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02)
#재능만렙 플레이어 602화
골든 로드에 떨어진 강솜이의 목이 스스로 한 바퀴 굴렀다.
눈을 부릅떴다.
“길드장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은 점차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피눈물?’
피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골든 로드를 따라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 김혁진의 발에 닿았다.
순간, 주변이 어두워졌다.
‘어둡다.’
약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속에 빠진 것과 유사했다.
‘피눈물에 잠겼어.’
좁은 유리 상자 안에 갇힌 것 같았다.
유리 상자에는 피가 점차 차오르고 있었다.
김혁진은 평정심을 유지한 채 이미 가슴까지 차오른 피를 쳐다보았다.
‘환상이겠네.’
코를 찌르는 혈향.
온몸을 감싸고 죄어오는 피의 묵직하고 끈적한 질감이 소름 돋았다.
‘환상이라.’
김혁진은 환상을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그 어떤 환상도 김혁진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었다.
“환상과 환영. 왜곡과 거짓은 나를 탐할 수 없으리니.”
김혁진은 숨을 쉬듯 자연스레 영창을 읊었다.
영창의 군주를 융합한 ‘문무왕’의 칭호를 가진 상태에서는 처음 읊는 ‘의지영창’이었다.
“이것이 곧 직관(直觀)의 권능이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안(洞察眼).”
김혁진의 음성이 변했다.
저음으로 울렸다.
[모든 거짓은.] [부서지리라.]김혁진은 알림을 기대했다.
원래대로라면,
[의지영창(意志詠唱)에 성공하였습니다.]이라는 알림이 들려와야 했다.
보통 그래왔다.
‘알림이…… 안 들려?’
이상하게도, 환상이 깨지지 않았다.
점점 더 숨이 막혀왔다.
* * *
용돌이가 몸을 움찔 떨었다.
용돌이는 특단의 임무를 부여받고 김혁진의 집에서 생활 중이었다.
“으씨. 쉬고 싶다.”
용돌이는 쉴 수 없었다.
얼음 속성의 마나를 끊임없이 사용하여 동결마법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뭔 놈의 마나를 이렇게 많이 잡아먹어?”
라푼델을 얼려놓는 중이었다.
라푼델이 순순히 마나를 받아들인 덕택에 동결마법이 쉽게 유지되고는 있다만, 유지 자체가 힘들었다. 마나를 어마어마하게 잡아먹었다.
“에휴, 내 팔자야. 다롱이 녀석은 또 활약하고 있겠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그건 좀 참기 힘들었다.
김다롱 따위에게 뒤처지다니.
용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예 그냥 꽝꽝 얼려버릴 수도 없고.”
마나를 미친 듯이 쏟아부어서 한 번에 완전동결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으. 마나 포션 맛없어.”
인간들이나 먹는 마나 포션을 끊임없이 마셔가며 마나를 비축해야 했다.
마나를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날 언제 부르는 거야?”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 소환에 응해야 했다.
저도 모르게 트림이 나왔다.
“꺼억.”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많이 해?”
“누나!”
용돌이는 세 명에게 친근감을 드러냈는데, 한 명이 ‘용의 아버지’인 김혁진이고, 또 한 명이 ‘용의 어머니’인 강솜이며, 또 한 명이 누나인 안서희였다.
“이상한 거, 안 느껴져?”
“이상한 거?”
용돌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난 사실 지금 계속 마법 사용하느라고.”
“지쳤어?”
“아, 아니? 용은 위대해서 지치지 않아.”
그렇다고 보기에는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긴 했지만, 어쨌든 용돌이는 힘들지 않다고 주장했다.
“왠지. 조금 이상해. 불길한 기분이 들어.”
“그래?”
용돌이가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내가 SNS하는 법 가르쳐줄까? 누나 외모면 셀럽이 될 수 있어.”
“…….”
안서희는 황당하다는 듯 용돌이를 쳐다봤다.
용돌이는 정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가끔 이런 날이 있다.
괜스레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이상해지는 날.
이런 날은 보통 정신적으로 연결 된 ‘수호탑의 주인’인 김혁진에게 어떤 일이 생긴 날이다.
“너는 오빠랑 연결이 돼?”
“그럴 여력이 없어. 라푼델인지 라퐁당인지. 걔 얼리는 것만도 너무 힘들, 아니, 아주 바빠.”
“……그래.”
안서희가 탁자에 앉아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런데 그때.
용돌이가 헉! 소리를 냈다.
“왜 그래?”
“소환의식이 펼쳐질 것 같아.”
용돌이는 허둥대며 방에 누워있는 라푼델에게 달려갔다.
라푼델을 황급히 업었다.
“오빠가 소환한 거야?”
“아니!”
“그럼 누가?”
용돌이가 안서희의 손목을 탁! 잡았다.
“누나도 같이 가!”
왜냐하면 나는 마나를 거의 다 썼고, 워프까지하고 나면 아주아주 지칠 예정이기 때문에, 힘써야 할 일이 있으면 누나가 해줘!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약한 말은 용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용돌이와 안서희가 소환되어 사라졌다.
* * *
몇 분 전.
강솜이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길드장님?”
김혁진이 갑자기 허공을 걷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레 절벽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강솜이는 부유 아이템을 사용하여 그 옆에 따라붙었다.
“길드장님!”
그러나 김혁진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평범한 호칭은 닿지 않았다.
“김혁진! 야!”
소리를 버럭 질러봤지만, 김혁진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앞을 향해 걸었다.
발걸음 자체가 굉장히 신중했다.
무엇인가를 파악하면서 걷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작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혁진이 말했다.
“아뇨. 잠시만요.”
“예? 들려요?”
김혁진은 강솜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강솜이는 아예 김혁진 바로 앞까지 날아가 팔을 머리 위로 크게 흔들었다.
“혁진 씨? 저 여기 있는데요.”
김혁진이 자꾸 이상한 말을 했다.
“제가 봤던 입구랑 조금 달라요.”
김혁진의 표정은 진지했다.
적어도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환상을 보고 있다는 얘기인데.
강솜이는 김혁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환상 따위에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상하네.’
이쯤 됐으면 환상이라는 걸 깨달았을 거고, 그걸 인지하는 순간 부수고 나왔을 텐데.
“최후의 안전장치가, 과연, 정말로 최후의 안전장치였을까요?”
“여보. 정신 좀 차려봐요.”
강솜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뭐. 시스템상 나는 용돌이 어머니고, 길드장님은 용돌이 아버지니까. 여보가 틀린 호칭은 아니잖아?’
이런 충격적인(?) 호칭을 들으면 정신을 차릴까 했다.
그런데 김혁진이 갑자기 칼을 휘둘렀다.
‘억!’
강솜이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잘려나갔다.
‘와. 위험했어.’
김혁진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환상 속에서 무엇인가의 머리를 자른 모양이었다.
“진짜 섬김의 탐험가라면.”
“나를 좀 더 신뢰했을 거야.”
“스스로 답을 찾으려 노력했겠지.”
거기서 강솜이는 깨달을 수 있었다.
“넌 누구냐?”
내 환상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내 머리를 가차 없이 자르신 거 같은데.
강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너무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가차 없이 칼을 휘두…….”
사실 강솜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환상공격에 당했다고 해도, 김혁진은 김혁진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금방 부수고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듯했다.
“환상과 환영. 왜곡과 거짓은 나를 탐할 수 없으리니.”
강솜이도 알고 있는 의지영창이었다.
[모든 거짓은.] [부서지리라.]그러나 환상은 깨지지 않은 듯했다.
김혁진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거기서 강솜이는 직감했다.
‘위험하다.’
일반적인 환상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은 ‘문무왕’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전에는 ‘영창의 군주’였다.
그 힘을 융합하여 가지고 있는 김혁진이 영창을 사용해서 환상을 부쉈는데, 환상이 깨지지 않았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김혁진이 목을 움켜쥐었다.
목의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
목뿐만이 아니었다. 1초. 2초. 3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김혁진의 온몸에 넓게 퍼진 혈관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피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두 눈이 충혈되었고 김혁진의 입가에서 침이 흐르기 시작했다.
“길드장님!”
강솜이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정신 차리자, 강솜이.’
길드장이 환상마법에 당한 것 같다.
그것도 철저하게 계획된 마법인 것 같았다.
‘길드장님에 대해서 상당히 깊이 알고 안배한 함정이야.’
김혁진에 대해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김혁진 뜻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연출했을 것이다.
아까 ‘최후의 안전장치’를 언급하는 걸 봤다.
환상 속에서 김혁진이 ‘최후의 속임수’를 읽어냈다는 뜻이 된다.
‘거기에 더해, 내 환상을 일부러 보여주면서 공격하게 만들었어.’
똑똑한 김혁진을 두 번, 세 번 속이는 연출이었을 것이다.
김혁진이 너무 똑똑하니까.
그래서 걸리게 만들었다.
‘영창의 힘을 오히려 흡수해서…… 역이용한 것 같아. 길드장님의 통찰력과 영창과 대해 완벽한 대비가 되어있었던 거겠지.’
그런 힘이 마왕에게 존재했었나.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녀는 거신길드의 탐험가로서, 옳은 길을 찾아야만 하는 사명이 있다.
그간 김혁진이 너무 잘해와서 잠시 본분을 잊었을 뿐.
‘이번에는 내가 도와드려야 해.’
어떻게 돕지.
‘길을 찾아야 해.’
옳은 길.
김혁진을 살릴 수 있는 길.
저 환상을 외부에서 부숴 버릴 수 있는 길.
‘길드장님을 곤란에 빠지게 할 정도의 환상이 아무런 매개체 없이 사용됐을 리 없어.’
어마어마한 물건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물건이라면……!’
이미 근방을 샅샅이 탐험했었다.
그런 물건은 없었다.
딱 하나.
저만치 아래 여전히 빛을 뿜어내고 있는 진귀한 아이템인 ‘판도라의 지름길’을 제외하면 말이다.
‘저거다!’
강솜이가 빠르게 밑을 향해 움직였다.
“길드장님! 조금만 버텨요!”
하강하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부유 아이템을 그냥 없애 버렸다.
쿵!
강솜이는 땅으로 추락했다.
발목뼈가 부러진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판도라의 지름길’을 향해 뛰었다.
뛰면서 ‘판도라의 지름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걸 일단 부숴야 돼.’
인벤토리에서 삽을 꺼내 내리쳤다.
깡!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으악!’
거대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강솜이가 뒤로 튕겨 나갔다.
‘내 힘으로는 안 돼.’
그러면 다른 힘이 필요했다.
‘용돌이!’
그래서 용을 소환했다.
‘길드장님이 필요할 때 소환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찬물, 더운물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저걸 부수고 봐야 했다.
번쩍!
빛이 터져 나왔고 마법진에서 용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솜이가 급히 말했다.
“저걸 부숴!”
“……응?”
용돌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으.’
지금 힘이 너무 없는데.
혹시 몰라 서희 누나 데려오느라고 남은 힘까지 다 써버렸는데.
그 말은 하지 못했다.
‘하늘이 빙빙 돈다……!’
체력고갈 상태였다.
마나를 끌어 올리려 했지만 용돌이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용돌이!”
그렇지만 다행이었다.
마법진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숙적필멸결계.”
붉은 실 수천 가닥이 ‘판도라의 지름길’을 향해 뻗어 나갔다.
강솜이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수호탑 안서희가 함께 왔다.
강솜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안서희의 능력이라면 저 상자를 쉽게 부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
그런데 아니었다.
‘판도라의 지름길’은 안서희의 붉은 실마저도 튕겨냈다.
강솜이가 삽으로 쳤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한 반탄력이 생성되었고, 안서희의 입가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안서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단단하네.”
오기가 생긴 것 같았다.
강솜이가 물었다.
“저거. 부술 수 있어요?”
“당장은 좀 힘들 것 같아요.”
용돌이도 힘을 쓸 수 없는 상태고, 등에 업힌 라푼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서희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김혁진이 위험했다.
‘후우.’
강솜이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번에 증명해 줘야겠네.’
거신길드에는 거신군주 김혁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탐험가 강솜이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