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7)
#재능만렙 플레이어 67화
핸드폰을 귀에 댔다. 물론 전화는 오지 않은 상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세니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말하면 미친놈처럼 보일 게 뻔하다. 전화받는 척을 하며 대화하기로 했다. 집을 향해 걸었다.
세니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현재 제 채널은 닫혀 있는 상태임을 고지합니다.”
다시 말해 수호자들은 지금 우리를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세니아는 내가 전에 말했던 것을 착실히 익힌 모양이다.
비슷한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면 재미나 자극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조금 더 다르게, 조금 다른 패턴으로 수호자들에게 중계하는 것이 BJ의 역량이고 실력이다.
“나와 약간의 조율을 하겠다는 뜻 같은데. 내일 행사를 위해서.”
“그저 다양한 연출법들을 고려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일단 수호자들에게 궁금증만 던져주고.’
한국 서버에서 열리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모임’이다. 시스템이 만든 플레이와는 약간 느낌이 다르다. 그 것을 보고 싶은 수호자들도 꽤 많을 거다. 이왕이면 그 안에서 어떤 갈등이나 다툼 같은 것이 있으면 더 좋고.
‘여기서 영상을 끊었단 말이지.’
이 것을 BJ들끼리는 ‘절단 마공’이나 ‘절단 신공’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하여튼 지금은 그 개념이 잡혀있지 않을 때다.
‘궁금증을 증폭시킨 뒤 내일 중계를 다시 시작하겠지.’
그와 더불어 지금 나와 몇 가지 의견을 교환하고 싶은 게 있을 거다. 내가 바라던 바이기도 했고.
‘세니아. 많이 컸네.’
BJ 넵튠에게 찍소리도 못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눈치도 제법 빨라졌고 이 정도면 제법 제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연서 플레이어와 만난 것은 저를 불러내기 위함이었습니까?”
“맞아. 신연서가 로아와 함께 있었으니까.”
많이 똑똑해졌네. 내가 신연서와 만난 이유도 눈치채고.
“분명 이유가 존재하겠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다시피, 내일은 플레이어들의 모임이 진행돼. 이것은 시스템상 정해진 시나리오도 아니고, 그저 인간들이 변해 버린 세상에 대응하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지.”
……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약 1시간가량 이어졌다.
“알겠습니다. 예지몽에 입각한 분석이나 예상치고는 지나치게 디테일하기는 합니다만.”
세니아는 아무래도 좀 미심쩍은 표정이다. 1시간의 대화. 나는 세니아에게 많은 팁을 전해주었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내일 세니아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다 미리 말해줬다.
“좀 더 멀리 봐. 단편적인 거 말고. 상황들을 종합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예측해 놓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좀 더 질 좋은 콘텐츠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냐?”
“…….”
세니아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어찌됐든 대화는 잘 마무리됐다. 세니아는 세니아의 일을 하면 된다. 이제 나는 플레이어로서, 플레이만 잘하면 된다.
DMC리버뷰 자이.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세니아가 나를 데려다 준 셈이 됐다.
“……알겠습니다. 김혁진 플레이어의 시나리오가 맞을 지. 두고 보겠습니다.”
약간의 경고도 담겨있는 것 같다. 내가 하도 세니아를 가르치듯이 대화해서 그런 것 같기는 하다. 기분 나쁠 법도 하다. 근데 어쩌겠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그래도 역시 초짜 BJ인데. 10년 뒤를 경험한 내가 보기에는 너무 허접한 BJ다. 가르칠 것투성이다.
“좀 미심쩍은 것 같네.”
그래서 도발했다.
“내기할래?”
“…….”
“쫄리면 하지 말든지.”
“저를 도발하시는 겁니까?”
어. 도발 맞는데.
“좋을대로 생각해.”
한참을 고민하던 세니아가 말했다.
“내기 조건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역시 우리 천사 세니아. 잘 걸려든다.
“중수등급의 아이템 상점을 열람하게 해줘.”
당연히 안 된다. 내 레벨은 아직 30. 중수 등급의 아이템 상점을 열려면 레벨 40은 넘어야 한다. 나도 안 되는 걸 알고 있다.
“무리한 요구조건입니다. 불가합니다.”
“그럼 1회는?”
“…….”
아예 무리한 걸 던져 놓고, 그 다음에는 실현 가능한 내기를 걸었다.
“그건…….”
“싫음 말고.”
“……받아들입니다.”
그래. 그럼 그렇지. 받아들일 줄 알았어.
“네가 원하는 건 뭔데?”
“그건 제가 내기에서 이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풉 하고 웃을 뻔했다. 안 들어도 될 것 같다. 어차피 내기는 내가 이길 테니까.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레베이터가 10층에 도착했다.
띵!
-문이 열립니다.
1004호. 우리 집이다. 엄마. 누나. 그리고 선화가 기다리고 있는 곳. 문득 기분이 좋아졌다. 미래를 내 손으로 조금씩 일궈가는 기분이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이 느낌. 성취감. 그리고 해내고 싶은 도전욕.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기분 좋음.
우리 집을 볼 때마다 새롭다.
‘내일 잘해보자. 세니아.’
* * *
성신이 주도하여 만들어낸 ‘플레이어 협회’는 DMC. 그러니까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 위치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예상대로 여기 협회도 생겼고.’
시간이 흐른 뒤, 정부 산하기관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에도 건물은 그대로 저 곳이다.
‘말로만 정부기관이지, 사실은 성신의 수족이었다는 말이 많았었는데.’
김강철을 보고나니 그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나랑 크게 상관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 씁쓸하기는 했다. 괜히 ‘성신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오늘 등급 측정도 하겠네.’
미래 기준으로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방법으로 등급을 매긴다. 지금 매기는 ‘플레이어 등급’은 의미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재능판의 개념도 안 잡혀 있을 시절이니까.’
재능판의 개념도 없고, 마법의 개념도 없다. 체력적인 요소나 근력적인 요소 등을 위주로 평가하여 등급을 매긴다. 이를테면 달리기나 악력 같은 걸로. 운동선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능력을 측정한다. 미래 기준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이다.
“예. 저는 등급 심사를 받지 않겠습니다.”
“등급 심사는 플레이어 본인께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높은 등급이 나오게 되면 큰 이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낮은 등급이 나오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습니다.”
“괜찮아요.”
“등급 심사를 안 받으시면 일단 F로 배정되는 데 괜찮으신가요?”
“예. 괜찮습니다.”
어차피 곧 폐기될 등급 따위. 가져봤자 뭘 하겠는가. 나는 여기 와서 괜히 오래달리기나 팔굽혀펴기 따위를 하고 싶지는 않다.
“형님! 저는 A가 떴습니다!”
“나도!”
마상현과 신연서는 과연 권왕과 검후답게, 초창기부터 A를 받았다. 뭘 해도 될 놈들은 다르다. 선화도 함께 등급심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C였다.
현재시각 2시 20분.
정식 모임은 3시에 시작된다. 12층 대강당은 벌써부터 북적거리는 중. 우리는 1층에 위치한 카페로 내려와 잠시 대기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시무룩해진 선화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줬다. 하기야. 얘의 탱커자질과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얘의 팔을 칼로 찔러보거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다거나. 이런 짓은 할 수 없지 않은가. 이 결과는 당연하다.
“나는 F거든.”
등급심사를 거부하면 F니까. 거짓말한 건 아니다. 나는 어느 정도 나오려나?
‘나도 A나올 거 같기는 한데.’
잘은 모르겠다. 초창기의, 완전히 의미없는 방식의 등급 매기기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다.
“진짜요? 오빠도 F예요?”
신연서와 마상현도 눈을 크게 떴다.
“에이. 말도 안 돼. 네가 F?”
“말도 안 됩니다, 형님!”
당연히 말도 안 되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되는 측정방식으로 측정하니까, 전투 클래스의 플레이어만 높은 등급을 받았을 거야.”
선화는 내 말에 적잖은 위로를 받았는지, 아까 시켜놓은 ‘아이스 초코’를 쪽쪽거리며 잘도 빨아먹었다. 등급 C의 충격은 초코맛으로 잊을 수 있는 듯했다.
신연서가 활짝 웃었다.
“그렇네. 뭐. 네가 F받았으면 말 다했네. 등급 매기기가 백퍼 잘못 됐어. 김혁진같은 괴물이 F? 우씨. 괜히 A받았다고 좋아했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의미가 1도 없는 등급 같습니다.”
1층에서 기다리는 사이, 나는 쉴 새 없이 플레이어들을 살폈다. 마상현에게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덩치. 그리고 오른팔을 화려하게 휘감은 문신. 척 봐도 건들건들한 모양새.
‘불곰 김태천.’
현재 레벨 28.
‘요약이 웃기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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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먹잇감을 찾는 자칭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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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 있을 일의 ‘시작점’이 될 한 놈은 찾았고.
‘곽태운은 어디에 있지?’
계속해서 찾고 있는데 보이지 않았다. 곽태운 대신, 1층을 통해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으어! 늦을 뻔했네!”
우리를 발견하더니 곧장 이쪽으로 또 뛰어왔다. 헥헥대는 폼이 약간 운동부족 같기도 했다.
“어휴. 슈밤바. 3개월 동안 연락두절 된 우리 위대한 영웅님 아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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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반가움/즐거움/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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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도 한 자리에 모였다. 들어보니 지난 3개월 동안, 강상구도 애들과 친분을 많이 쌓았다나 뭐라나. 선화가 중간에 끼어서 같이 몇 번 서울역 던전을 돌았다는 모양이다. 몇몇 게이트도 같이 클리어했고.
“살아 돌아온 기념으로 혹시 뽀뽀해도 되냐? 어, 어어. 아. 미안. 미안.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죽일 것처럼 노려볼 건 없잖아.”
강상구는 여전히 ‘석양의 거인’의 비호를 받는 중인 것 같다. 감각안으로 정보를 살펴볼 수 없었다. 다만, ‘화신지체의 서’를 사용했고 ‘화인’의 칭호를 얻은 데다가 저 재능을 가지고 3개월이 흘렀으니 꽤 많이 성장했을 거다. 들어보니 레벨은 31. 역시 고레벨이다.
현재시각 2시 40분. 강상구가 말했다.
“어차피 늦었으니까, 나는 등급 심사는 못 받을 거 같고. 12층이라 그랬나? 12층으로 가세!”
“잠깐만.”
역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맞았다.
‘곽태운.’
들어오고 있다. 1층 회전문을 통과해서 들어오고 있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현재 나이는…… 18살인가.’
아직 재능판이 완전히 열리기 전이다. 당연히 미래의 ‘태풍‘도 아직은 없다.
‘현재시각. 2시 45분.’
이제 슬슬 세니아도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미리 얘기했던 대로, 세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채널 #19207번이 열렸습니다.]1층 커피숍. 시간은 2시 45분. 1층에 도착한 고등학생 ‘태풍 곽태운’. 그리고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자칭 포식자 김태천까지.
‘조금 지켜볼까.’
그때. 알림이 들려왔다.
[‘무명의 관찰자’가 당신의 관찰에 매우 만족합니다.] [‘무명의 관찰자’가 300코인을 후원하였습니다.]내가 ‘지켜보는 행위’가 무명의 관찰자에게는 ‘관찰’로 비춰진 모양이다. 뭐. 어찌됐든 좋다. 나와 직접 계약을 맺은 수호자가 나를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 적어도 레벨 50이 될 때까지는 나와의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수호자니까.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시작됐다.’
이곳의 태풍. 그 첫 움직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