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26)
#재능만렙 플레이어 626화
전화를 끊자마자, 김선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왜 그래요? 송기영 회장님은 죽었잖아요.”
처음 ‘송기영 회장’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김선화는 찝찝했다.
죽은 사람과의 통화라니.
죽은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통화를 한다니.
김선화는 굉장히 훌륭한 탱커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귀신은 무서웠다.
“죽었지.”
“그, 근데요?”
“이상하게 전화를 걸고 싶더라고.”
“송 회장님한테요?”
“응.”
김선화가 몸을 또 부르르 떨었다.
괜스레 등골이 오싹하여 주변을 훑어봤다.
차라리 귀신형 혹은 유령형 몬스터가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귀신보다는 몬스터가 나으니까.
“죽은 사람한테 전화하고 싶었다고요?”
“이상하지?”
“네. 엄청요.”
“그렇지? 엄청 이상하지?”
김혁진이 목소리를 작게 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선화는 슬금슬금 움직여 김혁진 바로 옆에 섰다.
옷깃을 살짝 붙잡았다.
“왜 그래요, 무섭게?”
세계에서 손꼽히는 탱커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김혁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선화의 머리를 두어 번 슥슥 쓰다듬었다.
“이상하잖아. 송기영 회장님이 죽었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심지어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 그렇죠?”
김혁진이 웃자 김선화는 조금 안도했다.
그제야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한테 암시를 걸었어.”
“암시를요? 오빠한테요?”
김선화는 김혁진의 정신력에 대해 알고 있다.
암시가 통할 리가 없다.
“그런 게 오빠한테 통할 리가 없잖아요.”
거기까지 말한 김선화가 허! 하고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암시에 걸린 척 한 거예요?”
“응.”
김혁진이 뒤를 힐끗 쳐다보며 귓말을 걸어 보았다.
-세니아. 있어?
-네.
-중계 채널은?
-이곳은 김혁진 플레이어의 사적인 공간이므로 중계 채널은 닫은 상태입니다.
김혁진은 묻고 싶었다.
사적인 공간인 집에 중간 관리자가 왜 상주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왜 퇴근을 안 하고 있는 것인지.
-왜 퇴근 안 하냐고 묻고 싶은 표정으로 해석됩니다만.
김혁진이 세니아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하고 알게 되었듯 세니아도 마찬가지였다.
김혁진의 표정을 단박에 읽어냈다.
세니아가 말을 이었다.
-지금 중계 채널 열라고 하실 작정 아니십니까?
-맞아.
-이럴 때를 위해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중간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김혁진은 괜스레 뜨끔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화제를 돌렸다.
-중계 채널. 열어줘.
* * *
김혁진은 세니아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소음의 지휘자’가 당신의 통찰력에 감탄합니다.]어느덧 귀신의 공포로부터 벗어난 김선화도 소파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오빠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
‘마왕’은 김혁진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염탐안을 역으로 이용하여 청일을 공격했다.
그러나 마왕 측은 그것이 진짜 김혁진의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진짜 내 짓이라고 생각했다면 세뇌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는 않았겠지.”
그때의 장면을 통해 청일이 묵고 있던 호텔의 위치도 알아냈고, 마왕이 강선일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읽었다.
세뇌와 괴이한 힘을 통해 청일을 허이촨으로 둔갑시켰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됐다.
“오빠가 범인이라고 주구장창 말했던 건…… 그냥 세뇌였구나. 오빠가 몰래 지켜보는지도 모르고. 마왕이란 녀석도 별거 아닌데요?”
선화는 기분이 좋아졌다.
“메론 먹을래요?”
냉장고에서 메론을 꺼냈다.
인벤토리에서 레어급 단도를 하나 꺼내 순식간에 메론을 예쁘게 깎았다.
메론 하나를 다듬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7초였다.
“어쨌든 오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감히 오빠한테 암시를 걸어 송기영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도록 유도했다는 거네요?”
“응.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던 것 같아.”
김선화는 김혁진의 말들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도우실 게 없습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오늘부로 청일은 사망할 테니까요. 그리고 준비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말하자면 그건 거짓 정보였다.
마침 베이징에 파견 나가 있던 조커로부터 연락이 왔다.
-길드장 말이 맞아.
변장술을 펼치고 있지만 허이촨(청일)이라 짐작되는 사람을 감시 중이었다.
급작스레 호텔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고 했다.
-갑자기 급해졌어. 표정을 보니 무슨 결사의 항전이라도 치를 것 같은 모양새던데.
-그렇겠지.
-어떻게 한 거야? 자기 정체를 감추려고 꽁꽁 싸매고 있던 놈인데.
-죽이러 가겠다고 경고했어.
-엥? 언제?
-오늘 밤.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조커가 의심 중인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분주히 움직이며 결투를 준비하고 있다라.
여지껏 잘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라.
“100%는 아니겠지만, 그가 청일이겠지.”
김선화는 메론을 우물거렸다.
이제 귀신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서웠다.
메론의 달콤함이 그녀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메론의 달달한 향과 향기로운 과즙이 목구멍을 넘어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그럼 오빠가 마지막에 한 말은 진심이에요?”
김선화는 김혁진이 호기롭게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했다.
-저는 중국을 통째로 부숴 버릴 겁니다. 저를 건드렸을 때,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었겠지요.
김혁진은 암시에 걸린 적이 없다.
전화를 받는 대상이 송기영 회장이 아니라는 사실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래.”
송기영한테 한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은 마왕에게 한 말이었다.
* * *
몇 분 전.
허이촨의 침실에 그림자가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선일의 모습을 한 남자였다.
“오늘 밤. 김혁진이 널 죽이러 찾아올 것이다.”
“김…… 혁…… 진……!”
허이촨은 김혁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즉각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그래. 김혁진은 죽어 마땅한 놈이다. 더 분노하거라.”
그리고 쪽지를 건네주었다.
“이곳으로 가라. 이곳에서 김혁진을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김혁진이 누구더냐?”
“자본에 눈이 먼 미친개입니다.”
“그래. 정확히 기억하고 있구나.”
허이촨은 황급히 짐을 꾸려 어디론가 떠났다.
강선일(강선일의 모습을 하고 있는)은 침대에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당신 말대로, 포부 자체는 호기롭기 그지없군.”
“그렇지요?”
호텔방 문이 열렸다.
금발 머리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혁진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중국을 통째로 부숴 버린다더군. 자신을 건드렸을 때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었을 거라면서.”
강선일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무맹랑한 소리다.
개인이 중국을 부수겠다니.
“거신군주가 자신의 힘에 취한 정신병자일 줄이야.”
“거참 대단한 포부로군요.”
강선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혁진을 죽이면 내게 기름을 붓는다고 했었나?”
“물론입니다. 김혁진만 죽여주면 저는 당신을 진정한 왕으로 세울 것입니다. 위대한 자여.”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놓는 것이 좋을 거야, 세례자.”
강선일의 모습이 사라졌다.
강선일이 사라진 허공을 보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김혁진이 진정으로 암시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허공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지나치게 실망인데요.”
김혁진이 암시에 걸렸을 리 없다.
김혁진이 전화로 한 말은, 송기영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왕에게 하는 말이었다.
“한쪽으로 밸런스가 붕괴된 것 같은데요. 이대로면 최후의 시나리오 [심판]이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되겠어요.”
* * *
김혁진은 조커와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가동되지 않는 시멘트 공장 같은데.
-그래.
굉장히 넓은 부지에 지어진 폐공장인 듯했다.
-음습하고 불길한 기분이 들어.
-아마도 사기(死氣)일 거야.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창릉 신도시 부지에서도 수많은 사기가 느껴졌었다.
조커도 그와 비슷한 기운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청일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겠지.
-괜찮겠어? 놈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릴 텐데.
-괜찮아. 너도 추적이 가능한 정도니까.
조커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응?’
이제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나 같은 하수도 추적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니까 걱정 따윈 없다?
조커는 순간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리 틀린 말은 아니어서 더 이상 따지지는 못했다.
1세대 중간 관리자인 ‘없는’이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상대가 김혁진이잖아.”
“…….”
요즘 중간 관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김미잡’이라는 신조어였다.
김혁진 미만은 잡이라는 뜻으로, 김혁진과 일반적인 플레이어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실력 차가 존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김미잡이래. 다들 그렇게 말해.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마.”
“그거참 재미있는 말이군.”
‘없는’은 깜짝 놀랐다.
“누, 누구냐!”
조커가 단도를 휘둘렀다.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사내는 조커의 단도를 두 손가락으로 잡아냈다.
‘뭐, 뭐야 이 괴물은.’
단 두 손가락에 제압된 단도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쓰고 용을 써봤지만, 단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챙!
단도가 두 동강 나버렸다.
“한 번은 용서한다. 그놈이 아끼는 것 같으니.”
조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창 ‘마왕’으로 떠들썩한 강선일이었다.
‘마왕?’
침을 꿀꺽 삼켰다.
이자가 김혁진이 상대하려는 그 마왕인가?
‘말도 안 돼.’
이 자는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놈과는 싸우면 안 돼.’
강선일이 히죽 웃고 말했다.
“눈치가 제법 빠른 놈이군.”
“…….”
조커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이 강선일은 한 건물에 등을 기대고 섰다.
“지켜보지. 과연 [심판]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인가.”
* * *
김혁진은 용돌이의 워프를 통해 조커가 가르쳐준 폐공장으로 이동했다.
섬김의 명인으로 전직한 페드로와 함께였다.
“우우욱.”
페드로가 우욱! 헛구역질을 했다.
“나약하구나, 인간. 용돌이는 강하지. 멀미 따윈 하지 않아.”
“시끄러워요.”
페드로는 이제 더 이상 남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얀색 민소매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고 있었는데, 운동 하다가 불려 나왔다고 했다.
“후후. 나약한 인간 같으니라고.”
용돌이는 자신이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굉장히 심취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내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많은 양의 사기(死氣)가 느껴진다.”
아마도 지하에 수많은 시신들이 묻혀 있는 것 같았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때.
콰과광!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폭발?’
비명도 들려왔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김혁진은 황급히 기감을 퍼뜨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바닥에는 시체들.’
특별한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시체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더 많은…… 살아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이곳은 생체감옥인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갇혀 있었다.
‘청일이 이쪽으로 향했다는 건……. 이곳에서 반드시 나를 죽이겠다는 뜻이겠지?’
이곳은 중국의 비밀시설일 확률이 높다.
김혁진이 말했다.
“애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건, 만에 하나 내가 청일을 죽였을 때 내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함인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김혁진도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어차피 수호자들 들으라고 한 말이기도 했다.
‘놈들의 목적은 명확해.’
우선적인 목표는 이곳에서 김혁진 자신을 죽이는 것.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면, 김혁진이 이곳에서 대량학살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것.
“잔머리를 굴리네.”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두 가지 결과에 대한 대비를 모두 해놓은 셈이니까.
그때, 김혁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지?’
무엇인가에 심장이 반응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 ……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도 아니었고 시스템의 소리도 아니었다.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