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69)
#재능만렙 플레이어 669화
“강선일이 말했던, 당신께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흐릿한 인영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백색 사냥꾼’은 턱을 매만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만. 나한테도 마음의 준비가 조금 필요해서.”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투사들의 전당]이후로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랑 대화가 가능하네? 차원군주의 위엄인가?”
김혁진은 감각안을 통해 백색 사냥꾼의 심리를 조금 읽어냈다.
‘강한 호승심?’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호승심이라니.
백색 사냥꾼의 성향상 이해 안 될 것은 아니었다.
“아쉽군. 상황이 맞아떨어졌다면 너와 시원하게 한 번 붙어봤을 텐데.”
“그렇습니까?”
“천마산의 진주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저는 한낱 플레이어인데요.”
“살면서 들어본 말 중 제일 재미없는 농담이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백색 사냥꾼의 모습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덩치가 매우 컸다.
마상현보다 더 큰 것 같았다.
머리카락과 눈썹은 온통 새하얀색이었는데, 굉장한 근육질이었다.
“지금의 시스템이 정착된 이래로 여기까지 온 유일한 플레이어가 한낱 플레이어라니.”
백색 사냥꾼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겸손도 적당해야 겸손이지, 너 그 정도면 기만이다?”
“……그렇습니까?”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백색 사냥꾼은 의외로 이 침묵을 어색해했다.
약간은 낯을 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좋아. 나는 이제 마음의 준비가 다 됐다.”
잘은 모르겠지만, 백색 사냥꾼에게서 일종의 비장함이 느껴졌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하려는 듯했다.
“그때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당신께서 허가해 주셔서 궁극의 투사를 얻을 수 있었죠.”
투사들의 전당은 ‘궁극의 투사’를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했었다.
‘궁극의 투사’를 제안한 것은 ‘소음의 지휘자였고, 해당 특성을 얻기 위해 ’백색 사냥꾼’의 허가가 필요했었다.
“그랬었지. 고맙지?”
“……네.”
또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침묵의 어색함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백색 사냥꾼은 또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때, 강선일이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나지?”
“납니다.”
강선일이 허탈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제정신이 아니군. [궁극의 투사]를 얻게 되면 네놈이 추구하는 — —는 획득할 수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백색 사냥꾼은 또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 이거 참. 언젠가 이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 올 줄은 몰랐네.”
또 한참 동안이나 어색해하며 침묵했다.
무엇인가를 말할 듯, 말하지 않을 듯, 계속해서 고민했다.
“나는 지금도 모르겠어. 우리의 선택이 옳은 건지, 아닌 건지.”
“우리라 함은…….”
“대충 눈치챘잖아. 소음의 지휘자랑 나. 뭔가 이상하지 않디?”
“이상했습니다.”
예전 소음의 지휘자는 ‘궁극의 투사’를 제안했었다.
소음의 지휘자는 군주 계열 클래스를 지원하는 수호자이며, 보통 그러한 경향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그런 성향의 수호자가 ‘투사’를 제안한 것은 어딘지 이상했다.
그 제안은 백색 사냥꾼에게 어울리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투사들의 전당 프리패스를 위해서 백색 사냥꾼이 승인을 해줬어야 했다.’
어딘지 이상한 것들투성이였다.
소음의 지휘자가 투사를 제안한 것도 이상하고, 그것을 승인해 줘야 하는 존재가 소음의 지휘자가 대외적으로 적대적인 백색 사냥꾼이었고.
‘반대로 백색 사냥꾼이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군주 계열의 특성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승인해 주는 존재는 소음의 지휘자인 것 같았고.
“네 예상대로 원래 [궁극의 투사]를 얻은 자는 [절대 군주]를 획득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현재의 시스템상에서는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었지.”
“누군가의 도움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투사들의 전당에서 백색 사냥꾼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 –가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백색 사냥꾼은 그때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당나귀 장인]께서 도와주기로 하였다.”
최근 들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수호자.
다른 수호자보다 훨씬 더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미지의 수호자.
당나귀 장인이 언급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나귀 장인]께서 도와주시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지. 태초부터.”
순간, 영체 형태의 백색 사냥꾼의 모습이 흐려졌다.
마치 노이즈가 낀 것 같았다.
백색 사냥꾼이 인상을 찡그렸다.
“벌써부터 간섭이 들어오는군.”
김혁진도 느꼈다.
방금 그것은 시스템의 방해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버그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예?”
수호자를 버그 취급한다고?
시스템은 본래 수호자를 존중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백색 사냥꾼의 말이 빨라졌다.
“이래서 말을 시작하기 싫었는데.”
백색 사냥꾼은 몸을 부르르 떨며 엄살을 부렸다.
그의 말이 빨라졌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강선일은 [당나귀 장인]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가 플레이어였을 당시, 강선일은 [당나귀 장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례를 받아 시스템의 왕이 되었었다.”
“[당나귀 장인]은 어떤 분입니까?”
“그는 태초의 수호자였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지.”
“아버지요?”
“인간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어쨌든 넓은 의미로 보면 우리의 아버지가 맞다.”
우리라 함은 ‘소음의 지휘자’와 ‘백색 사냥꾼’을 뜻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른 수호자들과 달리 태초의 언약으로부터 태어났으며, 오늘을 위하여 이 자리까지 수호자로서 살아왔다.”
“…….”
“아버지께서는 오늘을 예비하셨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날 내가 너와 만날 것을 예비하셨단 뜻이다.”
백색 사냥꾼이 피식 웃었다.
“나는 약속된 인간이 강선일인 줄 알았다. 아버지의 결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지.”
당시 백색 사냥꾼도 당나귀 장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강선일은 전무후무한 능력을 지녔던 플레이어였고, 백색 사냥꾼이 보기에는 완벽에 가까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치매가 아닌가 싶었다.”
겔론이 세를 떨치던 시절에 당나귀 장인의 힘은 거의 봉인되어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닐까 싶었다고 했다.
“그만큼 강선일은 괴물이었다. 그 괴물을 뛰어넘는 괴물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
백색 사냥꾼이 여러 가지 설명을 이어갔고, 김혁진은 충격에 빠졌다.
‘태초의 우주. 태초의 자연. 태초의 시스템. 태초의 수호자.’
당나귀 장인이 바로 태초의 시스템이자 태초의 수호자라고 했다.
그는 우주의 질서를 관장하였으며, 자연의 의지를 존중했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수호자들이 많이 탄생하게 되고, 동시에 불멸자들도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태초의 불멸자 겔론.’
마탑주로 알려진 그는 처음으로 태어난 불멸자였다.
‘그는 결국 [당나귀 장인]을 봉인하기에 이르고, 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했다.’
그는 마법의 끝을 보기 위하여 수많은 힘이 필요했다.
많은 차원이 희생당하였고, 마나와 생명을 빼앗겼다.
“그에게 있어서 시스템은 일종의 농장이었다. 존재값과 성흔을 키워서 잡아먹기 위한.”
“…….”
“또한 존재값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아버지의 우주에서 총량은 무한했다.”
“그렇다는 말은 겔론이 총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고 조절했다는 뜻입니까?”
“그래.”
마탑주 겔론은 또 다른 겔론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차원의 한곗값을 정하고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애초에 막으려 했다.
존재값을 잡아먹기 위한 농장.
그리고 절대 강자가 태어나지 못할 환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선일 같은 괴물이 나타나면 ‘왕’이라는 굴레를 씌워 속박하려 했단다.
“아버지와는 달랐지. 아버지께서는 겔론의 탄생을 알고 있었으며, 강선일과 네 존재도 이미 알고 계셨다. 네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렇지만 당나귀 장인은 아무것도 막지 않았다고 했다.
흘러가는 대로 모든 것을 내버려 두었다고 했다.
“나와 소음의 지휘자는 여느 수호자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며 진짜 왕이 태어나기를 기다려왔다.”
그리고 이날을 위해 소음의 지휘자와 백색 사냥꾼은 다른 수호자들과 똑같이 행동하며 플레이어들을 후원해왔다고 했다.
겔론이 운영하는 이 시스템의 감시와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결국 우리는 강선일을 선택하지 못했고, 강선일도 아버지를 선택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게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궁극의 투사’를 받아들이면 ‘절대 군주’를 받을 수 없다.
반대로 ‘절대 군주’를 받아들이면 ‘궁극의 투사’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비로소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때의 강선일은 겔론과의 계약에 묶인 왕이 되고 말았지.”
강선일은 겔론의 입장에서 제2의 겔론이었다.
겔론보다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한 불세출의 플레이어.
그러나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는 겔론을 죽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세례자가 세운 왕은, 겔론을 절대로 죽일 수 없었어.”
그게 겔론이 만든 시스템이었다.
결국 강선일은 겔론을 죽이지 못했고 차원감옥에 봉인했다.
덕분에 겔론의 힘이 대폭 줄어들었고, 그가 만든 시스템도 덩달아 약화되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또 오랜 시간이 흘러 네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네게 절대군주를 제안하려 한다.”
모든 상황이 오늘을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강선일이 겔론을 봉인했다.
이후, 이사벨이 검림의 세를 확장시키면서 반대로 마탑의 힘은 약해졌다.
검림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다른 차원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졌고, 당나귀 장인도 일정 부분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당나귀 장인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 그 시점이었다.
또한 마탑을 이끄는 새로운 자들이 나타난 덕분에 김혁진에게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김혁진이 ‘진짜 왕’이 되기 전에, 겔론이 지구 차원부터 급습했을 것이었다.
“검림의 준동. 마탑의 혼란. 강선일의 선택. 시스템의 법칙을 어긴 자. 약속된 자들의 희생. 이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야만 오늘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아까 백색 사냥꾼으로부터 느껴졌던 비장함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소멸을 각오하고 있어.’
약속된 자들의 희생이라고 말했다.
태초의 수호자인 ‘당나귀 장인’의 안배는, ‘백색 사냥꾼’과 ‘소음의 지휘자’의 소멸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태초의 언약을 받들어,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여 시스템의 법칙에서 어긋난 자를 절대 군주로 추앙하려 한다.”
김혁진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귀에 대해 알고 있다!’
시스템은 회귀를 인정하지 않는다.
회귀를 버그로 취급한다.
그런데 백색 사냥꾼은 김혁진의 회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회귀’ 또한 당나귀 장인의 안배인 듯했다.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너만큼은 우리를 기념하여 주면 좋겠구나.”
그때, 메시지가 들려왔다.
[수호자 ‘소음의 지휘자’가 백색 사냥꾼을 일컬어 ‘구구절절충’이라고 비난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할 거 빨리 후딱 해치우고 쉬자고 말을 합니다. 얼굴을 붉히며 어쨌든 그동안 많이 고생했다고 한마디를 덧붙입니다.]백색 사냥꾼이 물었다.
“절대 군주가 되겠느냐?”
이야기를 들으며 김혁진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사실 백색 사냥꾼을 100%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강선일은 믿었다.
백색 사냥꾼의 말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강선일의 행동도 모두 이해되었다.
‘나는 결국,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택을 해야 했다.
이미 시스템에 반하는 왕이 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
김혁진의 선택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백색 사냥꾼이 빙그레 웃었다.
“고맙구나.”
그리고 알림이 이어졌다.
[‘태초의 언약’이 완성됩니다.]은밀한 다과회장 전체에, 희뿌연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김혁진도 많이 경험했었던 안개.
‘태초의 안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