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32)
#재능만렙 플레이어 632화
“어, 얼마나요?”
김혁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50억 정도?”
“……예?”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제가 겸사겸사 100억 코인 정도 모았거든요.”
코인 가치가 폭락해서 코인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백두산 코인도 아니고 일반 코인 100억은 김혁진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미셸이 50억 코인밖에 못 모았다라.”
미셸은 뜨끔했다.
김혁진의 말이 맞았다.
사실 미셸은 김혁진을 따라 하고자 길드 차원에서 거의 기업 단위로 움직였다.
미셸사단이 확보하고 있는 코인은 대략 100억 코인이 넘었다.
“미셸이라면 50억 코인을 빌려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휴우.”
미셸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귀신을 속이지. 당신은 못 속이겠네요.”
“절 속인 게 있습니까?”
“됐어요. 다 알면서 그러지 마세요.”
미셸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미 김혁진이 코인을 빌려달라고 한 시점에서 미셸에게는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토마스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빌리는 게 아니라 강탈 아니겠는가.
미셸이 물었다.
“만약 제가 안 빌려준다면요?”
“그런다면 어쩔 수 없었겠죠. 다른 사람을 찾는 수밖에요.”
“강탈한다는 계획은 없었나요?”
김혁진의 무력과 힘이라면 얼마든지 강탈이 가능했다.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강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혁진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게 강탈인가?’
아마 미셸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혁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미셸에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짓밟는 행위.
김혁진이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저는 피아식별을 확실히 하는 편이거든요.”
미셸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김혁진이 말하는 ‘피아’가 누군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김혁진 씨의 적은 [마왕]인가요, [중국]인가요?”
“둘 다로 해두죠.”
“그럼 그렇다 치고. 제가 50억 코인을 빌려드리면 갚기는 할 건가요?”
“코인 말고 다른 걸로 갚아도 됩니까?”
“흠. 글쎄요.”
미셸은 일부러 턱을 매만지며 시간을 끌었다.
김혁진의 진짜 속셈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가 이내 포기했다.
만약 눈앞의 남자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머릿속으로 치열한 수 싸움을 하며 대화를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김혁진.’
이 사람을 상대로는 머리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대화하고 싶었다.
‘군주 대 군주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사실 김혁진과 군주 대 군주로 얘기하기는 조금 벅찼다.
미셸 스스로 그것을 느꼈다.
“군주 대 군주로서 김혁진 씨를 대하면요. 저는 김혁진 씨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져요.”
“……그렇습니까?”
“네. 너무너무 높아서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고 거대한 벽이요. 그래서 군주 대 군주로 대화하고 싶지는 않아요. 군주 대 군주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토마스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미셸의 부관이자 미셸사단의 2인자로서, 미셸의 말이 조금 기분 나빴다.
‘아무리 상대가 김혁진이라지만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거 아냐?’
김혁진은 물론 대단한 군주이고 플레이어지만 미셸도 분명 훌륭한 플레이어였다.
오랜 친구인 토마스가 본 미셸은 그랬다.
토마스는 미셸을 인간적으로 좋아했으며 플레이어로서는 존경했다.
자신이 존경하는 플레이어인 미셸이 저토록 저자세를 보이니, 오히려 토마스의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내 친구인 토마스는 제가 이런 식으로 굴면 기분이 좀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토마스는 찔끔 놀랐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군주 대 군주로 얘기하면 손해를 많이 볼 거 같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하면 손해만 볼 거 같지는 않아요. 제가 본 김혁진은 그래요.”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그러면 일단 제 얘기를 좀 들어볼래요?”
“좋아요. 50억 코인을 어떻게 갚으실 건지, 코인이 아니라면 뭘로 갚으실 건지. 한 번 들어보죠.”
김혁진은 미셸과 대화를 나누며 몇 가지 정보를 전해주었다.
이곳에서 특별한 상점인 D스토어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D스토어를 열기 위해서는 이 필드에 존재하는 코인박스를 사냥해야 합니다.”
“코인박스는 이미 많이 사냥했는데요?”
“일정 시점부터 그 코인박스에서 D스토어 열쇠 아이템이 드랍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D스토어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다.
김혁진은 이미 D스토어를 열어보았으니까.
“저는 [개척자의 심판목]을 살 겁니다.”
김혁진이 열쇠 아이템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를 통해 미셸도 D스토어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아이템들이 존재했다.
약 90일에 걸쳐 어마어마하게 드랍되었던 코인이 바로 이 상점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개척자의 심판목이라면…….”
“가장 비싼 아이템 순서대로 정렬하면 가장 위에 있는 아이템이 있을 겁니다.”
“아, 찾았어요.”
미셸이 숫자를 세보았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 억. 오십…… 억?”
“네. 그거 하나가 50억 코인입니다.”
미셸의 능력으로는 ‘개척자의 심판목’의 용도가 무엇인지도 읽어내지 못했다.
“도대체 이게 뭐죠? 50레벨쯤 높여주는 아티팩트인가요?”
“제 소멸 권능을 대폭 강화시켜주는 능력.”
김혁진은 소멸에 대해서도 모두 말해주었다.
미셸은 입을 쩍 벌렸다.
뒤에 서 있던 토마스도 마찬가지였다.
“PVP존이 활성화되기만 하면…… 플레이어로서의 목숨이 당신 손에 달려 있게 되겠네요.”
플레이어로서의 생사여탈권을 김혁진이 쥐게 된다.
김혁진이 원하면 플레이어 자격을 박탈시킬 수 있고, 심지어는 재능판을 아예 닫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저는 이 능력을 활용하여 중국 서버를 안에서부터 폭파시킬 생각입니다.”
“…….”
“…….”
미셸과 토마스는 동시에 침묵했다.
“저는 이 능력을 [섬김] 클래스의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거든요.”
미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 서버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을 때, 저는 김혁진 길드장이 미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듣고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세계는 바야흐로 ‘신문명’에 접어들었다.
신문명의 세계에서 도태되면 나라 자체가 도태된다.
플레이어의 질과 양이 그 나라의 국격이 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김혁진 플레이어의 능력이라면 도대체 하루에 몇 명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섬김 클래스도 함께라니.
섬김의 해상왕 슈르트가 바다를 누비며 해상권을 장악할 것이고, 섬김의 탐험가 강솜이가 신문물 획득을 획기적으로 방해할 것이다.
섬김의 뇌전창술가는 수많은 중국 플레이어들을 학살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으며 섬김의 명인조차 대학살극에 동참하여 수많은 아티팩트들을 양산할 것이 분명했다.
뿐이랴.
섬김의 무투가 마상현은 이제 권왕으로 불린다. 맨주먹으로 중국 플레이어들을 말살하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글쎄요. 한 번 해봐야 알겠죠.”
그리고 그 날.
무려 2,000명의 플레이어들이 플레이어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전면전의 시작이었다.
* * *
피에트로는 고급 정보를 입수했다.
김혁진이 비밀리에 미셸과 만났고, 그 날 중국 플레이어 2천 명의 플레이어 자격이 박탈되었다.
그들은 왜 플레이어 자격이 박탈되었는지조차 몰랐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플레이어 자격을 박탈한 자가 누구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 차가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갑자기 PVP가 활성화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플레이어로서의 힘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귀신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일각에서는 일시적인 버그일 수 있다고 좀 더 침착하자는 목소리가 있었고, 몬스터에 의한 재앙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또 일각에서는 김혁진의 공격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아직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었다.
피에트로가 말했다.
“이건 김혁진 길드장의 소멸 권능인데.”
그런데 그게 이렇게 무한정 쓸 수 있는 권능이었던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궁금함을 참지 못한 피에트로는 미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 봤다.
-김혁진 길드장에게 물어보면 되지, 왜 저한테 전화했어요?
-그건 그렇지만…….
왠지 이 타이밍에 김혁진에게 직접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직접 연락해 보세요. 그럼 이만.
피에트로는 잠시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사실 김혁진에게 연락하면 안 될 논리적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왜지……? 이 불길한 기분은?’
그러나 정보 길드의 수장으로서 피에트로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결국 피에트로는 고급 정보들을 꽤 획득할 수 있었다.
D스토어의 존재. 그간 가치가 폭락했던 코인의 유용한 사용처. 김혁진의 ‘강화된 소멸 권능’과 더불어 대학살극의 시작 등.
-감사합니다.
-이 정도 정보면 얼마까지 쳐주나요?
-……예?
아까부터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불길함이 실체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정보는 곧 돈이고 권력이다.
정보 길드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저는 이 비밀들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당분간은.
그래서 중국 플레이어들을 죽일 때 몰래 죽였다.
지금 당장은 도시 괴담처럼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저만의 비밀을 알아버리셨네요, 피에트로.
-그, 그건……!
-피에트로 길드장님이 정보를 먼저 요구하시길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비하셨다고 생각했는데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코인이요.
-그게…… 얼마나?
-얼마나 모았습니까? 검은 나비의 정보력이라면 제가 코인을 모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테고, 검은 나비도 많은 코인을 모았을 텐데요.
-그게…….
피에트로도 미셸과 같았다.
많이 낮춰서 말했다.
-100억 코인 정도 모았습니다.
-그렇다고 하죠.
-그, 그게, 감사합니다.
피에트로도 미셸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김혁진 앞에서 뭔가 발가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0억 코인을 요구합니다.
-배, 배, 배, 백억요?
피에트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안 됩니까?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3분 후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피에트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심호흡을 하며 생각에 빠졌다.
주어진 시간은 3분.
3분 동안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전화 해줘야 했다.
‘김혁진 길드장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피에트로가 판단한 김혁진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피에트로의 관점에서, 김혁진은 상식적인 사람이었고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힘이 있다고 해서 그 힘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은 아니야.’
정보 길드의 수장답게 그는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
김혁진도 지금 급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피에트로는 그렇게 판단했다.
3분 후.
김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많은 코인은 어디다 쓰시렵니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김혁진입니다.”
피에트로는 눈을 꿈뻑꿈뻑 떴다.
아까까지 한국 서버에 있다고 했는데, 갑자기 이탈리아 서버란다.
아무리 워프포탈을 이용해도 3분 만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3분 만에 여기까지 왔다.
“일단 들어오시죠.”
피에트로는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했다.
“제가 본 사람 김혁진은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갑질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죠.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김혁진 씨에게 코인이 무척이나 절실한 상황이라는 걸.”
김혁진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급합니다.”
“그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러죠.”
김혁진은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셸에게는 미셸에게 맞는 대화를, 그리고 피에트로에게는 피에트로에게 맞는.
대화가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