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81)
#재능만렙 플레이어 681화
김혁진의 진의가 다가오는 겔론을 집어삼켰다.
“크아아아악!”
겔론은 스스로의 팔을 잘라냈다.
고통을 통해 정신을 차리려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제기랄!’
완성된 진왕.
겔론에게 있어서 김혁진은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적이었다.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강대한 적.
‘젠장!’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차원감옥에서도 견뎌오며 희망을 품었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오로지 높디높은 벽뿐이었다.
‘어둠이…… 다가온다.’
겔론의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시꺼먼 어둠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죽겠군.’
마지막 순간이 되자 오히려 담담해졌다.
그의 의식이 점차 멀어졌다.
강인한 베른의 육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진왕의 진의 앞에 베른의 육체는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겔론이 입술을 깨물고 크게 외쳤다.
“김혁진!”
당연히 분노의 일갈이었으나 그 속에는 안도감마저도 일부 묻어 있었다.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겔론은 제2의 겔론을 두려워했다.
결국 제2의 겔론이 나타났고, 언젠가는 제3의 겔론도 나타날 것이다.
“당나귀 장인은 내게 패배하여 대부분의 힘을 잃었었고, 나는 네게 패배하여 소멸된다. 그러니 먼 훗날, 또 다른 누군가가 태어나 너의 시대를 저물게 만들 것이다.”
김혁진은 그 말을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옛 시대가 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
그건 자연의 당연한 이치였다.
김혁진은 세상 위에 영원토록 군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겔론의 저주는 그리 두렵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김혁진의 여유로운 태도를 보며 겔론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겔론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네놈은……!’
왜 김혁진이 두려워하지 않는 건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절대자가 된 지금, 또 다른 절대자의 탄생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왜 김혁진은 그 당연한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는단 말인가.
왜!
김혁진이 훗날 탄생할 진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겔론에게 큰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릇의…… 차이인가.’
겔론의 몸이 점차 사라졌다.
진왕의 명령에 따라 소멸되어 갔다.
‘그릇이라.’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혁진과 자신의 차이를.
‘단순히 그릇의 문제만은 아닐 게야.’
마지막 순간이 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느껴졌다.
‘그래. 알겠다.’
겔론은 김혁진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너는 혼자가 아니구나.’
겔론은 혼자였다.
절대자가 되었으나 그 주변에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돕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군림했고 지배했으나 교류하지는 못했다.
‘혼자가 아니다라.’
홀로 왕이 된 겔론과 다르게 김혁진은 모두와 함께 왕이 되었다.
그들이 함께하는 한 김혁진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패배다.’
짙은 패배감이 밀려들었다.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이 진의보다도 그의 내면으로부터 새어 나온 패배감이 더 두려웠다.
‘강선일에게 패했을 때도 이 정도 느낌은 아니었는데.’
차원감옥에 갇히면서도 겔론은 이토록 짙은 패배감을 느끼지 않았었다.
겔론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한 줌의 희망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차라리 잘됐다.’
너무나 완벽한 패배여서 미련조차 남지 않았다.
그의 하반신과 상반신이 모조리 사라졌다.
목과 머리밖에 남지 않았다.
‘네놈한테 죽는 것이…… 차라리 치욕스럽지 않겠구나.’
겔론은 더 이상 발광하지 않았다.
잠자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혁진에게 죽는 것은 치욕스러운 결말은 아니었다.
겔론은 생각했다.
비록 졌지만 잘 싸웠다고.
그런데 그때, 김혁진이 말했다.
“그만.”
기현상이 벌어졌다.
겔론(베른)의 육신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아직 영혼이 남은 상태.
목과 얼굴만이 허공에 둥둥 뜬 채 자리에 남게 되었다.
“뭐하는 짓이지?”
“널 완전히 없애는 게 찝찝해서.”
김혁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팡이가 없다.’
겔론이 대단히 까다로웠던 적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당나귀 장인’을 비롯한 많은 수호자들이 자신의 존재값을 모두 걸어서 상대해야 할 만큼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겔론. 묻겠다.”
진왕이 진의를 품고 물었다.
마탑주 겔론의 이름을 불렀다.
겔론은 진왕의 권위에 항거할 수 없었고, 이를 깨물며 버텼지만 이내 대답했다.
“무엇이든 대답하겠습니다, 왕이시여.”
겔론의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영혼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네가 마탑주냐?”
“그렇…….”
겔론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콱! 막혀왔다.
“네 지팡이는 어디에 있지?”
“그것이…….”
이번에도 말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사랑스러운 엘카.
이 아이는 어디에 있……!
‘없어?’
겔론도 그제야 눈치챘다.
자신의 지팡이가 사라졌다.
엘카가 자신을 버린 모양이었다.
“묻겠다. 네가 지팡이의 주인이냐?”
겔론이 대답하려 했다.
“물……!”
물론입니다.
말하려 했으나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입이, 입이 왜 안 움직여!’
겔론은 혼란스러웠다.
‘왜!’
그도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다.
진의를 담은 질문이었고 겔론은 진실만을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진실을 말하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김혁진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네놈도 피해자군.”
마탑주 겔론의 본체는 겔론의 영혼도 아니었고, 베른의 육체도 아니었다.
“다시 묻겠다. 지팡이 엘카가 네 주인이냐?”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겔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이 유리창 깨지듯 박살 났다.
그의 영혼이 붕괴되며 존재값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김혁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에서 반전에 반전을 준비하였듯.’
‘진짜 겔론’이라 할 수 있는 ‘엘카’도 반전에 반전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지금 죽인 것은 진짜가 아니었다.
‘거짓된 질서’의 실체는 겔론을 조종하던 엘카였다.
그리고 그가 바로 ‘진짜 마탑주’였다.
지팡이 형태로 겔론을 조종하고 세상을 조롱하며 거짓된 질서를 구축해왔던 것 같다.
김혁진은 세니아를 다시 안아 들었다.
이 세계는 곧 사라진다.
떠나야 했다.
“아쉽게도, ‘심해의 눈동자’의 유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네.”
세니아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날개를 모두 잃게 되면서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귓볼까지 잔뜩 빨개진 세니아가 말했다.
“내려주십시오.”
“그러면 이 세계에 잡아먹힐 텐데.”
이 세계의 소멸과 함께 먼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걸 원한다면 내려주고.”
세니아는 저도 모르게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본인은 그런 표정을 짓는지도 몰랐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런 표정이 나왔다.
“너무하십니다.”
“그럼 그냥 안겨 있어. 너를 더 완벽히 보호할 방법을 모르겠으니까.”
김혁진은 황당함을 감췄다.
‘날개를 모두 잃더니……. 표정이 다채로워졌잖아?’
누가 지금의 세니아를 과거의 세니아라고 생각하겠는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표정을 전혀 숨기지 못했다.
‘이쪽이 더 자연스럽고 좋네.’
김혁진은 간단하게 묵념을 하여 ‘심해의 눈동자’의 소멸을 기린 뒤 무명안을 사용했다.
무명안의 기운에 힘입은 발광 심해어의 마지막 불꽃이 피어올랐다.
두 개의 길이 보였다.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엘카가 도망쳤을 만한 곳.”
“심해 외에 그런 곳이 있습니까?”
“짐작 가는 곳이 하나 있어.”
한 갈래는 지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 길의 끝에는 이사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지구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흘렀지?’
시간 감각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유추하기로는 최소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고 싶어.’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사벨과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그 길을 외면했다.
‘거짓된 질서’인 엘카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김혁진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사라져가는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세계로 움직였다.
세계와 세계를 관통해가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큰 힘이 소모되었다.
김혁진에게도 체력적인 부담이 될 정도였다.
‘엘카가 이곳을 빠져나갔다는 건.’
엘카 역시도 이 힘을 버틸 수 있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진짜 마탑주’의 힘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진짜 마탑주는 내가 심해를 찾아올 거라는 걸 알았을지도 몰라. 발광 심해어를 사용하여 길을 찾아내고, 결국 심해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것을 예상하고 안배를 더 숨겨놓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면서 큰 힘을 소모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도.”
그건 마탑주 엘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강력한 지원군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겠지.”
“……그곳이 어디입니까?”
김혁진의 눈이 한 곳을 향했다.
무명안에는 보이지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푸르스름한 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폭압적인 기운이 모여 있는 곳.”
이 세상에는 아주 특별한 곳이 있었다.
폭력적인 기운이 모인 곳.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가도 되는, 태어나면서부터 강한 일족만이 살아가는 보금자리.
거짓된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고래일족의 고향.
그곳은 바로 ‘천공’이었다.
“강선일이 거기서 나를 위한 안배를 진행할 것도, 엘카는 대비했던 거야.”
겔론과 달리 엘카는 아주 오래전부터 김혁진을 존재를 알아왔고 김혁진을 대비해 왔던 것 같았다.
당나귀 장인이 치밀했듯 엘카 역시 치밀했다.
“그리고 내가 천공을 곧바로 찾아갈 거라는 사실도.”
“천공의 고래들은 김혁진 플레이어의 편이지 않습니까? 언약을 맺었던 것으로 압니다.”
“원래대로면 그렇지.”
그러나 그가 만든 ‘거짓된 세계’에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법칙들이 존재했다.
“그 세계에서는 깰 수 없는 절대명령 같은 것이 존재해.”
만들어진 질서의 인위적인 명령.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최상위 명령이 존재했다.
적어도 ‘언약’보다는 높은 등급의 명령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강했던 강선일조차 겔론을 죽이지 못했었어.”
강선일조차 금제했던 법칙이다.
아마 그러한 종류의 금제가 천공의 고래일족에게도 가해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고래일족과 싸우실 수도 있다는 겁니까?”
“아마도.”
겔론을 소멸시키기 전의 김혁진이라면 천공의 고래들도 크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겔론을 소멸시켰고, 차원을 뛰어넘어 이동 중이었다.
“지금 적으로 삼기에는 너무 강합니다.”
“나도 알아.”
고래 일족은 강하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모여 있을 것이다.
게다가 천공의 공주인 나탈리도 이제는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겠지.
김혁진은 결국 천공에 도착했다.
천공의 폭압적인 마나도 김혁진을 해치지 못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세니아는 숨쉬기 힘들어했다.
김혁진이 세니아의 어깨를 부여잡고 눈을 마주쳤다.
“괜찮아. 세니아. 숨 쉬어. 천천히. 하나. 둘.”
김혁진의 말에는 권능이 담겨 있었고 세니아도 점차 천공의 마나에 익숙해져 갔다.
천공은 천공의 마나가 가득한 바다였다.
광활하고 넓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혁진은 알 수 있었다.
“천공의 마나가 줄어들고 있어.”
다시 말해, 천공 역시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인가가 헤엄쳐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는 칠십 가량.’
선두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프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나프탄은 단순히 최상위 명령에 묶인 것은 아닌 듯했다.
‘울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는 당신을 죽여야만 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급해 보였다.
천공의 왕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야만 천공이 삽니다.”
그 말에 김혁진은 새로운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