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19)
#재능만렙 플레이어 619화
“소멸이란 존재의 사라짐을 뜻해. 이 세상에 부파파는 없었던 거야 처음부터. 모든 이에게 잊히겠지. 소멸이란, 모두의 망각 속에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 사그라지는 거야. 타들어 가는 낙엽처럼. 영혼이 그렇게 사라져 버려.”
이사벨이 말했다.
“너는 여기서 죽지만 너의 역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너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내 영혼에 네 이름을 기억하겠다.”
부파파가 대답했다.
“이로써 제 소멸은 미뤄지겠군요.”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지금 수호령으로서 생명줄만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상태야.”
“재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겠습니다. 제 시간과 왕의 시간은 다르니까요.”
* * *
[진명을 밝힌 ‘은빛별의 검혼’과의 대화의 테이블에 응하시겠습니까?] [‘대화의 테이블’에 응하지 않으면, ‘은빛별의 검혼’은 소멸합니다.]“어떻게 할까요? 길드장님.”
일부러 ‘길드장’이라는 말에 힘을 줬다.
페드로 역시 이제 거신길드의 명예길드원이었고, 길드장이라는 단어를 통해 너와 내가 한 길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넌지시 주지시켰다.
페드로는 김혁진이 당연히 거부하라고 할 것이라 판단했다.
김혁진은 철두철미하며 지극히 계산적이며 이성적인 길드장이니까.
‘그런 듣보잡 따위에게 휘둘려봐야 얻어낼 것도 별로 없을…… 응?’
김혁진이 대답했다.
“당연히 응합니다.”
“당연하죠.”
페드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대화의 테이블’에 응하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 바로 수락할까요?”
“네.”
[‘대화의 테이블’에 입장합니다.]저번과 마찬가지로 세니아가 ‘대화의 테이블’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이곳은 [대화의 테이블]이라는 특수한 공간으로서, 대화 외의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예전 부파파가 ‘대화의 테이블’을 제안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페드로와 김혁진이 동시에 한 곳을 쳐다보았다.
‘붉은 수염. 그리고 붉은 눈썹.’
부파파였다.
김혁진의 생각대로 ‘은빛별의 검혼’은 부파파 장로가 맞았다.
부파파는 재활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재기에 성공하여 수호자로서 거듭난 것 같았다.
“오랜만입니다, 부파파 장로님.”
“네.”
부파파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허리를 깊이 숙였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엇을요?”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부파파는 스스로 소멸을 선택했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수호자로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이룰 것은 모두 이루었습니다.”
“네. 저는 소멸할 겁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쁩니다.”
부파파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저는 소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더 살아남아서 검림의 왕께서 제 고향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보고 싶었고. 제가 왕관을 제련해 준 왕의 자질을 갖춘 자가 어떻게 성장할지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페드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낯이 익은데.’
묘하게 낯이 익었다.
심장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그 충격은 뭐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그것을 다시 떠올려봤다.
은성 회중시계.
검의 숲을 향한 망자.
이 두 가지 키워드가 조합되면서 하나의 또 다른 단어가 생각났었다.
‘왜 난 스승님을 말한 거지?’
애초에 나한테 스승이 있었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기분이 이상하군.’
저 붉은 수염과 붉은 눈썹이 자꾸만 낯익었다.
심장이 간지러운 이 기분은 어쩌면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 같기도 했다.
“그래서 저는 악착같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래도 재활이 쉽지만은 않더군요. 저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없었고, 저는 하루하루 수호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요?”
“제 이름이 당신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네.”
김혁진은 당시 들었던 알림을 떠올려봤다.
시스템이 말하는 ‘검의 신부’는 김혁진이다.
다시 말해 김혁진의 영혼에도 부파파가 각인되었다는 뜻이었다.
“가장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셨더군요. 그것도 두 번이나.”
지저거인의 분신을 사냥했을 때 한 번.
신 초월종인 초롱이를 탄생시키며 초롱이의 세계를 창조했을 때 한 번.
“한 번은 편법이 동원된 것 같기는 했지만, 또 다른 한 번은 진실된 기적이었습니다.”
“…….”
“업적의 석판이 활성화되면서 위대한 기적이 제게 임했고, 저 역시 수호력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차원과 다른 시간 속에서 수호령이었던 ‘검의 숲을 향한 망자’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 문턱을 넘어본 ‘검의 숲을 향한 망자’였기에, 그는 절실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내서 수호자가 되고자 열망했다.
그리고 그 열망은 보답 받았다.
“저는 결국 [은빛별의 검혼]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페드로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부파파 장로가 도대체 뭔데?’
페드로는 ‘은빛별의 검혼’을 무시해도 될 수준의 수호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김혁진과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둘이 오래 알아온 사이 같기도 하고.’
김혁진이 따뜻한 눈으로 저 난쟁이 수호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마음이 쓰였다.
김혁진이 상당히 신뢰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김혁진은 굉장히 다정한 눈으로 부파파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소멸을 마다치 않고 기적을 위해 노력해준 친구니까.
혹여 원한은 잊더라도, 은혜는 절대 잊지 말자는 것이 김혁진의 신념이었다.
“그러면 검혼이라는 이름은…….”
“맞습니다. 제 이름이 검제 이사벨의 검신에 각인된 덕분에 생겨난 이름입니다. 그리고.”
부파파가 붉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씨익 웃었다.
“수호자들은 저를 일컬어 3세대 수호자라고 하더군요.”
* * *
페드로는 침묵하며 대화를 듣기만 했다.
‘3세대 수호자?’
페드로도 1세대, 2세대 수호자를 구분하고 있다.
말하자면 1세대 수호자는 기성세대의 수호자로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수호자들이다.
그들은 시스템이나 플레이에 크게 간섭하는 것을 지양하고 명분을 중시한다.
따라서 원리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진바 힘에 비해 후원이 짠 편이다.
‘2세대 수호자들이 대박인데.’
그들을 표현하는 단어는 ‘졸부’다.
급격하게 힘과 세를 얻어 단숨에 강력해진 수호자들을 보통 2세대라고 부른다.
그들은 1세대에 비하여 화끈한 후원을 일삼으며, 일명 ‘돈 지랄’을 해대는 이들이다.
‘근데 3세대는…….’
3세대는 적극적인 후원을 뛰어넘어 아예 플레이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이들이란다.
1세대가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어린 수호자들이라고 했다.
원리원칙을 무시하고 명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시스템이 정하는 한계선까지 제멋대로 군다고 했다.
‘그래서 1세대는 3세대를 망나니라고 부른다고?’
굳이 묶어보자면 1세대와 2세대는 얼추 비슷한 느낌이었다.
1세대는 후원이 짠 기성 수호자.
2세대는 후원을 많이 하는 기성 수호자.
‘3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수호자.’
김혁진은 ‘은빛별의 검혼’의 말을 듣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3세대 수호자라는 말은 회귀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단어였다.
‘새로운 형태의 수호자가 등장했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였다.
플레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수호자들이라니.
부파파는 정보공개에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닙니다.”
“어째서죠?”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함께하고 계시는 [백안의 예언]도 굳이 따지자면 3세대죠.”
“……아.”
백안의 예언은 플레이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수호자다.
그렇게 생각하면 1세대라고 할 수 있었다.
“1세대이면서 그 경향이 3세대인 수호자들도 제법 생겨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부파파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이유를 짐작하십니까?”
“글쎄요.”
과거에는 없던 일이다.
새로운 형태의 수호자가 등장했고, 이것은 상당한 변화였다.
이 변화가 과연 지구 차원의 플레이를 얼마나 변화시킬 것인가.
김혁진은 그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페드로가 끼어들었다.
“우리 길드장님 때문 아닙니까?”
부파파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넌 뭔데 끼어들어?”
“아니 스승님, 말이 너무 심하시네.”
페드로는 스스로 말해놓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또 스승님?’
왜 저 붉은 털 난쟁이한테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인가.
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는 건가.
“애송이는 끼어들지 마라. 다친다.”
부파파가 페드로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퍽!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상남자는 기절하지 않는…….”
페드로는 기절해 버렸다.
부파파는 애정 어린 눈으로 기절한 제자를 쳐다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의 말이 맞습니다. 수호자들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당신 때문입니다. 1세대 수호자들도 어지간히 좀이 쑤시나 봅니다.”
“……무슨 뜻이죠?”
“독보적인 콘텐츠는 하나뿐인데, 그 콘텐츠를 독점하고 싶은 수호자는 절대다수입니다.”
김혁진은 오로지 한 명의 수호자.
‘숭고한 염원’과 계약했다.
다른 수호자들은 김혁진과 직접 계약을 할 수 없다.
“직접 계약을 한 뒤, 후원하고 지켜볼 수 없으니 애가 타겠지요. 그러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뭐가 남겠습니까?”
김혁진과 계약하지 못했지만, 김혁진의 플레이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즐기고 싶어 안달 난 수호자들이 3세대 수호자의 경향을 띄게 된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천마산의 진주]도 그러하고, [풀무불의 요정]도 그렇지요. 심지어 [풀무불의 요정]은 자신의 계약 플레이어마저 내팽개치고 당신의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작계열 플레이어도 아닌데요?”
“그러니까 일반적이지 않죠. 보편적인 1세대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입니다.”
“이렇게까지 다른 수호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도 됩니까?”
부파파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지만 지금 그는 수호자들의 행동 패턴에 대해 일개 플레이어에게 다 오픈하는 중이다.
어떤 수호자에게는 상당히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저는 망나니 3세대니까요.”
피식 웃고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행동을 싫어하는 수호자들도 분명 있겠지만, 또 저를 은근히 응원하는 수호자들도 다수 존재할 겁니다.”
부파파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어떻게든 김혁진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독보적인 콘텐츠에 미쳐서 이성을 상실했다고도 볼 수 있죠. 쉽게 말해 미친놈들이 많습니다.”
순간, 김혁진마저 조금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말해도 되는 겁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 아닙니까? BJ라는 자들에게 전 재산을 털어서, 혹은 빚까지 져가며 후원하다가 자살하는 경우까지 존재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부파파는 정보공개에 거리낌이 없었다.
무엇을 물어보든 무조건 대답해 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또 궁금한 게 있으십니까?”
김혁진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수호자들의 파벌 혹은 세력 구도.
마왕측 수호자들과 마왕과 대립하는 수호자들과 관계된 정보들.
‘천천히 묻자.’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동안, 외롭지는 않았습니까?”
부파파의 몸이 움찔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인 듯했다.
김혁진이 부파파의 오른손을 맞잡았다.
오른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고 굉장히 거칠었다.
무명안을 사용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망나니라 불리게 된 이 3세대 수호자가 수호령에서 수호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고통을 감내해 왔을지.
사실은 소멸하고 싶지 않았던 수호령이 삶의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실하게 삶을 살아내 왔는지.
“돌아와 줘서 고맙습니다. 부파파.”
그 말과 동시에 ‘대화의 테이블’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부파파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