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52)
#재능만렙 플레이어 652화
김혁진이 알고 있던 미래는 바뀌었다.
바뀐 수준이 아니라 천지개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 전 세계를 휩쓸고 다녔던 마왕군과 마왕은 사라졌고 그에 따라 8영웅도 등장하지 않았다.
‘8영웅 중 한 명. 맵 제작자 차지혜.’
김혁진은 ‘던전을 제작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차지혜를 떠올렸다.
한국에 던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8영웅 중 한 명이었던 차지혜밖에 없었다.
김혁진은 차지혜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싱가폴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게이트를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차지혜였으니까.
-맞습니다. 아는 것이 있으십니까?
-차지혜 씨겠네요.
송기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지금 거신군주와 얘기하는 거야, 아니면 검은 나비와 얘기하는 거야?’
조금 궁금해졌다.
검은 나비의 길드장 일명 ‘검은 나비’ 피에트로는 과연 차지혜와 던전 제작에 대해 알고 있을까?
전 세계에서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한다는 피에트로라지만 김혁진에게는 밀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자신을 마그나 대 선지자라고 밝히며 김혁진 씨와 꼭 만나야겠다고 합니다. 만남을 주선해주지 않으면 시그니엘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겠다고 협박까지 곁들였습니다.
김혁진은 일단 전화를 끊었다.
‘이상하네.’
강솜이를 집으로 불렀다.
“솜이 씨.”
“네?”
“맵 제작자 연락처는 여전히 모르죠?”
강솜이는 맵 제작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잭슨이 유일하다고 말했었다.
“네. 이름이 차지혜라는 사실까지는 어찌어찌 알아냈는데…….”
“그 차지혜 씨가 저를 좀 보자네요.”
“길드장님을요?”
“네. 송기열 길드장님을 통해서 연락을 줬어요. 시그니엘 브레이크를 일으키겠다는 협박까지 하면서.”
“이상하네요.”
시그니엘 던전은 최근 한국 서버에서 가장 핫한 던전이었다.
시그니엘 던전은 123층까지 한층 한층 클리어해가는 방식의 던전이었다.
층이 높아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형식이었다.
규모가 워낙에 크고 드랍되는 아이템 등이 좋아서 각광받는 사냥터가 되었지만, 그보다 더욱 유명한 것은 던전 내에 ‘부활 권능’이 적용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맵 제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굉장히 애정한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맵 제작자가 자신의 작품인 시그니엘 던전을 스스로 파괴한다?
“아주 다급한 일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 정도로 급했다면 거신길드에 직접 연락을 했을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일들은 태극방패에 떠넘기고 있기는 하지만 거신길드도 공식적인 소통창구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연락은 용돌이가 필터링을 통해 일차적으로 걸러내고, 이후 훌륭한 비서를 자처하는 라푼델이 다른 대외적 업무들을 감당하는 중이다.
“그렇죠? 이상하죠?”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있고, 심지어 거신군주가 이곳, 플레이어 타운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송기열 길드장님을 통해서만 연락을 할까요?”
“어쩌면 차지혜 씨의 연락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진짜 차지혜의 연락이었다면 시그니엘 던전을 파괴하겠다는 협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차지혜는 항거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고 행동하는 중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차지혜의 본심과는 관계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회귀 전, 차지혜는 결계술사들과 함께 시그니엘을 봉쇄하는 영웅으로 성장해.’
그때 차지혜는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
그 차지혜가 시그니엘 브레이크를 일으키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분명히 이상했다.
‘만나봐야겠어.’
* * *
거신길드의 사무실.
그곳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차지혜 씨?”
검은색 긴 생머리의 여자였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인상이 부드럽지는 않았다.
눈매가 날카로워 제법 사나운 인상이었으나 표정은 부드러웠다.
그녀가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 유명한 거신군주를 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차지혜 씨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김혁진이 기억하고 있는 차지혜와 모습은 똑같았다.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김혁진은 차지혜를 유심히 관찰했다.
김혁진이 마음먹고 관찰하면 머리카락 한 올과 눈썹 한 가닥이 흔들리는 것까지도 관찰할 수 있다.
“스스로를 마그나 대선지자라고 주장하셨다지요.”
“네. 저는 마그나 대선지자로 활동 중입니다. 마왕의 간부들을 함정으로 유인하여 여러 명 죽였어요.”
“어째서죠?”
“마그나 게이트를 열어야 하니까요. 마왕은 마그나 게이트를 막아내는 존재였거든요.”
“마그나 선지자는 마그나 게이트를 열려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됩니까?”
“네. 마그나 선지자들은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회귀 전에는 마그나 이교도들이 존재했었다.
회귀 전과 회귀 후, 무엇이 ‘이교도’와 ‘선지자’를 갈랐을까?
“저희들은 [왕이 될 자]를 보필하는 사람들이지요.”
회귀 전에 마그나 이교도들 역시 ‘왕이 될 자’를 보필하는 사람들이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왕’은 김혁진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고 -아마도 마왕이리라-, 지금의 ‘왕’은 김혁진이었다.
따라서 그때의 저들은 마그나 이교도였고, 지금의 저들은 마그나 선지자가 된 것 같았다.
“왜 저를 보자고 했습니까?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곁들여가면서.”
“시그니엘 던전을 클리어해 주십시오.”
“클리어해 달라고요?”
의외의 부탁이었다.
“시그니엘 던전이 왕의 자격을 완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이야말로 진정한 마그나 게이트를 열 수 있습니다.”
김혁진은 잠자코 차지혜를 바라보았다.
차지혜에게서 이상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은 이상한데, 사람은 이상하지 않다라.’
지금 차지혜가 하는 모든 말은 진실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왜 저한테 직접 연락하지 않고 송기열 길드장을 통해 연락했습니까?”
“그래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김혁진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저를 제대로 만나주실 것 같아서요.”
“……그럼 시그니엘 던전을 브레이크시키겠다는 것도?”
“시그니엘 던전은 제 의사와 상관없이 브레이크 될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클리어하지 못하면요.”
회귀 전 차지혜는 시그니엘 던전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차지혜에게 시그니엘 던전을 봉쇄하는 능력은 없는 것 같았다.
“아직은 여유가 있어요.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시그니엘로 몰리면서 한 층, 한 층 클리어해가고 있으니까요.”
차지혜의 말을 들어보니 한 층, 한 층을 공략할 때마다 브레이크가 멀어진단다.
“어제는 미셸사단이 80층을 공략하는데 성공했죠.”
다행히 시간을 벌기는 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클리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거예요.”
그나마 부활 권능이 적용된 곳이라 이 정도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100층까지는 어찌어찌 클리어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로는 불가능해요.”
차지혜의 눈이 김혁진을 향했다.
“오로지 거신군주만이 그곳을 클리어할 수 있어요. 그곳을 클리어하여 진정한 왕의 자격을 갖춰 주세요.”
차지혜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간절한 염원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차지혜 씨를 믿고 시그니엘 던전에 들어가라는 얘기로 들리네요.”
“네. 저는 그곳을 제작한 맵 제작자이고, 그곳을 클리어하는 데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저를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뜻이고요.”
김혁진은 차지혜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차지혜는 잭슨과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를 시그니엘로 부른 건, 차지혜 씨의 생각입니까, 잭슨의 생각입니까?”
“…….”
차지혜의 몸이 움찔했다.
순간 차지혜는 송곳으로 온몸이 찔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김혁진 앞에 서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거라더니.’
잭슨의 말이 맞았다.
잭슨은 김혁진 앞에 서면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롭고 기이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다.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눈동자 너머의 속마음까지 모두 읽히는 느낌이야.’
차지혜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의 생각이면서 잭슨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잭슨은 이미 여러차례 저를 위험한 함정에 빠뜨렸던 인물입니다.”
“그 위험을 모두 헤쳐 나오셨고, 그때마다 강해지셨지요.”
차지혜는 김혁진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사실 저 눈을 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심력이 소모되었다.
“저는 잭슨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는 음흉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의외의 평가네요.”
“그렇지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아요. 돌이켜보면 잭슨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거든요. 한국 서버에 생성해낸 이 ‘시그니엘’이 위대한 왕을 완성시킬 거예요.”
“위대한 왕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진정한 마그나 게이트를 열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마그나 게이트를 열지 않으면 이 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나요?”
차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멸망합니다.”
“왜요?”
“마그나 게이트는 지구 차원 내에 축적된 수많은 기운을 빼내 주는 분화구의 역할을 하거든요. 지구 차원에는 지구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어마어마한 기운이 잠재되어있어요. 그리고 그 기운은…….”
차지혜가 김혁진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아까보다는 더 용기가 났다.
김혁진과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녀는 진실을 전하고 있었고, 덕분에 더 당당할 수 있었다.
“해당 차원에서 이룩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기운을 쌓게 만든 사람 때문에 쌓였죠. 그게 누구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차지혜가 말한 ‘기운’이라는 것은 모든 기운의 총합이라고 하였다.
흔히 말하는 생기, 사기는 물론이거니와 각 플레이어들이 쌓아가는 성흔과 존재값 등도 모두 ‘기운’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지구 차원은 한계에 이르렀어요.”
김혁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고래일족의 존재값을 품은 천공이 그랬던 건가.’
천공은 다른 생물체들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흉폭한 기운을 가진 곳이다.
그 정도 기운을 품으려면 그 정도 세상은 되어야 한다는 듯했다.
‘검림도 지구 차원과는 환경이 많이 달랐지.’
검림 차원은 검림인들과 7종의 대마물을 품을 수 있을 정도의 차원 한계값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모르면 몰랐으되 알게 되니 조금씩 느껴졌다.
‘신 초월종 초롱이는 또 다른 차원으로 향했고.’
차지혜의 말이 이어졌다.
“저를 믿어주세요.”
“…….”
“저는 김혁진 길드장님의 성향에 대해 잘 알아요.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분이시지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선택해 주시면 좋겠어요.”
김혁진의 눈에 노란빛이 보이지 않았다.
차지혜의 제안이 달콤한 제안이라면, 노란색으로 번쩍여야 할 텐데.
“저를 믿어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간언은 이게 다예요. 위대하고 강력한 통치자가 되어 부디 이 세상을 구원해 주세요.”
노란빛이 보이지 않는 제안이라면 단칼에 거절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이상하게 거절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노란빛도 완벽하지는 않아.’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할 수는 없다.
노란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차지혜의 말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제가 마그나 게이트를 열지 않으면 지구 차원이 붕괴한다고 했죠?”
“네. 분명히 그렇게 될 거예요.”
“시간은 얼마나 남았죠?”
“그 시간은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 속히 올 거예요.”
차지혜와 헤어진 김혁진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생각에 잠겼다.
‘차지혜를 믿고 시그니엘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잭슨과의 연결고리가 영 찝찝했다.
‘까딱 잘못하면 함정에 빠져.’
잭슨이 직접 개입하여 설계한 함정은 위험하다.
실제로 나찰사급 환상 속에서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데 정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