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18)
#재능만렙 플레이어 618화
“이 은성(銀星) 회중시계는 [검의 숲을 향한 망자]의 마지막 걸작이며, 언젠가 페드로에게 선물하리라 마음먹었던 물건이기도 합니다.”
김혁진은 ‘검의 숲을 향한 망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함께 플레이를 진행하기까지 했던 드워프 대장장이 ‘부파파’ 장로였다.
김혁진은 인벤토리를 열어 이센을 살펴보았다.
부파파의 이름이 각인 된 이센이 ‘검의 숲을 향한 망자’의 진명에 반응하며 웅웅- 검성을 내고 있었다.
“김혁진 씨?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혁진은 이타치를 만났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시점이면 일본의 이타치를 만나고 있을 시점 같은데.’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다. 이타치와 페드로는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일본의 점성술사 이타치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천재 점성술사다. 페드로는 이탈리아의 명인 중 명인이고. 둘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었지?
아마도 이타치와 페드로 사이에 ‘검의 숲을 향한 망자’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세계와 부파파가 있는 차원은 시간축이 달랐고, 부파파는 ‘검의 숲을 향한 망자’가 되어 이타치에게 접근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를 통해 페드로와의 접점을 만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왜 굳이?’
부파파가 만약 진짜 수호자가 되었다면?
페드로에게 먼저 접근하면 될 일이다.
이 은성 회중시계를 주고 싶었다면 직접 후원해도 된다.
‘굳이 점성술사인 이타치를 통해서 전해주려고 했다는 건…….’
김혁진이 가볍게 웃었다.
“이 시계에 무언가를 했습니까?”
“무언가요?”
“네. 점성술사로서.”
이타치는 허- 하고 웃고 말았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역시 김혁진은 김혁진이다.
“수호자는 소멸할 때 수호력을 모두 사용한다고 하지요?”
“제가 알기로도 그렇습니다.”
“점성술사는 은퇴할 때 별의 힘을 모두 소모합니다. 점성술사들끼리는 성력(星力)이라 표현합니다.”
“그러면…….”
“네. 제가 처음 이 시계를 후원받았을 때는 본래 [00 회중시계]였습니다.”
이름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계였다.
점성술사 이타치가 자신의 힘을 모조리 소모해 버리면서 ‘00 회중시계’를 ‘은성 회중시계’로 탈바꿈시켜버린 모양이었다.
‘점성술사의 힘을 빌어 은성 회중시계를 만들었다라.’
이 정도면 상당히 직접적인 개입이라 할 수 있었다.
수호자들은 보통 이렇게 직접적인 개입을 꺼린다.
‘부파파 장로는 결국 수호자가 되지 못한 건가?’
[검의 숲을 향한 망자]는 수호자가 되기 전 단계인 수호령이었다.이타치는 분명 ‘마지막 걸작’이라고 표현했다.
부파파의 유언 아닌 유언을 떠올려보았다.
“맞습니다. 기적을 발현한 대가로 수호령은 소멸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적을 일으키려 합니다.”
“네. 저는 소멸할 겁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쁩니다.”
그 이후로 정말로 소멸이 되었을지.
아니면 수호자가 되었을지. 그것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잘 받아두겠습니다.”
“아. 혹시 몰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이 은성 회중시계는 특별한 힘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은성(銀星)의 가호입니다. 그래서 강제적인 권능을 사용하여 이 회중시계를 꿰뚫어 보려고 하면…….”
이타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은성 회중시계는 어지간한 권능은 다 무시해 버린다.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힘을 가졌다.
‘그렇지만 상대가 김혁진이니까.’
김혁진은 은성보다 더 강대한 별인 무색성의 주인이다.
무색성의 주인이라면 은성의 가호를 뚫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회중시계의 진정한 힘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김혁진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했다.
무명안을 사용해서 해석하려 들지 말라는 얘기였다.
‘결국 페드로와 만나봐야겠네.’
부파파는 김혁진의 친구였다.
친구의 마지막 걸작을 훼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원래 페드로에게 주려고 했다니, 페드로와 만나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겠지.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혹시 [검의 숲을 향한 망자]에게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나요?”
“회중시계를 선물 받은 이후로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결혼하실 때 연락 주세요.”
별거 아닌 말인데 이타치는 괜히 기뻤다.
무려 거신군주가 결혼식에 와준다니.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네. 청첩장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회귀 전, 28세의 나이로 요절하는 점성술사 이타치는 27세의 나이로 은퇴하고 플레이어로서의 모든 능력을 상실했다.
* * *
페드로는 작업공방에서 빠져나왔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몸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으어. 드디어 해냈다.”
결국 그는 해냈다.
우연히 거울을 본 페드로는 움찔했다.
그렇지만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이것이 바로 상남자지.”
얼굴에 그을음이 가득했다.
룰루- 콧노래를 불렀다.
“무자비한 상남자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래도 씻긴 해야겠지?”
그(그녀)는 주변을 훑어봤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조심스레 욕실로 향했다.
그는 씻을 때가 가장 두려웠다.
그의 진짜 성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평소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다.
‘후후.’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1시간 후면 초월급 아티팩트 아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진짜 개고생했지만…… 보람은 있어.’
무려 5레벨업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제는 검후라 불리기 시작한 신연서의 검을 복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어후. 그 끔찍한 기운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군.’
아수라를 잡아먹은 그 검은 기운.
대장장이에게는 너무나 혐오스러운 기운이었다.
그리고 1시간이 흘렀다.
다시 작업공방으로 들어간 그는 아수라를 들어 올렸다.
‘됐다!’
초월급 아티팩트 아수라가 원래의 빛을 되찾아 서슬 퍼런 예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쳇.’
보통 같았으면 ‘풀무불의 요정’이 나타나 신나게 축하해 주고 후원해 줬을 텐데.
요즘은 풀무불의 요정의 발걸음이 뜸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빼앗긴 것 같기도 했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놈. 상남자는 절대 못될 놈!’
굳이 따져본다면, ‘풀무불의 요정’의 후원이 뜸해진 예전 거신길드와의 공산품 제작과 관련한 협약을 체결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풀무불의 요정은 대인배인 척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풀무불의 요정’이 당신의 진심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그 이후로 풀무불의 요정은 뜸해졌다.
그러나 페드로는 크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거신길드에 명예길드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고 거신군주 김혁진과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계약도 파기될 텐데.’
그때가 되면 새로운 계약 수호자를 찾으면 그만이다.
풀무불의 요정이 위대한 수호자인 것은 맞지만, 페드로도 수호자 한 명에 목을 매달 정도로 형편없는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얼마 후.
신연서가 도착했다.
“자. 완성했습니다. 이 정도면 걸작이라 할 수 있죠.”
“다행이네요. 잘 복구돼서.”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했다.
신연서도 검이 완전히 복구된 것이 기뻤고, 페드로도 초월급 아티팩트 복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은빛별의 검혼(劍魂)’이 당신을 매우 크게 비웃습니다.]페드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비웃는다면서 새로운 수호자가 나타났다.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수호자였다.
“비용은 어떻게 될까요?”
신연서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명인이다.
초월급 아티팩트를 복구해 준 값으로 얼마를 줘야 할지 그녀도 알지 못했다.
페드로는 이쪽 계통의 독보적인 플레이어였으니까.
“비용은 무슨. 됐습니다.”
페드로는 오히려 화가 난다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상남자는 친구한테 돈 안 받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러면 제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그럼 마음의 빚으로 간직하고 나중에 한 번 도와주세요.”
페드로는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핫! 하고 웃는 모양새가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상남자는 응당 이렇게 웃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웃는 것 같았다.
신연서는 그런 페드로가 어딘지 모르게 조금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상남자에 집착하시네요.”
“상남자니까요.”
호탕하게 웃던 페드로는 저도 모르게 신연서의 얼굴을 홀린 듯이 쳐다봤다.
‘와.’
세상 사람들이 ‘검후앓이’를 외칠 때 이해하지 못했었다.
미소가 예뻐 봐야 얼마나 예쁘다고.
그런데 신연서의 미소는 달랐다.
단순히 외모가 예쁜 것과는 아주 다른 문제였다.
신연서가 웃자 주변이 화사하게 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검후로서의 분위기와 아우라. 거기에 특유의 따스하고 온화한 미소.’
왜 ‘검후앓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분위기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신연서도 만족했고, 페드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딱 하나.
자꾸 거슬리는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는 수호자가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은빛별의 검혼(劍魂)’이 당신의 대장장이로서의 자질을 의심합니다.] [‘은빛별의 검혼(劍魂)’이 육두문자를 사용하여 당신을 지적합니다.]‘자꾸 뭔 듣보잡이 나대는 거야?’
안 그래도 풀무불의 요정의 관심이 식어 짜증이 나던 차였다.
신연서와의 즐거운 만남에 자꾸 재를 뿌려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왜 그러세요?”
“혹시 [은빛별의 검혼]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글쎄요. 처음 들어봐요.”
그럴 줄 알았다.
명망 높은 수호자들이 이렇게 경거망동하며 가벼운 메시지를 보낼 리는 없다.
‘어차피 도움 안 되는 수호자일 거야.’
자신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호자라면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
김혁진만큼은 아니어도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고, 이 정도 위치에 오르면 저런 식으로 도발하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
제정신이라면 말이다.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그때, 김혁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 * *
김혁진이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 신연서를 발견했다.
“뭐야, 너도 있었어?”
“아, 응. 대장 얼굴 보고 가려고 했지. 어때? 이탈리아에서 만나니까 더 반갑고 그래?”
마침 밖에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던 강상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혁진?”
툭!
아이스크림 봉지가 땅에 떨어졌다.
“또 무슨 불가능한 퀘스트를 가지고 온 거야?”
김혁진은 늘 불가능한 퀘스트를 몰고 다닌다.
그런데 그걸 또 클리어해낸다.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만 한다.
“나는 빼줘라.”
“그래.”
“아, 싫다…… 응? 진짜? 진짜지? 나 빼주는 거지?”
땅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봉지를 주웠다.
손수건으로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닦아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도와달라면 어쨌든 도와주기는 할 텐데…….”
강상구로서는 의외인 듯했다.
늘 말도 안 되는 퀘스트에 끌고 다녔으면서 오늘은 자신에게 볼일이 없다니.
“그럼 연서한테 볼 일 있는 거야?”
“그랬다면 굳이 이탈리아까지 오지 않았겠지.”
“그럼…… 페드로?”
볼 일은 페드로에게 있었다.
셋의 시선이 페드로에게 향했다.
“페드로 씨. 이 아이템을 혹시 아십니까?”
“이건…….”
페드로가 은성 회중시계를 받아들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걸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알아요?”
“아뇨. 모릅니다. 그런데 왜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검의 숲을 향한 망자]가 남긴 걸작입니다.”
은성 회중시계.
검의 숲을 향한 망자.
두 키워드가 조합되면서 페드로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설마.’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승님?”
그리고 새로운 알림이 이어졌다.
김혁진과 페드로에게 동시에 전해진 알림이었다.
[진명을 밝힌 ‘은빛별의 검혼(劍魂)’과의 ‘대화의 테이블’에 응하시겠습니까?]김혁진은 순간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수호자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과거의 알림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건 ‘은빛별의 검혼’이 보내는 힌트였다.
[진명을 밝힌 ‘검의 숲을 향한 망자’와의 대화의 테이블에 응하시겠습니까?]페드로가 인상을 찡그렸다.
‘대화의 테이블?’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였다면 그냥 거부해 버렸을 것이다.
괜히 이상한 수호자의 농간에 말려들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많으니까.
[‘대화의 테이블’에 응하지 않으면, ‘은빛별의 검혼’은 소멸합니다.]페드로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실컷 비웃더니.
역시 별 볼 일 없는 수호자인 듯했다.
이까짓 것을 한 번 거부하면 소멸해 버린다니.
그렇다고 함부로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명분을 들어 거부해야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김혁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길드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