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80)
#재능만렙 플레이어 680화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이곳은 존재하는 곳인가.
존재한다면 이곳은 과연 어디인가.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한다면 나는 누구인가.
억겁의 시간 동안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해왔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그의 세상은 점점 더 넓어졌다.
결국 그는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가 자아를 완전히 인정했을 때, 그의 세상은 확장을 멈추었다.
그는 수호자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그는 이미 수호자였으나, 수호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태어났으니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무언가가 되지는 않았다.
‘내 이름은 심해의 눈동자.’
그걸로 만족했다.
다른 수호자들처럼 후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기만 했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갔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혼자 살아온 그는 그것이 편했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자아를 가지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감탄하기도 했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특별한 사람을 발견했다.
‘누구지?’
이미 유명한 플레이어라고 했다.
모든 차원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그의 이름은 김혁진이라고 했다.
그는 김혁진을 오랜 시간 관찰했다.
‘왜 나는 저 플레이어에게 끌리는가?’
알 수 없었다.
탁월한 플레이를 보여준다는 것 외에 별다른 것은 없었는데 말이다.
얼마 후.
심해의 눈동자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질서와 법칙을 거스른 자다.’
심해의 눈동자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자체가 기존의 세계와 질서와는 동떨어진 존재였다.
때문에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세계의 일반적인 다른 자들과는 다른 자라는 사실을.
‘저자가 왜 여기에?’
저자와 자신 사이에 어떤 큰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게 끝인가?’
생각하고 존재하면 끝인가.
존재한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심해의 눈동자는 스스로 그 답을 내렸다.
‘나는 저자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기 위하여 존재해 왔다.’
혹자가 본다면 허무한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근거 없는 믿음이었으나 이것은 그가 영원의 세월 동안 유일하게 선택한 것이었다.
그때, 그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너의 선택이다, 아들아.”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해의 눈동자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당신이 나의 아버지이십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왜 여지껏 저를 찾지 않으셨습니까?”
“애타게 불러왔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목소리는 스스로를 일컬어 ‘당나귀 장인’이라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눈동자를 뽑아내어 심해의 눈동자인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심해의 눈동자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제가 당신의 목소리를 못 들었던 것입니까? 그렇다면 왜 그랬습니까?”
“네가 내 목소리를 거부해 왔다.”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심해의 눈동자는 조금 화가 났다.
왈칵 눈물이 났던 저 스스로가 불편해졌다.
나는 왜 저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났는가.
왜 감동을 받았는가.
책임을 모조리 내게 떠넘기고 있는 저자가 진짜 나의 아버지가 맞단 말인가.
“제가 당신의 목소리를 거부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그 앞에 흐릿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심해의 눈동자는 그 ‘무엇인가’가 수많은 것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당신을 관찰해 온 자입니다.”
그의 이름은 ‘무명의 관찰자’라고 하였다.
“지금은 숭고한 염원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영원의 세월 동안 관찰만 해왔던 그는 이제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것을 걸고 공증합니다. 당나귀 장인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을 예비하였고, 당신을 불렀습니다.”
숭고한 염원이 말했다.
“당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십시오. 나는 찾았습니다.”
* * *
심해의 눈동자는 생명들이 자신의 영혼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한 명은 겔론이었고 또 한 명은 김혁진이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세니아였다.
그중에서도 심해의 눈동자는 세니아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발광 심해어’ 덕분이었다.
‘이로써 나도 자유인가.’
이곳은 심해이며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에서 무엇인가가 생성된다면,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법칙이 깨진다.
이 공간의 규정이 무너지며 ‘심해’는 사라진다.
심해가 사라지면 ‘심해의 눈동자’도 함께 소멸한다.
‘내가 길을 안내하지.’
정신을 집중했다.
발광 심해어는 ‘심해의 눈동자’의 의지를 형상화한 물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심해에 저것을 만들기 위하여 큰 희생이 필요했다.
생성자와 사용자의 소멸이었다.
다시 말해 ‘심해의 눈동자’와 ‘세니아’의 소멸을 뜻했다.
세니아의 의지가 느껴졌다.
‘너도 너의 길을 찾았구나.’
저 천족은 스스로의 길을 찾아냈다.
스스로 선택을 해냈다.
‘경의를 표한다.’
심해의 눈동자도 스스로 선택했다.
일생에 처음으로 내린 선택이었다.
‘나는 겔론이 소멸하고 김혁진이 살아나길 원한다.’
나의 선택이 부디 옳은 것이었기를.
나의 삶의 마침표가 온전히 찍히기를.
심해의 눈동자는 그것을 기원하며 길을 안내했다.
번쩍!
발광 심해어는 ‘무(無)’의 공간을 잡아먹고 발광했다.
덕분에 세니아는 자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세니아는 존재값이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날개 끝이 점차 사라졌다.
‘이 심해어가 부디 김혁진 플레이어에게 전해지기를.’
날개가 하나하나 없어지다가, 이내 모든 날개가 사라졌다.
세니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발광 심해어가 점점 멀어졌다.
발광 심해어는 김혁진을 찾는 것이 목표였고, 세니아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디 오늘을 완성하십시오.’
세니아는 눈을 감았다.
* * *
김혁진은 스스로의 소멸을 막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는 순간, 정신이 무너지고 존재가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뭐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저만치 멀리, 빛이 보였다.
‘빛?’
어째서 빛이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빛을 인지하는 순간 김혁진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아를 확실히 이해하자 모든 것들이 정보가 되어 김혁진에게 전해졌다.
‘이곳은 심해다.’
그리고 이곳은 ‘심해의 눈동자’의 세계였다.
그리고 저 발광 심해어는 세니아가 자신의 존재를 소모시켜 보낸 물고기였다.
‘세니아!’
세니아의 희생을 읽어냈다.
세니아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저 어둠 속에 빠져들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세니아를 찾아야 해.’
겔론은 잠시 잊었다.
겔론을 죽이는 것보다, 세니아를 살리는 게 더 우선이었다.
적어도 김혁진에게는 그랬다.
발광 심해어에게서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내 세계의 법칙을 위반하였다.
-나는 오늘의 나를 완성하기 위하여 영원을 기다려왔다.
-부디 그대는 우선순위를 바로 하여 오늘을 완성하라.
‘심해의 눈동자’가 요구하는 것은 세니아를 살리는 게 아니었다.
겔론을 죽이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라는 요구였다.
그게 ‘심해의 눈동자’가 염원하는 것이었다.
‘그런 염원 따위.’
심해의 눈동자가 절실한 것은 알겠다.
그러나 김혁진은 그것 이상으로 절실했다.
‘살려야 해.’
김혁진의 모든 감각이 세니아를 향했다.
지금 이 순간, 세니아를 살려야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
‘나는 이런 희생을 원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그때.
세니아가 눈을 번쩍 떴다.
[진왕(眞王)의 진의(眞意)가 발동합니다.] [‘마지막 뒤통수는 짜릿하다!’가 적용된 상태입니다.]예약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진짜 뒤통수는 이거였지롱?!]진왕이 법칙을 능가하는 거대한 힘을 일으켰을 때.
심해의 눈동자가 영원동안 쌓아온 심해보다 더 큰 염원으로 의지를 일으켰을 때.
그때 발동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속삭이는 악마’는 역시 속삭이는 악마였다.
겔론에게 최후의 뒤통수를 선사한다고 하였지만, 그 말조차도 속임수였었다.
세계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심해의 눈동자는 조금 당황했다.
‘나의 세계가 무너진다.’
발광 심해어를 통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었다.
‘김혁진으로부터…….’
김혁진이 ‘진의’를 발생시켜 이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었고, 진왕의 의지가 세계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에 진왕의 의지가 생겨났다.
심해는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
‘좋구나.’
이런 식의 결말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예상외의 결과에 그는 허허- 웃고 말았다.
‘뒤통수가 얼얼하다는 건 이런 것인가?’
결과적으로 세니아는 존재값을 모두 소모하지는 않았다.
속삭이는 악마가 소멸을 담보로 하여 적용한 최후의 권능. ‘마지막 뒤통수는 짜릿하다!’가 적용되었기 때문이었다.
날개를 모두 잃기는 했으나 세니아는 결국 눈을 떴다.
김혁진이 세니아를 안아 들었다.
“괜찮아?”
“김혁진 플레이어?”
세니아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기 직전.
신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여 김혁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무서웠습니다.”
어차피 꿈이니까.
마지막이니까.
세니아는 김혁진의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부디 행복하십시오.”
“무슨 유언 같은 말을 하고 있어? 정신 차려.”
김혁진이 정신 차리라는 듯 세니아의 이마를 살짝 쥐어박았다.
그제야 세니아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프다?’
아픔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촉감이 느껴졌다.
온기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숨소리와 박동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의 냄새가 느껴졌다.
“기, 기, 김혁진 플레이어?!”
세니아가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된 거지?’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었다.
왜 살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혁진이 말했다.
“날 꽉 안아.”
진언은 아니었으나 진왕의 명령에는 힘이 있었다.
세니아는 저도 모르게 김혁진을 꽉 끌어안았다.
“세계가 축소되고 있어.”
세니아도 느낄 수 있었다.
심해가 점차 없어지고 있었다.
어떤 큰 충격이 오게 될지 모른다.
세니아는 그 충격으로부터 버틸 힘이 없었다.
김혁진의 도움이 없다면 말이다.
“겔론도 느끼고 있겠지.”
심해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그때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원의 틈새에 갇혀 영원히 부랑하게 될 것이었다.
“내가 겔론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심해가 아니면 그 어떤 곳으로도 도망칠 수 없다.
겔론에게는 이곳이 마지막 피난처였다.
그 피난처가 이제는 사라진다.
“결국 이곳에서 마무리하려고 할 거야.”
김혁진이 이센을 꺼내 들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아주 먼 곳에서 겔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최악을 피하여 차악으로 왔는데.”
겔론은 분명 그랬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했다.
“이제는 차악도 아니네.”
차악도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겔론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존재를 완벽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몇 초의 여유.
그 여유 때문에 모두가 목숨을 걸었고, 김혁진과 겔론 둘 다 필사적이었었다.
그런데 이제 둘 모두에게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완전한 진왕으로 거듭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이 완성되었구나.
심해의 눈동자가 남긴 유언이었다.
그의 유언에는 홀가분하고 속 시원한 감정이 녹아나 있었다.
그의 감정에 약간 동화된 김혁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을 완성한다.’
김혁진이 이센을 꺼내 들고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