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51)
#재능만렙 플레이어 651화
“큰일입니다!”
김혁진이 말을 가로챘다.
“이사벨.”
“응?”
“은영검가의 가주와 친분이 깊었어?”
“오라…… 아니, 전대 검제와 친분이 깊었어.”
대외적으로 전대 검제 이센은 검림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검제였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오라버니라고 일컬을 수가 없었다.
김혁진은 순간적으로 어두워지는 이사벨의 표정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면 괜찮겠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었다.
“무슨 말이야?”
“은영검가의 가주는 살해되었을 거야. 아니면 멸문했겠지.”
“뭐라고?”
김혁진은 안도하는 한편 또 슬프기도 했다.
‘이게 안도해도 될 일인가.’
은영검가는 멸문했을 것이다.
분명한 비사(悲事)였다.
은영검가의 가주와 이사벨의 친분이 깊었다면 이사벨은 크게 슬퍼했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일이지만…….’
그러나 김혁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솔직히 받아 들였다.
은영검가의 멸문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사벨이 상처받지 않는 것이었다.
보고를 올리려던 남자의 이름은 렌톨.
그는 본래 검제의 부관으로 유력했던 신성이었으나 베른의 힘에 밀려 최측근에서는 밀려난 상태의 검술가였다.
‘김혁진, 저자는…….’
이사벨이 그토록 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이라고 들었는데.’
지구의 인간은 굉장히 약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느껴지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전력으로 싸우면 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상해 오던 인간과는 격이 달랐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한 ‘무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무력과는 별개로, 존재의 격이 이렇게 높을 수가 있나?’
기이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거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렌톨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아차. 보고를 올려야지.’
렌톨이 빠르게 말했다.
“김혁진…….”
호칭을 무어라 해야할까.
“……님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이야 이사벨을 필두로 하여 ‘검성’을 쌓아 인간처럼 힘을 응집시키고 있다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최근의 일이다.
말하자면 검림의 수도인 ‘검성’은 이러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지만 그 외 변방의 다른 곳들은 이전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현재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아직은 범인이 누군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어떤 단서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한 명의 흔적인 것 같다고 하였다.
“범인은 베른이겠지.”
김혁진은 상황을 보지 않았고 보고를 듣지도 않았지만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상황을 설명했다.
“검림은 하나의 거대한 숲이고, 그들은 딱히 세력을 만들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잖아.”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성이나 요새 등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은영검가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급습에 취약해.”
“김혁진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만, 은영검가는 베른 한 명에게 당할 만큼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베른은…….”
렌톨은 그제야 깨달았다.
‘베른이 자리에 없다.’
이사벨의 옆자리를 늘 지키고 있던 베른이 사라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궁금했으나 그것까지 묻지는 못했다.
지금은 은영검가의 일이 급했다.
“압니다. 베른은 이사벨의 충실한 부관이었죠. 지금은 배신하여 사라졌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베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베른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절대로 이사벨 님을 배신할 놈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됐네요. 베른은 이사벨을 사랑했거든요.”
“…….”
잠시 입을 다문 렌톨이 다시 물었다.
“베른이 배신했다치더라도, 베른 혼자 은영검가를 멸문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검림의 생태계를 고려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베른 혼자가 아닐 겁니다. 베른의 뒤에 누군가가 있고, 그를 통해 베른은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강력한 힘이요?”
“사기(死氣)를 베이스로하는 새로운 힘입니다. 검림에서는 생소한 힘이겠네요.”
“그런 추잡하고 더러운 기운이 검림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뇨.”
김혁진이 이사벨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검림을 문명화하면서 이사벨이 했던 일들이 뭐야?”
검림인들이 더욱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하여 검림을 개척해야 했다.
검림인들 입장에서는 개척이고 토벌이었겠지만 검림을 살아가던 마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이사벨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죽인 것이…… 아브락카였어.’
아브락카의 유언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의 존재 의의는 균형을 지키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또 다른 나의 형제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이 차원의 균형을 지켜왔다. 조물주가 우리에게 최후의 권능을 선물한 것도 그 이유였다. 검림 차원의 균형은 깨지기 시작하였으며, 검림의 또 다른 지배자인 그대는 오늘을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나의 형제들도 오랜 잠에서 깨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브락카는 순혈의 검제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한 ‘대마물’이었다.
베른은 그 대마물이 죽은 직후에 배신하였다.
“남편 말이 맞다면, 베른은 대마물 아브락카의 사기(死氣)를 흡수한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아브락카가 균형이 깨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일지도 모른다.
베른이라는 보다 강력한 존재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니까.
김혁진이 말했다.
“조사는 따로 해봐야겠지만 내 말이 맞을 거야.”
언젠가는 베른이 거대한 적이 되어 나타날 것임을 직감했다.
마왕이 그러했듯 말이다.
‘피곤하게 됐네.’
커다란 산 하나를 넘었더니 이번에는 거대한 강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오들오들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데…….’
김혁진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중국 서버를 폭파시키고 마왕을 굴복시키면서 어딘지 모르게 휑한 느낌이 들었었다.
새로운 베른의 등장으로 인해 그 휑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새삼 다시 느끼는 거지만…… 진짜 플레이어가 다 됐구나.’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노력하는 플레이어는 즐기는 플레이어를 이길 수 없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유명한 말이다.
김혁진은 베른의 등장이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
그렇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속마음과는 별개로 그것을 내색할 때는 아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혁진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자신의 책임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니까.
“검의 복수에,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 * *
조사관으로 파견된 렌톨은 충격을 받았다.
‘김혁진 님의 말이 다 맞아.’
원래 검림인들은 딱히 집이나 성벽을 세우지 않는다.
그들의 눈으로만 구별되는 ‘영역’이 있을 뿐이었다.
은영검가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 그는 베른을 만날 수 있었다.
“맞아. 다 내가 한 짓이지. 그놈이 은영검가의 검술을 익히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네 놈. 천벌이 두렵지도 않느냐!”
렌톨은 검을 뽑아 들고 베른에게 달려들었으나 베른은 여유롭게 렌톨의 검을 모두 피해냈다.
“옛정을 생각해서 살려줄게. 아무튼 돌아가서 전해. 내가 사랑했던 이사벨 님은 이미 죽었고, 내가 언젠가 이사벨 님을 구원하러 가겠다고.”
“헛소리!”
렌톨은 검을 휘두르면서 직감했다.
‘내가 알던 베른이 아니야.’
베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거리고 눈에는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피어올랐는데 살갗이 따끔따끔할 지경이었다.
지금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지만 렌톨은 알고 있었다.
‘만약 베른이 제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즉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톨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긍지 높은 검림인이었고 베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꼭 전해. 이사벨 님은, 아니, 이사벨은 나의 신부가 될 거라고.”
붉은 안광이 폭사되었다.
“우상으로서의 이사벨 님은 죽고, 내 아내로서의 이사벨로 다시 태어나게 될 거야.”
베른의 몸이 사라져 있었다.
* * *
며칠 뒤.
김혁진이 먼저 입을 뗐다.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
“…….”
이사벨은 김혁진을 꼭 끌어안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어리광을 부리듯 김혁진의 몸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어차피 보내줄 생각이었어.”
검제에게는 검제의 일이 있다.
김혁진에게는 김혁진의 일이 있다.
베른이라는 강대한 적이 나타났으니 둘은 서로의 방식으로 할 일을 하고, 모두 강해져야 한다.
김혁진이 조심스레 이사벨을 밀어냈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 너한테 방해가 돼.”
베른이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베른보다 이사벨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분하게도, 나는 베른보다 약해. 그러니 내가 네 옆에 있으면 너는 커다란 약점을 쥐고 싸우는 것과 똑같아.”
“알아. 다 알아.”
이사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말이었다.
김혁진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렇지만 보내기 싫은 것도 사실이었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우리 둘 중 한 명이 단호해져야 한다면 내가 단호할 거야. 단호한 쪽이 마음이 더 아프거든.”
김혁진은 이사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혈의 검제께서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검림인들 놀라서 나자빠진다.”
“지금은 순혈의 검제 안 하고 싶어.”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혈의 검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었다.
연인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
그렇지만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래도 마음먹으면 언제든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어.”
“그건 안 돼.”
이번에는 이사벨이 단호해졌다.
“차원을 넘어오는 그 시점이 가장 약할 때야. 표적이 되기가 너무 쉬워. 그러니까 남편은 오면 안 돼. 알았어? 나랑 약속해.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 절대로 검림으로 돌아오지 마.”
김혁진은 이사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거봐. 마음 아프지?”
손가락으로 이사벨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응. 가지 말라고 하고 싶고, 가더라도 1시간 만에 다시 돌아오라고 하고 싶은데, 오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런 거야. 단호한 게 더 힘들어.”
은신 상태의 세니아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애틋한 것은 알겠습니다만.’
서로 네가 단호하네, 내가 단호하네 하고 있지만, 저 둘은 벌써 4시간째 저러고 있다.
“남편 말대로, 나는 다른 대마물들을 찾아 나설 거야.”
“그래. 베른은 대마물들을 노릴 거야. 그렇지만 먼저 공격하지는 마.”
대마물은 순혈의 검제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베른은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베른은 어떻게든 대마물을 움직여 검성을 공격하게 할 거야. 그래야 검성과 대마물 모두에게 상처입힐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오면 차라리 검성을 포기해. 제1순위는 베른이어야 해. 대마물보다 베른이 더 위험해. 알겠지?”
“알았어.”
이사벨은 김혁진의 눈에 담긴 염려와 사랑을 읽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포근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남편 엄청 사랑하는 거 알지?”
세니아는 결국 등을 돌렸다.
더 이상은 보기 어려웠다.
가볍게 쪽, 소리가 났다.
결국 김혁진과 이사벨은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다시 헤어졌다.
지구로 복귀한 김혁진에게 곧바로 연락을 한 사람은 송기열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30통가량 와있었다.
마참 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무슨 일이시죠?
-자신을 [마그나 대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마그나 대선지자요?
-그가 김혁진 씨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헛소리인 줄 알고 쫓아내려 했으나…….
말을 하던 송기열은 스스로도 황당한 듯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스스로 던전을 제작하여 마그나 대 선지자임을 증명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진짜였습니다.
-던전을 제작했다고요?
-예.
김혁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거기가 시그니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