런 건가요?”
“…….”
“김혁진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접은 거 아닌가요?”
“접었습니다.”
“그럼 왜 견제하시는 거예요?”
“지구 차원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미셸은 세니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구 차원의 존속이 갑자기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김혁진이 말했다.
“세니아, 됐어.”
“……예?”
분명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깊게 개입하고 있으리라. 김혁진은 플레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더 넓게 봤다.
김혁진의 눈에는 세트 아이템인 열쇠고리와 용살검의 조각. 그리고 카룰루의 편지가 보였다.
이 타이밍에 미셸이 접근했고, 미셸과 함께 플레이를 하게 됐다.
‘여기에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깊게 개입할 만한 뭔가가 있을 거야.’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미셸이 다시 물었다.
“김혁진씨. 진짜 유부남이에요?”
“네, 유부남입니다.”
“법적으로요?”
“법으로 강제가 안 돼서요.”
순혈의 검제를, 그 어떤 나라의 법 따위가 감히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 수호자를 사살하는 수호자다. 중간 관리자마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세상의 법이, 순혈의 검제를 제약할 수는 없다.
“아무튼 법적으로는 유부남이 아니라는 소리죠?”
“네.”
“그럼 됐어요.”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플레이에, 미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리라.
“[약조의 열쇠고리]를 한 번 합쳐보죠.”
세트 아이템이다. 아귀가 딱 들어맞는 세트 아이템. 두 가지를 합쳐보기로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런 경우, 강화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하는 게 좋아서요.”
“강화도 잘해요?”
“조금 합니다.”
미셸은 피식 웃었다.
‘김혁진이 말하는 조금이 어느 정도일까?’
김혁진의 기준은 일반 사람들의 기준과 많이 다르다.
“페드로와 비교하면 어때요?”
세니아가 대신 대답했다.
“김혁진 플레이어는 강화에 주력하는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미셸도 세니아가 은근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자꾸 대화에 끼어든다. 중간 관리자 세니아는 이렇게 플레이에 많이 개입하는 편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좀 거슬렸다. 그러나 티는 내지 않았다.
“따라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겁니다.”
“만약 김혁진씨가 강화에 주력했다면 페드로보다 더 뛰어난 명인이 되었을 거라는 얘기처럼 들리네요?”
두 여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미셸이 세니아가 거슬리듯, 세니아도 미셸이 거슬렸다.
‘제가 김혁진 플레이어를 양보한 것은, 상대가 순혈의 검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짐했다.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셸.’
* * *
‘약조의 열쇠고리’ 두 개를 합쳤다.
지그재그 형태로 갈라져있던 두 개의 아이템은 노란빛을 내며 하나의 아이템으로 합성되었다. 열쇠고리 두 개가 합쳐지자 돋보기 형태의 아이템이 생성되었다.
이름은 ‘약조의 돋보기’였다.
──────────
[약조의 돋보기]카툴루가 마이커에게 선물한 돋보기입니다. 거인들의 명인 케인이 만든 것으로, 시력이 없다시피 한 지저거인들을 위하여 고안되었습니다.
──────────
미셸이 물었다.
“이게 뭐죠?”
“보다시피. 돋보기죠.”
“카툴루는 거인들의 왕이라고 했었고, 그럼 마이커는요?”
거기까지 말한 미셸이 멈칫했다. 김혁진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겠지. 마이커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앞으로 알아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미셸이 ‘한 번, 같이 알아봐요.’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마이커는 지저거인들의 왕입니다.”
“……그것도 알아요?”
“네. 우연히.”
“우연히 알기에는 너무 고급정보들인 거 같은데요.”
역시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남자다. 태평한 얼굴로, 세계 시나리오에 숨은 비밀들을 잘도 풀어주었다.
“카툴루가 거인들의 왕이라면서요. 지저거인도 거인인데, 왕이 따로 있어요?”
“지저거인은 반쪽짜리 거인이거든요.”
거인들에게 무시당했던 거인. 거인에게 필요한 ‘오공’을 키우지만, 정작 거인들에게는 무시당했던 서러운 족속들. 그게 지저거인이었다.
김혁진이 태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카툴루가 마이커와 친구였단 얘기는 저도 처음 알았네요.”
마이커는 천룡 베일사라를 돕는 척하다가, 마지막에 천룡의 뒤통수를 치는 지거거인의 왕이다. 아무래도 이번 시나리오는 카툴루-마이커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이걸로 편지의 내용을 보면 상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김혁진이 ‘약조의 돋보기’로 ‘카툴루의 편지’를 살펴보았다. 미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쉿.”
김혁진은 집중했다. 글씨가 아른거렸다. 집중하면 보일 것 같았다. 이런 작업은 익숙했다. 미셸은 잠자코 옆에 서서 기다렸다.
1시간. 2시간. 3시간이 흘렀다.
3시간이 지났을 때. 미셸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무슨 집중력이…….’
사람의 집중력이 아니었다. 3시간 동안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결국 4시간이 흘렀을 때, 편지가 갈가리 찢기며 검은색 일렁거리는 게이트가 하나 생겼다.
김혁진이 말했다.
“가죠.”
미셸이 게이트의 이름을 살펴봤다.
──────────
[마이커의 전장(戰場)]──────────
미셸이 김혁진 옆에 섰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안 지쳤어요?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요?”
김혁진의 태평한 얼굴에, 미셸은 약간 기운이 빠졌다.
“4시간 동안 무슨 스킬 써서 관찰하던데.”
“그랬어요?”
김혁진이 옆을 쳐다봤다. 세니아에게 확인을 구했다.
“예. 4시간 24분가량 지났습니다.”
세니아는 미셸을 의식했다. 내가 이만큼, 김혁진을 더 잘 안다. 이것을 과시하는 듯했다.
“물론 김혁진 플레이어의 집중력이라면, 아마 4분 정도 지났다고 느꼈겠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김혁진을 잘 아는 나는, 이 정도는 전혀 놀랍지 않다. 그것을 눈빛으로 말했다.
미셸은 그 눈빛을 받으며 묘한 패배감에 휩싸였다. 아까부터 계속 거슬린다. 이유를 모르겠다. 김혁진을 깔끔하게 포기했다면서.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뭐랄까. 더 오기가 생겼다.
“집중하는 남자는 멋있네요.”
4시간을 4분처럼 느낀다라.
4시간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는 그 모습이 멋있기는 했다. 미셸에게는 충분히 멋있었다.
“정말 욕심나요.”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어떤 분께, 어떤 퀘스트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세니아의 경고는 빈말이 아닙니다.”
“……네?”
“플레이는 좋습니다. 플레이어는 플레이를 해야죠.”
‘화살 쏘는 아기천사’와 관련된 플레이도 플레이다. 플레이어라면 모든 플레이를 잘 해내야 한다.
“그러나 위험 부담이 지나치게 큰 플레이라는 것을 경고합니다. 제 아내는 [순혈의 검제]입니다.”
미셸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결혼과 관련된 퀘스트를 진행 중인가 보네.’
순혈의 검제.
들어본 적 없는 수호자다. 아마 김혁진 기준에서도 굉장히 큰 퀘스트를 진행 중인 것 같다.
“좋은 말이네요. 플레이어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김혁진도 지금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김혁진과 이사벨의 관계를 모르는 미셸 입장에서는 합당한 추론이었다.
미셸이 게이트 앞에 섰다.
“플레이하러, 가죠.”
* * *
김혁진과 미셸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필드가 생성되었다. 미셸이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가 마이커의 전장?”
마이커.
지저거인들의 왕이라고 했다. 마이커의 전장이라길래 거창한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람이 많은데요?”
“그러게요.”
실제로 사람이 많았다. 모두 플레이어들이었다. 김혁진의 감각안에 플레이어들에 대한 정보가 잡혔다.
‘환상이나 NPC가 아니야.’
진짜 플레이어다. 국적은 미국. 미국 서버로 연결된 것 같았다.
‘평균 레벨은 20 이하.’
미셸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낯이 익은 곳인데.”
몇몇 플레이어들이 미셸을 알아봤다.
“미셸?”
“에이 설마. 미셸이 이런 데를 왜 와?”
“여긴 레벨 제한 20이 걸려 있는 곳이라고.”
“그렇겠지?”
미셸뿐만 아니라 김혁진도 알아봤다.
“김혁진 아니야?”
“여기 레벨 제한 20이라니까?”
“깜짝 놀랐네.”
“하긴. 이런 곳에 그 탑랭커들이 있을 리가 없지.”
플레이어들은 미셸과 김혁진의 얼굴을 얼추 알아보기는 했지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레벨 제한이 걸려있는 곳이니만큼, 그쯤 되는 탑 랭커가 들어올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미셸이 깨달았다.
“여기. 어딘지 알 거 같네요.”
“어디죠?”
“옐로스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초급 던전들 중 하나예요. 20레벨까지만 입장이 가능한 곳이죠.”
“클리어한 경험이 있나요?”
“없어요. 그런데 내용은 대충 알아요.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3개의 방이 나와요. 각각의 방에는 몇몇 몬스터들이 있고, 마지막 방에 랜덤으로 보스 몬스터가 생성돼요. 그래 봐야 레벨 30 이하의 약한 애들이긴 한데.”
미셸도 의아했다. 어렵게 들어온 곳이 왜 여기일까. 여기에 뭐가 숨겨져 있을까. 미셸도 생각에 잠겼다.
‘아무 이유 없이, 초급 던전에 들어올 이유가 없어.’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단서가 전혀 없었다. 이렇게 특이한 경우라면, 보통 퀘스트 알림같은 것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단서가 전혀 없네요.”
김혁진이 대답했다.
“단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죠.”
“설마…….”
미셸은 저도 모르게 김혁진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설마 싶었다. 들어온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수준 높은 탐험가도 없다. 단서를 찾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벌써 뭔가, 알아차리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