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21)
#재능만렙 플레이어 621화
“꺄아아악!”
페드로는 은성공방에 입장하자마자 후회했다.
상남자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가녀린 비명을 지른 것에 대한 자각도 하지 못했다.
“버, 버, 버, 버, 벌레!”
수많은 벌레가 보였다.
이름과 종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벌레들이었다.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벌레떼가 유리창에 잔뜩 붙어 있었다.
“제, 제, 제, 제, 젠장!”
문제가 있다면 유리창의 크기가 매우 크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유리로 만들어진 공간 안이었다.
“공방이라매!”
빌어먹을 늙은이!
붉은 눈썹에 붉은 수염!
그리고 수상하게 변한 은색 눈동자를 가진 그 늙은이가 이런 무지막지한 함정에 빠뜨린 것이 틀림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벌레가 수만 마리라면, 다리가 수십만 개가 넘는 것 같았다.
‘다, 다리가 너무 많아.’
다리도 많고 털도 많고 끔찍했다.
이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네모난 유리상자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사삭- 사사삭-
벌레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끔찍했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만, 진주오공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김혁진은 크게 두렵지 않았다.
“상남자 아니었습니까?”
“기, 길드장님!”
페드로는 황급히 김혁진 뒤에 숨었다.
뒤에 숨어봤자 어차피 사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지라, 뒤에도 벌레가 득실거렸다.
“으허어엉!”
결국 페드로는 주저앉았다.
극도의 공포감과 무력감이 그녀를 지배했다.
페드로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였다.
“자.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김혁진은 이 유리 공간이 굉장히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벌레가 아무리 많아도 이 유리 공간 안으로 침투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 벌레들을 사냥하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이 공간은 ‘은빛별의 검혼’이었던 부파파가 심혈을 다해 만든 곳일 것이다.
이 공간 역시 수호자의 걸작 중 하나일 확률이 높았다.
‘은성 회중시계’로 연 곳이니 ‘은성 회중시계’와 관련이 높을 것 같기도 했다.
“주, 주변요?”
페드로의 목소리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벌레가 가득한 공간에서 더 이상 그는 상남자가 아니었다.
예전 레프리 공작성에서 봤던 여자의 모습이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상시 그녀를 뒤덮고 있던 변장마법조차 풀려 버렸다.
“진정하세요.”
김혁진이 가까이 다가가 페드로의 어깨를 살짝 감싸고서 톡톡 두드려주었다.
“진정하란다고 진정이…….”
진정이 될 리가 없다.
스스로 불알친구(?)라고 주장하며 매우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벨라와 살바레토도 이 벌레 공포증을 극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진정이…… 됐다?’
그런데 신기하게 진정이 됐다.
‘어떻게 된 거지?’
* * *
김혁진은 감각안을 통해 극도의 공포에 질린 페드로의 상태를 읽어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살짝 감싸 안아주었다.
그리고서 페드로가 눈치채지 못하게 무지개 반사판을 활성화시켰다.
김혁진은 진작에 이 모든 벌레들이 ‘진짜 벌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관찰 지정 대상들에게 능력을 공유합니다.] [‘환상 면역’을 공유합니다.]그렇지만 완벽하게 공유해 줄 생각은 없었다.
‘아주 최소한이면 돼.’
여러 번 환상을 경험한 데다가 역으로 이용하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벌레를 완전히 없애버리지는 않았다.
‘어디 보자.’
감각안으로 페드로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폈다.
‘감당이 될 수 있는 선이 있을 텐데.’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
페드로의 요약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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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상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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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벌레가 무서운 것보다 상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뜻이었다.
‘오케이, 여기까지.’
부파파가 공간을 이렇게 설계한 이유가 반드시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페드로가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만 환상의 난이도를 조절해 주었다.
페드로로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왜 괜찮지?’
혹시,
‘길드장님이 안아줘서……?’
김혁진이 살짝 안아주자 괜찮아졌다.
페드로는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봤다.
태산처럼 거대한 존재가 자신을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벌레 공포증을 극복한지라 그 감회가 남달랐다.
“페드로 씨. 주위를 잘 둘러보세요. 작업대가 있고, 불의 흔적이 있네요. 곳곳에 녹슬어 버린 칼도 보이고.”
“그, 그렇네요.”
페드로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여태까지 살면서 이 정도의 안정감을 준 남자가 있었나.
‘없었어.’
벨라와 살바레토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그 누구보다 강대한 울타리가 되기 위하여 상남자 코스프레를 선택해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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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생애 첫 안정감에 황홀을 경험 중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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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진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안정감을 준 것까지는 좋은데 그게 황홀할 일인가.
아무튼 기분은 상당히 좋은 것 같았다.
불현듯, 과거 페드로의 요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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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자신의 아름다움에 만족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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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상남자를 외치지만 사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만족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김혁진이 특히 집중한 키워드는 ‘여인’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여인’이라는 단어가 빠지질 않는다.
성 정체성이 누구보다 뚜렷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괜스레 이사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조심해야겠어.’
얼른 손을 뗐다.
자신이 상남자라고 생각할 때야 상관없겠지만, 자꾸만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불길했다.
괜한 오해의 씨앗은 만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빠르게 말했다.
“누군가의 작업공방인 것 같고. 벌레들은 페드로 씨를 방해하기 위한 요소인 것 같네요.”
페드로는 그제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저를 방해하기 위한 벌레들. 저는 이 극한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알림이 들려왔다.
[은성공방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였습니다.] [은성공방의 퀘스트가 주어집니다.]페드로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나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길드장님처럼 벌레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고 보니, 벌레를 전혀 안 무서워하는 것도 조금 멋있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김혁진이 듬직하고 거대해 보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얼른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러면 이곳을 설계한 [은빛별의 검령]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건가?’
그게 낯설면서도 싫지 않았다.
그 난쟁이 할아범.
자신을 비웃으며 등장했던 그 노인이 왜 싫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아마…… 이 회중시계를 강화시키거나 업그레이드시키는 작업을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방법이 있나요?”
“제 고유능력으로 제련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문제가 있었다.
“불이 필요해요.”
“불이요?”
“네. 정순하고 깨끗한 불꽃. 이곳에는 불을 피울 수 있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그렇군요.”
김혁진이 손바닥에서 불을 피워올렸다.
“이거면 됩니까?”
“……응?”
김혁진의 손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순한 불꽃. 아테네!’
아테네를 떠올리자마자 머릿속에 누군가의 흐릿한 인영이 떠올랐다.
붉은 눈썹.
붉은 수염.
그리고 작은 키.
지끈 지끈. 두통이 밀려왔다.
황급히 그 생각을 지웠다.
“이런 것도 할 줄 아세요?”
“네. 어쩌다 보니.”
“마법사 아니잖아요.”
마법사가 아닌데 어떻게 불을 이렇게 쉽게 다루지?
그렇게 생각했던 페드로는 이내 납득했다.
‘하긴. 김혁진 길드장이니까.’
어쩜.
하나부터 열까지.
못하는 게 없나 싶다.
“그런데 그토록 정순한 불꽃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으세요?”
“가능할 것 같네요.”
김혁진은 ‘얼마나 오래?’라고 묻지 않았다.
단순히 ‘작업을 위한 불’을 유지하는 것 정도로는 크게 무리가 되지 않았으니까.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었다.
‘최소한 페드로 씨가 지쳐 쓰러지는 것보다는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페드로가 물었다.
“근데 길드장님. 저 벌레들 좀 없애주면 안 돼요?”
“불을 유지하면서 그것까지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거짓말이었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혁진은 부파파의 안배를 깨뜨릴 생각이 없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아테네를 유지시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체력과 심력이 소모될 테니까요.”
“그렇…… 죠?”
“알았어요. 저도 그럼 집중해서 작업해볼게요.”
페드로는 은성 회중시계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손을 얹었다.
“길드장님이 불꽃을 운용한 상태로 제 손 위에 손을 포개주시겠어요?”
“이렇게요?”
“네.”
페드로는 제작의 명인인 만큼, 불에 대한 이해도와 친화력이 상당했다.
김혁진이 발산하는 화기에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따뜻하네.’
오늘따라, 김혁진의 손이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은성 회중시계’의 구조부터 파악해보았다.
안에서 느껴지는 혼. 마나의 흐름. 물리적인 구조까지.
‘확실히…… 걸작이야.’
눈을 감고서 3시간이 흘렀다.
* * *
3시간이 흘렀을 때.
페드로는 눈을 떴다.
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멀리 있던 벌레들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만큼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이 공간을 감싸고 있던 유리 공간이 작아졌고, 그에 따라 벌레들이 훨씬 가까워졌다.
“기, 길드장님! 버, 벌레!”
“집중하세요. 손 탑니다.”
“으, 으악!”
집중력을 잃자 아테네의 불꽃에 화상을 입었다.
하마터면 ‘은성 회중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까지 입힐 뻔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지금 ‘은성 회중시계’는 비물리적으로 해부된 상태.
안에서부터 완전히 망가뜨려 버릴 뻔했다.
‘제, 젠장!’
집중해야 하는데.
벌레들이 너무 가까워 집중할 수 없었다.
‘그, 그래도 해야 해.’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벌레들이 더욱 가까워올 것이라는 공포감을 이겨내야 했다.
‘집중하자.’
사실 김혁진이 일부러 ‘환상 면역’의 효과를 조절했다.
부파파의 안배를 더 정확히 실행하기 위해서.
아마도 부파파는 페드로가 이러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집중하기를 바랐던 것일 테니.
부파파의 뜻대로 움직여야 최상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은빛별의 검령’이 당신의 지나친 현명함을 경계합니다.]‘응?’
이 공간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지나친 현명함을 경계하란다.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나?’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방향으로 플레이했다.
‘아니 근데, 이런 식으로 나한테 힌트를 줘도 되는 거야? 당사자가 직접?’
생각해보니 안될 것도 없었다.
1세대 수호자인 ‘석양의 거인’도 과거 숏테이블 던전에서 이렇게 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래도 조금 찝찝하긴 한데…….’
김혁진도 여러 번 들어본 말이 있다.
지나친 빠가 까를 만든다고 했다.
부파파의 지나친 편애와 간섭이 다른 다수의 수호자들을 적으로 돌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전해졌다.
[‘푸른 뇌전의 나팔수’가 해당 환상종은 뇌전에 취약하다는 정보를 비밀스레 전달합니다.]김혁진은 황당해서 세니아를 쳐다봤다.
-비밀스레 전달한 게 맞아?
-메시지의 내용이 공개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니까 말로는 ‘비밀스레’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비밀이 전혀 아니라는 뜻이었다.
1세대 수호자라 할 수 있는 ‘푸른뇌전의 나팔수’가 갑자기 힌트를 던져주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2세대 수호자까지 등판했다.
[‘유성이 떨어지는 밤’이 당신의 화려한 궁술을 기대합니다.]1세대.
2세대.
3세대.
수호자가 도합 세 명이나 나타나 직접적인 플레이를 사주했다.
플레이 중간에 말이다.
[‘숭고한 염원’이 유리 공간 밖을 자세히 주시합니다. 무명안으로.]어라.
메시지의 형식이 평소와 조금 다른데.
굳이 ‘무명안으로’라는 말을 써넣은 것 같았다.
게다가 고지식함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저울의 아낙네까지 메시지를 보냈다.
[‘저울의 아낙네’가 위험에 처한 약자를 구하라는 지상명령을 전달합니다.]‘저울의 아낙네까지?’
아무래도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김혁진이 말했다.
“그렇게 무서워요?”
공포를 이겨내고 집중하고자 했지만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던 페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그럼 보여주기로 했다.
수호자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도와줄게요.”
수호자들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 그 요구를 노골적으로 들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